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낮아질수록 더 멀리 갑니다
2009년 1월, 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둔 버락 오바마는 두 딸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습니다. 백악관에 들어가게 된 기쁨, 아이들이 오래 기다려 온 강아지 이야기, 아버지로서 들려주고 싶은 다정한 약속들이 그 편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오래 붙들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약속이 아니라, 그 아래 놓인 한 줄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선거 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의 빈자리는 어떤 선물로도 다 메울 수 없다는 인정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문턱에서 그는 자녀들 앞에 먼저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버지는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배웁니다. 흔들려서도 안 되고, 약해 보여서도 안 되며, 무엇보다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아버지들이 “미안하다”는 짧은 말을 평생 마음속에만 품고 있다가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하곤 합니다.
사과하면 권위가 작아질 것 같고, 고개를 숙이면 집안의 질서가 흔들릴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가정을 무너뜨린 것은 사과 그 자체가 아니라, 끝내 사과하지 못한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집에서는 공기부터 굳어집니다. 식탁은 차려져 있어도 마음은 모이지 않고, 대화는 오가도 진실은 흐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을 견디고, 자녀는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를 움츠리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과는 단순한 예절이 아닙니다. 집 안에 오래 고여 있던 탁한 공기를 처음으로 흔들어 주는 바람입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이 한마디는 아이를 정죄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고, 가족을 다시 사람다운 관계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아이는 설교보다 먼저 부모의 얼굴을 읽고, 교리보다 먼저 집 안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버지가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집에서 하나님은 쉽게 두려운 존재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먼저 낮아지는 집에서 아이는 권위와 겸손이 함께 갈 수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배우게 됩니다. 집을 세우는 것은 흠 없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잘못이 없어서 큰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서 큰 사람입니다. 가족 앞에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아버지, 체면보다 관계를 붙드는 아버지,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사랑을 회복하는 아버지가 결국 집을 살립니다. 강한 물살은 부딪치며 흘러가지만, 생명을 살리는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듭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먼저 낮아지는 한 사람을 통해 다시 살아납니다. 잘못은 인정하는 말은 부끄러운 말이 아닙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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