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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9) 성격장애 치유(창세기32:21-3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550 추천수:8 220.120.123.244
2021-08-08 04:16:36

치유(9) 성격장애 치유

창세기32:21-32

 

오늘은 치유 시리즈 설교 9번째로 “성격장애 치유”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참 어려운 주제이고 범위가 넓어 한 번 35분에 걸쳐 설교하기는 힘든 주제입니다. 한 12번쯤 나누어 설교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많이 고민했지만 한 번의 설교로 하나님의 뜻을 나누려고 합니다. 아마 살면서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왜 그래” “참 성격 더럽네” “참 성격 까칠하네” 등과 같은 말을 듣거나 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성격이 실제 존재할까요? 겁쟁이, 순둥이, 외톨이, 소심이, 까칠이, 판단이, 수다쟁이, 떠벌이, 구두쇠, 투덜이, 의심쟁이, 허풍쟁이 등과 같은 특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은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주어진 환경에 대처할 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보면 비판하는 사람이 늘 비판합니다. 회의할 때 보면 늘 말하는 사람이 말하고 부정적인 것을 들추어 내는 사람은 어떤 회의를 해도 부정적인 것을 들추어 내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적입니다. 성격은 유전에 의해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 성격은 한 번 만들어지면 안정적이서 잘 바뀌지 않습니다. 의심쟁이는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고, 까칠이는 무엇이든 우선 까칠하게 대하고 불평이는 무슨 일이 있든 우선 불평부터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타고난 인간의 본성적인 것과 가족과 어울리는 사람과 같이 비슷한 사람들의 특성과 본인만의 독특한 고유성이 합해져 성격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마다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비슷한 유형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보는 MBTI 성격 검사에서는 에너지 방향에 따라 외향형-내향성, 인식방식에 따라 감각형-직관형, 결정 방식에 따라 사고형-감정형, 삶의 패턴에 따라 판단형-인식형 등 16가지 성경 유형을 말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런 검사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5가지 요인으로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신경증 등을 말하는데 이것을 기초로 성격 유형을 평균형, 내성적, 자기 중심적, 역할모델형 등 4가지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성격은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고 다 다릅니다. “세상에 나쁜 성격은 없다. 다만 부적응을 일으키는 성격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 개인이 속한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것에서 현저히 벗어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와 타인 또는 생활에서 경험하는 사건들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상의 인지 문제가 있던지, 정서적 반응의 범위 강도 안정성 적절성 등에서 문제가 있던지, 인간관계에서 지속적인 문제가 있던지, 내적인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해 버리던지 하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즉 자신, 타인, 사건 등을 해석하는 방식인 인지, 정서적 반응, 인관관계, 충동 통제 중 두 가지 이상이 문제가 있으면 성격장애라고 말을 합니다. 삶을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사는데 성격이 지장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격에 있어 장애 있는 패턴이 융통성이 없이 여러 상황들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지속되면 행복한 삶에 지장을 준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삶의 영역에서 심각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성격 장애는 청소년기 후기나 성인기 초기에 나타나는데 성격장애가 오랜 시간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면 정상적인 삶에 지장을 준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잘 모르지만, 주변 사람이 볼 때 까칠하거나 유난스럽거나, 모나거나 외톨이어서 “저건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 살면 불편할 텐데,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어딘가 좀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DMS-4 성격장애 분류에 따르면 성격장애는 니코틴 의존증이나 글쓰기가 서튼 작문 표현 장애 등과 같은 것을 포함해서 300가지도 넘지만, 일반적으로 성격장애를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공통된 특징에 따라 A군, B군, C군 3 묶음(군집, CLUSTER)으로 나눕니다.

A 군집은 지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특이하고, 괴팍하고 별나 보이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홀로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편집성(망상성) 성격장애' '분열성 성격장애' 분열형 성격장애' 등 세 가지가 있습니다.

편집성(망상성) 성격장애는 중요 특징이 “불신”으로 의심이 많아 사람을 잘 못 믿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처럼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자동적으로 몸에 배 있습니다. 의처증, 의부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중요한 특징은 “사회적 고립”으로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아 친구가 없습니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고립된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분열형(조현형) 성격 장애의 특징은 “기이한 사고”입니다. 소위 '4차원'이라고 불리는 성격으로 텔라파시, 공중부양, 사주관상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의 므비보셋은 이유형에 가깝습니다.

 

B 군집은 정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나치게 과장되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특징이 있습니다. '반사회성', '연극성(히스테리성)' ‘경계성’, '자기애성' 성격 장애가 있습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공감능력의 결여”입니다. 어릴 때부터 길에 있는 개를 발로 차서 날려버리는 식으로 도덕심이 없습니다.

연극성(히스테리성) 성격 장애의 특징은 “관심 끌기”입니다. 성경의 밧세바처럼 타인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해 어떤 장소나 모임에 가든지 항상 자신이 눈에 띄어야 합니다. 남에게 주목받고 싶어서 이성을 유혹하는 행동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유기 불안”입니다. 각종 정신과 증상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 '걸치고 있다'고 해서 '경계성'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조울증처럼 감정의 변화가 죽끓듯 하고, 반대로 공황, 공포, 불안이 아주 심각할 때도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특권의식”입니다. 압살롬처럼 자기를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고 자기를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C군은 의지적인 것으로 지나치게 불안해 하고 겁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강박성' '회피성' '의존성' 성격장애가 있습니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완벽주의”입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원인 모르게 '덜컹' 하면 혹시 사람을 친 게 아닌지 걱정돼 반드시 뒤로 가서 확인합니다. 사울이 이 성격에 가까울 것입니다.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완벽주의”입니다. '누가 나 같은 걸 좋아할까'라고 생각합니다.

의존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극단적 수동성”입니다. 모든 중요 결정을 자기가 못 내립니다. 성경 인물 중에는 롯이 이 유형에 가까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야곱은 편집성(偏執性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고집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성질) 성격장애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편집성(망상성)은 중요 특징이 “불신”으로 의심이 많아 사람을 잘 못 믿습니다. 야곱은 아버지고, 형도, 삼촌도 믿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물론 가족까지도 교회 목사님도 이 세상에 완전히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남의 허물 찾기에 명수이고, 의심 챔피언이기 때문에 불화를 일으킵니다. 대부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적으로 믿지 않으면 그것은 치유받아야 하지 그대로 살면 정상적 삶을 사는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카페를 운영하는 A씨가 직원들이 자신이 보지 않는 사이에 자신의 눈을 피해 시간만 축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운터를 맡은 직원이 돈을 훔쳐 갈 것으로 생각하고 카운터에 하루 종일 신경을 씁니다. 위층 태권도 학원에서 쿵쿵댄다며, 수시로 올라가서 항의하다 결국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회사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추궁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헤어졌지만, 여자 친구가 자신을 속이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복수를 다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다른 여자 친구를 만나도, 어떤 여인과 결혼해도 의처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편집성(망상성) 장애를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가정생활이나 직장 생활, 교회 생활, 사회 생활이 원만하고 행복하겠습니까? 그 성격을 치유하지 않는 한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왜 이런 편집성적 성격장애가 생겼을까요?

이 사람은 어머니가 자신이 두 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고, 네 살 때 계모가 들어왔는데 어릴 때 아버지가 매우 엄했답니다. 아버지는 조금만 실수를 해도 심하게 화를 냈고, 바깥일을 하느라고 자신을 별로 돌보아 주지 않았답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공부 못하는 친구를 사귄다고 그런 친구를 사귀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사귀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사귀어야 했답니다. 친구보다 공부가 중요하고 성공하면 사람은 따르기 마련이라고 도움되지 않는 사람은 사귈 필요가 없다고 했답니다. 아버지는 누구도 믿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답니다. 부모로부터 타인의 동기는 악의에 찬 것이라는 불신과 의심을 어릴 때 배운 것입니다. 야곱을 통한 편집성(망상성) 장애를 중심으로 성격장애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를 야곱 생애를 통해 살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격장애를 치유받을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은 낮은 자존감 회복시켜 성격장애를 치유시켜 주십니다./자기관

편집증 성격장애의 심장부에는 낮은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편집증 성격장애뿐 아니라 대부분 모든 성격장애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생깁니다.

자기관이 겉으로 자신에 대하여 나는 정의롭고, 순진하며 고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이 열등하고 약하며 무능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 좋은 일에 대하여 타인에게 책임감을 돌림으로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고한 피해자로 보고 다른 사람을 비난함으로 결함 있는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요구가 많고 건방지며 남을 잘 못 믿고 까다롭게 따지고 비난하기 좋아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두려워하며 자신의 취약한 점을 느끼며 소심하고 자신마저 의심하는 것입니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나 혼자서도 충분해라는 생각하고, 분열형(조현형) 성격 장애의 자기관은 외로운 사람이지만 남의 눈에 잘 띄고 예민하며 재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나는 자주적이고 자유로우며 강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연극성(히스테리성) 성격 장애의 자기관은 나는 매력적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합니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결함투성이에 통제가 안되며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나는 특별하고 우월하며 규칙이나 규범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나는 주의 깊고 세심하며 유능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회피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거절과 상처에 취약한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의존성 성격장애의 자기관은 보잘것없고 나약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에 대하여 자기의 능력을 중심으로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한 자존감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을 뿌리로 한 성격에 병이 듭니다.

편집증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은 어떻게 치유해 주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얍복강가에서 야곱과의 씨름을 통해 야곱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번 자존감 치유에서 말씀드렸듯이 자존감은 “가치감+자신감+소속감”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야곱은 자존감이 바닥이 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어머니 태에서부터 귀한 존재로 불러 주었지만 자기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직까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뒤쫓아 오는 외삼촌에게 쫓기며 겨우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 앞에 형 에서가 있습니다. 32장 6절을 보십시오.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강한 경쟁심을 가지고 지위를 추구하는 지위 추구적인 인간으로 어릴 때부터 자랐습니다.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싸웠다고 했고 태어날 때도 형의 발꿈치를 움켜잡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둘째로 태어나 형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에 몰랐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공모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분노한 형을 피해 삼촌 집으로 도망가 20년 동안 삼촌 라반의 집에서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고,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며 내면에 분노를 쌓으면서 아내를 차지하고 재산을 축적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죽을지 모르는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의심많은 편집성 성격 장애를 가진 야곱은 사자들을 앞서 보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먼저 에서의 마음을 풀기 위해입니다(창32:3). 8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떼는 피하리라”라고 한 것처럼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지위 추구적인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그는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5절, 씨름하였다는 것은 싸웠다는 말입니다. 밤이 새도록 어떤 사람과 싸웠다는 말입니다. 그는 과거 자신의 의지로 철저하게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루었습니다. ①장자권의 탈취(창25:27-34)했고, ②자기가 좋아 하는 아내를 얻기 위하여 7년 동안 무료 봉사하여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것으로 하고 있지만 두려웠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답답해 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통해 주어진 자존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자기 능력에 기반한 자존감은 한계에 부딪치면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하나님 자녀로 가치있는 존재이고 하나님과 함께하면 어떤 문제도 넉넉히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끝까지 보호해 주실 것라는 사실을 20년 동안 체험을 했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기반으로 한 자존감이 형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여전히 편집성적 성격장애가 치유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태어날 때(창25:23)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자는 어린자를 섬기리라."라고 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얻었을 때(창27: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9)"라고 했습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할 때 벧엘 들판에서(창28:14-17)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라고 했습니다.

라반에게서 떠날 때에도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31:3)”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32:2)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자기에게 달려오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방법을 사용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오늘 사건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해석으로 오늘 본문을 야곱의 기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24절 씨름을 기도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26절에 근거). 물론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씨름은 하나님이 먼저 건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씨름에서 하나님께서 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5절에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졌을까요?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씨름하면서 “내가 졌다”라고 말할 때 사실 아버지가 실제적으로 힘이 없어 졌을까요? 위골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이 씨름을 호세아 12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야곱의 행위를 하나님을 대항한 악한 소행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소행대로 벌을 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니 그는 태에서 그 형의 발꿈치를잡았고 또 장년에는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야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하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만 자신의 삶의 모든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주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인생 전부의 주인으로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제까지의 삶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산 삶입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수준입니다. 지금도 모든 것이 자기 손에 있는 줄 아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 "내가 네 인생의 주인이요 내가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해 씨름한 것입니다. 네 인생과 네 목숨마저도 네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 오셔서 그 씨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항복을 안 하니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칩니다. "잘먹고 잘 살아라 내가 떠나면 너는 끝장이다"라고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심판을 선언 받고 드디어 야곱이 도와달라고 애원합니다 "축복하시지 않으면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27절에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어보십니다. 야곱이라고 말합니다. 너가 사기꾼이요 약탈자요 강도가 아니냐 그런데 왜 축복을 받아 낼려고 하느냐라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로 변경시켜 주었습니다. 싸워서 이겼다는 것은 그가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얻어 내는데 승리한 것입니다. 야곱의 전 생애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축복을 얻어 내는가의 싸움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자기 힘으로 얻어 내고 하나님이 그것을 도와 주는 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포기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포기 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인생을 승리하게 하고 행복하게 살게하는 진정한 자존감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신감도, 대단한 집단에 소속된 소속감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가치감도 아닙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지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나라의 소속감,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님의 자녀로 가장 고귀하다는 가치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빼앗는 자 속이는 자 야곱을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 하나님이 통치하는 자 이스라엘로 이 사건을 통해 그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치유시켜 주신 것입니다. 위골시킨 그의 환도뼈는 오늘 설교 제목에 맞게 재해석하면 여전히 자기 성격, 자기 방법, 자기 스타일 사고방식, 생활 방식 고수하는 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고쳐야 할 편집성 장애를 앓고 있는 성격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도뼈가 위골이 되지 않으면 아직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잘 바꾸지 않습니다. 실존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물질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고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였으며, 첫와 두 번째 고민은 간혹 푸는 자가 있으나 세 번째 고민은 아무도 풀지 못하며 그것은 오직 믿음에서 얻어지는 영원한 소망만이 풀어 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자존감이 높아져 어떤 성격장애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성격은 한 번 고정되면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얼마든지 성격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격 장애를 가지고 도망가는 야곱을 찾아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얍복강 씨름 사건을 통해 완전히 치유시켜 주었습니다. 성격장애는 자기 스스로 극복하기 힘들고, 자기 자신이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조차 알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편집성 성격장애를 치유받은 야곱은 이 사건 이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존감 높은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창43:14을 보십시오. 요셉이 시므온이 인질로 잡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 때 야곱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이 거하는 공동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파괴시키는 성격 장애가 있다면 낮은 자존감 회복시켜 성격장애를 치유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평생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아버지로 모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대하게 하여 성격장애를 치유시켜 주십니다./타인관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관은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비난하며 착취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잘해 주는 것은 뭔가 꿍꿍이 속이 있기 때문이지 진정으로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식당에 들어갔는데 성도님들이 시끄럽게 이야기하다 자신을 보더니 웃으면 분명 자신을 험담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충분한 근거 없이 타인이 자신을 착취하고 해를 주거나 속인다고 의심하며, 타인의 말이나 사건 속에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위협하는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인격이나 명성이 공격당했다고 인식하고 즉시 화를 내거나 반격합니다. 상대에게 조금만 거짓이 들어나면 고소 고발을 해 버립니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타인관은 다른 사람은 나를 귀찮게 하고 침해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분열형(조현형) 성격 장애의 타인관은 내가 믿는 것을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연극성(히스테리성) 성격 장애의 타인관은 나를 원하고 내가 유혹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나에게 잘 대해줄 때 나를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이상화하고, 나를 소홀히 대할 때 배신하고 버리는 나쁜 놈이라고 평가 절하 하며,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타인관은 열등하고 부족하며 나를 돋보이게 해줄 때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타인관은 무책임하고 조심성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회피성 성격장애의 타인관은 나를 비판하고 평가하며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이이라고 생각하며, 의존성 성격장애의 타인관은 의존하는 상대가 나를 잘 돌봐 주고 지지해주며 나보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타인관이 믿을 수 없는 존재, 귀찮은 존재, 유혹할 존재, 이용할 존재, 우월한 존재, 내 기분을 맞춰주어야 할 존재 등 병든 자아에 갖혀 바라보기 때문에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어서 정상적 관계를 가져야 할 인격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병든 성격을 가진 사람은 건강한 성격을 가지려면 타인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아버지도 삼촌도 믿지 못한 그는 에서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그리고 종들을 보내어 에서의 생각 대한 자신의 의심에 대한 정보를 찾고 수집합니다. 400명이 같이 온다는 말을 듣고 심히 두렵고 답답해합니다(창32:7) 그리고 에서의 생각을 지레짐작을 하고 진실한 동기와 목적을 악의적으로 해서해서 준비합니다.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스스로 두려움을 확정짓는 현실을 만들어 더 강한 벽을 쌓는 것입니다. 과거 에서가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창 27:41)"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과거 경험에 의해 추축 하고 상대에 대하여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비난하고 착취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20년 전의 일을 일반화시켜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고 상대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라반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라반이 왔을 때 라반에게 임금을 열 번이나 변개한 일을 드러내며 쌓였던 분노를 표출했습니다(창31:36,41). 속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편집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던 에서는 경쟁 심리가 강했습니다. 그는 상대와 경쟁에서 무엇이든 자신이 노력해서 획득해야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있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거짓말로 상대를 끌어내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장자권을 빼앗으면서 형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죄책감은 없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팔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항상 경쟁심리 속에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믿으면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들의 성장배경 속에는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사람들 즉 가족이나 친구에게 심한 배신과 위협을 당한 경우가 많은데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경험이 충분히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질 수 있는 사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잘못된 편집성 성격장애의 대인관을 어떻게 바꾸어 줍니까? 33장 4절을 보십시오. 에서가 악의를 가지고 비난하며 착취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에서가 먼저 달려옵니다. 그리고 안고 입맞춤을 합니다. 만남에 감격하여 서로 웁니다. 형제입니다. 피붙이입니다. 20년 만의 재회입니다. 화해의 예물로 짐승을 주려했던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9절 보십시오.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으로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고 말합니다. 그 때 편집성 성격장애를 앓은 옛날같으면 “예 그래서 감사합니다. 형님” 그 재산을 자기가 가질 텐데 장애를 앓던 성격이 치유된 인격이 변한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노이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격장애가 치유받자 노예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상대를 신뢰할 만한 대상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한 가족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해야할 한 형제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인관이 치유된 야곱이 어떻게 변합니까? 창43:1-2을 찾아 보겠습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큰 기근 중에서도 적은 식량을 사오라고 합니다. 관점이 타인의 시선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함께 같이 살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 성격치유를 받지 못하고 성격 더러울 때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타인을 죽든 말든 1년치 2년치 사와야 속이 후련했을 것입니다. 소와 양이 많이 있습니다. 곡식을 살 재물 넉넉합니다. 먹여야 할 자녀손이 70명이며 종이 많아 많은 곡식이 필요한데 탐심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우리는 이렇게 어떤 잘못된 타인관이라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고 돌보고 함께 해야할 한 하나님의 가족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편집성 성격장애가 치유받으면 이웃에 대하여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관점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격장애가 있더라도 이웃에 대하여 사랑해야 할 인격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살면 성격은 정상적인 성격으로 치유가 됩니다.

 

3. 하나님은 세상을 영역주권을 회복해야 할 세상으로 대하게 하여 성격장애를 치유시켜 주십니다./세상관

편집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세상관은 세상은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험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자동적으로 몸에 배 있습니다. 편집증 성격의 대표적인 특징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외에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고 다른 사람을 믿으면 반드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의심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고 사실을 판단합니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타인과 어울려봐야 얻을 게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분열형(조현형) 성격 장애의 세상관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강한 사람이 승리하는 세상, 강자는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성(히스테리성) 성격 장애의 세상관은 나를 흠모하고 내 명령에 따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으로, 경계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날 보살펴주고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곳으로,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우월하며 특별하기 때문에 그럴만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나의 왕국으로 생각합니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완벽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으로, 회피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곳으로, 의존성 성격장애의 세상관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내 능력만으로 살아 남을 수 없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병들어 있어 성격 역시 병든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병든 성격을 치유하려면 세상관을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세계관이 바뀌어야 성격치유 즉 인격치유가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병든 성격을 어떻게 치유시켜 주십니까? 34장에 보면 딸 디나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 디나가 추장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34장 26절을 보면 옛날 아버지 성격을 닮은 야곱의 아들들이 무차별적 복수로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자신을 이익을 위해서는 무력으로 정복해야 할 세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자신을 닮은 자식들의 성격으로 모든 가족이 죽고 이제까지 쌓아 놓은 모든 것을 한순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5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4가지 처방전을 제시합니다. 첫째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가 거주해야 할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잠깐 머무는 사명의 땅이고 영원히 거할 곳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라고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자신을 지켜 주고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시면 세 가지를 꼭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고, 둘째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셋째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도적으로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켜 주시고 그를 거부로 만들어 주고 형과도 화해하여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올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그는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세상과 어울려 10년 동안 산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세상에 있는데 그곳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출세하고 잘 된 것이 자기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처음 예수님 만난 신앙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적당히 어울려 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멀어지고 세상은 가까워진 것입니다. 세상 재미에 취해 하나님은 멀리한 것입니다. 세겜에서 벧엘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벧엘에서 거주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그의 성격 장애를 치유해 주시는 아주 명료한 처방전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예배 공동체를 이루며 세상은 사명을 감당하는 이 땅에서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내가 왕이 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되어야 할 땅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병든 성격을 치유됩니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의 문제도, 인권의 문제도, 제도의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들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같은 사람들은 무신론이 더 성격 좋은 사람들을 만들어 주고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만들어 주며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신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성격이 좋습니까? 동성연애를 합법화하고 내 인생 내마음대로 사는데 누가 간섭하느냐고 살아가는 세상이 진정 행복한 세상입니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절대적인 기준이 상실되어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권위가 상실되고, 절대적인 해답이 없어지고, 가정의 목표는 출세와 돈에 있다고 살면 행복합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살면 이혼율이 줄고, 자살율이 줄고, 낙태율이 줄고, 청소년 탈선율이 줄고, 성적 타락과 가정 폭력이 줄고 노인문제나 미혼모 문제가 잘 해결되어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됩니까?

세상은 하나님을 추방해야 할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회복해야 할 땅입니다.

 

이 때 성격장애를 치유받은 야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예전과 같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가족들에게 네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합니다. 세속적인 삶의 스타일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지고 합니다. "버리라. 깨끗하게 하라. 바꾸라.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6-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하시니 야곱은 3절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면서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 하였고, 6절에는 그대로 실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족 식구인 자식들은 어떻게 합니까?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아버지에게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 혹은 '약탈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얍복강 가에서 바꾸어 주었습니다(창32:28). 그리고 다시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미하는 '엘'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고 메시아 언약을 성취하여 하나님이 통치할 세상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이라고 부르시면서 축복을 해주십니다. 야곱 자신이 복을 받았습니다(9). 그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11-12). 많은 국민이 그에게서 나되 종 될 사람들이 나는 것이 아니라 왕될 사람들이 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될 세상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가 거하는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축복받는 세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가 가는 곳이 예배의 자리로 변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벧엘에 이르러 거기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세상이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한 장소가 아니라 예배하는 장소가 되게하는 성격의 사람으로 치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편집성 성격장애를 치유받고 완전히 예배 중심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노년에 났선 땅 에굽으로 가려고 할 때 그는 무엇을 합니까? 창45:28-46:1을 보십시오. 예배를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 49장 18절을 보십시오. 죽음을 앞에 놓고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소망 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소중히 알고 현재의 일보다 미래의 일에 더 생각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한평생 살았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병든 성격을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되어야 할 세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지식에까지 새로워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신분에 걸맞는 왕자 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분에 걸맞는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지, 성, 의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 이 땅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축복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숙한 성격의 사람으로 삶의 가장 중요한 핵심의 행위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구원받은 교리를 말씀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가장 먼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예수님은 요한복음 4:23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살게하신 이유는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욕망을 성취하고 욕망을 발산하며 바알을 숭배하라고 자신이 왕이 되라고 주신 땅이 아니고 예배를 드리라고 주신 공간입니다. 가정의 위기, 교회의 위기, 세상의 위기는 예배의 위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우리는 예배를 통해 새 힘을 받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우리는 예배를 통해 존귀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7)"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정한 용서를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2-3)"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고 영혼이 소생함을 누립니다. 사사기 6장24절에는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았을 때 3백 명으로서 모래알 같은 미디안 군사와의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대상21:22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쳤습니다.

대상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픈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힘겨운 세상에 살면서 예배를 통해 세상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은혜로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예배자가 되어 세상에서 어떤 분야에 일하든지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이 왕되신 것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병든 성격은 치유됩니다.

 

성격은 한번 결정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제주로 믿고 새사람이 되면 새사람에 걸맞은 성격으로 하나님은 치유시켜 주십니다. 어떤 성격장애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만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건강한 성격으로 변화되어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만나 자기관에서 낮은 자존감 회복시켜 성격장애를 치유하시길 바랍니다. 타인관에서 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대하며 성격장애를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세계관에서 세상을 영역주권을 회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왕되신 것을 선포하며 성격장애를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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