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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사 더 큰 빛으로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785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5 10:45:58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그 때부터 난 항상 피아노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각종 콩쿠르에서 1등을 했었다. 국제무대에서도 영 아티스트 콩쿠르, 쇼팽 콩쿠르, 줄리어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메노그 국제 콩쿠르 등 수많은 콩쿠르에 입상을 했고 스무 살 때인 ’80년에는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됨으로써 일약 내 이름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대열에 끼이게 되었다. 이어서 스물다섯 살 때 링컨 센터가 수여하는 ‘윌리엄 퍼첵’상을 받았고 세계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인 ICM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인 ’88년에는 카네기 홀에서 선정한 ‘세계 3대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으로 특별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서른을 갓 넘긴 그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다. 그토록 바라던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섰으나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비참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려서 피아노를 칠 때면 항상 어머니가 옆에 계셨다. 마당에서는 동생들이 그네를 타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달려가서 같이 놀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게는 피아노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놀 수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사생활도 없었다. 오직 피아노, 피아노뿐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아이. 그것이 어린 시절의 나였다.

난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가 엄마가 소리지르기 전까지는 나오지를 않았다. 웅크리고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그 시간이 내게는 피아노 아닌 다른 것에 한눈을 팔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콩쿠르. 하지만 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열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승부욕. 나 자신의 열망이 문제였다. 난 항상 인정 받고 싶고 특출나게 살고 싶었다. 최고가,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다. 난 엄마와 부딪치기도 싫었다. ‘왜 엄마는 나를 남보다 유명하게 출세시켜서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그 당시 나는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쳐 버렸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내게서 청춘을 앗아간 장본인. 나를 피아니스트로 세워 주었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80년 그때에도 그 절망의 심연에서 나를 건져 주었던 어머니였는데도 말이다. 영국 BBC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앞두고 지나친 연습으로 오른쪽 팔이 왼쪽 팔보다 둘레가 5센티미터나 더 굵어져 있었다. 난 어려서부터 하루 8시간씩 강행군을 했었다. 하도 앉아서 피아노만 쳤기에 방석을 두세 개씩 깔고 앉아도 내 엉덩이는 계속 짓물렀다. “피아노를 그만둘 순 없어요!” 나무토막처럼 굳어지는 팔을 싸안고 나는 엄마 품에서 흐느꼈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도 방도가 없다는 나를 고치기 위해 직접 지압을 배웠다. 여섯 달을 배워 지압사 자격시험까지 합격한 어머니는 매일 한 번에 세 시간씩 초주검이 되면서까지 내 팔을 주물렀다. 엄마의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속에서 점차 내 근육은 회복되어 갔다. 나의 모든 것은 엄마로 인해, 아니 엄마의 땀방울과 함께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점차 그런 어머니의 땀방울이 싫어졌다. 항상 하나님께 모든 감사를 돌리는 엄마의 태도도 싫었다. 이 모든 것을 이뤄 낸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이지 않는가? 그토록 원하던 정상의 자리에 올랐건만 그러나 그런 성취가 행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서른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나도 여자이고 싶었다.“하나님, 정말 주님께서 살아계시다면 평범한 삶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도 남들처럼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살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주님을 제대로 믿겠습니다.”나는 감히 그런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러자 기도를 드린 지 2년도 안 되어 내게 평범한 남편과 평범한 가정이 주어졌다. 딸과 아들도 태어났다. 더불어 평범한 이들이 저마다 겪는 삶의 고통도 함께 주어졌다. 난 재벌가의 혼담도 마다하고 우연히 믿음이 있는 남자와 만나, 사귄 지 한 달 만에 결혼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이었다.

난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살림을 하면서도 피아노를 쳤고 돈을 벌어야 했다.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힘겨워 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 역시 아내인 나로서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8년의 결혼 생활.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한때나마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이런 시련들이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 같다. 결혼 전 나는 너무도 나 자신을 높게만 보고 뽐내려고만 했었다. 다른 이의 삶을 은연 중에 무시하며 고상한 척, 나만이 뛰어나고 나만이 노력하며 살아온 양 교만했었다. 그러던 내가 평범한 삶이 가지는 행복과 고통을 겪게 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더불어 내 음악도 온전해질 수가 있었다.

그토록 지겹던 음악이 어느새 기쁨으로 변했다. 음악으로 인한 고통은 내가 원했던 고통이기에 선택 받은 고통이자 기쁨임을, 주님이 내게 주신 너무도 고마운 축복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내게 있어 피아노는 더 이상 기교가 아니라 삶을 아는 이들과의 교감인 것이다. 내게 사랑을 전하는 남편이 있어, 그리고 아이들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하다. 우리가 이처럼 평범한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게 되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난 8년간의 삶을 통해 나로 하여금 평범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나로 하여금 화려함 속에 갇혀 삶의 참 모습을 모르는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나를 낮추고 연단하사 찬란한 빛과 기쁨으로 내 음악을 승화시켜 주시는 하나님께 진정 감사를 드린다. 엄마가 옳았었다. 내 인생의 모든 영광은 주님으로 인함이었다. 또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나를 도구 삼아 주시기를 오늘도 나는 소망한다⊙

낮추사 더 큰 빛으로/서혜경 (피아니스트)
-가이드 포스트 3월호 중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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