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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변함없는 원칙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164 추천수:21 112.168.96.71
2014-11-26 10:01:04
조현석 장로(지우 국제특허 법률사무소)는 예배 때면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격이 늘 가슴에 벅차오르기 때문이다. 조 장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1년 넘게 다니며 아버지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지만 결국 조 장로의 아버지는 명을 달리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에는 깊은 질병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멀쩡하던 여동생은 시신경이 모두 끊어지는 희귀병에 걸려 시각장애인이 됐다. 조 장로 역시 심한 축농증에다 오른쪽 무릎이 부풀어 오르고 뼈가 튀어나오더니 급기야 다리 장애가 왔다. 쪼그려 앉을 수 없고 어쩌다 앉으려면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가정에 뜻하지 않은 질병이 덮쳤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지 못했다. "어머니께 차마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골수염이 허리로 전이되기 전에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죽음과 같은 청소년기를 지냈습니다." 군의관 눈을 속이고 입대한 군에서 그는 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군인 교회부흥회에 참여했다가 마지막 날 그는 2m나 되는 불덩이가 그의 다리를 치는 환상을 보았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불을 본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 싶어 억울함에 목놓아 울었다.

"하나님께서는 불덩어리로 제 다리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골수염으로 앉고 걷기도 힘들었던 다리로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나았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어 이번엔 하나님께 축농증까지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고름이 얼굴 전체를 덮었던 축농증이 기적처럼 고쳐졌다. 그의 불치병이 낫자 그는 내친김에 누이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3일 금식을 하면서 매달렸다. 그리고 또 한번의 기적을 목격했다. 시신경이 끊어져 앞을 볼 수 없었던 누이가 눈을 뜬 것이다. 조현석 장로는 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기술고등고시도 수석으로 합격해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까지 꼴찌를 면치 못했던 학생이었다. 3수 끝에도 대학입시에 실패했을 정도로 공부라면 담을 쌓던 그가 제대 후 집중적으로 공부한 기간은 32개월이었다. 필설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면서 탄탄한 인생대로를 달렸던 그는 특허청 사무관, 서기관의 자리를 거치며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현재 특허 사무실을 낸 조 장로는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한다. 고객과 상담이 잘 되면 10억 정도를 해마다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당시 천안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고 출석하는 교회도 천안에 있었다. 외국 손님과 저녁 식사를 나누다보니 오후 5시30분이었다. 그는 수요예배가 생각났다. 갈등하던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지금 천안으로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 날,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조장로의 그런 단호함 때문인지 하나님께서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특허 사무실을 허락하셨다.
"세상에 보화를 쌓는 것은 보기에는 좋지만 나중에 후회할 날이 온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제 자신을 위해 재정을 사용하지 않는 원칙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조 장로 삶의 변함 없는 원칙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목마르거든 2004년 8월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어느 장마가 시작될 무렵의 한 여름이었습니다. 오늘도 딸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나갔습니다. 두손에 튀김가루를 묻히며, 밀가루로 얼룩진 앞치마에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아비 없이 딸을 키우려면 이 일이라도 감지 덕지 해야 했습니다. 오후쯤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 했습니다. "저런, 우리 딸 아이 우산도 갖고 가지 않았는데....."
딸자식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시장에서 비닐 우산을 사들고 딸의 학교에 찾아 갔습니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이 데려 가는데, 나의 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지나갑니다. "이런, 앞치마를 그냥 두른 채로 학교에 와 버렸네..!!"
딸의 교실을 물끄러미 쳐다 봤습니다.
저의 딸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내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이내 창가 안으로 사라 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려니까, 다시 얼굴을 보였다, 다시 사라지고...
다시 얼굴을 보였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빗물이 범벅이 된 엄마의 앞치마가 부끄러운 게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나는 힘없이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약 한달이 지났습니다. 딸의 학교에서 교내 작품전이 있으니 오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지난 번 일로 딸의 학교에 가기를 꺼려 하던 나는 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부모된 도리로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작품전이 끝났으면 어쩌지?' 저는 발길을 서둘렀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딸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엄마, 엄마, 내 작품 여기 있어~~~!!"딸의 손에 이끌리어 쫓아갔던 나는 입을 벌리고 말았습니다.--작품명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씌어 있는 제 딸의 제목 위에는 비닐 우산을 들고, 밀가루에 빗물이 범벅이된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딸이 창가로 보였다 안 보였다 한 것은 밑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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