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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이야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18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0:26:29
피로써 나를 낳아 준 어머니 보다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같이 살아가는 아내가 더 편하다는 말, 참으로 깊고 따뜻한 말입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수요일 퇴근 무렵, 한 직원이 “이 장미꽃 한 송이 집에 가져가세요. 수요일엔 빨간 장미잖아요” 하면서 꽃병을 가리켰습니다. 순간 나는 한 가지 영상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필름을 돌려 보아도 결혼한 지 18년 동안 내가 꽃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장면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수요일엔 빨간 장미 한 송이, 그것도 종일 비가 내린 날’이라는 어떤 필연 같은 무게가 느껴진 나는 꽃병에 꽂혀 있는 여러 송이 중 가장 모양이 좋고, 싱싱한 한 송이를 골랐습니다.

좋은 생각을 낸 여직원과 같이 가시를 치고 지저분한 잎 몇 개는 따 버린 뒤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어 회사를 나섰으나 영 어색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따르릉’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여보, 집에 올 때 아파트 앞 슈퍼에 가서 스팸하고 참치 캔 한 개씩만 사오세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자 용기가 생기고 기분이 고조되어 슈퍼에 들렀다가 ‘딩동’ 벨을 눌렀습니다.“누구세요?”빠끔히 문을 여는 틈 사이로 ‘짠’ 장미 한 송이를 내밀자, 아내는 얼른 상황 판단을 못 하는 듯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만보았습니다.

“아, 오늘은 수요일, 그리고 비오는 날, 내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그대에게 드리려 사왔지.”그러자 아내는 대뜸 “이거 어디서 꺾어 왔어요? 어디 꽂혀 있는 것 가지고 왔지요”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무슨 말씀을, 내가 천 원 주고 사왔는데….” “이게 어떻게 천 원이에요.”“오늘은 특별한 날이어서 그냥 천 원 주고 거스름돈도 안 받고 한 송이 가져 왔지.”“글쎄, 이상한데요. 줄기가 짧은 것을 보니 어디 꽂혀 있는 걸 가지고 온 것 같은데요.”“아, 가시를 치다가 적당히 잘라 버렸지.”여기까지 이르자 아내는 일단 의심을 거두고, 장미 한 송이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수십 번 향기를 맡아 보더니 가장 아끼는 예쁜 컵에 꽂아 탁자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곧 딸아이가 들어와 “웬 장미야”고 묻자 아내는 어깨를 으쓱대며 “아빠가 엄마에게 바친 수요일의 장미야!” 하면서 벌써 수요일의 장미를 써 먹었습니다. 잠시 뒤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오자 또 한바탕 장미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기분으로 보아 이번에는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아 “사랑해, 안 사랑해”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내의 입에서 드디어 대망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어어해”였습니다.
이 말은‘사랑’이라는 말은 차마 못하는 아내의 ‘사랑해’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 동안은 늘 “안 어어해”였는데 오늘은 수요일의 빨간 장미 한 송이 덕분에 드디어 “어어해”가 나온 것입니다.

뒷날 아침, 모든 의심은 사라졌고 장미는 어제보다 더 붉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식탁에 옮겨져 온 가족의 시선을 받고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4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 친구가 퇴원 후에 사무실로 찾아와 한 말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보다 아내가 받아줄 때 대변이 쉽게 나오드만….” 피로써 나를 낳아 준 어머니보다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같이 살아가는 아내가 더 편하다는 말, 참으로 깊고 따뜻한 말입니다.

장미 이야기 / 정용철
좋은 생각 9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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