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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이 전도사 조회수:5773 175.119.93.33
2015-01-15 18:09:10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1) 전도(막 1:36-39, 눅 19:10)

위대한 교육자 호레이스 만(Horace Mann)은 습관에 대한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습관은 밧줄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습관이라는 밧줄을 매일 짜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단 짜여진 습관은 결코 파손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습관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꾸어지지 않는 습관을 바꾸는 일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라운 랜던(Brown Landon)이란 분은 “고정 관념을 깨는 습관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제발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충고 합니다. 그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여기 말을 타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말을 안타고 다니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늘 말을 타고 가던 뉴욕을 향해 말을 타는 대신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는 결어가며 자신에게 계속 이렇게 속삭입니다. “말을 타고 다니는 습관은 나쁜거야. 나는 앞으로 절대 말을 타고 다니지 않을거야” 그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틀림없이 그는 계속 걸어가며 발이 부르트고 힘이 빠질 때마다 오직 말만을 그리워하고 말 생각만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그의 전략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는 말보다 속도도 느리고 덜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습관을 익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 생각이 날까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결심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습관, 보다 나은 습관, 거룩한 습관을 익히시면 됩니다. 밝아온 새해 오늘부터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시리즈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습관만이 우리가 사모하는 진정한 부흥,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 시간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전도 습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예수님이 그의 생애에서 전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셨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전도를 사명으로 자각하셨습니다.

최근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성경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은 스티븐 코비, 피터 드러커 같은 경영 컨설턴트들의 영향으로 ‘사명 선언문’작성이 보편화되었고, 이제는 비즈니스 세계를 넘어서서 사회 모든 계층에 하나의 보편적 실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 선언문을 “내가 온 것은--” 혹은 “인자가 온 것은--”이라는 표현에 담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의 아들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시고자 할 때마다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자, 눅19:10을 읽어 보실까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자, 그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자 하심입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사셨고 그것을 위해 그는 죽으셨습니다. 그는 그 길만이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심을 믿으셨습니다. 그는 그 길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심을 믿으셨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그 길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심을 믿으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당부, 마지막 교훈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그의 회사의 초기 성장이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고민하던 어느 날 당시 펩시 콜라 CEO였던 존 스컬리(John Scully)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자기 회사로 영입하기 위해 찾아 갑니다. 스컬리는 38세에 펩시 콜라의 사장이 된 사람으로 펩시 세대를 공략하는 광고 전략으로 코카 콜라를 부동의 제1위 자리에서 추락시킨 장본인 이었습니다. 스컬리는 충분한 명예와 재산을 누리고 있었기에 이제 새삼스럽게 자리를 옮길 이유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컬리에게 집요하게 설득하고 막대한 보상을 오퍼해도 움직이지 않자 이제 44세된 그에게 스티브 잡스는 마지 승부수로 이런 도전적인 말을 던집니다. “당신은 설탕물이나 팔면서 나머지 여생을 허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자신을 던지시겠습니까?” 이 말이 그를 움직인 것입니다.

나는 오늘 동일한 도전장을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여생을 지금까지 살아오신 그렇고 그런 방식으로 적당히 살다가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명령과 모범을 좇아 금년 새해부터는 세상을 바꾸는 전도 사역에 헌신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전도를 우리 인생의 목적과 사명으로 자각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전도의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첫 걸음을 금년 한해 걸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 예수님은 전도를 계획하며 살아가셨습니다.

모든 효율적인 사역은 효율적인 계획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가 분명한 전도 계획을 갖고 날마다를 살아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는 바쁜 하루를 지내신후 그 이튿날 새벽 한적한 곳에 나아가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와 “오늘도 많은 병자들이 이 마을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한마디로 제자들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다른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셨습니다. 3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이미 한 마을, 가버나움에서 어제까지 충분히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하신 주께서는 그 날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다른 마을에서 전도해야 하겠다고 판단하신 까닭이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모든 계획을 그 날의 새벽의 기도,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정하셨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일상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주께서 그의 인생을 복음 전도를 위한 계획으로 일관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짧은 생애동안 주님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의 제자로서 살고자 하는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삶을 전도에 투자하기로 계획하며 살고 있을까요? 여러분과 저의 전도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또 우리 교회의 전도 계획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님은 그의 마지막 명령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는 비전을 위해서 그의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 혹은 세계 선교의 과제는 한 두 성도의 노력으로 실현되기에는 너무나 큰 과제임은 아신 그분은 이 책임을 교회라는 공동체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로 탄생 14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 역사가 몇 년이고 우리 교회 사이즈가 얼마나 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를 믿고 변화 받아 주의 제자로서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부터 우리 교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향을 계획하고 설정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정말 불신자를 전도하는 교회로서 쓰임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를 찾아 주시고 우리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신 분들은 거의 70-80%가 이미 믿는 분들이셨습니다. 즉 우리 교회는 한국의 대형교회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타 교회에서 전입되는 교우들의 소위 이동성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그런 분들이 우리 교회내의 교육훈련과 목장교제의 마당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건강한 성도로 성숙하게 하는 일에 우리 교회가 기여한 측면은 적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는 성령의 부담이 계속 저에게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기존 성도들은 되도록 우리 교회에 등록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불신자들의 전도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계획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지금의 준비가 끝나는 2월 첫 주부터 가동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런 우리 교회의 전도 계획을 여러 성도들도 잘 이해하여 주시고 협력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주변의 이미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분들을 우리 교회로 인도할 생각은 꿈에라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행스럽게 분당과 수지에는 그런 분들이 찾을 수 있는 건강한 교회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회 특별히 작은 규모의 건강한 교회들로 그런 분들이 흩어진다면 우리 지역 사회는 오히려 여러 건강한 교회들을 통하여 보다 건강한 복음의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 혹은 구도자들을 우리의 전도 대상으로 해서 주께로 이들을 인도하는 사역에 전력투구를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일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자, 그러면 이제 우리 모두 안 믿는 우리의 이웃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전도의 계획을 세우는 일에 다함께 여러분의 기도와 생각 그리고 열정을 모아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묻는 질문은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전도하며 사셨을까요?

3. 예수님은 전도의 계기를 만들며 사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도를 계획하셨을 뿐 아니라, 계획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분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전도의 기회로 포착하며 사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행하다 우물가에서 쉬시고 있었던 예수님은 한 여인이 우물가에 도착하자 당시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서로 상종하지 않고 있던 문화적 금기를 깨트리시고 대화를 먼저 시작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게 물좀 달라”고. 그리고 마침내 이 여인에게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생의 생수가 있다”고 전도하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에게 이 여인과의 만남은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닌 전도의 기회이셨던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 보십시오. 예수께서 누가 복음 19:10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어떤 정황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눅19:1-9까지를 보시면 여리고 도시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그렇게도 간절히 만나고 싶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이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보신 것입니다. 군중들의 포위망을 벗어나 지나가는 예수님을 좀 더 잘 관찰하고자 나무위에 올라가 있던 그에게 예수님이 먼저“속히 내려오라”고 소리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는 그를 향해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십니다. 그 후에 주신 말씀이 바로 누가 19:10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은 예수님에게는 한 영혼을 찾으시기 위한 전도의 기회이셨던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그에게 주어진 모든 만남의 기회를 전도의 계기로 만들어 가며 살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수 없을까요? 불신자 전도를 교회의 존재이유로 정하고 거기에 모든 열과 성을 다하여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떠 오른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윌로우 크릭 교회의 빌 하이블 목사님이 처음 한국 방문을 하셨을 때 저는 그분의 통역을 도우면서 며칠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그분에 대해 느낀 소감은 정말 이 분은 전도에 인생을 올인하고 사시는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전도밖에는 다른 관심이나 화제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일부러 그가 일상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방문할 필요가 있는 잡화점, 세탁소, 식품점, 식당 그리고 이발소 같은 곳은 늘 한 두 곳을 정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불평하지 않는 좋은 고객, 따뜻한 감사를 늘 표하는 고객, 그리고 할당된 요금에다 조금씩 늘 더 요금을 지불하여 좋은 고객의 인상을 갖도록 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수년전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다니던 세탁소 한국인 주인이 그의 교회에 나아와 성경공부하고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게 되었다고 감격해 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콜 택시도 운전자의 전화를 알아 두었다가 한 택시를 늘 이용한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물론 전도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 택시 요금에 팁을 반드시 넉넉하게 주셔야 하는 일입니다. 인색하고 불평만 하는 그리스도인의 전도에 누가 매력을 느끼겠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할 때 어떻게 전도가 안 되겠습니까? 이런 전도를 ‘생활 전도’(Life-evangelism)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유훈처럼 남긴 마지막 부탁을 기억하십니까? 딤후4:2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계속되는 딤후4:5의 말씀입니다.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어떻습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전도를 계획하십시오. 10월 이웃 초청 축제 때만이 아닌 일상의 장에서 전도를 계획하며 살아 보십시오. 전도를 위한 보다 자연스런 기회를 갖기 위해 반장을 자원해 보십시오. 반상회에도 능동적으로 계획하고 참여하여 이웃들을 친구로 삼아보십시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모든 만남들, 그 모든 만남들을 전도의 기회로 포착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나 때문에 아니 우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받아드리고 구원받았다고 저 영원한 세상에서 영원을 두고 감격해하는 그 기쁨의 면류관, 자랑의 면류관에 도전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스티브 잡스의 도전처럼 그저 그렇게 살다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한번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도-그 전도의 거룩한 습관을 만드는 한 해에 도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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