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라틴어로 메멘토(memento)는 ‘기억하다, 생각하다’라는 의미이고 모리(mori)는 죽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입니다.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의 젊은 장군 마커스 비니키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개선 퍼레이드를 펼칠 때 월계관을 높이 든 노예가 그의 뒤에 서서 계속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너도 언젠가 죽으니 너무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중세의 수도원 수사들은 노동과 기도, 명상, 침묵을 엄격히 지켰다고 합니다. 그들은 묵언, 대침묵을 최고의 계명으로 지키면서도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인사말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삶에 취해 누구나 언제가 다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언어생활은 “기가 막혀 죽겠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 너 죽고 싶냐?” 등 죽음을 입에 달고 살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속담처럼 실제로는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삶은 3분 사이입니다. 3분 숨을 안 쉬면 죽습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세계인 중에서 지금 얼마나 죽고 있는가를 알려 주는 사망시계(world death clock)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제 연간 사망한 사람은 56,000,000명이라고 합니다. 1년이면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매일 153,424명, 매시간 6,392명, 매분 106명, 매초 1.8명이 사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삶이 긴 것같지만 1년은 12개월이니 지금 평균 수명 82년 산다면 984개월을 사는 것입니다. 철이 없는 어린 시절과 병든 노년의 시기를 빼면 한 50년 정도, 600개월 정도를 제대로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의 실상입니다.
죽음에 대응하는 인간의 유형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 유형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 살아 있을 때 “먹고 즐기고 놀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억만장자인 선박왕 오나시스는 여자 가수인 마리아 칼라스에 반해 결혼했지만 8년이 지나자 권태감으로 이혼했답니다. 그 후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처(妻)였던 재클린과 재혼했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 "내가 실수를 했다"고 했답니다. 재클린이 한 달에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써 대니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갔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자 얼마 더 못살고 죽었답니다. 그는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둘째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유형입니다.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하며 내세에 대하여 어떠한 희망도 기대도 품지 않고 죽음 앞에 진지한 태도를 가지지 않으며 세상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자유를 부르짖으며 천국과 지옥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를 강하게 비판했던 사르트르도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년에 ‘폐수종’으로 죽음에 임하자 품위 있게 죽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던졌고 죽음이 두려워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발악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한 기자가 “왜 사르트르가 그렇게 수치스럽게 죽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 외쳤던 그의 말로가 왜 이렇게 비참했을까?”라고 쓰면서 결론으로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는 임종 때 “내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구나!”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셋째는 죽음 이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유형입니다. 스웨덴의 노벨은 어느 날 '다이너마이트 왕이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는 오보(誤報)를 보고 자신이 죽은 후의 평가를 생각하며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모은 재산(31,000,000크로나)을 기금으로 노벨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송나라의 주신중은 훌륭한 죽음으로 5멸(五滅)의 실천을 내세웠습니다. 첫째, 멸재(滅財)로 재산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둘째, 멸원(滅怨)으로 원한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 셋째, 멸채(滅償)로 남에게 빚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넷째, 멸정(滅情)으로 정분을 남기지 말고 죽을 것,다섯째, 멸망(滅亡)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라고 말씀합니다. 죽음 후에 냉엄한 평가가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묘비명을 통해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땅의 삶은 언젠가 끝이 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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