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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잔의 기억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983 추천수:3 220.120.123.244
2021-03-14 12:48:50

우유 한잔의 기억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얼굴만큼 마음의 색깔도 다 다릅니다. 고약한 마음도 있고 착한 마음도 있으며, 강퍅한 마음도 있고, 부드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보면 도와주려는 마음도 있고, 못 본 듯이 외면하는 마음도 있으며, 타인의 어려움을 이용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옛날에 마음 따뜻한 소년이 있었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온종일 방문판매를 하였답니다. 아버지는 큰 설탕 도매사업가로 노예 해방을 부르짖으며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부자였답니다. 외아들인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 가서 방문판매를 하였답니다. 저녁이 되어 허기져 ‘다음 집에 가서 뭘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라고 가난한 집의 현관문을 두드렸답니다. 호주머니에는 달랑 동전 하나밖에 없었답니다. 문이 열리자 한눈에 봐도 예쁜 시골 소녀가 문을 열었답니다. 젊은이는 차마 배고프다는 말을 못하고 “물 한 잔만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마음씨 고운 소녀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 땀에 전 젊음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큰 잔 가득 우유를 담아 왔답니다. 젊은이는 단숨에 마시고 “우유 값으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라며 동전 한 닢을 꺼내었답니다. 소녀는 “그럴 필요 없어요. 엄마가 친절을 베풀 때는 절대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어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성인이 된 소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답니다. 그 도시의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큰 도시에서 전문의를 모셔왔답니다. 그 의사의 이름은 '하워드 켈리'였답니다.

켈리 박사는 단번에 그 소녀를 알아봤답니다. 그는 모든 정성과 의술을 동원해 그녀를 치료했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여인은 퇴원을 앞두고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답니다.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 걱정하며 청구서 봉투를 뜯어보았답니다. 그 청구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적혀있었답니다. “한 잔의 우윳값으로 치료비가 이미 계산되었음.” 하워드 켈리는 미국 존스홈킨스 병원 설립자입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목사였고 신앙 좋은 어머니 밑에서 어릴 때부터 신앙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 말, 스페인 말을 자유자재로 하였고, 그리스어와 라틴어, 히브리어까지도 능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15살 때 대학에 들어가고, 17살 때는 필라델피아 자연과학학회 회원이 되었답니다. 마음씨 좋은 소녀의 우유 한 잔과 동전 한 닢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켈리는 자신에게 우유 한 잔을 준 마음씨 고운 가난한 시골 소녀처럼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의 값비싼 호텔에 묵으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답니다. 그래서 자신의 돈으로 요양원을 만들어 수술을 받은 시골 사람들을 공짜로 묵게하며 치료해 주었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나자 망설이지 않고 옆 건물 세 채를 사들여 요양원을 확장했답니다. 게다가 자신의 월급으로 간호사를 고용해 돈이 없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치료해주었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켈리 박사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자신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 네 사람 중 세 사람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치료해 주었답니다. 하워드 켈리는 평생 은행 잔고에 동전 하나는 꼭 남겨 놓았답니다. 시골 소녀의 착한 마음의 표현인 우유 한잔, 주머니에 있었던 작은 동전 하나의 위력과 소중함을 잊지 못해서였답니다.

기억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쁜 기억이 쌓이면 나쁜 마음을 만들고, 좋은 기억이 쌓이면 좋은 마음을 만듭니다. 쌓여 있는 기억이 곧 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살면 인생은 행복하지만 나쁜 기억을 가지고 살면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아이젠하워는 1889년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마음은 극적으로 달랐습니다. 그 차이는 기억의 차이였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엄마의 역할에는 흥미를 잃고 사교생활에 바빴답니다. 아버지가 죽자 그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히틀러를 맡겼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부모는 아들을 사랑으로 양육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남겨 주었답니다.

가족 모두는 교회에 나가 적극적으로 봉사했고, 아이젠하워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했던 매일 저녁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히틀러는 불행한 기억의 늪에 살다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도했습니다. 히틀러에게 기억된 부모의 유산은 추하고, 편집하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부모로부터 평생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기억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행복한 기억은 행복한 인생을 만듭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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