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의 힘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처를 베풀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판사’로 불린 사람이 있습니다. <연민에 관하여>라는 책을 쓴 미국 사람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입니다. 그는 암 투병 중인 아들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던 아흔여섯 살 아버지가 급한 마음에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제한 속도를 위반해 기소됐을 때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가족을 돌보고 계시군요. 훌륭합니다”라며 기각했습니다. 동생에게 아들이 살해당해 고통받고 있는 여성의 주차 위반 범칙금을 기각하며 “이미 너무 끔찍한 일을 겪은 그녀의 부담을 가중할 수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2017년 1월 주차 위반으로 기소된 여성의 여섯 살 난 딸을 판사석으로 불러내 “이제부터 네가 판사야. 공정하고 정직해야 해. 벌금으로 얼마를 내라고 해야 할까? 300달러, 100달러, 50달러, 0달러 중 선택해”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50달러를 부르자 “아침은 먹었니? 엄마한테 벌금 50달러를 내는 대신 네게 아침을 사주라고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하여 방청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그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시 지방법원에서 1985년부터 38년간 근무한 판사로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 존중, 이해를 중시하며 판결했습니다. 그는 “내 법복 아래에는 판사의 배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그는 법정에서 영어가 서툰 이민자, 낮은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근로 빈곤층, 주차 위반 범칙금 몇백 달러를 내고 나면 아이들에게 먹일 식료품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범칙금을 기각하거나, 범칙금을 할부로 내게 해 주거나, 특별 기금으로 범칙금을 대신 내주곤 합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연민을 특히 강조합니다. “공감과 연민은 종종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엄연히 다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연민은 그 고통을 덜어줄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그 상황이 변화하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연민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보다 운이 나쁘거나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을 마주할 때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연민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연민의 가장 근본적인 힘은 생존과 연결됩니다. 하버드 의대가 수십 년간 추적한 '성인 발달 연구'는 인간의 행복과 건강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변수가 '관계의 질'임을 밝혔습니다. 재산도, 명예도, 지능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삶의 질을 갈랐습니다. 연민은 바로 그 '알아봄'의 행위입니다. 이는 뇌과학으로도 뒷받침됩니다. 인간의 뇌에는 '거울 뉴런'이 존재합니다. 타인이 고통받는 장면을 목격할 때, 우리 뇌는 그 고통을 실제로 일부 공유합니다. 연민은 학습된 덕목이기 이전에, 창조주가 인간에게 새겨 넣은 생존 본능입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상태를 감지하고 반응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 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3,000명을 넘습니다. 가난이나 질병이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인 것은 '단절'입니다. 연민은 그 단절을 막는 가장 원초적인 방어선입니다. 누군가 나를 본다는 감각, 내 존재가 타인에게 닿아 있다는 경험이 사람을 버티게 합니다.
연민은 조직과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연민을 사적인 감정으로만 보는 시각은 절반만 맞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변화는 연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노예제 폐지 운동의 씨앗은 노예의 고통을 '내 것처럼' 받아들인 사람들의 감각이었고, 장애인 권리 운동은 타인의 불편을 외면하지 않은 이들의 연대에서 비롯됐습니다. 연민은 분노보다 오래 지속되고, 이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분노는 적을 만들지만, 연민은 동료를 만듭니다. 연민은 연결을 만들고, 연결은 신뢰를 만들며, 신뢰는 세상을 움직입니다.
연민은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타인을 향해 열린 마음이 결국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의 연구는 '자기 연민'이 높은 사람일수록 실패 앞에서 더 빨리 회복하고, 도전을 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이, 그 약함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은 타인의 가혹함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더 나아가, 연민은 회복탄력성의 핵심 재료입니다. 극단적 상황을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왔을 때 오히려 자신이 버텼다는 것입니다. 연민의 실천은 '나는 아직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복원시킵니다. 무력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역설적으로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조직과 사회를 움직이며, 자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연민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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