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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9) 성내지 아니하며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212 추천수:5 220.120.123.244
2020-12-20 20:28:46

사랑하며 살기(9) 성내지 아니하며

주변에서 성내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쉽게 화를 냅니다. 폭력 범죄의 42%가 분노 범죄라고 합니다. 20대 남성 A씨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다시 사귀자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여자 친구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해서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했습니다. '욱'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한 것입니다. 묻지 마 폭행, 층간소음 살인, 데이트 폭력, 보복 운전 등도 분노 범죄 유형에 속합니다. 사람이 성 잘 내는 것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지만, 이 시대는 '화(火)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분노는 인간의 기본감정인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하나인 '노'(怒)에서 오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 중 하나입니다.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분노 자체는 정상적인 감정이고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표출되느냐에 따라 파괴적인 힘이 될 수도 있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버지니어 사티어(Virginia Satir)가 "분노는 악덕이 아니라 긴급할 때 쓸 수 있는 남부끄럽지 않은 인간의 정서다."라고 했듯이 분노가 스트레스나 좌절감에 대한 자기 방어체계의 일부분으로 정상적으로 처리된다면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하게 하는 필수적인 감정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분노는 인간의 생존이나 적응을 도와주고, 위협에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파괴적인 분노는 불이 돼, 마음에 품으면 내상을 입히고 밖으로 표출하면 격노나 분개, 또는 적개심이나, 공격성으로 나타나 외상을 입힙니다.

파괴적인 분노가 주는 네 가지 큰 악영향은 첫째 파괴적 분노는 몸에 불의 씨인 독을 뿌립니다. 과격한 분노는 감정과 신체를 계속 응급상황으로 유지케 하여 여러 가지 질환의 원인이 되게 합니다. 분노와 적대감 지수가 높으면 면역력 약화, 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위장병 등과 같은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고 합니다.

둘째, 파괴적 분노는 대인관계에 폭탄을 터뜨립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회피의 대상이 되고, 소외감과 외로움, 친밀감의 결핍, 사회적 지지의 단절, 대인관계의 종결 등의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셋째, 분노는 정서적 피해로 뿌리내립니다. 만성적으로 표현되는 분노는 집중력, 일의 능률, 문제해결능력 등을 저하시키고, 판단력을 마비시키며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넷째, 분노는 재정적, 사회적 피해로 열매 맺습니다. 수습하고 복구하기 위해 재정적인 손해를 보게 되고 지금까지 쌓아 온 사회적 명성과 지위에도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습니다.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적 억제형, 둘째는 외적 표출형, 셋째는 자기 주장적 표현형입니다. 내적 억제형은 분노를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입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한다"고 했습니다. 분노가 생길 때 깊은 숨을 쉬고, 손가락으로 10까지 수를 세어보고, 피하며, 다른 생각을 하는 것 등으로 억제합니다. 그러나 계속 억제하면 결국 분이 쌓이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정신 건강 뿐 아니라 육체 건강까지 해치게 됩니다. 외적 표출형은 파괴적 반응으로 분출시키는 것입니다. 화나면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성경에서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5:2)" 라고 말한 것처럼 서로 피해를 보는 방법입니다.

자기 주장적 표현형은 자신의 분노를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생각을 통해 일어나는 감정을 조절하고 문제와 사람을 분리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6절에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분노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혀 성을 내지 않는 것보다 누가 화를 내게 만들어도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오히려 한 사람의 신자가 주님을 만나 참된 사랑으로 충만하면 분노의 이유가 바뀐다는 뜻입니다. 성을 내어도 자기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으로 그 이유가 바뀝니다. 그런 성냄을 의분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면 자기 이익을 위해 인간관계에서 날카롭게 분노하지 않고, 급히 도발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합니다.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속을 태우지 않으며, 자주 토라지지 않고, 음흉하고 비겁하게 복수하지 않습니다. 악한 분노와 의분의 차이는 그것이 자신의 이익 때문이냐 타인의 이익 때문이냐, 자기 사랑 때문이냐 하나님 사랑 때문이냐, 창조적이냐 파괴적이냐에 있습니다. 성내지 않고 살 수 없지만 자신의 이익 때문에 파괴적으로 성을 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 속에 포함된 성냄은 해지기 전에 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표출하며, 분노의 대상자와 대화로 사랑의 도구가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성을 내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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