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원천
고대 그리스의 한 제자가 스승 에픽테토스를 찾아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선생님, 세상은 왜 이토록 저를 괴롭힐까요? 저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요?" 에픽테토스는 조용히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무가 휘청이고 있었습니다. "저 나무를 보게. 바람이 불 때 가지는 요란하게 흔들리지만, 뿌리는 미동도 없지 않은가. 자네의 불행은 세상이라는 바람 때문이 아니네. 자네가 생각의 뿌리를 어디에 두었는가, 그 깊이가 너무 얕은 탓이라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내 마음은 늘 흔들릴까? 영국의 사상가 제임스 앨런은 그의 저서 <위대한 생각의 힘>에서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생각은 삶의 씨앗이다." 우리가 겪는 가난, 실패, 고통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가 품어온 생각들이 자라나 맺은 '열매'라는 것입니다. 정원사가 엉겅퀴 씨앗을 심고 장미를 기대할 수 없듯, 분노와 불안을 심고 평안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이라는 정원에 씨앗을 공급하는 그 '원천'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현대인들은 보통 세 가지 늪에 빠지곤 합니다.
첫째, '상황'이라는 늪입니다. 경기가 좋으면 웃고, 주가가 떨어지면 웁니다. 환경을 생각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은 평생 세상의 눈치를 보며 '끌려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타인'이라는 감옥입니다. 요즘 우리는 내 생각보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남들의 '좋아요' 숫자, 타인의 평가가 내 기분을 결정합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쥐여준 셈입니다.
셋째, 가장 위험한 함정인 '나 자신'입니다. 현대 사회는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 "너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라고 속삭입니다. 겉보기엔 주체적이고 멋져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스스로를 충전할 수 없는 방전된 배터리와 같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스스로 무한한 확신이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면의 목소리만 파고들수록 우리는 고갈되고, 그 공허함을 채우려 자극적인 쾌락이나 인정 욕구 같은 '가짜 연료'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게다가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인생은 매 순간 피로한 선택의 연속이 됩니다. 망망대해에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라"는 말은 자유가 아니라 저주입니다. 기준이 수시로 변하는 항해는 결국 표류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결코 삶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불편해서입니다. 내 기분과 욕망대로 살고 싶은 '사적인 영역'에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는 불청객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쓴소리하는 진리 대신, 입맛에 맞는 위로만 건네는 데이터나 멘토를 찾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선장은 나'라는 선언은 결국 우리를 고립시킵니다. 통제 장치 없는 자유는 방종이 되고, 스스로 왕관을 쓴 자아는 끝내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동양의 맹자는 측은지심과 같은 선한 마음이 하늘(天)로부터 왔다고 했고, 공자는 하늘의 뜻(天命)을 따르는 삶을 최고로 쳤습니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알았습니다. 생각의 궁극적인 출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경은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줍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우리의 생각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종교적 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삶의 방식을 택하는 지혜입니다. 수도관이 거대한 수원지에 연결되어야 물이 마르지 않듯, 인간의 생각도 마르지 않는 진리의 원천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감정이 요동칠 때도,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도 삶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계공이 시계의 원리를 가장 잘 알듯, 창조주는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고장 나지 않고 가장 풍성하게 기능하는지 아십니다.
하나님을 생각의 원천으로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선택의 피로'와 '상대주의의 혼란'에서 해방됩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일시적이고 영원한지 구분할 수 있는 선명한 렌즈를 갖게 됩니다. 삶의 주도권은 그때야 비로소 회복됩니다. 생각은 지금 어디서 흘러나오고 있습니까? 고갈되어 가는 내면입니까,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입니까, 남들의 시선입니까, 변덕스러운 세상의 유행입니까, 아니면 영원불변한 진리의 말씀입니까?
샘이 흐리면 물도 흐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샘이 맑으면, 아무리 흙탕물 같은 세상 한가운데 있어도 삶은 맑게 흘러갈 것입니다. 오늘, 생각의 주파수를 세상이 아닌 그분께 맞춰보십시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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