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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6) 분노조절장애 치유(창세기4:5-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692 추천수:4 220.120.123.244
2021-07-18 14:06:01

치유(6) 분노조절장애 치유

창세기4:5-7

 

오늘은 “치유” 시리즈 여섯 번째로 “분노조절장애 치유”에 대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분노는 삶에서 항상 동반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강렬한 정서반응입니다. 짜증, 화, 흥분, 노발대발, 부아, 성남, 성가심, 역정, 발끈함, 약오름, 열받음, 신경질, 성질 급함, 욱함, 언짢음, 뚜껑 열림, 격양, 분개, 격분, 격노 등 다양한 말로 표현됩니다. 대부분 운전하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로 화가 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은 잘 참으니까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화나는 것은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거나 불의한 일을 보거나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때 화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언젠가 좌회전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뒤에 있는 차가 빵빵거렸습니다. 그래도 신호등이 파란 신호라 가지 않고 서 있으니까 그 차가 우측으로 빠져 직진하면서 차문을 열고 욕을 하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운전자를 보니 당시 제가 섬기고 있던 교회의 성가대원이었습니다. 성가대원 10년 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화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대부분 화는 15초 사이에 최고조에 오르고 15분 이상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끼어드는 차로 화가 나면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계속 추적하고, 차 앞에 세워 정차를 시킨 후 폭력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분노가 자신을 해치고 상대를 해침으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런 경우는 분노를 조절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도박하고 싶은 충동, 게임하고 싶은 충동, 술 먹고 싶은 충동, 죽고 싶은 충동 등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폭력적 성향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데 이런 것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합니다. 의학적 용어로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입니다. “내 것을 빼앗길 때(자산)”, “나의 구역이 침해당할 때(영역)”, 그리고 “사람을 잃었을 때(관계)” 분노가 생기는데 일반적으로 정신과에서 진단하기를 6세 이상으로 일주일 2번 이상 3개월 넘게 폭언을 하거나 1년에 3번 이상 폭력을 쓰면 간헐적 폭발성 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윗집에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난다고 칼 들고 찾아가면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운다고 패면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꼭 폭력적으로 표줄 되지 않고 억눌린 분노로 무기력감, 스트레스, 좌절감, 반감 등이 반복되어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분노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감정 중 하나지만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자주 반복되거나 폭력성을 동반한다면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뇌의 편도체는 감정을 느끼고 전전두엽은 감정을 조절, 통제하는데 술에 취하면 알코올이 전전두엽을 기능을 마비시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술 먹고 분노를 폭발하여 기물을 파괴하는 것을 보는데 술도 먹지 않았는데 일주일에 2번 정도 폭언을 하고, 1년에 3번 정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정신과에서 일반적으로 간단하게 진단하는 간헐성 폭발장애 자가 진단표가 있습니다.

11가지 질문인데 이런 것입니다.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성격이 급하며 금방 흥분하는 편이다.

(2) 내가 한 일이 잘한 일이라면 반드시 인정받아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화가 난다.

(3) 온라인 게임에서 본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다.

(4) 자신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5) 타인의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꼭 마찰이 일어난다.

(6)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7)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거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한다.

(8) 화가 나면 주변의 물건을 집어 던진다.

(9)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아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 내 잘못도 다른 사람의 탓을 하면서 화를 낸다.

(11) 중요한 일을 앞두고 화가 나 그 일을 망친 적이 있다.

 

1~3개이면 감정 조절이 가능한 단계이고 4~8개이면 감정조절 능력이 약간 부족한 단계이며 9개 이상이면 분노조절이 힘들고 공격성이 강한 단계이고, 9개 이상에 해당할 경우는 전문가와 상담을 통한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분노조절장애는 혼자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인 질병에 속합니다.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이 손상됐거나 일시적으로 기능이 떨어졌을 때 분노가 제어되지 못하고 행동으로 발현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과에서는 감정 기복이나 충동을 조절해주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감정 조절 훈련 등을 통해 치료해 줍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아마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할 정도의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분노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분개하고 몹시 성을 내 어려움을 당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아동 학대, 학교 폭력, 데이트 폭력, 폭행, 살인 등 대부분 사건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노의 지뢰밭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분노를 잘 조절하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면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1. 분노조절장애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파괴적인 분노를 죄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상황을 자신의 왜곡된 인지로 해석하지 말고 타인의 시각,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반응해야 합니다(6).-하나님은 분노의 원인인 인지 왜곡을 고쳐주심으로 치유해주십니다.

분노를 나누어 보면 개인적 분노와 집단적 분노, 충동적 분노와 습관적 분노, 죄악된 분노와 의로운 분노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분노에도 죄악된 분노가 있을 수 있고 의로운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단적인 분노에도 죄악된 분노가 있을 수 있고 의로운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충동적 분노는 화가 나는 상황이 우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다혈질과 같이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쉽게 분노를 폭발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이런 충동적 분노도 의로운 분노가 있을 수 있고, 죄악된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습관적 분노는 목적 달성을 위해 분노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학습한 결과 화를 내지 않을 상황에서도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를 쓰고 부모는 과잉보호하다 보면 습관적 분노조절장애자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고 폭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노는 대부분 죄악된 분노입니다.

그런데 죄악된 분노, 자신에게 해가 되고 타인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병적인 분노는 왜 생기게 됩니까?

분노조절장애는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생길 수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도전이나 위협, 상처, 무시, 소홀, 부당한 처우, 공격 등을 느낄 때에는 사람은 화내고 방어하고 싸우는 본능적 요소가 있습니다. 이때 공격적인 호로몬인 프로락틴, 테스토체론,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증가됩니다. 분노라는 흥분 상태가 되고 아드레날린이 증가됩니다. 그러면 혈압이 높아지며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위협을 인지하고 이에 적합하게 반응하기 위해 신체기관이 대처반응을 준비합니다. 편도체에 들어오는 자극들은 전전두엽에서 과거의 기억과 비교되고 반응, 기대 해석되면서 조절이 됩니다. 과거에 학습된 것과 일치할 때 분노반응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분노는 불안 불편, 긴장 분개, 좌절 등의 감정과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발생한다고 합니다.

분노는 심리적 원인에 의해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서는 크게 쾌의 정서와 불쾌의 정서로 구별됩니다. 쾌의 정서는 욕구 만족의 결과이고 불쾌의 정서는 욕구 불만족의 결과입니다. 인간은 욕구 충족을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의 기대, 목표, 욕망이 무너지면 좌절하며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욕구 충족이 안 되면 분노가 생깁니다. 인정받지 못할 때, 대접받지 못할 때, 먹고싶은 욕구가 좌절될 때 등 분노가 생깁니다.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때도 분노가 생깁니다. 동물이 자기 영토를 공격당할 때 분노하는 것처럼 자동차 운전을 하는데 끼어들면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대인관계에서 부당하게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생깁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때 분노가 생깁니다. 친구에게 부모에게 자식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무시당하면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손해를 보았을 때, 목적을 이루는데, 방해를 받았을 때 분노가 생깁니다. 위협이나 해를 받았다고 느낄 때 분노가 생깁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법이 평등하지 못할 때 정의가 짓밟히고 있다고 생각될 때 분노가 생깁니다.

 

그런데 모두가 이런 대우를 받는다고 분노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것도 아닙니다. 분노는 왜곡된 인지구조 때문에 분노는 생길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타난 결과입니다. 사건은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고 반응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장하면서 유전과 환경에 따라 비합리적 인지 구조, 왜곡된 신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와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어떤 사건에 터무니없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감정을 폭발하게 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꼭지가 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이마고”라고 말합니다. 반영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이마고 부부 치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어린 시절에 생긴 이마고를 반영하고, 인정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에게 물린 사람이 개를 만나면 두려워하듯이 자동적 사고가 생겨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어떤 사건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스키마, 프레임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마고에 관련된 상처가 건드려지면 즉, 비난이나 거절, 무시 등을 당하게 되면 현재 사건에 대한 적절한 분노보다 훨씬 더 큰 분노로 폭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는 분노 유발의 가장 강력한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언어적 학대를 받은 사람은 직장 다니며 상사가 충고하면 과도하게 분노를 합니다. 어머니에게 어릴 때 습관적으로 분노를 퍼부음 받았다면 자신도 자식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감각에 예민한 부분이 있는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윗층에서 발소리만 나면 참지 못하고 분노가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정보를 잘못 처리하는 것입니다. 임의적 추론, 선택적 추상화, 지나친 일반화, 과장과 축소, 흑백 논리,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기준이 자신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분노하는 것입니다. 거절감, 열등감을 갖게된 것입니다. 자신이 거절당하고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상대와 비교하며 자아존중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왜곡된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서의 주도권의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완벽주의 자일수록 분노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면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에게 화를 내고 그것을 풀기 위해 술을 먹기도 하고 각종 중독에 걸리기도 하며 심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하면 자신을 헤칩니다. 그 원인이 타인에게 있다고 하면 그 분노 에너지는 타인에게로 향하며 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고 심하면 살인을 합니다.

파괴적인 분노의 원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 마음대로”라는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해석과 판단의 기준을 바꾸면 반응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차가 끼어들면 분노가 생기는데 내가 가는데 왜 방해하느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확장시키면 달라집니다. 저 사람이 급한 일이 있겠구나? 남의 입장에서 서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반응이 달라집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더욱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그 사람에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있구나라고 시각을 확장시키면 전혀 해석와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조절장애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소에 타인의 시각,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인지왜곡을 바꾸어야 합니다. 바르게 해석하고 판단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세요. 가인이 분노를 품었습니다(5). 몸시 분했습니다. 안색이 변할 정도로 심하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때 가인의 분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처방을 내리시고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왜 분노하는냐? 왜 안색이 변했느냐? 이유를 물어보고 계십니다. 분노의 원인을 진단하여 치유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지왜곡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질병은 원인치료를 해야 완전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증상만 치료하면 완전 치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분노하여 동생을 죽이려는 그의 분노조절장애를 치유하기 위해 극단적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원인치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은 상황을 보고 분노하는 그에게 너 지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분노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당하게 대우해 주었는데 자신은 부당하게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고 너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고 분노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때문에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 마음이지 자기가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제사를 받지 않은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은 모르고 동생 때문에 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받는 분이십니다. 이미 가인의 마음은 열납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믿음없는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히 11:4), 자신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너에게 분노의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해로운 분노의 원인의 자신의 죄 때문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야 분노로부터 파생되는 불행을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분노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할 때 분노의 문제는 종식이 되는 것입니다. 분노의 악한 고리가 끊어지고 더이상 불행한 결과로 발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해로운 분노를 어머니 때문이라고 아버지 때문이라고, 아내 때문이라고, 남편 때문이라고, 누구 때문이라고 자꾸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탕자의 형은 아버지가 동생을 사랑하니까 분노합니다. 성실하게 일한 자신에게 모든 재산을 주어야지 왜 탕자가 된 동생에게 주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성대한 잔치 한 번 안 해주고 왜 탈선한 동생이 돌아오니까 잔치를 해주냐는 것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교회를 위해 충성하던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선봉에 서서 분노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요나도 니느웨가 망하지 않으니까 심히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분노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화부터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파괴적인 분노, 해로운 분노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7절에 보십시오. 죄라는 것입니다. 파괴적인 분노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이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는 여러 부분에 심각한 불행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잠27:4)”라고 말씀합니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잠14:17)”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라고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29:11)”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욥19:29)”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욥5:2)”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9)라고 물었을 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는 “나는 처음부터 내 동생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며 거짓말을 덧붙여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항변합니다. 하나님은 분노를 인정하고 분노를 풀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것을 말씀하지만(7) 그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지 못하고 동생을 살해해 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여호와 앞을 떠나(창4:16) 자신이 주역이 되는 하나님을 반항하는 성을 쌓고(17)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며 척박한 땅에서 분노로 가득 찬 인류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2. 분을 품지 말고 분을 다스림으로 분노조절장애로 파생되는 불행한 인생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노의 과정이 파괴적으로 나가지 않도록 치유해 주십니다.

화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분노는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생존 수단입니다.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喜怒哀樂)가운데 하나인 '노'(怒)에서 연유된 감정입니다. 분노는 사랑, 흥분, 슬픔, 두려움, 불안, 평안과 같은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주어진 대표적인 감정입니다. 그 자체가 옳다거나 그릇 되다고 할 수 없는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분노의 감정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표출되느냐가 의롭고 창조적인 분노가 될 수 있고 해로운 파괴적인 분노가 될 수 있습니다.

의로운 분노는 분노 자체가 죄는 될 수 없습니다. 모세가 바로 왕에게 심히 노하는 장면이 출11장 4-8절에 나옵니다. 9가지 재앙을 내렸는데 약속했다가 다시 번복합니다. 마지막 재앙을 선포하고 심히 분노합니다. 이런 분노는 단순하게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자에 대한 거룩한 분노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하면서 분노하는 장면이 느5:1-10에 나옵니다. 고리의 이자 놀이를 하고 백성을 착취하는 지도자들에 대하여 분노하며 책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블레셋 군대를 향하여 거룩한 분노를 하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장사꾼으로 소굴로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하며 쫓아냅니다. 이러한 분노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유익한 분노이며 통제받는 창조적인 분노입니다.

'강한 불쾌감'으로 표현되는 파괴적인 분노는 그 강도에 따라 가볍게는 짜증나고 약이 오른 상태부터 원한, 분노, 분개, 격분, 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 분노가 감정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으로 발전하는 데 있습니다. 분노를 느끼면 얼굴이 빨개지고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세지며 핏대가 오릅니다. 분노는 적개심과 함께 행복의 파괴자, 많은 중병의 주요 원인되어 버립니다. 우울증, 비능률, 교통사고, 재정적 손실, 결혼 생활의 갈등, 강간, 살인, 가정폭력, 전쟁 등으로 발전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가인이 심히 분노합니다. 그 분노가 어떻게 발전합니까?

(1) 안색이 변합니다(5) 분을 품으면 화병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화병은 정신은 물론 육체와 생활에 큰 손상을 입힙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분노의 감정은 신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듀크 의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보통 사람에 비해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20%가량 높다고 합니다. 심장병의 주요 발생 요인은 담배 술보다 분노가 더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월프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의 위장의 점막은 충혈되고 운동이 증가되며, 위산 분비가 많아져서 마침내는 위, 장출혈과 궤양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하버드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좌측 전두엽 부위의 혈액순환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면 뇌세포 활성이 떨어지고 그때부터 뇌의 손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미국 존즈.홉킨즈 대학 연구진이 1,000명을 조사한 결과, 걸핏하면 화내는 사람들은 55세 이전에 심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3배, 심장마비는 5배 높았다고 합니다.

(2) 공격을 하게 됩니다(8).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여야 하는데 사람을 공격하여 아벨을 쳐죽입니다. 분노가 자라면 결국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해로운 분노 에너지가 자신에게 향하면 자신의 몸을 해치게 되고 해로운 분노가 타인에게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3) 마음이 강팍해집니다(9). 뻔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물음에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분노의 노예가 되면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조절장애에 빠지면 양심이 무디어집니다. 좋지 않은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고,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주어진 일을 원만히 수행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관계를 단절해 버립니다.

그릇된 이유로 분노하게 되면 분노가 우리를 다스려 버립니다. 분노조절장애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우리 삶의 주요한 특징이 되어 버립니다. 곱씹어 속상해하고, 자신이 부당하게 대접받은 것에 대하여 계속해서 기억하고, 화가 나지 않은 척하면서 자기를 분노케 한 사람을 심하게 비난하며 힘없는 엉뚱한 대상을 공격하며 상처를 입히면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가 발전하여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그 고리를 끊고 해방될 수 있겠습니까? 죄의 소원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행위로 발전하지 않도록 분노가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에베소서에서는 어떻게 교훈하고 있습니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6-27)" 직역하면, ‘분을 내어라, 그러나 죄를 짓지는 말라, 해가 너의 분 위에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분을 낸다고 할지라고 해가 지기 전에는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습관화 되고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분을 내라고 권장하는 말은 아닙니다. 참을 수 없어 화를 낼 수 있으나 그것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분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정서이지만 감정에 이끌려 쉽게 분노를 표현하다 보면 서로 아픔을 경험하게 되고 죄를 범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라도 마귀가 틈타도록 분을 품고 있지 말라는 말입니다. 마귀는 중상하고 비방하는 자입니다. 분노에 빠지는 것은 마귀에게 자유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분노가 죄가 되도록 분노를 처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분노를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의분으로 애굽사람을 처 죽였습니다. 의분으로 십계명을 부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므리바에서 백성이 물 때문에 원망할 때 분노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분노 자체보다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의분이라고 혈기, 폭언, 폭행, 살인을 하면 안 됩니다. 분노가 이기적인 미움과 원한 보복으로 드러날 때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도록 분을 품으며 복수를 계획해서는 안 됩니다. 가능한 한 속히 해결해야 합니다(시4:4). 해가 지도록 품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는 잘 다스려야 합니다. 분노가 마음을 분노의 노예로 만들도록 자리 잡지 못하게 하고 노가 일어나 자라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심령의 상태, 복수심을 가진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즉시, 그 분을 처리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분노가 파괴력을 가지고 이성을 마비하고 신앙을 무기력하게 하고 자제력을 상실하게 하여 분노의 노예로 삼을 수 있도록 방치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분노의 감정은 15초 후면 시들어지고, 대부분 15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때를 분노가 파괴적으로 언어를 통해, 행동을 통해 나가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며 15번을 세는 것입니다. 그 분노의 감정이 마음 속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운동으로 풀어 버리는 것입니다. 분노의 상황을 피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노를 말하면서 에베소서에서는 바로 성령 충만을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분노가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우리의 감정을 분노의 노예로 얽매이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엡5:18절을 보십시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 우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 마음을 성령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뿐아니라 분노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분노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찬양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분노조절장애에서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여야 하며(딤전 2:8), 감독들에게는 ‘급히 분을 내어서는 안될 것을 가르쳤(딛1:7).”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위루지 못함이니라(약 1:19-20)”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는다(마 5:22)”고 하였습니다. 다툼을 금하고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말씀합니다.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3. 분노의 에너지를 선을 행하는데 사용함으로 분노조절장애로부터 치유받아야 합니다(7).-하나님은 분노를 창조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치유해 주십니다.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노가 죄를 짓는 도구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1) 내적 억제형 (2) 외적 표출형 (3) 자기 주장적 표현형입니다.

1) 내적 억제형은 분노를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입니다. 끼어들기 하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렇다고 양반 체면에 싸울 수 없고 핸들을 잡고 그 사람 목이라고 생각하고 목 비틀 듯이 가는 것입니다. 복식호흡하고, 근육 이환 훈련을 하며, 재미있는 것을 상상하고, 세수를 하고, 차를 마시며 내부적으로 삭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아니면 기대가 좌절되어 화가 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되 불쾌한 감정이 무절제한 행동이나 말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분노를 절제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한다고 했습니다. 단기적이고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억제하면 결국 분이 쌓여 화병이 되고 그것이 자신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육체의 건강까지 해치게 됩니다.

 

2) 외적 표출형은 파괴적 반응으로 분출시키는 것입니다. 화나면 폭언을 퍼붓고 끼어들기 하면 개 아들이라고 욕을 하고, 가지 않고 서 있으면 자리 펴고 자고 가라고 한마디 합니다. 그것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차를 세워놓고 싸우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공기총으로 쏩니다. 이 방법이 가인이 쓴 방법입니다.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들에 나아가 아우를 쳐 죽입니다(8). 분노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1) 동생을 잃습니다(8). 가족을 잃는 손실을 보게 됩니다. (2) 살인 죄인이 됩니다(8). 인류 최초의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3) 형벌을 받습니다(11).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아 효력을 얻지 못합니다. 땅에서 유리합니다. 외롭습니다.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습니다. 13절에 보니 형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4) 외로움에 빠집니다(12절).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 옆에 가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주변에서 마음이 멀어집니다. (5)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14). 피해자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쌓이게 됩니다. 폭군 쳐놓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6) 모두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 상처를 주고 후손들 우리까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분노는 전염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화를 잘 내는 자와 어울리지 말고 쉽게 성내는 자와 사귀지 말라(잠22:24,25)고 말씀합니다.

분을 품고 있는 가인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했습니까? 7절에서 말씀합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분을 품고 있는 그를 향하여 선을 행치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마음을 지배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자가 엎드려 먹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죄지을 기회를 노리는 것입니다. 분으로 악을 행하면 분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분노조절장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노를 건설적으로 발산해야 합니다. 죄의 방법이 아니라 분노를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발산해야 합니다.

3) 자기 주장적 표현형으로 분노를 풀어야 합니다.

분노를 무시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억압한다고 억압되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를 무시하고 억누르면 문제는 더 악화되고 곪아터질 뿐입니다. 폭발시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다 결과적으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를 해칩니다. 남을 해칩니다.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자신을 병들게 합니다. 정직하게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통해 일어나는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입니다. 문제와 사건 자체에 묶이면 분노는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와 사람을 분리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용서하라고 합니다.

4) 성경적 방법으로 창조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선한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분노 일기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것가 같은 건강한 방법으로 화를 발산하고, 걷기, 청소하기, 수영, 농구 등과 같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명상하기, 성구 암송,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 등과 같은 좋은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한나가 원통한 일을 당할 때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풀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기도의 통로를 주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억울하게 갖혀있을 때 찬양한 것처럼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 사람 보는 것 아닙니다. 분노가 폭발될려고 할 때 사람보는 것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분노의 노예로부터 자유를 주십니다. 참 해방을 주십니다. 분노조절장애를 치유해 주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분노조절장애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파괴적인 분노를 죄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상황을 자신의 왜곡된 인지로 해석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6).-분노의 원인, 하나님은 인지 왜곡을 고쳐주심으로 치유해주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분을 품지 말고 분을 다스림으로 분노조절장애로 파생되는 불행한 인생을 만들지 않도록 해주십니다. -과정 해방, 하나님은 분노의 과정세서 죄를 짓지 않도록 치유해 주십니다.

3. 하나님은 분노의 에너지를 선을 행하는데 사용함으로 분노조절장애로부터 치유받기를 원하십니다(7).-결과 해방, 하나님은 분노의 에너지로 선을 이루도록 치유해주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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