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마을 열린이야기

열린이야기

게시글 검색
감동을 주는 이야기3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77 추천수:13 112.168.96.71
2014-11-20 16:45:42

마음의 창

삶은 우리의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언제나 우리 자신이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랜드마 모세

중병에 걸린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큰 병원의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병실은 아주 작았고,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치료의 과정으로 오후에 한 시간씩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는 바깥 풍경을 맞은편 환자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창을 통해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내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호수에서 오리와 백조들이 떠다니고, 아이들이 와서 모이를 던져 주거나 모형배들 띄우며 놀고 있었다. 젊은 여인들은 손을 잡고 나무들 아래를 산책하고, 꽃과 식물들이 주의에 많았다. 이따금 공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무들 너머 저편으로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누워 있는 환자는 창가의 환자가 이 모든 풍경을 설명해 줄 때마다 즐겁게 들었다. 한 아이가 어떻게 해서 호수에 빠질 뻔했는지도 듣고, 대단히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여름옷을 입소 활기차게 걸어가는 애기도 들었다. 창가의 환자가 어찌나 생생히 묘사를 잘 하는지 그는 마치 자신이 지금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그러던 어느날 오후 한 가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왜 그 사람 혼자서 바깥을 내다보는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있는가? 왜 자신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창가에 있는 환자에게 질투가 났다. 침대위치를 바꿀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가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데 창가의 환자가 갑자기 기침을 하면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버둥거리며 간호사 호출 버튼을 찿는 것이었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당연히 그 환자를 도와 비상벨을 눌러 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환자의 숨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도. 아침에 간호사는 창가의 환자가 숨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용히 시신을 치워갔다. 적절한 시기가 되자 그는 창가 쪽으로 침대를 옮기고 싶다고 간호사에게 요청했 다. 병원 직원들이 와서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 창가 쪽 침대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매만져 주었다.

직원들이 떠나자마자 그는 안간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팔꿈치를 괴고 간신히 상체를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맞은편 건물의 회색 담벽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 엠마오 도상
엠마오 도상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라는 화가입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그림을 잘 그려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 아침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말았습니다. 렘브란트는 붓을 내 던지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닫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그린 그림이 'Night Watch' 라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림의 값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참 생명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면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값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린 그림은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려 18 종류의 번역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대화하는 제자들의 모습이나 나무의 모습들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그림을 완성하고 그는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행복했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허무함과
좌절감을 느끼는 길목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재회

헤어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직업인 나는 직업인 나는 지금까지 별의별 사람들을 다 도와 왔다. 그 가운데 존 스쾨아어즈씨의 경우에서처럼 내가 충격을 받은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서 온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1959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는 나와의 그 결혼이 재혼이었습니다. 아내의 전 남편은 한국동란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나와 결혼하기 4년 전쯤 아내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보살필 수가 없어서 고아원에 맡겼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클로디어, 당시 여덟 살이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고아원에 딸을 맡길 때 입양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는 그 외동 딸을 떠나 보낸 것을 줄곧 후회해 오고 있습니다. 근래 2,3년 아내를 도와 나도 그 애를 찾고 있으나 전혀 소식을 알 길이 없습니다."

정당한 수속을 밟아 입양된 아이를 찾는다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일을 착수했다. 우선 클로디어가 있어던 고아원으로 가 보았다. 물론 아무런 단서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아원측 사람이 무심결에 내뱉은 한 마디, 클로디어가 지금은 자기 일을 가지고 있으며 호강하고 있다는 한마
디 말을 나는 놓치지 안았다.일이란 혹시 그 아이가 프로 가수가 됐다는 뜻은 아닐까. 나는 추리를 해보았다. 그리고 음악가, 가수 명단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금발, 파란 눈의 21세 안팎인 가수 중에서 클로디어라는 이름의 인물이 세 명 있었는데 직감으로 나는 그중 하나를 짚었다.

클로디어 블레어,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소개기사에 씌어 있었다. 나는 먼저 그녀에게 편지를 내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쇼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무대 뒤로 그녀를 찾아갔다.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뜨개질에 열중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게 주신 편지는 잘 받아 보았습니다. 매니저가 읽어 주었지요. 전 장님이거든요" 그녀의 첫마디에 깜짝 놀란 나는 당황한 김에 겨우 "...... 저,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전 그걸 미처 몰랐습니다. "하고 떠듬거렸다.

얼마 후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내가 그녀를 찾게 된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의 표정이 눈에 보이게 차갑고 사나와져 가고 있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예요! 내가 바로 여덟 살 때 어머니한테서 버림을 받은 바로 그 아이예요. 어머니는 내가 장님이 되어간다고 버렸던 거예요" 클로디어는 격렬하게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조차 모르며 또 알고 싶지도 않다고 내뱉었다. 그러나 반면 양부모에 대해서 끔찍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생모를 만나 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나의 마지막 청을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냥 그곳을 물러 나왔다. 나는 존 스콰이어즈씨에게 클로디어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클로디어는 장님이며 가수로서 그런대로 잘 살고 있으나 생모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도 물론 덧붙여 말해 주었다. 한동안 잠잠하게 앉아 있던 스콰이어즈씨는 '정말 섭섭하군요. 그러나 이왕 시작한 일이니 그 애의 마음을 좀더 돌려봐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 "따님의 마음은 아마 변하지 않을 거요. 클로디어의 말에 의하면 자기를 고아원에 넣을 때 부인께서는 그 애의 눈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던데, 사실입니까?" 나의 물음에 스콰이어스씨는 잠시 주저했다. "그건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말못할 사정이 있었다더군요. 아무튼 단념 마시고 좀더 힘써 봐 주십시오." 나는 클로디어의 양부모를 만나 한 시간 이상이나 설득한 끝에 겨우 클로디어를 한번 타일러 보겠다는 정도의 승낙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날 그 가부를 묻는 나의 전화를 받은 클로디어는 처음부터 노발대발 악을 썼다. "아시겠어요? 난 버림을 받은 거란 말이에요!" 그녀는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엄마는 날 버렸던 거예요. 장님 딸이 거추장스러웠던 거죠. 그런데 이제 와서 날 더러 엄마를 용서해 주라구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사정이 있었을 테고 또 할말도 있다니까 한 번쯤 만나 소원을 풀어 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전화기 저쪽에서는 흐느낌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긴 침묵이 계속되었다. "알았어요. 지금의 양친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만나 보겠어요. 그러나 딱 한 번뿐이에요. 거듭 말하지만 내 맘은 절대로 변치 않아요,절대로!"

나는 스콰이어즈씨에게 곧 전화를 걸었다. 스콰이어즈씨는 그날 밤 당장 부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오겠다면서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아내 혼자 만났으면 좋겠군요. 나란히 붙은 방으로 두 개만 예약해 주십시오. 내일 아침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약속은 이행되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클로디어를 스콰이어즈 부인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 걸음걸이라든가 굳은 몸가짐으로 보아 클로디어로서는 그것이 조금도 마음내켜 하는 일이 아님이 분명했다. 클로디어는 혼자서는 결코 어머니 방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고집했다. 방안에는 커다란 소파에 파란 눈의 여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머리에 흰 머리칼이 다소 섞여 있었지만 클로디어의 언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젊었다.

클로디어가 먼저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들리듯 말 듯 말했다. 그러자 스콰이어즈 부인이 떠듬거리며 '몇 년 만이지? 널 만나면 여러 가지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어찌 된 셈인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구나. 네 목소리는 옛날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하고 말했다. "그 만 좀 둬요!" 클로디어가 소리쳤다. "이리 가까이 온. 널 찬찬히 좀 보고 싶구나" 나는 클로디어의 손을 이끌어 그 어머니 곁으로 데려 갔다. 어머니가 소파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딸을 끌어안으려는 동작인 줄 알고 나는 좀 뒤로 물러섰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클로디어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그 손이 딸의 얼굴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재빨리 얼굴을 더듬고 나서는 다정하게 말했다.

"어쩜, 아주 컸구나, 게다가 아주 예뻐지고......" 클로디어가 머뭇머뭇 제 얼굴을 더듬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만지며 '어머니도...... 어머니도...... 눈이......' 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안보인단다. 그렇지만 너라면 어디서 만나더라도 꼭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클로디어가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아, 엄마가 앞을 못 보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날 데리러 오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군요. 날 버린 것도..... 그렇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런 사실을 가르쳐 써주지 않았단 말이에요"

]

사례비 받는 날

오늘은 김 목사님 사례비 받는 날입니다.10여년 전 어렵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한 교회가 이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교회도 도와주고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비를 지원할 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개척교회 시절을 생각하면 김목사님은 매일매일 천국에서 사는 것 같았습니다. 김목사님은 함께 고생한 사모님을 끔찍이도 위하셔서 교회 성도님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잉꼬부부이기도 했습니다. 김목사님은 옛날 아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했으나 돈이 없어 사주지 못한 조금 비싸다 싶은 패션 구두를 이번 기회에 큰맘먹고 사주기로 결정하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선물을 받아든 아내는 깜짝 놀라며 "여..여보 이게 뭐예요?""거 뭔지 당신이 한번 맞춰 보구려."그러자 아내는 긴장된 표정으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풀었습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아내를 소파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김목사는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여보, 정말 고마와요. 아이, 내 정신 좀 봐! 여보 얼른 샤워하고 식탁에 앉으세요. 오늘은 특별 메뉴예요. 당신이 개척교회 시절에 그렇게 드시고 싶어 하셨던 불고기를 볶아놨어요" 샤워를 끝낸 김목사 부부는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음식을 만든 손길도 축복하시고 주의 종의 가정을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될 만큼 모범 가정으로 이끌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그 동안의 고생을 하나님이 보상이라도 해주신 듯 김목사님의 저녁은 웃음꽃이 피면서 행복하게 저물어갔습니다. 오늘은 이목사님 사례비 받는 날입니다.김목사와 동기동창인 이목사도 교회를 개척한지 10여년 만에 김목사의 교회만큼 성장하였습니다. 개척교회 시절의 어려움은 김목사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중에 이 목사는 아내가 꿈속에서도 갖고 싶었던지 잠꼬대까지 했던 구두를 이번에 큰맘 먹
고 사주기로 했습니다. 구두 가게에서 패션 구두 가격표를 본 이목사는 그 엄청난 액수에 그만 슬그머니 나오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최전도사의 얼굴이 요즘 말이 아니게 수척해진 것이 마음에 걸려 산꼭대기에 있는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최전도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신학교를 다닙니다. 단칸방 앉은뱅이 책상에서 레포트를 쓰다가 목사님의 방문을 맞은 최전도사는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아이고..목사님, 또 오셨네요. 목사님 생활도 힘드실 텐데 매번 이렇게 도와주시면 어떡합니까? " "아니네. 나도 신학공부를 할 때 다른 사람의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공부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네. 내가 알지. 이게 액수는 얼마 안되지만 마음에 얼마나 큰 힘과 격려가 되는지. 이 사람아 자네도 이 다음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이 목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패션구두 한 켤래 값을 전해주고 최전도사의 집을 나왔습니다.

"여보,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사택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던 아내가 반가이 맞으며 말했습니다. 저녁 밥상 앞에 마주앉은 이목사는 아내의 눈치를 폈습니다. "여보, 사실은 지금 최전도사 집에 다녀오는 길이요. 요즘 어려운 것 같아서..." 아내는 다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여...여보, 당신의 구두는 다음에는 꼭 사줄게. 한번만 더 속아주시구려.... 미안하오" 이목사님은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사모님은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목사님의 저녁은 이렇게 가슴 뭉클하게 깊어갔습니다.

사례비 받는날/최 용우


{{ 비둘기와 개미}}
이솝의 우화 가운데 비둘기와 개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홍수가 났습니다. 개미가 홍수 가운데 떠내려 가는 것을 나뭇가지에 있던 비둘기가 보았습니다. 비둘기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나뭇잎 하나를 꺾어서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 옆에 던졌습니다. 그 덕분에 개미는 바 그 나뭇잎에 올라타서 구출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홍수가 끝난 다음 개미가 숲 속에서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사람이 총을 들고 무엇인가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웬 사냥꾼이 자기를 구해 준 비둘기를 잡기 위해서 총을 쏘려고 조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냥꾼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이미 그 사냥꾼에게 달려간 개미는 그 사람의 발을 있는 힘을 다하여 물었습니다. 결국 그 사냥꾼은 총을 제대로 겨누지 못했으며 그 덕에 비둘기는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5:6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 때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

그것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운동회는 마을 전체의 행사였기 때문에 모두가 들떠 있었다. 응원단을 만들어 응원 연습을 하는 한편 가장 행렬을 준비하는 등, 학교는 마치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했다. 개중에는 학교에 침낭을 가져와 밤을 새면서까지 준비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1500미터 경주에 출전하게 되었다. 1500미터는 300미터 트랙을 5바퀴 도는 승부로 결코 쉽지 않은 종목이었다. 드디어 운동회 날. '탕'하고 출발신호가 떨어지고 우리는 모두 전력 질주.... 세 바퀴째를 돈 순간 스탠드에서 술병을 휘두르며 응원하고 있는 남자가 확 하고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미 술에 취했는지 상체를 비틀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이었다."달려라! 달려! 일등으로 들어가!"아버지였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오늘도 아버지는 운동장까지 술병을 들고 온 것이다.

아버지의 술취한 목소리가 내 심장을 찔러 얼굴은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그 순간 부끄러움과 치욕으로 아버지에게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기 위해, 나는 힘껏 속도를 올려 몇 사람을 제쳤다. 아버지는 스탠드의 가장 앞줄에서 몸을 내밀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아버지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을까. 술 냄새로 주위 사람 모두가 싫어하는 표정이건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있는 아버지.... 땡땡땡땡.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버지의 모습을 곁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또다시 속도를 올렸다.

중간 지점의 코너에서 마지막 선수를 제치고, 마침내 나는 일등으로 골인했다.그때 나는 삐죽 빠져 나온 속옷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응원을 받은 것이다. 창피를 무릅쓰고 아버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식을 응원한 것이다.점심시간이 되었다. 스탠드의 아버지는 술병을 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술을 따르며 돌아다녔다. 또다시 술주정이 시작된 것이다.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이제 그만 하고 집으로 가세요"나는 아버지를 붙잡고 사정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네가 일등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난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 일등이야! 일등이라구!" 아버지는 혼자 들떠서 축배를 들었다. "아버지..." "조금 있으면 가지 말래도 갈 거다.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는 또다시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운동회가 끝났을 때, 아버지는 스탠드의 텐트 안에서 큰 대 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얼른 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1킬로미터는 족히 걸었을 때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던 아버지가 "일등이다"하고 중얼거렸다. 갑자기 등줄기에 따뜻한 눈물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꿈속에서까지 울고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따뜻한 등줄기에서 촉촉한 감촉이 조금씩 온몸으로 퍼지고 내 눈에서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런 특기도 없는 나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아버지의 눈물 섞인 응원. 술주정으로 빛이 바래긴 했어도 그건 내 일생을 빛내 주는 하나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우리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눈물 몇 방울 중에서-



두 어머니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세계의 어머니를 대표할 수 있는 두 여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참회록을 후세에 남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나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이다.아그리피나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클라우디오 황제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악이용한 대표적인 아내였다. 그녀는 아들인 '네로'를 조속히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남편인 클라우디오 황제를 암살시키고, 그가 원하던 대로 네로를 즉위시켰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자식인 네로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사필귀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모나카는 한 어머니가 자기 자식에게 어느 만큼 영향력을 줄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현실로 증명해 준 사람이었다. 모나카의 감화와 기도 속에서 방탕의 자식 어거스틴이 성 어거스틴이 되어 새로 태어난 것이다. 한 여인으로서의 어머니! 그는 약한 존재이며 울고 웃는 평범한 여인이다. 그러나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반드시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위대한 어머니의 배후에는 반드시 위대한 신앙이 있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 말씀이 생각난다.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

 

네 가족을 먼저 돌 보라 !

아버지는 워낙 엄하기만 한 분이었지만 동생이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뒤로는 도무지 걷잡을 수 없이 성격이 거칠어지셨습니다. 불구의 동생이 자랄수록 아버지는 그 가슴 아픈 결과가 어머니의 탓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를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불쌍한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의 세월을 살아가는 어머니를 위하여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만이 희망이요, 영생"임을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교회에 착실히 출석하며 어머니와 동생을 감싸는 꼴을 보기 싫어하시다 못해, 어느 때는 교회 출석을 훼방하며 매질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상 성격을 드러내며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 실패로 돌아간 것은 내가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하던 가을이었습니다.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 전선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어 안정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얼마 후에 어머니께서 퇴행성 관절염으로 누워지내시게 되었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시던 아버지마저 노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나는 직장을 부득이 그만 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분의 병간호와 살림은 한없는 일거리를 만들고... 생계는 막연하여 좌절감이 들 때가 없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누워서도 마음을 부드럽게 쓰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한없는 절망 속으로 밀어 떨어뜨렸습니다.

내가 의지할 곳은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결혼 적령기도 병간호와 집안 살림 하는 동안에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남모르는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렇게 살다가 제 인생은 끝이 나는 것입니까? 선교사가 되어 제3국으로 가서 주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결혼을 못할 바에야 선교사가 되어 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내 가슴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젊음도 결혼도 부모와 불구의 동생을 위하여 고스란히 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께서는 나의 지팡이가 되시어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나에게 피아노 교습소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조금도 쉬지 않고 죽도록 일을 해도 부모님의 병원비와 약값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선교사의 길을 꿈꾸며 7년 전에 신학교에 들어가 2년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 뒤에, 친척과 구역 식구들의 도움을 약속 받고 필리핀과 베트남 선교사가 되어, 그토록 내 발목을 잡아 매었던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집을 떠났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주님의 음성만을 붙잡고 목숨을 바칠 작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매불망, 나의 젊음과 결혼까지 포기하게 만들었던 가족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타국에서 전도를 하기 전에 네 가족을 돌보는 것이 우선하는 선교란다.' 단 한사람도 성한 사람이 없는 가족의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 했던 나에게 주님은 따뜻한 말씀으로 타이르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님도 눈물로 반기셨습니다. 영구 임대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어 이집 저집으로 쫓겨다니지 않아도 되는 안정을 얻었습니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려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나서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도 놓여났습니다.
이제 내 나이 서른 일곱 살. 그러나 지금까지도 한걸음 한걸음 인도해 주신 주님께서, 행복한 가정 또한 허락하시어 부모님께 효도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주시리라 믿습니다 ●

네 가족을 먼저 돌아보라 / 김명
-주부편지 중에서- 97. 9월호



{{기독교 가정 헌장}}

※ 이 기독교 가정헌장은 한국기독교가정생활위원회에서 기초하여 교계의 자문을 얻은 뒤 1990년 3월에 공포한 것입니다.
1. 가족은 하나님이 맺어 주신 특수한 사랑의 관계로서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 구별 없이 동등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쾌적한 의식주의 환경을 유지해야 하며, 가정의 행복을 방해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

2. 부부는 평등한 동반자로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순결을 지키고 서로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격려하고 도와야 한다.

3.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그리스도 사랑을 바탕으로 자녀와 인격적으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정직하고 근면한 삶의 본이 되어야 한다. 자녀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이끌며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

4. 자녀는 진실하고 선한 인격을 닦아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며 부모의 참뜻을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

5. 형제 자매는 한 피 받은 사이임을 감사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북돋우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모든 일에 협력해야 한다.

6. 부모가 한쪽 또는 모두 없는 가정은 소외되거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며 인간적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경제적 문화적으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7. 장애자 가족이 있는 가정은 장애인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장애인에게도 일반인과 똑같이 교육받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8. 가정은 한 가족의 이기적인 행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이웃과 더불어 사는데 힘써야 하며 새 역사에 대한 꿈을 가지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9. 가정은 파괴된 자연계와 인간 사회에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10. 가정은 화목을 유지하고 참된 가치를 창조할 권리가 있으며, 가정이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파괴될 위험에 놓여 있을 때 국가로부터 최대한 보호받아야 한다.

 

아아, 산다는 것은...

그 해 여름은 몹시도 더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무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흔이 다 되신 시할머님이 안면 피부암을 앓고 계셨는데 나는 넷째 딸인 막내를 병원 수술실에 넣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천장에 달려 있던 철제 선풍기가 떨어지면서 겨우 여섯 살인 진영이의 옆구리를 내리쳤다. 심한 충격으로 신장은 견디지 못해 터져버렸고 그후로 그 아이는 소변을 볼 때마다 피를 한 대야씩 쏟아 놓았다. 우선 흩어져 있는 신장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서 둥글게 얽어매는 일과 소변을 옆구리로 빼는 수술을 했다.

수술을 마치고 우리는 너무나 기뻐서 아이가 소변을 어디로 보느냐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딸아이의 몸에는 가느다란 줄들이 너무 많아서 업을 수도 안을 수도 없었다. 코에는 산소 호흡기의 줄이, 목에는 가래를 빨아내는 줄이, 손과 발목에는 링겔 주사 줄이, 옆구리에는 소변 배설 줄이 있었으니 옷도 못 입히고 그저 얇은 수건으로 몸을 감싸줄 뿐이었다. 한 달만에 신장은 겨우 회복하여 제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 한달이지 그때의 한 달은 나를 이미 초라한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며칠 후, 의사는 두 번째 수술 서약서에 사인을 요구했다. 옆구리로 돌려 빼냈던 요관을 방광으로 연결해야만 밑으로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배에는 첫 수술로 남은 심한 흉터가 30cm나 있는데,
옆구리를 또 가른다니 어린 것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철없는 막내는 옆구리에 찬 기저귀가 부끄러우니 빨리 수술해 달라며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손을 흔들면서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가 버렸다. 수술실의 그 길고 긴 복도. 소리도 없이 침대를 밀고 떠난 횐 가운의 사람들은 다시는 나에게 막내를 돌려 줄 것 같지 않았다.나는 나무 의자에 머리를 짓찧으며 죄인처럼 소리 죽여 울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회복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쩌면 수술 도중에 체력이 약해서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문이 열렸고 회복실에서 나온 침대는 둥근 비닐막이 비닐하우스의 형태로 환자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아! 그 속에서 나의 딸이 꿈처럼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진영아. 엄마다, 엄마...'비닐막 속은 가습기에서 나온 수증기로 확 차서 막내는 할아버지처럼 하얀 머리와 횐 눈썹을 하고 있었다. 내가 콧물, 눈물이 범벅되어 기뻐 날뛰자 막내는 바보 같은 엄마가 비닐막이라도 걷어낼까 봐 걱정을 했다. "엄마, 이거 벗기면 안돼."

입원한 지 사십 칠 일 만에 말라비틀어진 막내딸을 소중하게 안고 집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무엇인가 심하게 썩는 냄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시할머님의 방을 들여다보고선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시할머님의 왼쪽 이맛살과 귀는 완전히 썩어서 헐어 있었고 허옇게 골이 보이는 곳에 구더기가 곰실곰실 파들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자기의 죄인 양 아무리 소독을 해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벌레를 막을 수가 없었다며 시어머니는 고개를 떨구셨다. 이런 효부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나는 시어머님의 발등에 엎드려 울고 싶었다. 내 자식 살리는 데만 급급해서 시할머님의 연명이 두 달이 어렵다던 의사의 말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 내내 할머님은 나에게 이 말만 하였었다. "에미야, 이 할미 얼른 죽게 수면제 좀 많이 다고.... 그간 세 낱알 먹고 어디 죽겠니..."건넛방에는 며칠이면 목숨이 다하실 시할머님을, 안방에는 이제 겨우 살아난 갈잎같은 막내를 뉘여 놓고 돈 벌어 오겠다던 남편의 귀국만을 기다리는 나는 참으로 암담했다. 남편이 돌아오기 하루 전, 시할머님의 기미가 이상하시다며 급하게 어머님께서 의원을 부르러 간 사이 결국 시할머니는 숨을 거두셨고 어머님이 도착했을 때, 막 새벽 두 시 종이 울렸다.우리는 시할머님을 깨끗한 이부자리로 옮겼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요자리를 걷어 냈을 때, 우리는 요 밑에서 무수한 횐 알약들을 발견하였다. 할머님은 고통스러우실 때마다 수면제를 달라고 하셨을 뿐 한 알도 잡수시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산채로 썩어 가는 그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했던 목숨에의 애착이라니....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수술을 마치고서도 뒤집어쓰고 있던 비닐을 걷을까봐 걱정하던 어린것의 모습이라니....순간 나는 산다는 것에 대해 형용할 수 없이 엄숙해지기 시작했고 뜨거운 것이 가슴으로부터 용솟음쳐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 내야 했다.

아아, 산다는 것은... / 강 난 경
'다시 만날 때는 낯선 사람으로' 중에서

 

사랑이 남긴 것

알은 젊었을 때 화가이자 도예가였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명의 훌륭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그의 큰아들이 심한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배탈이 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알과 그의 아내는 그다지 심각한 상황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급성 맹장이었고, 아이는 그날 밤 갑자기 죽고 말았다.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아이가 죽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안 알은 심한 죄책감 때문에 극도로 정신이 쇠약해졌다. 불행이 겹치느라고 얼마 뒤 그의 아내마저 여섯 살 짜리 어린 아들을 남겨 둔 채 집을 나가고 말았다.

알은 이 두 가지 비극이 안겨다 준 심한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이겨 낼 힘이 없었다. 그는 차츰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머지않아 그는 알콜 중독자 신세가 되었다. 알콜 중독이 심각해지자 알은 자신이 가졌던 모든 걸 하나둘 잃어 갔다. 가정과 집, 자신이 만든 미술 작품을 비롯해 모든 것을…. 결국엔 가서 알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혼자 쓸쓸히 생을 마쳤다. 알의 죽음을 전해들은 나는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인생을 소비한 사람에게 세상이 흔히 보내는 약간의 경멸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큰 손실인가! 그야말로 헛되이 낭비하고 만 인생이 아닌가!'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그 가혹한 평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알의 아들 어니가 어느덧 크게 된 것이다. 어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친절하고, 선하고, 사랑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나는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어니를 지켜보곤 했는데,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사랑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 애정과 세심함이 어디서 생겨난 걸까 나는 궁금했다.

나는 어니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별로 듣지 못했다.알콜 중독으로 생을 마친 사람을 변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어니에게 물었다. "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네. 내가 알기로는 자네를 키운 사람은 자네의 아버지뿐인데, 도대체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가 어떤 방법으로 자네를 이토록 특별한 인간으로 키웠는가?" 내 질문을 받고 어니는 잠시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인 열 아홉 살 때까지, 아버지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제게 키스를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야, 난 널 사랑한단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알의 인생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평가했던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어른거렸다. 물론 알은 아무런 물질적인 것도 뒤에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가슴 깊이 사랑을 간직한 아버지였으며, 그리하여 세상에서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선한 인간을 뒤에 남긴 것이다.

사랑이 남긴 것 / 보비 기이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