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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539 추천수:6 220.120.123.244
2020-08-30 09:02:23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조선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는 사람은 이승훈입니다. 그는 오늘의 명동성당이 자리잡은 명례동에 있는 김범우 집을 신앙집회소로 한국천주교회가 창설하였지만 1801년 45세에 “서학 전파의 원흉”이 되어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주교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지도, 복자의 지위에도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저자 윤춘호는 “그의 삶은 살아서는 처절했고 죽어서는 더욱 처참했다”고 말합니다.
 
책의 서두는 1801년 처형을 당하기 전 이승훈이 다산 정약용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여 1822년 유배지에서 고향 마재로 돌아온 다산이 먼저 떠난 이승훈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감합니다. 정약용과 이승훈은 처남과 매부 사이였습니다. 정약용의 가문은 조선 후기에 서학, 즉 천주교를 수용한 가문입니다. 셋째 형인 약종은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고, 둘째 형 약전도 서학에 깊이 빠졌습니다. 맏형 약현은 조선교회 참상을 알리는 백서를 쓴 황사영을 사위로 뒀습니다. 정약용 누이는 이승훈과 혼인했습니다.
 
한 가족이 되어 천주교에 뜻을 같이하고 살았지만 이승훈과 정약용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갈린 사건은 신유박해 때였습니다. 천주교에 대하여 온화한 정책을 썼던 정조가 승하한 후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는 자신과 대립한 남인·시파를 숙청하기 위해 천주교를 인륜을 무너뜨리는 짐승과 같은 사학(邪學)으로 규정하고 다섯 집 중 한 집만 적발되어도 처벌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죽은 신도만 3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신유박해 국문의 현장에서 정약용은 “황사영은 제 조카사위이지만 원수입니다. 그자는 죽어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백다록은 이승훈입니다. 그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라는 정약용 심문 기록을 인용한 뒤 “다산의 고발과 진술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사정없이 교우들과 동지들의 가슴 한복판을 찔렀다”고 주장합니다. 정약용은 천주교를 매우 적극적으로 서슴없이 배반했으며, 전국각지에 숨어 있는 신자들을 색출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이승훈 역시 천주학을 배척하며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온갖 거짓을 지어냈지만 동료 신도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승훈은 참수형을 당하였고, 정약용은 살아났습니다.
 
정약용은 이승훈과 달리 후대 저술가들이 ‘위인’으로 숱하게 다뤄 온 인물이지만 이 책은 젊은 시절부터 신앙과 정치권력 양쪽을 다 탐했던 인물로 처세에 능했다고 말합니다. 신유박해 때 천주교 동료들을 가차 없이 밀고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은, 그런 삶의 방식이 위기의 순간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이승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다산! 방금 전에 자네는 살아남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다산! 답해 보게. 자네에게 한순간이라도 천주가 자네의 모든 것이던 시절이 진정 있었나? 두 발을 온전히 교회에 둔 적이 있었나? 있었다면 그게 언제였던가? 말해 보게. 주문모 신부를 피신시킨 것도 자네였고,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를 붙잡아 들인 것도 자네였어. 두 사건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네. 한 손으로는 성서를 읽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천주교도를 사냥하던 사람이 자네였네. 자네는 양쪽을 모두 기웃거리며 조정과 교회, 세속과 성직 사회 두 곳 모두에서 인정받고 출세하고 싶어 했던 것이네. 그게 자네의 진정한 얼굴일세...나 역시 자네처럼 천주를 부인하는 글을 썼네. 그래, 여러 번 썼어. 글만이 아니라 가슴과 머리에서 천주와 신앙이라는 두 단어를 지워 버렸어. 아니 영구히 파내 버렸네. 천주를 버렸어...한때의 동지로서 말하노니 부디 부끄러움을 아시게"
 
조선의 1호 신자이자 1호 신부였던 이승훈은 자신의 배교를 철회한다는 조그마한 표시도 없이 참수형을 당했는데 그 이유를 저자는 “나는 어떻게 해도 죽을 사람이었고 그래서 회개는 어찌 보면 쉬운 선택이었네. …배교자로 죽어 내가 이 세상에서 지은 죗값을 치르려 하네. 정직한 배교자로 죽어 주님 앞에 서고자 하네. 주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려고 하네. 믿는 일이 힘들었다고. 믿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계속되는 박해와 내면의 회의 끝에 스스로 믿음을 내려놓은 한 인간이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믿는 일이 힘들었다고. 믿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드로처럼 신앙을 포기하라는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조상제사를 금하는 교리 앞에서, 45세에 참수형 앞에서 공식적으로 세 번 배교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시대마다 늘 남은 자는 있습니다. 노아 때에도, 롯 때에도, 엘리야 때에도, 이사야 때에도, 바벨론 포로기에도...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사28:5)” 책을 놓으며 “00아,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해 봅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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