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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국에 갑시다(3) 천국의 상급(계 22: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806 추천수:6 220.120.123.244
2021-09-19 14:17:46

함께 천국에 갑시다(3) 천국의 상급

계 22:12

 

오래전에 어느 목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도하고 안수하여 환자들을 치료하는 신유집회를 많이 하시는 모 권사님께서 어느 날 환상 중에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에 가니까 아는 분들의 집이 많이 있더랍니다. 그런데 자신은 전국 교회를 돌아다니면 신유집회를 하며 많은 환자를 고쳐주었는데 천국에 자기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한국에 큰 교회를 이룬 유명한 목사님의 이름을 대면서 그 목사님의 집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 그런 사람 모른다”라고 말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그 권사님이 자신의 재산 수십억을 선교원에 바치고 그 유명한 목사님에게 자신이 환상 중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목사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더라고 말씀을 했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사회에 소외된 사람을 위해 큰 복지관을 건축하고 복지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의 집은 강아지 집같고, 누구의 집은 전원 주택같고, 누구의 집은 임대주택같을까요? 누구는 개털모자 쓰고, 누구는 황금 면류관 쓸까요? 오늘은 “천국에 함께 갑시다” 시리즈 설교 중 세 번째로 천국의 상급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에 대하여 2번에 걸쳐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에 천국의 실재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천국은 진짜 있는가라는 주제로 천국은 분명히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시행되는 곳이 천국인데 이 천국은 이미 내 마음 안에 임한, 믿는 사람의 가정과 교회, 사회에 임한 천국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어서 갈 천국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천국가는 길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천국가는 길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 길은 구약에 예언된 그 길이며,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세 번째는 천국에 상급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있다면 동등상급인가 차등상급일까입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무엇일까입니다. 어느 유명한 권사님이 환상 가운데 본 천국처럼 그런 상급일까요?

 

1. 천국에 상급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천국에 상급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합니다. 속히 이 땅에 오신다고 말씀하면서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내”는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예수님 상급을 주시기 위해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상급은 분명히 있습니다. 마 16:27에 예수님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하게 천국에는 상급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도전하는 반 기독교 세력들이 교회 안팎을 포진하고 천국 상급에 대한 말씀을 부정합니다. 인본주의, 유물주의, 포스터모더니즘, 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 등이 기독교의 절대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에서 부르짖은 성경의 절대 권위는 과학과 이성의 심판 아래 빛을 잃게 되고 고등 비평가들은 성경을 갈래갈래 해부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 종교학의 연구가 성경 연구에 도입되고 역사 비판학이 성경의 진위성을 가리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과학과 합리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내세 천국도 상급도 없다고 부정합니다. 천국 상급을 말하면 무식하고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합니다. 내세 천국은 관심이 없고 현세만 관심이 있습니다. 현세의 인간 가치만 강조하는 인본주의 도덕주의 기독교가 기독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는데 지상 천국만 생각하고 죽은 후에 가는 하늘 천국은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기도 바쁜데 뭐 그렇게 천국과 천국 상급에 대하여 관심을 갖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사는 세상도 천국처럼 좋은데 뭐 막연한 천국에 대하여 고민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산상수훈에서 8복을 말씀하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 5:12)고 말씀하시며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영원히 살 영원한 천국 상급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도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히11:26)라고 말씀합니다. 바울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나는 푯대를 향해서 좇아가노라”(빌3:14)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상급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선지자를 영접한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영접한 자는 의인의 상을 받고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들도 역시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10: 41-42)”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2. 우리가 천국에 가서 받은 상급이 똑 같을까요 다를까요?

천국의 상급이 있다면 천국에서 받는 상급이 동등 상급일까요? 차등 상급일까요?

자유주의 영향을 받은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차등상급을 부정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상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분은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상을 주시는 것은 구원이니까 모두에게 같은 동등한 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뒤를 보면 구원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른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상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상급을 받는 사람은 각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가 행한 대로입니다. 그러면 결국 천국의 상은 차등이 있다는 말입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받는 상은 각기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천국에서 차등상급이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차등 상급이 있어 1등부터 줄 세우기를 하면 그것이 어떻게 천국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실력으로 줄세우기를 당하고, 돈으로 줄세우기를 당하고, 권력과 명예로, 미모로 끝없이 줄세우기를 당하며 살다가 천국 갔는데 천국에 가서도 1등부터 줄세움을 당하면 그것은 이 땅과 같은 지옥이지 어떻게 천국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흑수저, 금수저, 은수저, 나무 수저라고 차별대우를 받는데 천국에 가서까지 차별대우가 있다면 그게 어찌 천국이겠냐는 것입니다.

 

첫째 비윤리적이라는 입장에서 차별 상급을 부정합니다.

천국에서 상급이나 보상을 바라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선행은 행복이라는 목적과 관계 없이 단순한 의무감에서 행위를 해야 윤리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선을 베푸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사람에게 칭찬을 듣거나 보상을 바라고 선을 베푸는 것은 비열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선을 또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상급 교훈도 도덕화하여 상급의 차이성을 부인합니다. 단순하게 예수님이 상급을 말하는 것은 교육수준이 낮은 유대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으로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실재 상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격려와 열심을 내게 하기 위해 인간적인 언어로 교훈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차등 상급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평, 하나님의 주권의 속성에 위배된다고 부정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차등하여 상급을 주겠냐는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영원히 사는 천국에서 차등하여 어떤 사람에게 개털 모자를 씌워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금면류관을 씌워주겠냐는 것입니다.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어떻게 불공평하게 은혜를 베풀어 차등하여 상급을 주시겠냐는 것입니다. 보상은 인간의 공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속한 은혜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에 차등상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상급은 차등 상급이 아니라 천국 자체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마5:3,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말씀한 것처럼 상급은 천국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이 말씀한 상급은 구원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록11:18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라고 말씀하는데 그것은 구원을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6-7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바로 영생이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③ 성경에서 말하는 상급은 하나님 자신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하셨듯이 하나님 자신이 바로 천국의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차별 상급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에게나 천국과 구원, 하나님이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차별 상급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차등 상급은 없고 동등 상급만 있다는 것입니다. 차등 상급을 말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과 같은 공로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천국에 등급을 매기는 차등상급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셋째는 성경에 나오는 일부 구절을 들어 성경이 말하는 상급은 차등 상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태복음 20장 1-16에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아침 9시에 온 사람이나 12시에 온 사람이나 오후 3시에 온 사람이나 다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약속된 상급은 바로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며 차등 상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차등상급을 말하는 말씀은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온 자가 먼저 와서 더 많이 일했으니 더 많은 몫을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세속적 '성과주의' '업적주의' '공로주의' 사상이라고 비난합니다. 이는 능력과 업적에 따라 차별된 대우를 해달라는 인본주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주권(뜻)에 의해 똑같이 동등한 몫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주시는 상급들도 다 동등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이기는 자들에게 ‘생명나무의 과실’, ‘생명의 면류관’,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함’, ‘감추인 만나’, ‘흰 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새벽별’, ‘흰옷’,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아니함’,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함’,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함, ‘주의 보좌에 앉게 함’ 등의 상급을 약속하고 있는데 그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하였으므로 '상급은 곧 영생권'이며 신자는 다 '동일상급'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영생은 천국에 간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받는 것이므로 신자가 상급을 받기는 받는 데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이므로 차등 상급이 아니고 동등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차등 상급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갚아 주는 차등상급이 있습니다. 바울도 딤후4장 8절에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천국에 가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가서 동일한 상급을 받습니다. 물론 동등한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 어마어마한 상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 구원, 영생 믿는자에게 주시는 동일한 어마어마한 상급입니다. 구원은 행위와 상관없이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은 구원과 구분하여 구원받은 성도가 천국에서 누리는 신자의 선행에 따른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구원은 것은 인간의 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전적 하나님의 주권역사이지만 상급은 구원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행위에 대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처럼 상급도 오직 믿음으로 되어집니다. 상급에서의 ‘오직 믿음’은 자기 의를 이루는 율법적인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믿음의 행위가 수반됩니다. 상급의 공로는 신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이루어주신 칭의 된 신자가 말씀을 순종함으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이면 누구나 다 의롭다함을 받는 의의 면류관을 다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은 의의 면류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급이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차등 상급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천국에 차등 상급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복음서에서도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마태복음 18장 1-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차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한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이기 때문에

첫째, 상급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상급이 똑같으면 상급이 아닙니다. 상급이라는 말 자체에 차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1-27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므나 비유가 나옵니다. 각기 한 므나를 맡았는데 한 사람은 열 므나 남기나 한 사람은 다섯 므나 남기고 한 사람은 한 므나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7-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분명하게 차등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을 계속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어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인간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신인동성동형적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무시지도 않고, 하나님의 오른 팔로 등과 같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열고을 다섯 고을이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지만 서열의 상급은 아니라 상급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상급의 심판도 하십니다. 십자가 상에서 구원을 받은 강도처럼 평생 강도짓을 하다 천국 간 사람과 바울처럼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천국에 가서 동일하다면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계2:23). 계시록은 전체가 심판을 주제로 하는데 심판 자체가 상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차등이 없다면 오히려 불공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분명하게 마태복음 16장 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9-10)”라고 분명하게 차등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믿는 사람들은 천당가느냐 지옥가느냐 심판은 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에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러나 상급의 심판은 받습니다. 선악 간에 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리스도인으로 악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지옥을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급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0-15에에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건물을 짓는 것으로 우리 인생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어떤 사람은 나무로 어떤 사람은 풀로 어떤 사람은 짚으로 짓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이 난 것입니다. 그 불이 지나갈 때 자기의 공력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남아 있지 않는 사람은 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잃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구원 가운데는 불 가운데서 건짐받는 것과 같은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영생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지고 이것은 신자는 누구나 다 차등없이 동일하게 받습니다. 상급은 여기에 추가적인 선물로 믿음의 행위에 대한 은혜로운 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차등 상급의 내용은 세속적이고 물질 것인 것이 아닙니다.

상급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 할 수 없지만 성경에 나타난 상급은 하늘의 보물와 하늘의 유업하나님의 칭찬 등과 같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또 많은 것으로 맡겨주심과 천국잔치에 동참하는 즐거움, 천국을 다스리는 권세 및 영광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0:40-42에 선지자의 상, 의인의 상, 제자의 상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람도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약1:12), 의의 면류관(딤후4:8), 영광의 면류관(벧전5:4) 썩지 아니할 면류관(고전9:25), 기쁨과 자랑이 면류관(살전2:19) 등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셋째, 차등 상급의 원리는 대응성의 원리, 은혜성의 원리, 경건성의 원리로 주어집니다.

① 대응성(equivalence)의 원리는 성도의 충성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상급을 분배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대응하여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신다는 것을 대응성의 원리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처럼 주님이 충성한 성도에게 칭찬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하신 다음에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고 하시면서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사역을 상급으로 맡겨주셨습니다(마25: 21,23) 누가복음 16장의 청지기 비유에서도 작은 것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을 맡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8)”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라고 했습니다.

② 은혜성(gratuity)의 원리는 충성한 것은 지극히 적은 것인데 주시는 상급은 충성에 비교할 수 없는 큰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받는 적은 고난은 장차 주님이 주시는 지극히 큰 상급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전 15장 42-44절에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상급의 은혜성은 공로 사상을 배제합니다. 신자의 선행에 대하여 하나님이 천국의 상급으로 보상한다고 하여 인간의 행위에 공로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하니까 인간의 선행에 대하여 무슨 공로가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성화와 선행이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선행들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전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에게서 나옵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주께서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상급받을 선한 사역을 죽을 때까지 감당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15:10). 그는 또 “내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하였습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의 완전한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볼 때 여전히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코 어떤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에는 온전치 못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 안에서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게 행한 것이면 받으시고 갚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③ 경건의 원리는 어떤 선행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만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의 은혜의 상급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 악간에 심판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서는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선행이 아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선행은 결코 상급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사람의 칭찬을 갈망하는 동기를 가지고 의를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급도 내리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고 날마다 기도하며 헌신을 많이 하였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하려 할 때 벌써 그 사람은 자기의 상을 받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경건의 목적이 아닌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하는 일은 결단코 상급을 얻지 못합니다.

 

4. 우리가 상급을 받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순종의 정도와 질에 따라 상을 받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0-12)” 상급은 인간의 행위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 27절에서도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 2:6)”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신약에서만 행한대로 상급준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대하15:7)”

 

첫째 일과의 관계에서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를 영접한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영접한 자는 의인의 상을 받고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들도 역시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10: 41-42).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 7)”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습니다.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못하느니라(마 6:19-20)”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 23 –24)”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눅 16:10)”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충성한 결과에 따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주님께서 “잘 했다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합니다. 일에 있어 충성을 다함으로 현세 천국에서도 상급을 받고 내세 천국에서도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믿음으로 힘쓰는 것입니다.

상보다 상주시는 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상보다 상주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상보다 가장 큰 상급은 우리 하나님입니다. 믿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믿고 가는데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식도 주신다고 했지만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식같은 롯도 떠나고 롯을 구출하기 위해 318명의 군대를 거르니고 롯을 구했지만 언제 그들에게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하나님이 메가톤급 상급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나님을 믿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에서 먼저 은밀한 중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천국 상급>이라는 책을 쓰신 권성수 목사님께서 그 책에서 자신의 간증을 하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결혼하고 6년 반 동안 자식이 없었답니다. 아이 낳기를 갈망했으나 없었답니다. 좋다는 병원 여러 곳을 가보고 약도 많이 써봤답니다. 그래도 해결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를 했답니다. 상급 주시는 하나님은 6년 반 동안 입을 다무시고 계셨답니다. 자식이 없이 지내는 동안에 이런저런 갈등을 겪어야 했답니다. 목사 부적격자라고 생각했답니다. 갈등이 너무 심해서 자동차를 타고 갈 때 엑셀러레이터에 발을 얹고 “하나님 아버지, 한번만 입을 떼시면 되시는데 왜 입을 안떼십니까?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눌러대기도 하였답니다. 실험관 아이도 가져볼 생각도 하고 입양도 생각했답니다. 의사에게 진단해보니 결혼한 부부 열 부부 중 한 부부는 아이를 못낳고 아이를 못낳는 열부부 중 한 부부는 이유를 모르는데, 바로 목사님은 일백 가정 중 한가정에 속하는 케이스였답니다. 아내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와르르 무너지는 건물처럼 무너져 주저앉아 통곡을 했답니다. 그 때 목사님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그런 대답을 여러해 동안 기다려왔습니다. 당신네 의사들이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못한다고 했으니 이젠 저분(하늘을 가리키며)이 일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믿는 저분(하나님)께서 반드시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선언하고 병원을 나왔답니다. 사모를 위로하고 이제 전폭적으로 100% 하나님께만 매달리자고 100일 특별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아무 응답이 없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양자를 둘려고 했는데 아이가 자라면 갈등이 심해질 것같아 양자 둘 것을 포기하고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소식이 왔답니다. 하나님이 응답의 상급을 주셨답니다. 그래서 두 딸을 낳고 다음에 또 딸을 선물로 받았답니다. 이 땅에서 기도를 통해 이 땅 천국의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도 낙심하지 말고 이 땅 천국의 상급도 받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내세 천국의 상급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삶은 천국의 상급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 1).

 

셋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 6: 35)” 원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큰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방언을 한다하여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사랑해야 현세 가정 천국의 상급도 누리고, 교회도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천국에서도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핍박도 당하고, 조롱도 당하고, 억욱함도 당하고, 오해도 받고, 불이익도 당합니다. 그럴 때 이 땅 천국이나 내세 천국에서 상급받는 기회로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고 고난을 받으면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 12)”

 

천국의 상급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땅 천국의 상급도, 내세 천국의 상급도 분명히 있습니다. 천국상급은 동동상급도 있지만 차등상급도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영원히 살 영원한 현세 천국과 내세 천국 상급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잘 살다 보니까 천국 상급을 잃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 천국 상급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1-14)”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도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라고 말씀합니다. 바울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나는 푯대를 향해서 좇아가노라”(빌3:14)라고 했습니다.

오늘 날과 같이 과학이 발달되어 로버트와 AI가 인간을 대신하며 잘 사는 세상에서 천국이 있고 천국의 상급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죽어서 가는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천국 상급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이 땅이 천국같아도 가짜천국입니다. 언젠가는 진짜 천국에 갈 것입니다. 무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신문에서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절대 믿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 높은 곳에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이 흑으로 된 몸을 벗어나서 사망이 접하지 못하고 더럽히지 못하는 신령한 몸을 입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거기 살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9)”

예수님은 분명하게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이 말씀을 믿습니까? 이 땅에서도 상급을 받고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은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아멘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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