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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5) 불안장애 치유(시편42: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8426 추천수:8 220.120.123.244
2021-07-11 15:58:28

치유(5) 불안장애 치유

시편42:11

 

오늘은 치유 다섯 번째로 불안장애 치유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7월이 되면 예방접종을 한 사람들이 많아져 코로나19 방역단계가 낮아지고 조금 더 평안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예배를 자유롭고 평안하게 드릴 것으로 기대했는 데 갑자기 1일 확진자가 연일 1천 명 대를 넘어서서 내일부터 코로나19로 방역 4단계가 시행되었습니다. 방역단계가 올라감에 따라 국민의 불안도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4월 1일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민의 정신건강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전국 20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은 2020년 47.5%에서 2021년 55.8%로 8.3%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분석 결과 응답자의 12.7%가 불안장애 위험군으로 조사되었답니다. 100명중 12명 정도가 불안장애 위험군에 속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불안과 불안장애는 조금 다른 말입니다. 불안한 감정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다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불안장애라는 병은 다 앓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불안장애와 상관없는데 하면서 귀를 닫지 마시고 만약 불안장애에 있다면 말씀을 들으면서 치유받으시고 불안장애와 상관이 없다면 예방적 차원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 불안장애 예방 접종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불안장애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코로나 감염자가 없을 때와 다섯명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불안도는 다릅니다. 퇴근하여 주차장에 들어갈 때 혹시 나도 걸리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확진다 다섯 명이 다 내가 사는 같은 라인에 살고 있다고 하면 불안도는 더 높아집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두렵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이렇게 위협이나 스트레스에 대하여 우리 몸이 반응하는 것을 정상적인 불안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건강과 생명을 보호합니다. 적당한 정도의 불안은 주변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민감하게 인식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런 때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감염이 무서워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시장도, 직장도 가지 못하고 한 두달 동안 방에만 있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불안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불안이 됩니다. 더 나아가 코로나 19 소식으로 매일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비정상적인 불안에 떠는 경우는 병적인 불안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시험 보기 전에 불안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을 준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하고, 시험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1년 후에 있을 시험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있다면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병적인 불안이 되고 이런 병적 불안이 6개월 이상 계속 진행되면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이 나타나고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불안장애라고 합니다. 불안장애가 되면 단순하게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실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상시 일반적으로 불안장애 유병률은 8.7%로 나와 있습니다.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아니라 평상시 일반적으로 100명 중 8명은 불안장애라는 정신적 질병에 걸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불안장애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2배나 많고,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찾아오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인기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합니다. 방송에 나오는 게그맨 정형돈씨, 이경규씨, 김구라씨, 감장훈 씨등이 불안장애에 걸렸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을 것입니다. 불안장애는 단순하게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 때문에 고통스러운 신체적 증상과 정서적 증상, 행동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불안장애의 4대 증상 중 하나가 걱정인데 손주가 엘리베이터를 타가 코로나 걸리지 않을까 코로나 걸리면 병원에 입원하고 잘못되어 죽지 않을까 미리 예측하고 불안해 하는 예기불안에 빠져 버립니다. 둘째는 그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몸의 긴장 상태가 계속됩니다. 비정상적인 걱정과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셋째는 긴장으로 인하여 두통, 소화불량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식은 땀이 자주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빨라지며, 숨이 막히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어 질식할 것같습니다. 가슴이 아프거나 압박감이 들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고 미쳐버릴 것같고 죽을 것같은 두려움이 듭니다. 식욕 저하, 구토, 구역, 가슴 두근거림, 발한, 사지 저림, 홍조, 빈뇨, 근육통, 소화불량, 불면증, 안절부절, 설사, 혈압상승, 과호흡, 떨림, 어지럼증, 창백함 등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넷째 이런 고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업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대인 공포증이 생겨 찬양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하면 아무런 병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불안장애라는 정신적 질병에 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안장애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범불안 장애, 공황장애, 공포증(특정공포증, 사회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 등이 있습니다.

공황장애라는 말을 할 때 ‘공’은 두려울 ‘공’, ‘황’은 어리둥절할 ‘황’자입니다. 영어로 패닉 상태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작동되는 공포반응입니다. 공황발작은 인구의 절반이 일생 중 한 번 정도는 겪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상황이 없는데도 발작이라는 신체적 반응이 반복되거나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공황장애라고 합니다. 주식투자에 큰 손해를 본 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갑자기 발작과 함께 구토 식은 땀이 흐르며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드는 것입니다.

공포증은 비현실적으로 특정 상황이나 물체를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공포증이나 특정공포증 등이 있습니다. 특정 공포증은 특정한 상황, 환경, 대상에 대하여 비현실적인 강렬한 불안과 두려움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고소공포증, 동물공포증, 광장 공포증과 같은 것입니다.

사회(대인)공포증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불안장애입니다.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완벽주의 성격을 가지고 남 앞에 서면 목소리가 떨리고, 시선을 줄 수 없고, 손이 떨립니다.

범불안장애는 위험이 없는대도 비정상적으로 매사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불안장애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고를 경험하고 당시 상황과 현장이 계속 떠오르는 불안장애입니다.

강박장애는 책임감이 강하고 지나치게 깔끔한 사람이 외출할 때 가스레인지나 대문을 잠갔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공중 화장실이 더럽다고 밖에 있을 때는 아예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은 불안장애입니다.

 

이런 불안장애를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불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시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300번 이상 반복하여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불안장애에 걸리지 않고 불안장애에서 치유받으려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1,2,5,6,8,10)

사람이 왜 불안해합니까? 왜 불안장애라는 질병에 걸립니까?

의학이 많이 발달되었지만, 아직까지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유전적 요인으로 불안장애 가족력에 있다고 합니다. 불안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 학습된다는 것입니다. 불안에 많이 노출되면 불안을 조절하는 뇌 부위의 선천적인 기능 이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환경적 요입니다. 외상성 사건 또는 스트레스 경험 등에 의해 생긴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관계의 중단 또는 생명에 위협이 되는 재해로의 노출 등 환경적 스트레스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고 합니다. 뇌의 경보장치가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사소한 자극이나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뇌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부위가 편도인데 이곳에서 특정 사건을 경험하면 알람 기능을 합니다. 뱀에 물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밧줄만 봐도 놀라는 것은 편도가 과도하게 그것에 대하여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뇌의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거나 덜 활성화됨으로써 생기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생긴다고 합니다. 치명적 질환, 심부전증, 갑상선기능항진증 등과 같은 질병에 의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왜 사람이 불안해 하고 불안장애가 생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요인으로는 첫째는 범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가나안 정탐꾼 10명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불안해 합니다(민13).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보다 지금 주어진 환경을 더 크게 보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데서 나오는 불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광풍이 불 때 예수님을 불신하고 불안해 합니다(막4:35-41).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데서 불안이 나옵니다. 셋째는 불순종입니다. 넷째는 고난의 환경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먹고 범죄합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해 숨습니다. 불안해합니다. 죄를 짓고 숨어 두려워합니다(창3:10) 죄의 결과로 에덴에서 추방됩니다. 하나님과 분리됩니다. 분리 불안이 생긴 것입니다. 두려워 떠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을 죽이고 낯을 들지 못합니다. 창4:14절에 하나님을 떠나 유리하는 자가 되면 자신을 만나는 자들이 자신을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불안해합니다. 다윗도 범죄함으로 불안해 합니다(시32:3; 시38:3,7,8)

현대의학 용어로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은 위협이나 범죄, 전쟁, 광포한 날씨, 설명할 수 없는 질병 등과 같은 위험, 자존심의 침해, 갈등, 공포, 스트레스 등으로 오지만 프란시스 세이퍼(Francis A. Schaeffer)는 불안의 원인을 관계 단절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이웃과 자연과의 단절 등으로부터 불안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분리 때문에 불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오토 랜크(Otto Rank)는 한 때 모든 불안은 분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 즉 소외, 이동, 죽음 그리고 이혼 또는 그 밖의 혼자 된다는 것은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분리불안입니다. 사람이 불안해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분리 때문입니다. 소외되기 때문입니다. 따돌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친구에게, 직장에서 따돌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리 단절을 신학적인 의미에서 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가 불안을 죄와 연관해서 죄책감을 불안과 동일시하였습니다. 죄가 증가함에 따라서 불안도 증가된다고 본 것입니다. 개리 콜린스(Gary,R.Collins)는 불안을 "비신앙적 대표적인 감정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는 자의 심리적인 상태"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왜인 오츠 (Wayne E.Oates)도 마찬가지로 불안은 죄와 연관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고 죄를 자백함으로써 실제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불안의 해소를 위해서 죄의 회개와 하나님으로부터 속죄를 받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롤로 매이(Rollo May)도 불안을 극복하고 종합적인 인격을 형성하는 방법의 하나로써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심리 요법의 마지막 근본 문제는 신앙이 아니면 대답할 수 없다고 그는 신앙을 강조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이 시편은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이고 후대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이 수집한 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기자가 다윗이라면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 나왔을 때의 기록일 것입니다. 아들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쫓겨난 다윗이 얼마나 낙심하고 불안했겠습까? 불안장애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며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11절에도 동일하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며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불안을 어떻게 치유받습니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씀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홀로 있으면 불안합니다. 오늘 시편은 인칭대명사가 51개나 등장합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강조하면서 3절에 보면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4절에는 내 마음이 상하였다고 말합니다. 5절에는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 한다고 말합니다. 7절에는 물결이 자신을 휩쓸었다고 말합니다. 9절에는 원수의 압제로 슬프게 다닌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계속적으로 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 홀로 있으면 그런 불안한 감정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동묘지를 밤에 홀로 걸어가면 불안하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시편 43편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갑니다. 큰 기쁨의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수금으로 주를 찬양합니다. 불안할 때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찬양하며 노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불안이 떠나고 평안이 찾아 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17여 년 동안 공포와 불안한 세월을 도망다니면 보냈지만 시편에 보면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불안에서 벗어납니까? 1절을 보십시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였습니다(1)."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이 없어 물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2절 보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나타나 도우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방치해 놓고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불안해하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어도 우리의 도움이 되신 분이십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도망다니면서 얼마나 불안해하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다윗을 도와주어 죽지 않게 하였습니다. 아들에게 쫓겼지만 다윗은 그것으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아주어 다시 왕권을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장애에 빠지지 않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해야 불안장애에 걸리지 않고 불안장애에서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얼마나 불안한 상황에서 사셨습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불안한 상황입니다. 제자들도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안장애를 앓을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건강을, 물질을, 가족을, 지위를, 명예를, 인기를 잃을까봐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디에서도 어느 때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우리는 불안이 아니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함께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불안해하는 모세에게, 불안해 하는 여호수아에게, 불안해 하는 바울에게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신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 예수님을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평안을 누리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불안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사41:13)"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아버지로 믿으면 우리는 불안장애에 빠지지 않고 설령 불안장애에 걸렸다고 해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배신하고 떠나고 명예도, 권력도, 돈도, 인기도 다 떠난다하여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어떤 죄를 짓고 불안해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거절하지 않고 긍휼이 여겨 주십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 55:7)"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 올 때 분노하고 책망하고 징계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진정 나의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진정 우리에게 불안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우리가 불안장애에 걸리지 않고 불안장애에서 치유받으려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6,5,8,11).

어떻게 불안장애를 치료받을 수 있습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정신과 병원에서 치료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약물치료입니다.

불안장애는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특정 공포증, 사회공포증,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질병이 속해 있어 치료법이 원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신과에서는 항우울제(선택적 세로토닌 흡수 억제제 등)를 사용하며 필요에 따라 항불안제(벤조다이아제핀 등)을 단기간 사용하여 치료합니다.

둘째는 인지 행동치료를 합니다.

인지치료는 정말 죽을 것같은 느낌이 드는 비합리적 사고는 죽지 않는다는 합리적 사고로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행동치료는 불안이 심한 상황에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대처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 훈련은 불안이 찾아 왔을 때 그 순간을 잘 넘길 수 있도록 평상시 불안을 줄이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심호흡과 복식호흡을 시키는 것입니다. 점진적인 근육 이완법으로 몸의 근육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차례대로 이완시키는 훈련입니다. 이것을 약물을 복용하게 하면서 점차 약물을 줄이고 호흡훈련, 이완훈련을 습관화시킵니다. 정신과 치료에서는 초기 2-3개월 약물치료 호흡훈련, 이완훈련 등을 시킵니다. 중기에 안정기 유지기에는 약물치료와 더물어 호흡훈련 이완훈련을 습관화시킵니다. 후기에는 치료 종료를 위하여 약물을 점진적으로 감소하며 한 일년 쯤 치료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치료 방법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치유 방법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어떤 약을 먹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전 경험들에 의해 형성된 개인 고유의 왜곡된 생각 패턴인 인지와 행동 반응이 왜곡된 것을 교정해 주십니다. 병적인 증상이 발생하고 심하면 불안장애를 앓게 된 왜곡된 인지와 행동을 교정해 주는 것입니다.

불안에 빠진 다윗의 왜곡된 인지는 무엇입니까? 5절,11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라고 하소연합니다. "어찌하여 어느 때까지"를 7곱 번이나 계속 반복하여 질문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자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합니다. 너가 그런 불안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종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뼈를 찌르는 칼같이 대적들이 비방을 합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하나님 잘 믿는다더니 왜 자식이 그 모양이야, 왜 탈선해, 왜 실패해, 왜 사업이 그 모양이야? 왜 부도가 나, 왜 직장을 잃었어. 왜 병들었어." 그런 말을 듣자 다윗은 자신의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4절에 보십시오. 화려했던 과거와 비교하며 스스로 마음 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장애의 증상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찌 자신을 잊었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잊은 것이 아닙니다. 5절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면 하나님이 나타나 도와주심으로 영원히 찬송할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를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낮이 해 뜨는 낮일 수 있지만 상징적 표현입니다.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실 좋은 날 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 좋지 않은 밤에도 찬양하며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과거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불안장애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어떤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 상황과 그 때에 갇혀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사건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합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렸으니 자신도 걸릴 것이라고 재앙화사고에 빠져 버립니다. 비행기 사고가 나면 자신도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사고로 죽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인지 왜곡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을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겪었다해도 그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고 아직 살 날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의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 왜 이런 일이 내게 임했을까? .. 왜 하필이면 나라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유를 모두 다 알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밥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밥을 먹습니까? 자동차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자동차 탑니까? 어떤 사람은 신앙도 다 이해하고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다 이해하고 믿겠습니까? 믿으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설명보다는 약속에 의지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살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골절이 되어 병원에가서 X-Ray를 찍었습니다. 의사는 부러진 뼈를 맞추고 기부스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X-Ray 사진을 가지고 환자에게 뼈의 성분, 골절의 이유, 수술시 약품투여 방법, 그 약품의 효능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한다면 그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차라리 "앞으로 2주 후면 낮게 됩니다."라고 그 사람에게 말한다면 그 말이 불안을 제거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주를 기억하였다고 했는데 이 시편 기자가 다윗일 경우는 지금은 비록 쫓기는 신세이지만 그의 왕국이 영원하리라는 삼하 7:12-16의 약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비록 지금 기대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믿는 것입니다. 왜곡된 인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왜곡된 인지를 바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행동을 교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신뢰한 하나님이 기대와 다른 결과를 주었을 때 시편 기자는 어떻게 합니까?

지금 예루살렘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포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6절 보십시오. 헤르몬과 미살 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7절 보십시오. 지금 어려운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로 받아들입니다. 비록 파도에 휩쓸린 삶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5절 하반절, 1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전히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수 없지만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하고자 한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대한 바 대로 주시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약속에 근거하여 소망하며 마치 그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3. 우리가 불안장애에 걸리지 않고 불안장애에서 치유받으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8)

다윗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인간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을 죽음입니다. 다윗이 자식의 칼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것처럼 불치의 병을 선고받으면 불안장애에 빠져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불안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힘이 없어 아들에게 쫓겨난 것입니다. 부채를 갚아야 하는데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불안합니다.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실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불안합니다. 질병에 걸렸는데 질병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불안합니다.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있으면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힘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힘이 없어 낙오자나 실패자가 되고 세상의 왕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입니다. 능력이 없어 경제 불황, 실업률 증가, 구조 조정 등의 어두운 사회현실에서 낙오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사업을 접어야 하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힘이 없어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잃을까봐 불안해합니다. 힘이 없어 관심의 대상에서 살아질까 봐 불안해합니다. 매력을 잃어 인정받지 못할까 봐 불안해합니다.

스위스 출생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돈=능력'인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경제적 부가 인간의 불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불안은 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불안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상담 심리학자인 로렌스 크랩 (Lawrence J. Crabb)은 불안의 발생 원인을 목표에 이르지 못한 행동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목표에 이를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구와 필요가 생기면 그것을 이루려는 동기가 발생하고 기본적인 가정을 만들어 목표를 향한 행동을 하지만 능력이 없어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불안하고 그것이 발전되면 신경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 욕구로서 생리적인 욕구, 외부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으려는 욕구, 애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 성취의 욕구 등이 채워지지 못하면 불안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불안을 해소할 만한 힘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욕구가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겠습니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은 욕망의 하녀" 라고 말합니다. 욕망이 있는 한 불안은 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인기와 명예가 있다고 해서 인간의 불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욕망하는 한 불안은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욕망의 성격을 '구멍 난 술통'에 비유하였습니다. 우리가 채워지지 않은 욕망으로부터 오는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필요를 적합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고 불안에서 탈출케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시편43편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아옵니다. 궁극적으로 돈에서도 권력에서도, 명예에서도, 아름다움과 인기에서도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힘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골리앗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힘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울 왕 앞에서도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들에게 쫓겨난 절망적인 순간에 힘이 되신 여호와를 의지하며 불안에서 탈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이 여호와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 시인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 무능함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되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시편43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판단하여 주십시오. 신의가 없는 나라를 고발하는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거짓을 일삼는 저 악한 사람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표준새번역)" 불안의 늪에 허우적거리거나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고 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의 빛과 주의 신실하심을 나에게 보내 주시어, 나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게 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그 곳으로, 나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시43:3 표준새번역)" 하나님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우리의 힘이 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시고 세상의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겟세마네에서 지극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 때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불안하지 않고 평안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잡히고 십자가에서도 평안한 가운데 인류 구속 사역을 완성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불안한 상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인생을 살다보면 불안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그렇게 지금이 전부라고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30년 준비하여 3년 일하였습니다. 모세도 80년의 준비기간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17살에 꿈을 꾸며 성경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설렘과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죽음의 고비, 인신매매, 노예였습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조국을 위하여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민족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던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수배자가 되었습니다. 40년간이나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쓰실 만한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환난을 당해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환난을 당할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16:33)고 말씀합니다. 미래를 보며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두려움이 엄습할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41:10)라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떠나 버리고 홀로라고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외로울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안해 하고 있습니까? "선을 행하나 낙심될 때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갈6:9)고 말씀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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