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치유(10) 중독 치유(사무엘 상2:12-17, 22-2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501 추천수:6 220.120.123.244
2021-08-15 21:55:12

치유(10) 중독 치유

사무엘 상2:12-17, 22-26

 

오늘은 치유 10번째로 중독 치유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는 ‘나는 중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귀를 닫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독에는 물질 중독인 음식중독, 다이어트 중독, 술 중독, 카페인 중독, 담배중독, 탄수화물 중독, 행위 중독인 건강염려증중독, 쇼핑 중독, 애완동물 중독, 도박중독, 불안중독, 일 중독, 관계 중독, 돈 중독, 성공 중독, 명예 중독, 자녀 중독, TV 중독, 인터넷 중독, 포르노 중독, 스포츠 중독, 노래 중독, 거짓말 중독 등 다양한 중독이 있습니다. 이런 중독이 설령 나와 관계가 없다하여도 가족과 친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들으며 중독으로부터 치유받고 참 자유를 누리는 우리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가정은 보이지 않은 각종 중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중독질환 전문 연구 네트워크인 '중독포럼'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음주·온라인게임·스마트폰·도박·음란물 등 각종 중독은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 중독은 우리나라 4대 중독으로 꼽히는데 중독포럼이 2012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4대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무려 110조원 정도나 된다고 했는데 9년이 지난 지금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중독에 의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 우리나라 일년 예산과 비교하면 실감할 수 있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2021년 예산의 총 규모는 558조 원이었으니 우리나라 예산의 1/5규모입니다. 가족 식구 중 누군가 중독에 빠지면 경제적으로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실직, 인격 장애, 가정파탄, 절도, 폭행 및 살인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지면서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불행해집니다. 2천 년에 국회의원에 출마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모 민변출신의 변호사는 우연히 도박장에 갔다 도박 중독에 빠졌답니다. 결국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해 사무실 운영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고 57세 나이로 사기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카지노 도박으로, 인터넷 도박으로, 경매 도박, 주식 도박으로 등으로 경제적 파탄을 당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게임 중독에 빠진 한 중학생이 어머니가 나무라니까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어떤 신혼부부는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갓난아이를 집에 놓고 부부가 pc 방에 가서 게임을 하다 아이를 죽이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19시대에 학부모들은 아마 대부분 아이들과 인터넷 게임과 스마트 중독 등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게임 중독된 아들로 PC 방을 불사르고 싶다는 분도 계십니다. 국내 게임 업계 시장 규모는 약 14조를 이른다고 합니다. 그 규모가 큰 만큼 학부모는 자녀들과 스타트 중독, 게임 중독, 영상 중독과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내가 게임 중독에만, 인터넷 중독에만 안 걸렸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뒤돌아 보면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했던 게임 중독, 영상 중독, 포르노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칼럼으로 써 놓았는데 쇼핑 중독도 심각합니다.

국민 8명당 1명꼴이 알코올· 인터넷· 도박· 약물 등 4대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적은 수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독자 수는 약 6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2020년 우리나라 총가구 2049만에 비해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한 가구당 3-4명으로 잡으면 거의 전 가정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독으로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와 국가 전체의 안정성과 경쟁력이 저하되고,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독은 질병이기 때문에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마음으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중독이 된 것입니다. 술로 인하여 실수를 하고 술을 먹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술을 먹는다면 알코올 중독이 된 것입니다. 게임으로 학업 성적이 떨어져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계속 게임을 하고 있다면 게임중독이 된 것입니다. 마약이나 도박에 의해 구속되었는데도 풀려나 다시 도박이나 마약에 손을 대면 이미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것입니다. 텔레비전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서 계속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영상 중독이 된 것입니다. 음란물로 시청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데도 계속 음란물을 본다면 음란물 중독에 된 것입니다. 물건을 사는 것으로 가족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는데도 계속 쇼핑을 하고 있다면 쇼핑 중독이 된 것입니다. 중독이 되면 스스로 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뇌의 전전두엽이 손상되어 도덕심이나 양심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문제가 생깁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성준 교수는 “MRI를 실시간으로 찍어 충동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의 뇌 변화를 보면 복외측전전두피질 활성이 다른 사람에 비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중독이든 중독은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뇌가 손상이 되어 버리는 병입니다. 중독이 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축복으로 주신 전전두엽의 기능을 감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책감, 수치심, 분노, 자기 증오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인 관계가 손상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직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재정적으로 손실됩니다. 끝없이 거짓말을 하며 중독에 필요한 돈을 구하게 되고 결국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적 패인이 되어 스스로 인생을 파괴해 버립니다. 어떤 중독이든 한 번 중독이 되면 도파민 호르몬에 의해 뇌의 전전두엽부분이 손상되기 때문에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5% 미만일 정도로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인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도 완전한 사회복귀 기간은 평균 8-10년 소요되고, 중독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약 2-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알코올중독자 중 95%는 술을 끊지 못하고 죽고, 1%는 정신이상자가 되며, 4%만이 회복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어떤 중독에서도 치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중독에서 치유될 수 있겠습니까?

 

1. 중독에서 치유되려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대체제

물론 상담소에 가서 상담치료도 받고,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로 받고 심하면 격리 수용되어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일반적으로 신앙인이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치유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중독으로 비참하게 끝나버린 한 가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두 아들이 한 날 전사하였습니다(삼상4:17).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그 충격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삼상4:18). 아이를 밴 며느리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낳고 죽었습니다(삼상4:19-20)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라는 말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던 제사장 엘리의 가정이 졸지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비참한 가정으로 되었습니다. 이 가정이 왜 이렇게 비참한 가정이 되었을까요? 13절을 보십시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갈고리고 찔러 넣어 걸려 나오는 것을 가져다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먹어 보니 맛있는 부위가 있고 맛이 없는 부위가 있는 것입니다. 고기맛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고기를 태우기 전에 억지로 생고기를 빼앗아갑니다. 맛있는 부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류하니까 억지라도 빼앗겠다는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명분은 날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계속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음식 중독입니다. 병들 줄 알면서도 죽을 줄 알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고 마약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탐욕이 아닙니다. 물질 중독 중 음식중독에 걸린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3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고기를 삶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맛있는 고기를 먹으니까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고 일반 음식보다 몇 배의 쾌감이 드는 것입니다. 모든 중독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동기, 보상, 쾌락 등에 관여하는 도파민이라는 사실을 밝혀져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중독물질에 의한 인위적 보상은 자연보상보다 2-10배 많은 양의 도파민을 분비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게임이나 포르노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렬한 도파민에 휩싸인 뇌는 항상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항상성 유지 때문에 내성과 금단증상이 생기고, 더 많은 약물을 더 자주 사용하보면 충동을 억제하는 뇌의 전전두엽이 손상되고, 뇌회백질이 줄어들어 뇌가 정상적 기능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성이 생기고 더 많은 고기를 요구하여 잘못인 줄 알면서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중독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물질 중독 뿐 아니라 행위 중독인 성중독에 걸린 것입니다.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한 여인이 아닙니다. 여인들입니다. 여러 여인들과 동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중독자의 모습입니다. 자극을 얻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반복성)하고, 의식과 무관하게 몸이 먼저 움직(습관성)이며, 특정 자극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의존성)한 상황에 도달한 상황을 전문가들은 중독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왜 중독에 빠지게 될까요? 학자들은 관계 중독의 원인은 유전적 성향, 불안한 부모와 애착경험, 감정적 상처, 부모의 과잉보호와 학대, 성인 아이, 구성원 내에서 따돌림 등에서 찾습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인정, 인격적 관계를 통하 만족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니까 다른 것으로 사랑과 인정, 기쁨과 행복을 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특정 물질보다는 고립되고 결핍된 환경이 중독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중독 청소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다수가 결핍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화한 부모 사이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관심의 결핍을 앓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왜 엘리의 아들들이 중독에서 빠졌다고 말씀합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여호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제사장인데 왜 하나님을 몰랐겠습니까? 지식적으로는 형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인격적인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통해 참 만족과, 행복, 기쁨과 평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이, 성중독자는 성이, 게임 중독자는 게임이, 쇼핑 중독자는 쇼핑이 머리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게 되자 결국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예배가 재미가 없고 찬송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의 행복을 잃어 버립니다. 불나비처럼 자극적인 것만 쫓아갑니다. 자신들의 식욕을 채우는데 하나님도 하나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독자들은 중독의 대상인 물질이나 행동과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중독된 대상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주고 중독의 쾌감을 다른 즐거움으로 대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친밀한 교류를 하는 대상이 생기면 중독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톡이나 sns, 패이스북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들이 우리가 병들었을 때, 고통받고 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옵니까? 그런 사람은 친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 하리는 중독의 반대말을 관계라고 말합니다. 친밀한 관계가 끊어질 때 중독이 된다는 말입니다.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가 16마리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비좁고 더러운 쥐감옥을 만들어 모르핀 희석액과 그냥 물을 함께 주면 쥐는 모르핀 희석액을 미친 듯이 마시다가 마침내는 죽게 되었답니다. ‘쥐 공원’을 만들어 푹신한 톱밥이 덮인 넓은 우리, 환한 조명과 따뜻한 온도, 놀이용 터널과 장난감을 배치해 놓고 쥐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면서 놀 수 있게 해 주었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모르핀 희석액과 그냥 물을 함께 주었더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로 쥐 공원의 쥐들은 우리 안의 쥐들보다 적게 모르핀을 섭취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답니다. 이에 대해 다른 연구자들은 "그 쥐들은 모르핀에 중독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이미 중독이 된 후라면 환경이 변해 봐야 소용없다, 중독의 병리적 상태는 환경적 요인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고 비판했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아예 57일 동안 강제로 모르핀 희석액만 먹여서 중독시키고, 그 다음에 이 쥐들을 쥐 공원에 풀어놓았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로 모르핀 희석액을 섭취한 양이 감소했답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 20%는 마약에 빠졌는데 마약에 중독된 군인의 95%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조용하고 간단하게 약의 복용을 중단하였답니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이 마약을 찾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1%가 마약중독자인 유럽의 최빈국인 포르투갈은 2000년 초 중독자들을 가두고 격리시키는 노력 대신 사회에 재결합 시킬 수 있도록 예산을 책정했더니 10여년만에 마약 중독자의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드는 성과를 거뒀답니다. 문명사회에 수용되기 전까지 캐나다 인디언들의 마약 중독률은 대단히 낮았답니다. 양귀비를 재배하는 문화에 중독자들이 우글거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답니다. 그는 마약 중독은 약 먹게 하는 냉정한 사회가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독의 반대말을 관계라고 말합니다. 중독을 치유하려면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도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지니까 물질 중독, 행위중독에 빠진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 모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중독은 결국 중독 대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자기애 우상입니다. 그 물질이 그 행위가 자신에게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하나님 한 분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삼손은 성중독이 됩니다. 드릴라가 무릎을 베고 날마다 유혹합니다. 이 중독의 유혹을 거절하는 것은 도파민에 의한 보상 시스템 때문에 참으로 힘이 듭니다. 연어는 5년은 더 살 수 있는데 냄세를 맡고 도파민에 의한 보상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올라가 죽습니다. 불나비는 불 속에 뛰어 들어 죽습니다. 삼손은 중독 시스템을 차단하지 못하고 결국 성중독에서 치유받지 못하고 힘을 잃고 눈이 빠지고 놋줄로 묶여 감옥에 들어가 맷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 성중독자가 되어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요셉의 자세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요셉의 마음에 계셨습니다. 요셉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세계적인 알콜 중독 치료 단체인 AA(Alcoholics Anonymous)를 만든 빌 윌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단체를 통해 매년 210만명이 도움을 받고 있고 지금까지 1천만 명이 이 단체의 12가지 프로그램에 의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도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처음부터 중독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장교로 1차 대전 때 프랑스로 부임하기 전 장교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었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근처의 유지들이 장교들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는데 한 파티에 참여해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살이었답니다. 그전까지는 술을 만신 적이 없었지만 또 다시 초청되어 브롱크스 칵테일을 마시면서 불로장생약을 찾아낸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매일 위스키 세병을 마시는 중독자가 되어 39살에 결혼 생활도 파탄나고 모든 돈도 허비하여 지하실에서 비참하게 보내야만 했답니다. 클럽에서 싸움을 하다 일자리도 잃었고, 술을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한 것입니다. 술을 끊는다는 해독제를 먹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답니다. 부인에게 철석같이 약속하고 금주 클럽에 가입했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를 만나 술을 권하니까 자신은 술을 끊었다고 먹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끊었냐고 물어보니까? "종교를 가졌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과 유혹, 죄와 악마에 대하여 자신에게 이야기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네가 매를 맞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걸 인정해야 하네 그리고 자네의 삶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겨야 하네."라고 전도하더라는 것입니다. 윌슨은 처음에는 그를 종교에 미쳤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34년 12월 윌슨은 종합병원의 약물 및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입원을 했답니다. 그는 병실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했고,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답니다. 금단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벌레가 온몸에 기어 다니는 것 같았고, 토할 것 같고 고통이 심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 때 그는 빈방에서 "하나님, 당신이 정말 있다면 저한테 당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럼 뭐든 하겠습니다. 무슨 짓이든"이라고 소리쳤답니다. 그 순간 하얀 빛이 방을 가득 채웠고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는 산꼭대기에 있는 기분이었답니다. 공기의 바람이 아니라 영혼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답니다. 한순간에 모든 구속에서 풀려난 것 같았답니다. 다른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었답니다. 그 후 그는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36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을 만들어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하는데 헌신하였답니다.

 

2. 중독에서 치유되려면 중독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중독이 병이겠습니까? 죄이겠습니까? 중독이 병이라면 단순히 환자일 뿐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이 없는 것처럼 중독도 병이라면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독이 죄라면 중독자는 죄인으로 도덕적 책임을 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중독은 죄로 시작하여 병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빼버리고 중독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병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중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독 유전자 때문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상 탓을 하는 것입니다. 중독으로 끌고가 친구 때문이라고 친구 탓을 하기도 하고, “누가 게임을 만들어 내 아들에게 게임 중독이 되게 했어”라고 남 탓을 하는 것입니다. 환경 탓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탓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병이라고 생각하면 중독을 치유하는데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만 쓰면 됩니다. 남탓으로 환경 탓으로 생각하면 그 부분을 치유하면 됩니다. 중독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욕망을 섬긴 마음의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근원적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중독자들은 자신이 심각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뭐 다른 사람도 다 그런데 뭐 이정도야’라고 죄의 심각성을 애써 부인해 버립니다. 중독을 합리화하고, 핑계를 댑니다.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망각하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간접적으로 시인하지만 축소화해 버립니다. 짜증을 내고 만류하는 사람에게 증오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중독의 길은 죽음이라는 심각한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중독의 자신의 선택과 실행에 의해 된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치유의 방법은 죄의 문제를 치유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중독은 하나님 대신 자기의 욕망을 숭배한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하나님 대신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애의 죄입니다. 자기를 통제하지 못한 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하지 않은 죄입니다(잠 21:17; 23:21). 처음부터 술이 사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술을 먹다 술이 사람을 먹는 것입니다. 중독은 사람이 술을 먹을 선택권을 오용한 죄에서 시작해서, 술이 사람을 먹는 통제 불능의 병으로 발전합니다. 중독은 죄로 시작해서 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중독은 결과가 비참합니다. 나이와 학력, 외모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가 없습니다. 당시 최고 지도자인 엘리 가정도 무너졌습니다. 노아 가정도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졌습니다. 삼손도 성중독으로 무너졌습니다. 세계적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예쁜 아내도 있고 돈과 명예가 있지만 성중독으로 무너졌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음식 중독 뿐 아니라 성중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중독인 줄 알고 아버지가 어떻게 대처합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버지가 훈계를 합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계속 훈계를 합니다. 중독은 말로 해결되지 않는 죄이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기 때문에 책망이나 엄포나 훈계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 아들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중독이 되면 말로 잘 되지 않습니다. 담배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 줄 뻔히 알면서도 담배를 피웁니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컴퓨터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란물 중독에 걸리면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뇌에서 도파민 물질이 나오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논리적 사고로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중독 촉발 기제인 흥분 추구와 긴장 완화가 너무나 강력하여 이성적 행동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할 때 쾌락과 스릴을 줍니다. 일상을 도피하게 하고, 일시적 만족을 주며, 대박의 희망을 줍니다(일상에서 도피). 술이나 도박 포르노나 약물 등이 지루한 일상을 잊게 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에서 그것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일상에서 도피하게 합니다. 단번에 괴로움을 피하고 만족감을 얻는데 술, 담배, 마약, 도박 같은 것보다 빠른 길은 없습니다. 돈을 따게 되면 자존심이 높아집니다. 자신은 능력이 우수하고 행운이 따르는 사람으로 착각을 합니다. 큰돈을 벌어 자존심을 세우고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을 할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발생할 쓰라린 미래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은 돈을 딸 것이라는 거짓 기대, 돈을 딸 수 있다는 불합리한 신념을 심어주고 있는데 그것이 죄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것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합니다(집착과 의존성). 그 행위를 할 때에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행동을 사회생활이나 마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기분의 변화). 같은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양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내성). 만일 그 행동을 중지하거나 행동량을 줄이게 되면 불쾌감이나 불안감, 우울증, 짜증, 불면 등의 증상이 생깁니다(금단). 특정 행위 때문에 그 행위를 하는 사람 주위의 인간관계, 사회관계가 나빠지고 문제가 생깁니다(갈등). 끊거나 조절을 한 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도 언제든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은 형태로 또는 다른 형태로 재발이 가능합니다(재발). 이것이 중독의 사이클입니다. 죄에서 시작하여 노에가 되어 환자가 되고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나버립니다. 중독에는 사탄이 심어주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심어준 달콤한 희망은 거짓이고 앞길에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모든 우상은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출 23:32-33)” 중독은 우상 숭배이고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시작하며 파멸로 끝이 나버립니다.

 

중독이 되면 내적변화가 일어나고 내면의 변화에 따른 생활방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중독자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특정한 방식의 개입이 없는 한 중독자들은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병은 고치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건너 뛰면 안 됩니다.

이런 중독 시스템에서 탈출하여 치유받기 위해서는 첫째, 중독은 죄로 시작하여 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독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통제의 우상, 두려움, 불안, 교만, 잘못된 자아 정체감, 탐욕, 현실로부터 도피, 쾌락 추구, 돈에 대한 집착, 소유욕, 승부욕, 폭력의 우상, 성공의 우상, 존경의 우상, 보답의 우상, 편함의 우상, 자기중심적인 자기애" 등과 같은 인간의 죄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중독은 환경 문제이기 전에 영적,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둘째, 자신의 선택으로 중독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치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자신의 중독을 인정한 다음에는, 회개하고 중독행위를 고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중독 사이클에 내재된 그릇된 사고를 성경적인 사고로 바꾸어야 합니다. 회개는 지 정 의가 포함됩니다. 죄를 인정하고 통회하고 의지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습관화된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하루, 주간, 월간 시간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뒤, 새로운 시간 계획을 짜서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엘리 아들들은 이것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중독될 수 있습니다. 중독되면 중독에서 머물지 말고 깨달아 알았으면 누군가 지적을 하면 회개하고 가족에게 피해를 주면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회개란 완전히 돌이켜 새로운 길로 가는 것입니다.

넷째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십자가를 중독의 유혹이 오는 순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중독의 노예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힘듭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부활의 능력으로 새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중독의 우상숭배와 자발적 노예상태가 되어 버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여기서 진리는 학문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격적인 진리인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중독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니다.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이지만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한 번만! 한 잔만! 한 번만 더!“하면 눈일 밝아질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한 번만 더 한 잔만 더하면 사는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사탄이 퍼트리는 거짓 폭탄을 품에 끌어 않으면 안 됩니다. 중독의 유혹이 한 번 올 때 진리이신 예수님을 열 번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만족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행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중독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너를 중독에서 벗어나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38년 된 베데스다 연못의 전신마비 환자도 예수님을 만나 해결되었습니다. 심각한 중독으로 손도 발도 마음도 꼼짝 못할지라도 예수님을 진실하게 만나면 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니까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희망 있음>이라는 책을 쓴 차현철 목사님이 계십니다. 목회자의 아들로 7년 동안 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중독치료병원에서 중독자를 돕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춘기 시절에는 억압된 종교생활이 너무 싫어 자살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신학교에 가서는 헤비메탈과 만화방과 바둑, 컴퓨터 게임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믿을 것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사이버 세상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점점 폐인이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하다가 한 아가씨를 만나서 프로포즈를 했는데 목사 아들은 싫다고 거절당했답니다. 스토커가 되어 아가씨를 괴롭히게 됩니다. 저자는 자신이 스토커라는 자각에 자기혐오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지만 중독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혼하게 되었답니다. 그가 다시 살길을 찾아 영성원이란 곳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던 중에 자신의 모습이 점점 악당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악당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가 자신이 악당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이제는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면서 심리학책과 게임에 빠져 지내다가 청년 리더의 말에 술 취한 버스 기사가 운전한 버스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말에 사표를 내고 나옵니다. 중독으로 폐인처럼 살다가 갑자기 지옥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하였다고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에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받았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 앞에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깨닫고 회개하고 힘을 얻게 되었답니다. 말씀 묵상해 나가자 점점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3. 중독에서 치유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치관으로 반 중독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엘리는 당시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이며 대 제사장이었습니다. 98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스승으로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삼상1:3,9)하였습니다. 자신도 들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 듣고 달려온 사무엘을 시기하지 않고 올바르게 지도할 만큼 사심 없는 신앙이었습니다(삼상3:1-9). 슬픔에 찬 한나에게 하나님의 평안과 자비를 구할 만큼 사랑과 긍휼이 있는 지도자였습니다(1:17). 그런데 엘리와 그의 자녀들은 말년에 인생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백성의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2:22,23;3:13). 두 아들과 엘리는 비명횡사하였습니다(삼상4:5-11,4:18). 물질적 궁핍하였습니다(31-34, 36). 제사장 직분을 잃어버렸습니다.(35) 무엇보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자식들의 잘못된 습관 중독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의 가정은 중독으로 이런 가문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인 엘리에게 말씀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하십니까?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엘리에게는 좋은 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생각의 암덩어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의 암덩어리, 우선순위의 암덩어리였습니다. 자식중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제거해야 했는데 그것을 수술하지 못한 것입니다. 30절에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합니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사랑의 하나님의 무서운 말씀입니다. 기독교적인 삶이 실제적으로 가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언할 수 없지만 어쩌면 가정에서는 진정 크리스천이 아니라 직업 종교인 정도로 살아간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인 엘리까지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아들들은 분명 그렇습니다. 제사장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사명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간음하고 하나님의 제물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그를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행실이 나쁜 불량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12). 신성한 제사제도를 문란케 합니다(2:14),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합니다(2:14), 제물로 자기 배를 채웁니다(15,16).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16),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합니다(17), 성막에서 간음죄를 범합니다(22), 백성들의 범죄를 조장합니다(24). 이 사실을 엘리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자기 자녀의 행실을 소문을 듣고 나서야 알 정도였습니다.(삼상2:24) 그 만큼 자녀에 대한 무관심하였습니다. 불법을 습관적으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 제사장인 아버지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다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23절 보십시오. 엘리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소문이 다 퍼진 후에 백성들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 정도입니다.

아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만큼 징계하지 않았다는 말은(삼상3:13) 오늘날로 말하면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 강제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삼상3:13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위장된 사랑과 방임주의, 무조건 사랑이라는 이상한 병이 중독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존중이 여기는 우선순위는 단호해야 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 환경이 중독에 격리 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윽박만 하고 폭행을 할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중독은 질병입니다.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게임 중독에 아이가 걸렸다면 컴퓨터는 거실로 내 놓아 은밀하게 컴퓨터를 하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자신도 줄담배를 피우며 게임 중독에 자식이 걸렸다고 폭언과 폭행, 폭력을 행한다고 중독에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울기만 한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더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습니다. 술 취한 아빠와 자녀들이 같이 차를 못 타게 합니다. 상담도 받고, 치료(AA) 모임에도 가게 합니다. 병원에서 중독을 해독시키는 작업도 하고, 장기 치료 계획도 세웁니다. 장기 입원을 시킵니다. 다른 중독자들의 무서운 체험 간증도 듣게 해야 합니다. 죄가 노예상태를 거쳐 비극으로 내려가는데 상당한 기간이 걸렸던 것처럼,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도 상당한 기간이 걸립니다. 치료와 변화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들어오는 빛이 아니라, 계속 해야 하는 전투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환자를 볼 때 불쌍히 여겨 주었습니다. 중독자에게 비수에 찔린 상처가 있습니다. 중독자를 향해 손가락질만 한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중독으로 병든 아이이지만 부모가 사랑해주고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독자의 죄도 보고 병도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중독자도 환경의 희생자입니다. 중독자는 중독의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마음의 성벽을 쳐 주어야 합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변화가 가능한 모임에 가입할 때, 변화 가능성을 훨씬 높아진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헤더턴은 "변화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변화를 볼 수 있을 때 정말로 변한 것이란 느낌이 듭니다."라고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무엇보다 지원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목회자, 배우자, 아들이나 딸, 상사, 친척, 동역자 등 5-8명의 비밀을 지켜주고 믿을만한 소그룹에게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친구와 가족 등의 지원공동체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인도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유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어떻게 말씀합니까? 3:1절을 보십시오. “여호아의 말씀이 희귀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이 말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다보니 중독이 되고 말씀으로 중독을 치유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벽을 치고 중독의 환경에 기름을 껴 않고 뛰어 들지 못하게 말씀을 암송하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말이 불같지 아니 하냐 바위를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 (렘 23:29). 말씀과 동행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암송하고 묵상해서 불같이 된 말씀 진리가 중독의 바위를 깨뜨립니다. 아이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포르노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어떻게 일일이 감시하고 간섭하겠습니까? 말씀은 신전 의식을 가지게 만들어 줍니다. 요셉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성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막을 쳐 줍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도록 경건의 시간을 가지게 하고 말씀을 암송하게 하며 말씀 안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자유롭게 해 줍니다. 말씀은 스스로 주님께 헌신할 각오를 하게 해줍니다. 말씀은 매일 매일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면, 죄용서, 하나님의 사랑, 승리의 능력에 대한 희망을 말씀은 주고 있습니다. 유혹을 받더라도 피할 수 있는 은혜의 약속을 말씀은 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3-1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희망을 말씀은 주십니다 (요일 5:4). 매일 매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넘치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요 15:11).

 

셋째 중독을 치유하는 환경은 성령 충만을 받는 환경입니다.

술중독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충만한 환경에 처해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은사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못하는 일을 넉넉히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사무엘 사건을 통해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불러도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엘리에게 가서 불렀냐고 물어 봅니다. 성령에 민감하여야 중독에서 치유될 수 있고 중독에 빠지지 않습니다.

예전에 마약 중독자가 우리 교회에 나온 때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새벽마다 나와 기도했습니다. 남편도 출소해서 새벽기도회 나왔습니다. 교회 식구들을 사귀면 친구삼고 신앙생활 위주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가니까 아내가 월세도 못 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드렸더니 그것을 남편에게 준 것입니다. 결국 남편은 술집에 나가게 되었고 또 마약을 한 것입니다. 단호해야 합니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중독은 자기 스스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성경을 통해 가르침 받고, 기도회와, 예배에 적극 참여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 친구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가상공간보다 현실적인 신앙적 공간에서 욕구를 채움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 받아야 합니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특별한 다운로드 프로그램이나 프로그램파일들을 제거합니다. 토파민 금식을 합니다. 미디어 금식을 합니다. 유해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합니다. 유혹관리를 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공개 장소에 설치해 놓습니다. 유혹과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중독 물질을 철저하게 차단합니다. 봉사활동을 합니다. 온 가족이 대화하며 함께 대체 취미를 개발하여 공유합니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참여하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신앙생활이 가정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자녀가 중독되지 않고 잘되게 하는 최대의 비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적당히 하나님 믿게 만들면 그 자리를 중독이라는 것이 차지합니다. 자녀가 잘 믿는 것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교회 생활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행사하는 것을 우습게 아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우선순위를 안 두면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참 곁길로 간 뒤 후회하면 그땐 이미 늦습니다. 이왕 믿을 바에는 잘 믿는 아들 딸 만들어야 합니다. 잘 믿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여야 중독에 빠지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하나님을 존중하는 가정 문화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경외한다고 손해 보는 것 아닙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까? 자녀를 큰 인물로 키우길 원합니까? 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것보다 더 큰 신경을 하나님에게 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상급이고 방패이십니다. 자녀를 학교 석차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부모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자녀의 우선순위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고백이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세상이 두 쪽이 난다하여도 우리 가정은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살겠다는 다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엘리의 자식들은 물질을 우선순위에 두니까 성전의 제물까지 훔쳐 먹습니다. 쾌락에 중심을 두니까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간음하였습니다. 사람 중심 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 세상 중심보다는 교회 중심의 가정, 현세 중심보다는 내세 중심의 가정, 쾌락 중심보다는 섬김 중심의 가정을 만들면 하나님께서 나쁜 중독 없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AP통신은 미국 콜롬비아대학 약물남용센터(CASA)가 2년 간에 걸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인용,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나 신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마약이나 알코올을 멀리할 가능성이 현격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CASA 보고서에 따르면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는 성인들의 경우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신앙인에 비해 마약을 복용할 가능성이 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폭음에 빠질 가능성은 무려 7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예배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신앙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신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비해 마약과 폭음에 빠질 가능성이 각각 4배와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한편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는 10대의 경우 정기적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10대에 비해 음주나 흡연에 빠질 가능성이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예배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신앙을 경시하는 10대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10대에 비해 폭음과 흡연에 빠질 가능성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으며 마약 복용 가능성은 7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CASA 보고서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신앙이 마약 복용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욕구 충족은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소속감 등을 제공함으로써 마약중독을 예방하는데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8.15.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