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쇠지렛대
리모델링과 소규모 철거를 맡는 업체 ‘태건’의 대표 태준은 가난한 집을 볼 때마다 먼저 구도를 생각했다. 금 간 벽과 들뜬 장판, 천장에 번진 누수 자국은 누군가의 살아온 세월이 아니라 화면 안에서 얼마나 잘 잡히는지가 더 중요했다.
구독자 오십만 기념 ‘천사 프로젝트’ 촬영지는 재개발이 멈춘 산동네 맨 꼭대기로 정해졌다. 비만 오면 흙벽이 젖어내리는 슬레이트집. 대문 앞에는 깨진 화분과 식은 연탄재가 엉켜 있었고, 신발장 아래에는 낡은 작업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신발처럼 보였는데, 신발코만 이상하게 반들거렸다.
“조명 조금만 낮춰요. 벽 얼룩이 살아야 돼.”
태준은 카메라가 켜지자 금세 목소리를 바꾸었다.
“오늘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 댁을 저희가 무료로 손봐 드리겠습니다.”
방 안에서 문이 열리고 마른 노인이 걸어 나왔다. 노인은 플래시를 피하듯 눈을 가늘게 뜨다가, 태준 조끼 왼가슴에 붙은 ‘태건’ 로고를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노인의 눈빛이 홱 바뀌었다. 로고 때문만이 아니었다. 장례 뒤 몇 번 집에 찾아왔던 그 젊은 현장 책임자의 얼굴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뒤 마당 구석에 기대 둔 녹슨 쇠지렛대를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이 죽일 놈아…!”
태준이 뒤로 넘어졌다. 스태프들은 흩어졌다. 노인의 팔이 올라갔다. 그러나 허공에서 떨기만 할 뿐, 끝내 내려오지는 못했다. 쇠지렛대가 먼저 흙바닥에 떨어졌다.
노인은 숨을 몰아쉬다가 태준의 패딩 가슴팍에 가래를 뱉었다.
“나가. 내 집에서 나가.”
골목 아래까지 내려온 뒤에도 태준의 다리는 떨렸다. 놀람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카메라 다 꺼. 저런 사람은 그냥 두면 돼.”
그때 반찬통 빈 통을 들고 언덕을 내려오던 작은 교회 목사가 흩어진 스태프들과 마당에 나뒹군 쇠지렛대를 번갈아 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는 태준의 패딩 가슴팍에 묻은 자국까지 힐끗 보고는 조용히 다가왔다.
“많이 놀라셨지요.”
태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럽니까.”
목사는 잠시 언덕 위 집을 바라보았다. “아들 일 이후로요.
부자 둘이 우리 교회를 오래 다녔습니다. 가난해도 반듯하게 살던 분들이지요.”
“아들요?”
“다섯 해 전 공사판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안전줄만 있었어도 안 죽을 애였는데, 술 먹고 발을 헛디뎠다고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름이 박동수였어요.”
그리고 목사는 한마디를 더 낮게 보탰다.
“아직도 저녁이면 밥상을 둘로 놓으십니다.”
박동수.
태준의 손끝에서 담배가 떨어졌다.
다섯 해 전, 태준이 현장 책임자로 뛰던 때였다. 그는 공기를 맞추려면 안전 설치를 하루쯤 미뤄도 된다고 했다. 비 오기 전에 외벽부터 끝내자고 재촉한 것도 그였다. 사고가 나자 현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고, 서류는 사람보다 빨리 정리되었다. 그 사고가 제대로 문제 됐으면 회사는 그 현장에서 끝장이 났다. 하지만 책임은 죽은 작업자에게로 돌려졌고 공사는 예정대로 밀어붙여졌다. 태준은 그 일로 윗선의 신임을 얻었고, 몇 해 뒤 부도 직전의 회사를 넘겨받아 대표가 되었다.
태준은 차 문을 붙잡은 채 한참 서 있었다.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다시 언덕 위로 발이 향했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마루 끝에 앉은 노인이 해진 작업 점퍼를 무릎에 펴놓고 있었다. 다 닳은 가슴팍에 ‘태건’ 두 글자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노인은 점퍼 어깨의 먼지를 천천히 털었다. 사물을 만지는 손이 아니라, 누군가를 다치지 않게 깨우는 손 같았다.
“동수야…” 노인은 한참 뒤에야 말을 이었다. “아비가 오늘은 진짜 그놈을 찍어버릴라 했다.”
기침 같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근디 네가 그러지 않았냐. 그 양반 사람은 좋다고. 새참도 같이 먹고, 장갑도 먼저 챙겨준다고. 그 말 하던 니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노인은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끝내 못 내리쳤다.”
골목 아래 작은 교회 십자가에 불이 켜졌다. 환하지도 않은 붉은빛이 젖은 담벼락에 희미하게 번졌다.
“네가 좋다던 사람을, 내가 니 앞에서 어찌 죽이겄냐.”
태준은 담장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 밑의 시멘트가 차고 거칠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천천히 꺾였다. 패딩 가슴팍의 얼룩은 눈 녹은 물에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그는 닦아내려다 손을 멈췄다.
언덕 아래 작은 교회에서 찬송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올라왔다. 태준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젖은 얼룩 위에 손을 얹고 오래 있었다. 그 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더러움만이 아니었다.
김필곤 콩트집 <하늘 바구니> 중에서
"너희가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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