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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바이러스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561 추천수:3 220.120.123.244
2020-02-23 12:23:34

공포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19 공포증이 사람의 마음을 움츠리게 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공포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며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마차 위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마부가 물었습니다.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누구십니까?" "나는 호열자요"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 갈 수 없습니다" "여보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 테니 제발 나를 태워다 주시오" "세 사람 이상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마부는 할머니가 주는 칼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차가 성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 시에 호열자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단 세 사람만 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할머니가 많은 사람을 죽이자 마부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마부가 성문에서 할머니를 만나 죽이려 하자 할머니는 "왜 나를 죽이려 하오? 라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수한 사람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소"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죽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에 지나지 않았소. 나머지는 호열자란 말을 듣고 놀라서 두려워하다가 죽은 거요”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라고 했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인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그 염려와 근심과 불안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은 미국 시민들은 약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공포를 '상태공포(state of fear)'와 '특질공포(trait of fear)'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상태공포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느끼는 두려운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특질공포라는 어떤 위험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위험이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여 두려워하는 공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실재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만약으로서의 어떤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 생길 뻔한 일을 실제 발생한 상황보다 더 크게 상상 속의 가능성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극도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반응이지만 과민 반응과 지나친 공포증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공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 불필요한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하고, 경제가 위축되고 부정적 상상이 실제로 이뤄지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공포 바이러스로부터 마음을 건강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마음의 면역력을 가져야 합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온다고 모두 다 병이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면역력이 강하면 넉넉히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습니다. 공동묘지를 걸어가는 아이도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가면 공포로부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공포 바이러스로 마음이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반비례합니다.

둘째, 담대한 믿음으로 공포 바이러스가 마음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믿음은 떨어지고 믿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두려움은 적어집니다. 아직 오지 않을 일을 부정적으로 상상하며 공포의 늪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순교자들은 화형장에서도 공포 바이러스에 무너지지 않고 천국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순교의 형장에서도 찬양하였습니다. 공포가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어쩔 수 없지만 믿음을 가지면 공포가 마음에 둥지를 틀고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셋째는 공포는 조심하라는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되 강력한 사명감과 사랑으로 공포를 다스려야 합니다. 전염병을 무시하고 마스크 쓰기를 거절하고 손 세정을 겁냄으로 생각하며 겁 없이 독약을 마시는 것은 담대함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되 두려움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명감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고 사랑은 공포 바이러스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킵니다. 성경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상)”라고 말씀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공포 앞에서 물 속에 잠기는 아이를 방치하지 않습니다. 공포과 사랑, 공포와 사명은 반비례합니다. 두려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랑과 사명은 적어지고 사랑과 사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적어집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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