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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예배의 자유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566 추천수:1 220.120.123.244
2020-03-15 07:31:46

전염병과 예배의 자유

콜로나 19로 많은 교회가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상적인 신앙 활동을 중지하였고, 기독교가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기는 주일 회중 예배도 영상예배로 대체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소수의 인원이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장은 종교집회 금지 명령을 운운하고 국회도 ‘코로나19 확산 방지 위한 종교집회 자제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이해할 수 있으나 공권력에 의한 강제 예배 금지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 금지를 명령하는 근거로 감염병예방법 49조의 ‘도지사가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흥행, 집회, 제례의 제한 또는 금지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상위법인 헌법 제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배의 자유는 명백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이고, 우리 헌법 37조 ②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여 신앙의 자유를 특정 법률에 따라 제한할 수 있으나 그 목적에 비추어 과도하게 제한해선 안 된다는 ‘과잉제한의 금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법에 따라 통치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자들이 임의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초법적으로 예배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권력자들은 정상적 교회의 회중예배가 전염병의 온상인 것처럼 호도해서도 안 되고 근거 없이 모든 예배당 문을 닫음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예배 방법의 결정은 정치 영역이 아니라 종교인 영역입니다.

기독교의 주일 회중예배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핍박 가운데서도 6.25 전쟁의 포탄 가운데서도 예배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6세기 당시 칼빈과 베자를 포함한 제네바 목사회 목사들은 주일예배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흑사병이 무서워 맡은 양떼들을 버리고 도망친 목사들은 면직시켰습니다. 수천 년의 기독교 수난사는 예배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사였습니다. 전염병 확산의 주범이 된 이단 신천지인들의 예배로 민감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95%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종교집회를 자제해야한다는 여론에 근거하여 정상적인 교회를 집단감염의 잠재적 위험군으로 가정하여 예배를 전면 금지한다면 지극히 비합리적인 마녀사냥식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이 접촉되는 전철, 대형 식당도, 대기업, 대형마트도, 대형언론사, 대형 영화관, 대형 유흥시설도 다 폐쇄해야 형평성에 맞고 합리적입니다.

스스로 전염병 차단을 위해 대형 교회는 이미 영상 예배로 대처하였고, 교회 중 80%는 100명 이하 모이는 교회이며 회중예배의 결정은 각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적 양심적 판단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과거 권력자들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대역병의 화살을 약자인 마녀에게 뒤집어 씌워 대중의 분노와 두려움, 책임을 처리했습니다. 과학이 발달된 현대에도 정치꾼과 정치지향적 언론, 기독교 안티들은 대중의 욕망을 관리하기 위해 신앙인을 콜로세움의 사자밥으로 던지고 싶을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회중 예배는 액세서리도 선택과목도 아닙니다. 예배의 자유는 권력자들의 재량권에 맡겨진 것도. 여론에 의한 선택되는 것도 아니며 협박과 박해에 무릎 꿇을 문제도 아닙니다. 권력자들은 잠깐 조금 주어진 권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만용을 부려서도 안 되고, 언론은 길거리의 만취한 사람처럼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고 마치 교회가 신천지와 같은 집단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프랑스 혁명 후 무신론자들은 주일 예배를 방해하기 위해 10일 휴일제를 시행했고, 무신론자 레닌은 8일 휴일제를 시행했지만, 그들은 예배를 영구히 금지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을 마약처럼 취급하며 대대적인 핍박을 가했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예배는 멈추지 않습니다. 정치 권력이나 언론권력을 쥔 자들은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과학적 사회적 거리두기 처방전에 집중해야 합니다. 공권력에 의해 예배금지는 오해와 반발을 사 전염병 확산방지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확산시켜 전염병보다 더 많은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 “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 장군은 헌법에 의거, 1849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해야 되는데 그날이 주일이라 취임을 거부하여 에치슨 상원의장이 24시간 대통령 임무를 대신했습니다. 주일 예배가 대통령 취임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토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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