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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새 이름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886 추천수:2 218.147.218.173
2026-01-18 13:57:38

존귀한 새 이름

 

레미제라블에는 장발장이 평생 맞서 싸워야 했던 한 적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형사 자베르가 아니라, 그가 가슴에 품고 다녀야 했던 노란 통행증이었습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왔지만, 그의 신분증에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본 것은 장발장이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노란 종이에 적힌 신분이었습니다. 그는 이름 대신 죄수 번호 24601’로 불렸고, 그 호칭은 그의 과거를 현재이자 미래로 고정시켰습니다.

자신의 존재보다 낙인이 앞서는 삶. 그는 사회가 부여한 그 이름에 갇혀 분노와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미리엘 주교의 은식기를 훔치다 붙잡혔을 때,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전혀 다른 말을 건넵니다.

형제여, 은촛대는 왜 두고 갔소?” 주교는 그를 도둑이라 부르지 않고 형제라 불렀고, 경찰 앞에서는 이 사람은 내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그순간, ‘24601’이라는 이름은 무너지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그의 삶에 새겨집니다.

이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힘을 갖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보이지 않는 노란 통행증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현대 사회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거대한 감시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보다 조건으로 호명됩니다. 학벌, 연봉, 직함, 거주지. 이 기준에서 밀려날 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이름을 붙입니다. 실패한 가장은 자신을 무능력자라 부르고, 취업에 좌절한 청년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합니다. 관계의 상처를 가진 이들은 인생 전체에 결함이 있다고 믿으며 움츠러듭니다.

소설 속 자베르가 장발장을 끝까지 추격했듯, 우리 내면에도 끊임없이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너는 실패했다. 너는 변하지 못한다.” 이 음성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귀한 형상을 잊고, 세상이 붙인 이름을 자신의 본질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이러한 세상의 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란 통행증'을 검사하여 천국 입장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가진 수치스러운 통행증을 예수님의 것으로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거룩한 신분증을 우리에게 맞교환해주신 사건입니다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내가 당신의 영혼을 샀소. 이제 당신은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이오"라고 말했듯,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의 존재를 사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며 철저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현실은 처참했고, 주변 국가들은 그들을 향해 "버림받은 여자(아주바)", "황무지 같은 인생(솨마마)"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그 이름이 자신들의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폐허 한복판에서, 그들의 이름을 먼저 바꾸십니다. "너는 더 이상 버림받은 자가 아니다. 너는 '헵시바(나의 기쁨)'이며, 너는 '쁄라(나와 결혼한 자)'."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창조주의 주권적인 선포이자, 새로운 창조입니다. 세상은 '행위(Doing)'를 보고 이름을 붙이지만, 하나님은 '존재(Being)'를 보시고 이름을 부르십니다.

지금 어떤 실패의 자리에 있든, 세상이 어떤 꼬리표를 붙였든, 하나님의 눈에 우리는 예수님의 목숨과 바꿀 만큼 존귀한 '기쁨의 대상'입니다. 장발장이 평생 은촛대를 간직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듯,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새 이름'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평가가, 혹은 우리의 무너진 자존감이 우리를 '24601'로 부르려 할 때마다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아니다. 그것은 나의 옛 이름이다. 나의 진짜 이름은 하나님의 기쁨(헵시바)이다."

우리의 변화는 '착하게 살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왕자의 신분을 자각한 거지는 더 이상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이 확립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존귀한 자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옭아매던 낡은 이름표를 떼어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24601’이란 싸구려 이름은 이미 떼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이름입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이사야 624)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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