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여행, 가장 가까운 본향
인생을 한 편의 우화로 그려 본다면 이런 장면이 떠오릅니다. 한 사람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기차 안에서 자라고, 사랑하고, 일하고, 늙어갔습니다. 창가에는 좋아하는 화분을 놓았고, 좌석에는 자기 취향에 맞는 덮개를 씌웠습니다. 옆자리 승객과는 평생의 친구가 되었고, 객실 안의 작은 풍경들을 자기 삶의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차장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다음 역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꾸미던 자리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하게 바라보던 창밖 풍경도 종착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시간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고, 자신은 처음부터 도착해야 할 곳이 있는 여행자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에 쥔 휴대폰과 오늘의 성과, 내일의 일정, 밀린 메시지와 카드값, 건강검진 결과와 노후 계획 사이를 오가며 살아갑니다. 더 좋은 집을 마련하고, 더 안정된 자리를 얻고,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삶을 꿈꿉니다. 물론 이 땅의 삶은 귀합니다. 사랑도 소중하고, 가족과 일터와 우정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 객실도 종착역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다음 역에서 내리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병실 창가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을 붙들어 본 사람은 압니다. 장례식장을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아무 일 없다는 듯 불 켜진 거리 앞에서 마음 한편이 조용히 묻는 것을 압니다. 정말 이것이 끝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마음을 깊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까지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안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성공으로도, 소유로도, 인정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갈망입니다.
C. S. 루이스도 비슷한 통찰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경험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갈망이 내 안에 있다면, 우리는 본래 이 세상만을 위해 지어진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갈망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천국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갈망은 결코 하찮은 착각이 아닙니다. 목마름이 물의 존재를 가리키듯, 영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우리가 이 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임을 보여 주는 깊은 단서입니다.
성경은 천국을 막연한 위로나 종교적 상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근거는 한 사람의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음을 통과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천국의 소망은 죽음이 두려운 인간이 만들어 낸 감정의 진통제가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열어 놓으신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여기서 천국은 안개처럼 흐릿한 사후 세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집은 돌아갈 곳입니다. 집은 기다리는 이가 있는 곳입니다. 집은 방황하던 마음이 마침내 안식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은 이 땅을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의 빛 아래에서 오늘을 더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절망에 자신을 넘기지 않고, 모든 눈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작은 사랑도 헛되이 여기지 않습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기에 탐욕에 무릎 꿇지 않고, 본향이 있기에 잠시 머무는 객실을 영원한 집처럼 붙들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본향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천국은 단지 고통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직접 닦아 주시는 곳입니다. 이해할 수 없던 고난이 하나님의 빛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진 사랑과 수고와 눈물이 마침내 본래의 자리를 찾는 곳입니다. 우리는 길 위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종착역이 아니라 정거장입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차장의 조용한 안내가 들릴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가장 먼 여행처럼 보였던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가까운 본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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