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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11) 병든 마음 치유(에베소서2:1-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140 추천수:5 220.120.123.244
2021-08-22 15:11:35

치유(11) 병든 마음 치유

에베소서2:1-10

 

오늘은 치유 시리즈 11번째 설교로 “병든 마음 치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몸이 아픈 것입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건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저 지나가는 감기 정도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집안 식구 중에 누군가 중병에 들면 온 가족이 얼마나 힘입듭니까? 그런데 마음이 아픈 것, 마음이 병든 것에 대하여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병든 마음, 상한 마음, 아픈 마음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성인 10명 중 2~3명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중 368만명(10.2%)이 매년 우울증·강박증·공황장애 같은 23가지 정신질환 진단을 받는다고 합니다. 폭발 직전의 화병, 죽음의 구덩이 우울증, 삶을 지옥으로 이끄는 각종 중독, 잠 못드는 불면증, 죽음의 문턱의 기억 트라우마, 공황장애, 열등감, 완벽주의, 조울증, 강박증, 성인아이, 낮은 자존감, 죄책감 등 각종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이런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인간을 만드셔서 인간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 4:23)”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개인이 불행해지고 가정이나 세상이 지옥같이 변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오스월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는데 어머니는 이 아버지를 증오하다 결국 이혼하게 되었답니다. 그 후 어머니는 다시 재혼을 했는데 새로 만난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용해 먹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결국 또 다시 이혼했답니다. 이런 병든 가정 환경 때문에 오스월드는 결국 성격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매우 공격적인 사람이 되었답니다. 이런 그의 마음의 상처는 씻을 수 없는 증오감으로 불타올랐답니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퇴학되었고, 그 후 해병대에 지원했지만, 그곳에서도 부적응과 불화 때문에 결국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 후에 어렵게 결혼해서 잘 살려고 했지만 어릴 적 병든 마음을 치유받지 못해 마음속 깊은 곳에 증오의 쓴뿌리가 있었답니다. 자신이 그렇게 증오했던 아버지가 했던 학대를 자신도 아내에게 반복하며 이용한 것입니다. 그는 아내와 다투고 1963년 11월 2일 회사에 출근하여 아무나 총으로 쏴 죽인다고 옥상에 올라가 그곳을 지나가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쏘아 죽이고 말았답니다. 병든 마음만 치유받았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생긴 병든 마음을 치유받지 못한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도 병든 마음을 가지고 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릴 때 이웃에 대한 적개심이 컸고 어머니를 폭행한 아버지 밑에서 살았답니다. 세무공무원으로 술꾼에 무례하고 권위적이며 어머니를 폭행할 정도로 흉폭했다고 합니다. 진학 문제로 아버지와 마찰이 잦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으로 공부에 불성실했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것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은 유대인 스승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어머니가 어머니 주치의인 유대인 의사와 불륜관계를 갖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며, 유대인들이 독일 경제를 장악하고 있어 증오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의 유대인 증오는 결국 치유받지 못한 병든 마음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 6백만명이 살해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치유받지 못한 병든 마음이 인류를 전쟁으로 몰아갔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했습니다. 병든 마음은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병든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겠습니까?

 

1. 우리가 병든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우리를 가리켜 "죽었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소통해야 하는데 소통이 끊어져 단절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탯줄이 끊어진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오늘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원죄를 말하고 허물은 자범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무엇입니까? “다 그 가운데서”입니다.

그 가운데가 무엇이겠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그것이 바로 앞에 공중권세 잡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입니다. 마음 속에 악한 영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공중권세잡은 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싸움을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악한 영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엡6:12).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거짓의 영 사탄의 고도의 전략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원마음은 원죄로 말미암아 병든 마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2절에 보면 세상 풍속입니다. 둘째는 3절에 보면 욕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야만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원 마음이 굶주린 마음, 버림받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하니까 굶주린 마음 버림받은 마음이 욕심을 일으킵니다. 허기, 두려움, 불신, 불안, 열등감, 걱정 등을 채우고 보호받기 위해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탐욕이 죄의 뿌리가 되어 각종 죄를 만들어 냅니다. 이 병든 마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은 굶주린 마음 때문에 계속 세상의 것으로부터부터 유혹을 받고 세상 것으로 욕심을 채우려 하다보니 자범죄(허물)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은 정확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8-1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그들 마음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로마서 1장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로마서 1:28)” 사람의 마음이 병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예레미야 17:9)”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 인간의 원마음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각종 세균이 득실 거립니다. 병든 마음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29절 이하를 읽어 보십시오. 불의, 추악,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하나님이 미워함, 능욕, 교만, 자랑, 악의 모모, 부모 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등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등 15가지 병든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이러한 마음의 병을 허물이라고 말하고 허물로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살면 마음에는 이런 마음의 병균들이 득실거려 마음을 죽여 버립니다.

이런 병든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병을 치유할 때는 증상을 치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열나면 해열제를 주는 것입니다. 혈압이 올라가면 혈압을 낮추는 약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치료는 증상 치료에 불과하지 원인치료는 아닙니다. 열이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그 원인을 치료해야 근원적인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의 각종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근원적 치료를 위해서는 그 원인 치료를 해야 합니다. 마음 질병의 근원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마음의 병은 존재하는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있습니다. 현실은 존재하는데 그것을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가르쳤던 학생 중에 날마다 수시로 손을 씻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병균에 오염되어 그것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병인 오염 강박이라는 결벽증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병원균과 함께 살고 몸속에는 수많은 균이 있는데 병원균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술먹고 폭행한 아버지도 실제로 존재하는데 그 존재를 자신의 마음에서 억지로 지워버리려고 하고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면 성인 아이가 되어 마음이 병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잘 살았지만 지금은 가난해졌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 우울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단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듭니다.

사람이 마음이 병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실재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해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사탄이 그 마음을 휘어잡고 욕심과 세상 풍속에 따라 살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음의 병원균에 감염되기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니까 마음의 병의 기본인 두려움과 분노, 굶주림에 시달려 각종 마음의 병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되는데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마음의 질병에 평생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병을 치유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니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6장 1절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여호와를 마음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5) ②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6) ③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6).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우리를 사탄의 종노릇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정죄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죽음의 노예로부터 자유자로 만들었습니다. 살리고- 일으키고- 앉히셨습니다.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축복은 어떤 것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구약 성경은 어떻게 예언해 놓았습니까?

이사야 61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기위해 오셨다고 말씀하는데 결국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병든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마음에 모셔 인간의 마음의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빌립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9)”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0:40)”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보여주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니까 맡기기 못하고 맡기지 못하니까 자신이 떠안고 불안해 하고 걱정과 근심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성도님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병든 마음을 깨끗하게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라기 4:2)”

 

2. 우리가 병든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고 병든 마음을 시켜 주었습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미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다른 말로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 보십시오. ① 하나님의 긍휼(4) ② 하나님의 사랑(4) 7절을 보십시오. ③ 하나님의 자비(7)입니다. 둘째 믿음이라는 통로입니다. 이것이 바로 굶주린 마음을 채우시는 우리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마음의 치유를 받으려면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사랑, 긍휼, 자비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 가난해도, 못배웠어도, 부족해도, 잘나지 못했어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것입입니다. 이러한 자존감을 가지면 우리의 병든 마음은 대부분 치유가 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 욕심과 세상 풍속에 굶주리지 말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병든 마음은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7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게 하는 과거의 냄새 나는 인생 쓰레기와 악취를 다 그리스도를 통해 없애 버렸습니다. 사람은 굶주린 마음을 사랑과 인정을 통해 채우려고 합니다. 어릴 때 부모를 통해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병든 마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5세까지 애착결핍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면 높은 자존심이 생기지만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열등감과 완벽주의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욕구를 채워주면 안정적이지만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불안한 아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시간 개념이 없어 우는데 젓을 주지 않으면 영원으로 생각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믿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받는 경험을 해야 연대감이 생기는데 거절당하면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감정조절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의 병이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과거 상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 방치, 굶주림, 억눌림, 따돌림 등에 의해 생긴다고 합니다. 사랑의 결핍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사람이 없고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의 병이 든다는 것입니다. 사랑결핍, 애정 결핍이 자기 연민, 자기 증오, 실의, 무관심, 가지 경멸 등이라는 마음의 질병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신체적 정서적인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서 마음의 상처가 생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종 중독인 가정, 처자식을 돌보지 않고 딴 사람하는 아버지, 편부모 계부모, 의부증 의처증, 폭력과 폭언이 나무하는 가정에서 자라면 병든 마음을 가지지 쉽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분노, 두려움, 모멸감, 슬픔, 부끄러움, 죄의식, 수줍음, 이질감, 혼란, 무가치, 고독, 불신, 불안, 위협, 우울함 같은 마음의 질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할 사람 없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누가 사랑해 주지 않아도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많이 배우지 않았다고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십자가를 통해 사랑해 주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어(8) 이 믿음도 내가 믿어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거저 주신 것입니다(1:6) 우리의 노력은 전혀 없습니다. 거저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약 호세아 14장 5절에서 이 은혜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나를 배신하였다가 병들었으나, 나는 그 병든 마음을 고쳐주고 사랑하여 주리라. 이제 내 노여움은 다 풀렸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7편 3절에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 사실을 믿음으로 상한 마음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나는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대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만큼 사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유명한 성자 성 프란체스코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성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내가 무슨 성자야.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지. 생각해 보게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망극한 은혜를 이 세상의 저 도둑들이나 깡패나 살인강도에게 주었다면 그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성자가 되었을 것이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늘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이 사랑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3. 우리가 병든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마음은 무엇을 바라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슬픈 것을 보면 슬퍼지고, 기쁜 것을 보면 기뻐집니다. 음란한 것을 보면 음란한 마음이 들고, 정결한 것을 보면 거룩해 집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에 따라 마음이 병들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모시고 은혜를 주어 예수님을 믿으며 살게 했습니까?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 무엇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까? 무엇을 목표로 삼으라고 말씀합니까?

오늘 성경은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어야 합니다(7).

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7)"

둘째는 우리의 마음의 목표는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성취해 드리는 것입니다(10)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더 이상 마음이 병들지 않게 살려면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는 삶, 선한 일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10번 나옵니다. 1장 18절에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바라보라고 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하라고 말씀합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종들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고 말씀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엡 6:6),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7)고 말씀합니다.

만약 세상 풍속과 탐욕을 보며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4장 17절에서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해 버립니다.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바꾸어야 합니다. 바라보는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관심을 바꾸어야 합니다. 즐거움의 대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취미를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은혜로 믿어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도 여전히 세상 풍속과 탐욕에 목표를 두고 살면 또다시 마음은 병을 앓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이고(빌립보서 2:5), 그리스도의 장성한 인격의 분량에 이르는 삶입니다(에베소서 4:13) 마태복음 5장에서는 팔복을 이루는 마음이고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등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을 마음에 맺는 삶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병든 마음을 치유받고 다시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나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성인 아이일지라도,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하였을 지라도, 병든 마음을 가지고 있고, 상처난 마음이 있다할 지라도 얼마든지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일당 5천원을 받던 한 청소년이 나중에 5조원 규모의 대기업 총수가 된 분이 있습니다. 10억 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웬디스 햄버거의 창업주인 데이브 토마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32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답니다. 입양됐지만 5세 때 양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양아버지는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양할머니 밑에서 자랐답니다. 얼마든지 병든 마음으로 인생을 망칠 수 있었습니다. 12세 때부터 종일 식당에서 일했고 15세 때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답니다. 히틀러처럼, 오스월드처럼 얼마든지 마음이 병들 환경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선한 일에 목표를 두고 살아서 나중에 전세계에서 1만 개가 넘는 체인점을 거느린 웬디스 햄버거의 총수가 되었답니다. 데이브 토마스가 10억 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병든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은혜를 자식에게 손자에게 오는 여러 세대에게 나타내야 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면 됩니다. 우리는 내 자랑하려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연약한 그릇이지만 그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면 됩니다. 부족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오는 세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 건강 주고 아름다움 주고 신앙 주고 자녀 주고 물질 주고 지식주고 명예 주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는 사람들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랑하지 말고 우리가 받은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목표가 분명해야 우리의 마음이 병들지 않습니다.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왕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왕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 큰 사랑을 입은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 풍속을 쫒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선한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부하라(딤전6:18; 행9:36)"고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8-19)" 선한 일을 하는 데는 고통이 따릅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대하 19:11)"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롬 2:10)"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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