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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국에 갑시다(1) 천국의 실재(요한복음14: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091 추천수:9 220.120.123.244
2021-09-05 17:08:31

함께 천국에 갑시다(1) 천국의 실재

요한복음14:1-3

 

오늘부터 제가 “함께 천국에 갑시다”라는 시리즈 설교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제목이 “천국의 실재”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천국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까? 천국이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실제로는 천국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믿고 살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 성도님이 죽음 앞에 있다면 죽은 후에 천국 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지옥에 가고 싶습니까? 답은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신앙 서적 유명한 ‘팡세’를 남겼습니다. ‘팡세’를 통해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비참과 하나님이 있는 인간의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이 중병에 걸려 요양하던 중,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풀어보고자 시도한 “도박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를 4가지 경우의 수로 정리하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었는데 실제로 죽은 후에 가보니까 하나님이 존재하는 경우입니다. 천국으로 말하면 죽어 천국에 간다고 믿고 살았는데 죽어 보니 진짜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천국을 소유합니다. 모든 것을 얻게 되는 최상의 경우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천국을 믿었는데 죽어 보니 천국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죽음으로 끝나버린 것입니다. 화장되어 산화되고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런 경우 파스칼은 약간의 손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양심적으로 살고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세속적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시간적 금전적 손해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었는데 하나님이 실제 존재한 경우입니다. 천국을 믿지 않고 살았는데 죽어 보니 진짜 천국과 지옥이 있어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최악의 경우라고 말합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었는데 하나님이 실제 존재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천국을 믿지 않고 이 땅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죽어 보니까 실재 천국도 지옥도 없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이익도 손해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파스칼은 팡세에서 하나님을 믿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있다는 쪽에 내기를 걸어라. 이긴다면 무한한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진다 해도 잃을 게 없지 않은가. 주저하지 말고 믿기를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천국에 대하여서도 같은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사후(死後)에 신자는 천국이 있으면 다행이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비신자는 지옥이 없으면 다행이고 있으면 큰 낭패이므로 신자는 밑져야 본전이고, 비신자는 밑지는 장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신자가 더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하여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불안은 죄로부터, 상실로부터, 미래에 대한 불확실로 오는데 믿는 우리는 은혜로 속죄받아 죄로부터 해방되고, 상실과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죽음은 잠자는 것이고 천국의 문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영혼이 돌아갈 천국이 있는 사람은 근심과 불안에 쌓이지 않습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 근심을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기 때문에 순교자들은 사자의 입에 들어갈 때나 화형과 참수형을 당할 때도 기뻐 찬송했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천국에서 영원한 의(義)의 면류관, 영광과 승리의 월계관을 쓰기 위한 전주곡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에 안겨있다는 감격과 환희로 인해 이 땅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전염병, 사고, 생존경쟁에 힘들어하고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과 자살이 만연한 이 시대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하나님이 없고 천국이 없는 세계는 필라멘트가 끊긴 전구처럼 공허해져 버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은 “우리 함께 천국으로 가자”고 부드러운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파스칼과 천국에 대하여 내기를 건다면 어디에 걸겠습니까? “있다”에 걸겠습니까? “없다”에 걸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인 “있다”에 걸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있다”에 걸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천국에 가자”는 손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있습니다. 우주는 과학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말한 스티븐 호킹은 “천국과 내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뇌는 부품이 고장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와 같은 것이며, 고장난 컴퓨터에 천국이나 내세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은 없다. 천국도 지옥도 없다. 이 세상으로 끝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라는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인간은 죽음으로 끝날까요? 내세는 없을까요? 지옥과 천국은 사람이 지어낸 동화에 불과할까요?

천국이 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는 박 집사님이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가면서 택시 기사에게 천국 복음을 전했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니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답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아직 천국에 관심이 없다며 “교회는 없는 천국을 만들어 천국 장사를 한다”고 비판했답니다. 천국이 없다고 하는 기사를 설득하며 회사에 도착한 박집사는 택시에서 내리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답니다. “그래요. 나는 천국에 갈 거니까, 당신은 지옥에나 가세요!” 택시 운전사는 “지옥에나 가라”는 말에 잔뜩 화가 나서 운전석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박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답니다. “이런 기가 막혀서야. 세상에 저런 나쁜 사람을 봤나!”라고 말하며 분노하였답니다. 아무리 사후 세계를 부정하며 천국도 지옥도 없으니 현재를 즐기라고 하는 사람도 지옥 가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동물이나 식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서 1:19-20)” 사람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상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할 뿐입니다. 자기 우상, 물질 우상, 쾌락 우상, 권력 우상, 명예 우상, 자식 우상, 인간 우상 등 저마다 각종 우상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신의식, 신에 대한 인식, 또는 종교의 씨앗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어느 종교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이것을 보며 말하기를 천국과 지옥은 유한한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합니다.

 

신앙인 가운데서도 천국을 과학 이전에 미신적 사고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간적 천국은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한 거처가 집이나 방과 같은 물리적, 지리적 장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흐려 놓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계시록의 내용을 비유로 풀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년간 북아프리카에서 사역한 미국 남 침례교회 선교사인 라이트(David F. Wright) 박사는 초기의 북아프리카 교회의 상황을 연구하고 교회가 소멸한 원인에 대해 연구하였답니다. 그가 내린 교회 소멸의 진정한 이유는 외적인 박해보다도 기독교인들 사이에 완전한 영적인 파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오늘날 개혁교회의 신학의 전통을 이어온 서구 교회가 쇠퇴한 이유 역시 서구 유럽 사회에 만연해져 온 물질주의, 세속주의, 그리고 휴머니즘이 교회에 스며들어 많은 기독교인의 영적 생활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말씀을 액면 그래도 전하기보다 세상을 향한 문화적 서비스로 사명을 바꾸고, 성경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이데올로기적인 유토피아와 무신론적인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으로 ‘거짓 희망’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있다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류권에 있느냐, 성층권에 있느냐, 중간권에 있느냐, 열권에 있느냐, 외기권에 있느냐? 그 밖의 층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달나라까지 가보고 화성까지 가 보았지만 천국은 없다는 것입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우주를 탐색해 보았지만 천국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은하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미미한 별에 불과합니다.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약 1천 7백억개 이상의 은하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증명된 과학을 무조건 부정하지 말아야 하지만 과학주의 신앙인이 되어 과학을 기본 신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과학주의 신앙으로 흐르는 것은 하나님보다 과학을 더 믿는 우상에 불과합니다.

 

우주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명백하게 천국이 실재하는 세계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천국이 실존하는 세계임을 성경은 명백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늘 꼴찌를 하는 학생이 아버지에게 올해는 반에서 1등을 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약속대로 1등을 하였습니다. 그 아들이 다음 해에는 학년에서 1등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학년 1등을 하였습니다. 또 아들인 전국에서 1등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전국 1등을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들이 하겠다고 약속하면 믿습니다. 그 약속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꼭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한 약속을 구약을 통해 많이 해주었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누구에게 태어나고, 어떤 고난을 받고, 이름을 무엇이고, 어떻게 죽고, 왜 죽고 등 여러 약속을 해주었는데 예수님에게서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약속대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직접 체험하신 예수님이 천국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죽으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세의 삶이 있고 그 내세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부자는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는데 죽어 보니 지옥에 간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부탁합니다.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천국과 지옥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가서 알려 주어도 하나님을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체험한(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습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임사체험한 사람들이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극도의 상황에서 호르몬에 의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동안 1300여 명의 임사체험자를 조사한 미국의 종양학 전문의 제프리 롱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 그 후>에서 임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식이 몸 밖으로 나오는 유체이탈 체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인생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아갔답니다.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박사는 원래는 철학과 교수였다가 의과대학에 다시 들어가 의사가 된 분인데 임사체험을 한 163명의 사례를 모아 <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과거의 어두웠던 삶을 청산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였다고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임사체험을 물리주의자들은 "생물학적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육체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엔도르핀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이 때문에 희열의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것" 또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시신경이 특별한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서 터널과 눈부신 빛을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심정지(心停止) 상태에서 임사체험을 경험한 미국의 외과의사 메리 닐(Mary C. Neal)도 그런 사람이었지만 천국을 체험하고 <외과의사가 다녀온 천국(To Heaven and Back)>이라는 책을 써 천국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븐 알렉산더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분도 물질주의자였답니다. 뇌기능 매핑을 연구하신 분으로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서 교수와 의사로 근무한 분입니다. 그는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했고, 국제의학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의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입니다. 뇌 기능 매핑 연구를 한 그는 의식이나 자유의지 혹은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답니다. 지상에 있는 물질이 유일한 현실이고 나머지 모든 것들(생각, 의식, 관념, 감정, 영혼)은 그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인간으로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된 7일간의 '임사체험'을 한 후 영혼, 하나님, 사후세계 등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답니다.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라 '완전한 실제(Ultra-Real)'라고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뇌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사체험을 했다는 것은 임사체험이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나 망상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천국, 하나님,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한 후 하나님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란 다만 다른 상태로의 전이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천국과 지옥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

예수님은 가르침의 시작할 때 “때가 찼고 천국(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5 cf. 마4:17)”라고 천국을 말씀했습니다. 예수의 지상 사역을 “예수께서 …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9:35)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가르치심, 천국 복음 전파, 치유(고치심)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간 사역도 천국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인들이 너무나 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천국이 없다고 사탄은 메가폰을 들고 메스컴을 통해, 문화를 통해, 과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마저도 천국을 망각하고 살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학마저도 이 땅에 이루어야 하나님 나라를 강조함으로 죽어서 가는 천국을 무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이토록 무기력해진 이유는 그들이 내세에 대한 생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천국을 목표로 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게 될 테지만 세상을 목표로 하면 둘 다 잃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예수님이 그렇게도 천국,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조해서 말씀했지만, 제자들은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설교를 하시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자신들을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근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까지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하신 예수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시러 가신다는 것입니까?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원문을 직역하면 “나의 아버지의 집에 많은 거처들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장소를 준비하려고 가기 때문이다”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거처가 무엇이겠습니까? 거처란 말 그대로 거처할 곳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따로 거처를 마련하러 간다고 하신 것을 볼 때 이 거처는 이 땅의 처소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요한복음 18:36절에 보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거할 곳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나이’는 ‘머무름’, ‘거주지’, ‘거처’ 등을 뜻하는 ‘모네’의 여성 명사 복수 주격으로 ‘거처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네’ 는 ‘거주하다’,‘머무르다’를 뜻하는 동사 ‘메노’에서 파생된 낱말로서 ‘하늘에 있는 영원한 거처’를 의미합니다. 거처를 공동번역과 새 번역에는 “있을 곳”, KJV에서는 “mansions”, NIV는 “many rooms”로 번역했습니다. 주님이 예비한 거처 천국이 있습니다. 앞에 바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성경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2:16; 눅2:49). 하지만 여기서는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서 가시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주지로서의 하나님 나라나 천국을 지칭합니다. 하나님 나라나 천국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하시 말씀이 마태복음 3장 2절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가복음 1장 15절에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직접 쓰기를 싫어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버지 이름을 막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주로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천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말이 같다는 것을 마태복음 19장 23-24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같은 의미로 예수님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 나라라는 말이 113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72번 사용하십니다.

 

1. 이러한 단어들만 보면 우선 천국은 어떤 장소적 개념의 거할 곳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서 가야할 천국이 실재합니다. 하나님의 처소로 상징된 앞으로 가야할 미래적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처로서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는 거할 곳은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계 21:2). 그곳은 하나님의 장막이 있어서 하나님이 성도들과 함께 거하시며,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성도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교제와 풍성함이 있는 곳입니다(계 21:3,4).

예수님은 분명하게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릴 천국이 있음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할 곳이 많다는 말은 천국 생활의 풍성함을 말씀합니다. ‘예비하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토이마사이’ 는 ‘준비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헤토이마조’의 부정과거 부정사로서 목적을 나타냅니다.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임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마 25:34에서는 하늘 나라를 ‘창세로부터 믿는 자에게 예비된 나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믿는 자를 위해 창세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상속물,즉 예비된 장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야할 천국은 분명히 실재하는 천국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은 여러 형태의 장소와 개념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성경은 죽어서 가는 실재하는 천국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신앙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사탄은 갖가지 방법으로 이것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1) 우리가 죽어 가야할 낙원은 분명하게 실재하는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좌. 우에 함께 못박혔던 강도 중 한사람에게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에서의 낙원은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내 안에 영접하여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 자들이 죽었을 때에 육은 땅에 묻고 영혼이 가는 곳을 말합니다. 이곳을 우리는 또한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예수님이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낙원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3층천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린도 후서 12장 4절)"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요한계시록 2장 7절)" 라고 했습니다.

 

2) 우리가 미래에 갈 천년왕국도 분명 실재하는 천국입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장 1절~6절)

 

3)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질 새하늘과 새땅도 실재하는 천국입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를 직역하면 ‘그리고 만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장소를 준비하면,내가 다시 온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나 자신에게로 데려올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또한 있게 하려고’입니다. 예수님 이 제자들과 그들을 통해서 믿는 이들과 함께 있을 ‘거처’(토폰) 즉 장소를 확실히 준비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다시 와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승천하여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도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천국을 말합니다. 사도요한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 계시록 21장 1절~7절)

요한계시록 21장 22장을 보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즉 완벽한 에덴의 회복이 실현되는 새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미 이사야 65장17절~25절과 이사야 11장1절~9절 을 통해서보여준 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전한 부활체로서의 몸을 가지고 새롭게 완전한 소성함을 입은 만물과 조화된 물리적 삶을 살 것이며 이것은 상상도 비유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그 영원한 도성이며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히 11:14-16;13:14). 죽음도 고통도, 질병도, 갈등도, 염려도, 분노도, 우울증도, 코로나19도, 의심도, 태양도, 기후변화의 두려움도, 비교의식도, 열등의식도, 사단의 유혹도, 권력욕도, 죄도, 궁핍도 없는 영원한 천국이 실재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이 땅에서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을 행해 함께 동행할 수 있습니다.

 

2. 다가온 천국이 실재합니다. (현재적 천국, 이미 이루어진 천국)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여기서 ‘가까웠느니라’ 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의 시제는 현재 완료입니다(has come near). 이 구절에 따르면, 천국은 신자들이 죽은 이후에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이미 현재 가운데 들어와 있는 실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천국)의 현재적 차원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발견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여기서 ‘이미 임하였다’는 말씀도 역시 이미 일어난 사건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재적 차원의 하나님 나라(천국) 개념은 예수의 산상수훈 첫머리에 등장하는 ‘팔복’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5:3-10). 예수가 선언한 팔복은 ‘천국’이란 단어를 시작과 끝에서 반복하는 수미상관 구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1복(福)과 제8복(福)에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란 약속이 미래 시제가 아닌 현재 시제입니다. ‘천국’이 사후에 들어갈 유토피아적 공간이 아니라 이미 성도들이 소유한 실재(實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비유를 들 때도 ‘감추인 보화’ ‘진주의 비유’를 할 때 사용된 동사들은 현재내지는 완료 또는 과거 시제를 표지합니다. 이러한 시제의 동사들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하나님 나라)은 이미 도래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미 발견하여 모든 희생을 감수 하면서까지 소유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은 죽어야만 들어가는 사후세계가 아닌 ‘이미 도래하여 이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는 실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도래한 천국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구절도 하나님 나라(천국)가 ‘성도들 안에 이미 구현되어 있는 실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 이 천국을 실재하게 했습니까?

2절을 보시면 “내가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여 근심할 때 천국을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스스로 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미래적 현재라고 하는데 아직 이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확실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죽습니까? 너희를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거하게 될 자들을 위해 당신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들의 죄를 씻어 내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거하실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하나님 백성들을 완성해 내시겠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미 임한 현재적 천국 즉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천국도 실재하는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처소라는 것은 하나님과 성도가 함께 거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렘17:9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간은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청결하게 만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마5:8)”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단순히 공간적 장소적 개념이 아닌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나라는 땅과 백성 주권 이 삼요소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주권이 중요합니다. 구약에 나라라고 번역한 대표적인 히브리 단어가 말쿠트입니다. 구약 성경에 200여회 사용되고 있는데 공간적 영역, 지역, 영토로도 사용되지마 주로 통치, 지배, 치세, 왕권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솔로몬의 나라가 확고히 세워졌다(왕상2:12)은 통치권을 말합니다. 사울의 나라가 다윗에게 돌려졌다(대상12:23)을 말할 때는 왕적 권위를 말합니다. 다윗의 나라 제 40년(대상26:31)라는 말은 치세를 말합니다. 말쿠트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거의 예외없이 천상적인 왕으로서의 권위 또는 통치를 말합니다(시145:11-13, 시103:19, 시45:6). 메시아가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실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사9:1-7,11:1-9,미5:1-4). 메시아가 오셔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통치권을 실현하는 것입니다(마8:17. 요12:37-38, 행8:32-33). 예수님을 통해 이미 하나님 나라가 믿음 사람들 마음에,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이 미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하여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 21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16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14:2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절과 6:19절에 보면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인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22절에서는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습니다.

 

너희 안에는 우리 마음 안에 이루어진 천국임과 동시에 너희들 사이에 있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의 천국입니다. 교회가 천국은 아니지만 천국의 실습장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실현해야 할 공동체입니다. 교회 다니기 싫어하고 말씀듣기 싫어하고, 성도 사랑하기 싫어하며, 예수님과 동행하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주권이 내게 미치길 싫어하면 어떻게 천국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마음의 천국, 가정 천국, 교회 천국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가 왕으로 모시면 우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도 실재하는 천국입니다. 죽고 나서만 가는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처럼 살다가 천국에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면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체험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분명하게 믿은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10:1, 7)라는 사명을 분명하게 실행하였습니다. 천국에 함께 동행자를 만드는데 일평생 헌신하였습니다. 빌립 집사도 천국을 천파하였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행8:1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층 천을 체험한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행 19:8 cf. 20:25).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23, 30-31) 초대 기독교회에서 선포하고 전수했던 핵심적인 가르침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함께 천국 가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재하는 천국에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되시고 진리되고 생명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2:2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사도행전 4:12)”

만일 교회가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그 사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있는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분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은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고하는 환란과 유혹 속에서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천국’으로 길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고 무사히 갈 수있도록 우리 함께 천국의 실재를 확실히 믿고 현재 이미 임한 천국의 삶을 살다가 어떤 환란이 있다하여도 한 사람도 낙오자 없이 함께 영원한 천국에 다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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