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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7)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566 추천수:5 220.120.123.244
2020-12-06 12:40:08

사랑하며 살기(7)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콧노래를 부르며 "시원하다, 시원하다"는 말을 연발하였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욕탕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답니다. 아들은 뜨거운 물에 기겁하고 뛰어나와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라고 말했답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무례함에 기가 막혀 온탕에서 나와 자식을 실컷 두들겨 주었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을 때린 것이 마음 아파 빵 세 개를 사서 아들에게 하나 주고 자신은 두 개를 먹으며 "배부르지?"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하나 먹은 놈 배부르면, 두 개 먹은 놈은 배 터져 죽겠네"라고 하더랍니다. 맞아도 무례한 아들을 보고 더 화가 나 몽둥이로 아들을 팼답니다. 맞고 있던 아들은 "죽여라 죽여, 네 아들 죽지? 내 아들 죽냐?"라고 하더랍니다. 무례함이 권리이고, 무례함이 권력인 것처럼 무례함으로 가득찬 세태를 풍자한 유머입니다.

막말해야 뜨는 세상이라고 되는 듯 도처에 예의 없는 천박함이 널려 있습니다. 정치인도, 연예인도, 언론인도, 종교인도 막말하는 것을 힘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무례히 행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례히 행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연인 사이도, 부부 사이도 무례히 행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여자친구를 무례하게 스토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아내를 파출부처럼 취급하는 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고, 남편을 조롱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연애 때는 그렇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다가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서로 지나치게 편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며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데 예의를 탈출한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예의의 레일 위에 있을 때 안전하고, 오래가며, 가치 있고, 우아합니다. 사랑의 기본은 예의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부간에도, 친구 간에도, 연인 간에도 예의는 사랑을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옆집 남자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면서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는 무례하게 행하고, 옆집 여자에게는 불쾌해도 웃으면서 자기 아내에게는 쉽게 화를 내는 것은 사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편하니까 …친하니까…” 함부로 대하면 때가 되면 금 간 항아리처럼 사랑은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는(고전13:5)”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규모, 예법, 도리, 규범 등을 벗어나 막 춤을 추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무례한 행동을 “방자히 행함” 이라고도 말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철이 덜 들고 훈련이 안 된 개가 그 목줄이 풀리자 천방지축과 엉망진창으로 행동함을 말한다고 합니다. 무례함은 기본 예의가 없는 것이며, 권위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며, 힘으로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품위 없는 행동, 격에 맞지 않는 행동, 잘못된 방식의 행동, 속되고 저속한 행동,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 미운 행동, 격에 벗어난 행동, 창피한 행동, 비열한 행동, 예의 없는 행동, 질서 없는 막무가내 행동, 철이 덜 든 행동 등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상대를 존중하면 예의를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무례를 행하면 자존심은 상처를 받고 계속 무례가 쌓이면 무례는 화약이 되어 사랑은 폭파되고 맙니다. 무례는 단순히 성격 문제가 아니고 내면의 교만 때문입니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힘으로 상대를 얕잡아 보기 때문입니다. 무례함으로 사랑이 파탄 나면 고비용을 치루어야 합니다. <무례함의 비용>이라는 책을 쓴 크라스틴 포래스에 의하면 미국심리학회는 무례함으로 직장 내 스트레스가 미국 경제에 입히는 피해액이 연간 5,000억 달러(약 542조 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답니다. 크리스틴 피어슨 교수와 저자가 17개 국가의 중간관리자와 평 직원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무례함을 당하는 쪽에 해당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48%가 노동력 투입량을 고의로 줄였답니다. 38%가 성과의 품질을 고의로 저하시켰고, 63%가 가해자를 회피하느라 노동 시간을 허비했으며, 78%가 조직에 대한 헌신성이 저하되었답니다. 무례가 넘치는 개인, 무례가 충만한 가정, 무례가 미덕이 된 세상은 고비용을 치룰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지극히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를 무례하게 대하지 말아야 하고 자녀에게 예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사랑은 난폭한 언행과 천박한 막말로 포장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무례함을 많이 당하신 예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함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님은 무례하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고전13:5)",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잠21:24)"라고 말씀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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