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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42번 이야기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385 추천수:2 220.120.123.244
2021-07-18 13:11:03

영구결번 42번 이야기

등번호 42번 미국 흑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 이야기입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42’는 특별한 숫자입니다. 아무도 달 수 없는 전구단 영구결번입니다. 하지만 1년에 딱 하루 4월 15일엔 모든 선수가 42번을 달고 뜁니다. 그날 데뷔했던 특별한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1919년에 흑인 소작농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의 미국은 인종차별을 넘어 인종적 증오의 시대였습니다. 백인들은 재키네가 가까이 사는 것을 싫어해 거듭거듭 이사를 가도록 압박을 가했습니다. 흑인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고, 생활하는 구역, 이용하는 교통수단, 이용하는 식당, 앉는 자리, 취업 분야 등에서 공식적으로 차별적 정책을 만들어 확실하게 차등했습니다. 미국 프로 야구계에는 1880년대에 제정된 메이저리그의 인종차별 제도 이후 흑인 선수가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흑인 선수를 데뷔시키고자 했던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 단장 브랜치 리키에 의해 1947년 재키 로빈슨이 뉴욕의 브루클린 다저스 팀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리키는 그의 애제자인 조지 시슬러에게 “흑인 선수 중에 야구도 물론 잘해야 하지만, 어떠한 인종차별의 모욕과 질시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를 찾아보라”라고 지시하며 “기왕이면 백인들이 무시 못 할 대졸학력이면 더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가 찾아낸 사람이 28살의 재키 로빈슨이고 그는 UCLA를 졸업했고, 만능 스포츠맨으로 육상에서는 ‘검은 소프’로 불리웠고, 풋볼의 하프백, 농구의 가드 포지션을 섭렵했으며, 테니스에선 전미 대학 4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리키 단장은 운동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화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재키는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재키 로빈슨은 ‘그것은 어떤 개인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겠지만, 나는 최대한 스스로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백인의 전당’을 처음 밟은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상대편뿐 아니라 같은 팀 선수들도 노골적으로 그를 차별했습니다. 데뷔 첫 달인 4월 한 달에만 두 자릿수에 가까운 공을 몸에 맞아야 했고, 타석에서 1루에 갈 때마다 상대팀 1루수의 발길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수비할 때도 1루로 달려오는 타자가 그의 발목을 공격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으며, 심판도 로빈슨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렸습니다. 언론들도 "검은 파괴자"로 그를 따돌렸고, 숙소에 돌이 날아오고, 협박 편지가 쇄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감독과 약속한 대로 참고 또 참았습니다. 여러 야구팀은 로빈슨이 나오는 다저스와는 경기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기도 했고, 심지어 같은 팀 선수들도 로빈슨을 퇴출시키려 했습니다. 로빈슨은 분노를 참고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데뷔 첫해 신인상을 받았고, 팀 우승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인종차별 협박은 끝나지 않았고 재키 로빈슨이 "다음 경기에도 나오면 42번, 너 총으로 쏴버린다."는 정체불명의 살해 협박을 받고 고통받을 때, 동료였던 외야수 진 허만스키가 “우리가 모두 42번을 입으면 누군지 모르겠지?”라는 말로 농담을 하며 로빈슨을 격려해준 일화에 기인해 1997년, 재키 로빈슨의 데뷔 50주년이 되던 해에 그의 등번호 42번은 전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04년부터는 그가 데뷔한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하여 인종장벽을 무너뜨린 그 날을 기념하고 있고, 2009년 부터는 재키 로빈슨 데이에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그의 등번호 42번을 모든 선수들이 달고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모진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이겨내고 최고 수준의 실력과 자제력, 매너를 보여줬던 재키 로빈슨은 그런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참고 참으며 1949년에는 내셔널 리그 타격왕과 MVP 상을 받았습니다. 여섯 차례나 내셔널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다저스가 여섯차례나 리그의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962년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3년 야구선수로써는 두 번째로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흑인선수들이 줄을 이어 빅리그에 진입하였고, 1년 후엔 미국의 군대도 흑인의 입대 제한을 완전히 해제했습니다. 8년 후에는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을 따로 교육하던 것도 금지시켰고, 18년 후엔 버스 안에서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은퇴한 후 흑인 저소득층 집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는 등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함께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꿨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는 유명한 구절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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