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형통(4) 형통의 목적(창세기50:19-2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485 추천수:4 220.120.123.244
2022-01-23 14:24:16

형통(4) 형통의 목적

창세기50:19-21

 

우리는 새해 첫 예배를 “형통케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첫주부터 “형통”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주일에 여호수아에게 형통하고 형통케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통해 “형통을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형통을 누리려면 첫째 형통을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둘째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셋째 그 약속대로 현장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주일에는 “예고된 고난 가운데서도 형통하는 길”에 대하여 바울의 삶을 통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형통한 삶을 살려면 첫째 예측된 고난 앞에 무릎꿇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둘째, 고난이라는 장애물보다 사명에 집중하고 셋째, 내 뜻이나 네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 번째로 신앙인에게 형통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형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받았습니다. 첫째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형통한 삶을 살려면 모든 일에 시작부터 하나님께 물어보며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형통한 삶을 살려면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형통한 삶을 살려면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해 행하여야 합니다.

 

오늘은 형통 네 번째 설교로 “형통의 목적”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고, 우리를 범사에 잘 되게 하시고, 우리를 부자로 살게 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고난을 극복하게 하시고, 환란을 견디게 하시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하시고, 사업에 성공하게 하시고, 원하는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범사에 이루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아픔, 실망, 배신, 억울함, 절망, 가난, 슬픔을 이기고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110세까지 한평생 형통한 삶을 산 요셉을 통해 형통의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셉은 참으로 형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창세기 39장에서 강조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를 마감하면서 창세기 50장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70일 동안 애곡하며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형들을 용서해주고, 돌아가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형통한 삶을 살았는가는 22, 23절 말씀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80년을 총리로 있으면서 요셉은 자식을 낳고 손자와 증손자, 고손자 보았고, 그들을 자기 슬하에서 양육하였습니다. 이렇게 요셉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1.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요셉이 자신의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마친 후 하신 말씀입니다. 과거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형들이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시 애굽의 제 2인자인 동생 요셉이 복수할 것 같으니까 동생에게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애걸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형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케 해 주어 막강한 권력과 부를 주었는데 그것으로 형들을 복수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유추해서 해석하면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형들을 보복하는 데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권세를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자신에게 권력을 준 것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심판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형통하여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고, 권력을 잡고, 출세하면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전능한 지배권을 확대하며 그것을 주신 분도 몰라보고 교만하여 남용하고 오용합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형통의 복이 누구에게서 왔다고 말씀합니까?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자신의 권력이나 부는 다 하나님께서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형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해를 끼치는 형들의 꾸민 악한 계획까지 선으로 바꾸어 주어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11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요셉은 17살에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 위해 구덩이에 집어 던졌습니다.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에 인신매매를 해 버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에게 이런 꼴을 당하면 형들에 대한 원한은 가슴 깊이 사무쳤을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까 형들에게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습니다. 형들도 그런 인간의 심리를 알기 때문에 요셉 앞에 엎드려 허물과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17) 그 때 요셉은 분명하게 자신을 형통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간증합니다. 아주 간단한 말이지만 그 말 속에는 자신의 과거 인생이 다 담겨 있습니다. 자기가 노예로 팔려가고, 종살이를 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높은 지위에 오르고, 성공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적 은총이었다는 것입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형님들은 나를 낮은 자리로 내려뜨렸으나, 하나님은 나를 높은 자리로 올려주셨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시기하여 죽이려 했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나를 살려 주었습니다.“ “제가 자수성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나를 이곳으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법사에 형통한 것 즉 살아난 것도, 출세한 것도, 권력을 잡은 것도, 가뭄을 대비한 것도, 유혹을 이긴 것도 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악을 선으로 바꾸었습니까?

39장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계속 강조하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였다는 말씀입니다(2,3,21,23).

신약 성경에서도 요셉의 삶을 요약하여 설명하면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행 7:9-10)"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니까 가정총무가 되어 형통하게 했습니다. 범사에(모든 일에) 형통하게 되었습니다.(3, 23) 장소에 관계없이 형통하게 하였습니다. 이국 땅입니다. 자기 나라가 아닙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형통하게 됩니다. 노예의 신분입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종이 되어도 형통하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악을 오히려 선으로 바꾸어 형통하게 하였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유혹합니다. 요셉의 외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습니다. 중년 부인이 바람이 났습니다. 그래서 눈짓을 합니다.(7) 눈짓해도 못본채 하니까 주인만 없으면 날마다 청합니다.(10) 바람도 단단히 났습니다. 그래도 거절하니까? 12절에 옷을 잡고 늘어집니다. 그래도 요셉은 옷을 뿌리치고 도망하였습니다. 요셉은 붉은 피가 끓는 20대 젊은이었습니다. 이 유혹을 물릴 칠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주인이 무서워서입니까? 감옥에 갈까바서입니까? 9절 보십시오. 하나님입니다. 그 유혹을 이기고 형통한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여서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 때 나이 27살입니다. 하나님이 그 과정을 통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최고 권력층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고 결국 30살에 공무원으로 일하게 만든 것입니다. 왕의 측근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인간의 어떤 악한 계획일지라도 선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형들의 악한 계획도, 보디발의 아내의 악한 계획도 결국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통이 하나님이 함께 하여 되었다는 사실을 당시 사람들도 다 알았습니다.

창39:3절을 다시 보십시오. 형통하는 역사를 자신만 체험한 것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가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3).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39: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감옥에 들어가도 형통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됩니다. 온 국민이 요셉과 하나님이 함께 하여 형통하게 하시는 것을 목격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집이, 감옥에 들어가면 감옥이, 나라에서 일을 맡으면 나라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올 한해 이런 형통의 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요셉은 적어도 4가지의 직업을 가졌습니다. 4번 직장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목동으로, 가정 총무로, 감옥의 맡은 자로, 나라의 총리로 그런데 가는 곳곳 마다에서 하는 일마다에서 형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여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악을 선으로 만들어 형통하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여 형통케 하는 것을 보게하기 위해서입니다. 직장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직종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자리에 갈 수도 있습니다.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여 그 어느 곳에서든지 형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자신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건강의 환란, 재정적인 환란, 인간 관계의 환란, 신앙의 환란, 직장의 환란 등을 이기고 범사에 형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유함으로 형통하면 우리의 부유함을 자랑하기 위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부유함을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권력을 잡는 것은 우리의 권력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권세의 위대함을 자랑하기 위하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이 많으면 우리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식의 광대함을 자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형통할 때 형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형통케 해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형통의 목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는데 있습니다. 권력의 사유화나 권력의 공유화를 넘어 권력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야할 우리는 주신 형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우리에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21”

 

2.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살려주어 형통케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0절에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만민(암 라브)’는 많은 사람입니다. 요셉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민은 당시 가뭄으로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어 7년 동안 대풍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잘 저장해 놓았다가 7년 동안 대 가뭄이 들었을 때 애굽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을 굶주려 주지 않게 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이렇게 먹는 음식으로 육신의 생명만 살리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45장 5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형제들을 위해 미리 선발대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45장 7절 8절을 보십시오. 애굽에 온 것이 형들이 인신매매해서 그 결과로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을 애굽에 보내어 형통케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형제들보다 먼저 보낸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유대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미리 보내어 이렇게 형통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형통을 민족 보존으로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형통이 이미 창세기 3장 15절의 메시아를 탄생시킬 하나님의 구속 언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13-1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

자신의 형통은 바로 구속사를 성취하는 하나님이 약속의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을 보존하여 메시아적 언약을 성취하는데 요셉의 형통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요셉의 형통은 구속사를 이루는 목적에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님과 아주 닮은 삶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요셉을 예수님의 모형으로 봅니다. 한 150가지가 예수님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창세기는 장례를 치루지 않고 입관만 하고 끝내 버리는데 요셉의 삶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누가 복음 24:27)” 주시면서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전체 주제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역사와 원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은 구속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주로 수록하고, 신약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해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메시야의 혈통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여자의 후손(3:15). 셋의 후손(4:25), 셈의 후손(9:16,27), 아브라함의 후손(12:3). 이삭의 후손(21:12), 야곱의 후손(25:23), 그리고 유다의 후손(49:10)으로 계속 그 범위를 구체적으로 좁혀가고 있습니다. 그 후손을 요셉을 통해 보존한 것입니다.

장차 구속주로 오실 예수의 성품과 사역은 구약 시대 여러 인물들과 사건 속에서도 예표로 드러냅니다. 아담은 창조 당시 죄가 없던 존재로 창조된 아담은 절대 순결한 상태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하였습니다. 요셉은 구속주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받았으나 형제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처럼 미움을 받는 곳에 가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처럼 30세에 공적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죽이려는 모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의복을 빼앗겼습니다. 예수님처럼 노예가 팔리던 가격에 팔렸습니다. 예수님처럼 죄의 유혹을 받았고 그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예수님처럼 거짓으로 고발당했습니다. 예수님처럼 두 명의 다른 죄인들과 함께 있었고, 그 중 하나는 구원을 받고 다른 하나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처럼 팔려 감으로 그들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고난 후에 높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백성들 그리고 타국의 사람들 즉 이방인들에게 양식을 제공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팔아 버린 즉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이미 창세기 45장에 나온 것처럼 처음 만날 때부터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울며 다 용서해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은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모형으로 구약에 기록되어 하나님의 용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저주하고 침을 뱉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를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형제라고 부르게 하시고(히2:11), 친구라고(요15:14)도 불러 주시며 용서의 능력과 은택을 주셨습니다. 요셉도 자신과는 신분이 전혀 다르지만, 형제들을 용서해 주시고 그렇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심판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형통케 해 주셨다고 분명하게 형통케하신 목적을 밝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대가없이 이스라엘인에게 식량을 주어 그들을 사망에서 구원하였던 것처럼 생명의 떡인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영적인 생명의 떡을 은혜로 주셨습니다(창세기 42:35; 요한복음 6:48~57). 하나님은 우리의 형통을 통해 사람을 살리길 원하십니다. 무엇보다 영혼을 살리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그것이고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이 땅에서 우리의 형통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지옥가는 인생을 천국 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형통해도 이 땅에 있는 것은 다 끝날 때가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이 최종적인 형통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자신의 형통을 통해 조카들을 기르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형통을 통해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같은 형의 아들들을 돌보겠다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손자까지 돌봅니다. 대상 7:14절을 보면 "므낫세의 아들들 그 처의 소생은 아스리엘이요 그 첩 아람 여인의 소생은 길르앗의 아비 마길이니(대상 7:14)"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방 여인 첩의 소생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신 결혼이라고 원수시하며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이방 여인 그것도 첩의 아들까지 자애롭게 돌보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80년 동안을 총리로 있으면서 그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지고 많은 백성에게 유익함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부가 크면 클수록, 권력이 크면 클수록, 지식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명예와 인기가 많으면 많은 수록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하나님은 형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형통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창39: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왜 요셉을 형통케 했습니까? 요셉의 형통을 통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케 할 때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라라고 형통케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 한사람이 잘되면 가정이 친척이 나라가 교회가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통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정이 살아납니다. 나라가 살아 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나중에 어떻게 합니까? 조카들까지 다 책임을 집니다. 성경에 보면 나사로 한 사람 때문에 믿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다윗 한 사람 축복의 통로가 되니까 골리앗 앞에 떨고 있던 백성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 때문에 노예로 사는 억압받는 민족이 출애굽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온 인류가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 때문에 유럽이 복음화됩니다. 나 한 사람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불통한 자,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형통하여야 합니다. 올 한해 우리가 형통함으로 우리 가정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고, 가정 경제가 회복되고, 자식이 잘되고, 가정에 평안이 깃들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살아 계신 능력을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나 하나 때문에 내가 다니는 직장이 복을 받고 내가 속한 나라가 지역사회가 교회가 복은 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5편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크게 축복하시려고 한 사람을 먼저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요셉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이런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여 고난, 아픔, 실망, 배신, 억울함, 절망, 가난, 슬픔이 가속화되는 비극의 내리막길에서 기쁨, 영광, 명예, 축복, 부요, 존영의 길로 형통케 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형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올 한해, 아니 인생 전체가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형통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목적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1.23.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