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원천: '근육'인가 '연결'인가
수심 8,000m의 심해, 에베레스트산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그곳의 수압은 가히 파괴적입니다. 1㎠당 800kg, 즉 엄지손가락 위에 황소 한 마리가 올라타 있는 것과 맞먹는 압력입니다. 인간이 만든 강철 잠수함조차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지기 일쑤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살점을 가진 심해어들이 유유히 헤엄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비밀은 '단단함'이 아닌 '투명한 연결'에 있습니다. 심해어의 몸 안은 외부의 수압과 동일한 압력의 액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과 밖이 빈틈없이 연결되어 흐를 때, 심해어는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바다를 '무게'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누리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건 세상의 무게가 아니라, 내면의 동력이 외부의 압력과 단절되었을 때 발생하는 '진공 상태'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사는 나라는 주변 세계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 앨리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풍경이 바뀌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을 '붉은 여왕 효과'라고 말합니다. 10년 전에는 토익 점수만으로도 취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인턴, 자격증, 대외활동을 다 갖춰도 서류 통과가 어렵습니다. 모두가 '두 배로' 뛰고 있기 때문에, 나의 노력은 단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변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조차 전력을 다해 달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은 경고합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자아 고갈'의 한계를 지닌 유한한 배터리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번아웃을 겪는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심해어처럼 내면을 채워줄 근원적인 에너지가 고갈된 채, 오로지 자신의 '강철 같은 의지'로만 외부의 수압을 버티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원리를 이미 간파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이사야 40:30). 가장 혈기 왕성한 생물학적 에너지조차 외부의 압력 앞에서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가 제시한 유일한 대안은 '앙망(仰望)'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40:31) 여기서 '앙망하다'는 히브리어 '카바(Qavah)'는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원형은 '줄을 꼬아 하나로 만들다'는 뜻입니다. 약한 실 가닥들이 하나로 꼬여 끊어지지 않는 밧줄이 되듯, 나의 연약한 일상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줄에 동여매는 '결속'을 의미합니다. 내가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 내 삶의 빈 공간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여 안팎의 압력을 맞추는 '영적 평형'의 상태입니다.
이 연결의 결과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으로 나타납니다. 독수리의 비상은 처절한 날개짓의 결과가 아닙니다. 독수리는 보이지 않는 '상승기류'를 포착하는 명수입니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때까지 벼랑 끝에서 기다리다, 기류가 형성되면 날개를 활짝 펴고 그 거대한 에너지에 몸을 싣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내는 지혜입니다. 내 힘으로 인생의 폭풍을 거스르려 파닥거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이라는 기류에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 기류를 감지하는 안테나이며, 말씀 묵상은 내 영혼의 날개를 펴는 준비 작업입니다. 우리는 '붉은 여왕 효과'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유지하기 위해서조차 전력 질주해야 하는 이 가혹한 런닝머신 위에서, 인간의 의지력은 너무나 쉽게 고갈됩니다. 이제는 '더 빨리 달리기'를 멈추고, 나를 이 경주에서 끌어올려 줄 '상승기류'에 몸을 맡겨야 할 때입니다. 내 의지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자아 고갈'의 진단이라면, 그 한계를 넘어선 에너지를 공급받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바로 영적인 해결책입니다. 독수리가 자기 근육의 힘(유한한 자원)이 아니라 상승기류(외부의 무한한 동력)를 이용해 비상하듯, 우리도 나의 고갈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할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내가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분과의 '카바(결속)'가 시작될 때, 우리는 비로소 달려가도 비틀거리지 않고 걸어가도 지치지 않는 심해어의 평온과 독수리의 기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치는 이유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더 빨리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카바'의 원리는 이 무한한 수평적 경주를 멈추고, 수직적 차원으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1.4.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