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背) 위의 천국
그해 오월, 목포의 봄은 잔인하게 향기로웠다. 창밖 아카시아 냄새가 진동할수록 열세 살 수영의 교실 뒷자리엔 눅눅한 오줌 지린내가 더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뇌염을 앓고 난 뒤로 수영의 세상은 늘 왼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발음은 으깨지고, 걸음은 옆으로 흐르곤 했다. 수영은 교실 구석에 놓인 낡은 걸레 같았다. 누구도 집어 들지 않는. 수영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자리를 ‘성역’이라 불렀다. 가까이 앉았다가 재수 옮으면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성역에 전학 온 덕철이 가방을 툭 던지고 앉았다.
“워매, 짝꿍한테 인사도 안 하냐?”
수영은 대답 대신 가래 섞인 침을 책상에 뱉었다. 세상을 향한 유일한 복수였다. 덕철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교복 소매로 그 침을 쓱 닦아냈다. “거참, 니 침은 땟깔이 아주 찐하구만. 이건 침이 아니라 장어 엑기스여.” 아이들이 킥킥댔다. 수영은 귀까지 빨개져 고개를 박았다. 덕철은 아랑곳없이 수영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겼다. 마치 거기가 원래 제 자리였다는 듯이.
비극은 장마가 시작된 금요일 오후에 터졌다. 수영의 방광은 경고도 없이 무너졌다. 굳어버린 다리는 화장실까지 갈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바지 위로 짙은 지도가 순식간에 그려졌다. 교실 공기가 싸늘하게 식더니 곧 조롱으로 폭발했다.
“에헤라디야! 수영이 논에 물 댔네!”
“아따, 냄새 보소! 홍어 썩는 내 난다!”
수영은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그때, 쾅 소리와 함께 책상이 넘어갔다. 덕철이었다. 놈은 가방을 뒤지더니 체육복 바지를 꺼내 들고 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그건 분노라기보다 어떤 결심의 색이었다.
“주둥이들 안 닥치냐? 수영이가 싼 게 아니라 하늘이 너무 많이 와서 넘친 거여! 니들은 비 오면 우산 쓰제? 얘는 몸이 우산이라 먼저 맞은 거뿐이여!”
덕철은 젖은 수영을 둘러업었다. 녀석의 등은 생각보다 좁았고 뼈마디가 앙상했다. 달동네 비탈길을 오르는 덕철의 숨소리가 쇳소리처럼 거칠어졌다. 수영은 땀 냄새 밴 덕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다.
“야… 덕철아. 니 바보냐? 나 같은 병신을 왜 업어. 냄새나게….”
덕철이 잠시 멈춰 섰다.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수영의 손등 위로 뚝 떨어졌다. 덕철이 수영을 한 번 춰 올리며 툭 내뱉었다.
“쫄지 마라. 우리 교회 쌤이 그라더라. 예수님도 십자가 지고 갈 때 온 세상 오물을 다 뒤집어썼다고. 니는 똥오줌 싸는 기계가 아니고, 하나님이 숨겨놓은 보석이여. 좀 무겁긴 한디… 오늘만 내가 니 보석함 해주는 거다.”
다시 걸음을 떼는 순간, 수영의 눈에 덕철의 발이 들어왔다. 왼발엔 찢어진 슬리퍼 한 짝, 오른발은 맨발이었다. 돌밭 거친 입자가 빗물에 젖은 맨발바닥을 짓이기고 있었다. “야! 니 신발! 발바닥 피난다!” 덕철이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아, 냅둬라. 급해서 챙길 정신이 있었간디. 사내자식 발바닥은 원래 굳은살 좀 박혀야 맵시 나는 법이여.” 그날 밤, 덕철이 입혀 보낸 체육복 바지를 빨아 널던 어머니가 주머니를 먼저 뒤집었다. 그때 손바닥에 젖은 종이쪽지가 딸려 나왔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번져 있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장 13절). 덕철은 자기 살 같은 옷을 벗어주었다. 맨발로 돌아가면서도, 내일 체육 시간에 교복 바지로 운동장을 뛰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수영의 가슴 속에서 지린내가 빠져나갔다. 대신 아카시아보다 짙은 무언가가, 말없이 차올랐다. 그날 이후 수영은
‘내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기 몸이 감옥이라면, 덕철의 등은 문(門)이었다. 누군가 내게 문이 되어주었다면, 나도 누군가의 문이 될 수 있었다. 삼십 년이 흘렀다. 볼리비아의 황량한 고원.
선교사 수영은 마을 아이들에게 돌을 맞고 울고 있는 꼬마를 발견했다. 씻지 못해 악취가 나는 아이였다. 수영은 망설임 없이 아이 앞에 등을 내밀었다.
“올라타라. 괜찮다. 하나도 무겁지 않다.” 아이의 앙상한 팔이 목을 감싸는 순간, 수영의 귀에 삼십 년 전의 빗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오늘만 내가 니 보석함 해주는 거다.’
수영은 아이를 업은 채, 지구 반대편 목포의 비탈길을 향해 속삭였다.
“덕철아… 나 오늘만, 누군가의 보석함 해본다.”
사막의 바람이 수영의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그 바람 끝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났다.
-하늘 바구니(김필곤목사 콩트집) 중에서-
[작가의 한 마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등에 업혀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은 1등의 걸음걸이를 기억하지만, 하늘은 꼴찌를 업고 가는 이의 거친 숨소리를 기록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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