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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2) 열등감 콤플렉스 치유(출애굽기 3:11-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671 추천수:3 220.120.123.244
2021-06-13 14:11:29

치유(2) 열등감 콤플렉스 치유

출애굽기 3:11-16

 

계속해서 치유 시리즈 2번째로 열등감 콤플렉스 치유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주 우리가 전인 치유를 받으려면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영적 치유,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치유를 받으려면 하나님께 나와야 전인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나오면 열등감 콤플렉스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민족 지도자로 사용하실 때 모세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 콤플렉스를 치유하셔서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같은 사람도 열등감을 가진 것처럼 사람은 대부분 누구나 다 열등감을 가지고 삽니다. 막스웰 몰츠(Maxwell Maltz)는 현대인의 95%가 열등감의 희생양이 되어 고통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단지 5%의 사람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열등감에서 무관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2세에서 20세 사이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이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정신분석 학자인 에릭슨은 7-12사이에 열등감이 생기는데 중학교 상급반에서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고등학생들이 자살의 유혹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열등감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고 열등감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아들러는 열등과 열등감, 열등감 콤플렉스를 각각 다르게 설명합니다. 열등은 신체의 장애 등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사실 자체이고, 열등감은 객관적인 사실과 관계없이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며, 열등감 콤플렉스는 지나치게 과장된 열등감,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열등감이라고 말합니다. 열등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긍정적으로 처리하면 성장의 원천이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열등감 콤플렉스( inferiority complex)라는 것입니다. 학력이 낮으니까 남보다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열등감이 바람직하게 발현되는 것이지만, 학력 때문에 매사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열등감 콤플렉스에 걸린 것입니다. 승진 시험에 떨어진 것도, 남이 알아 주지 않는 것도,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도 학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열등감 콤플렉스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높은 사람을 알고 있다고, 백화점에 가서 직원이 조금 불친절하면 사장 나오라고 호통을 치는 것도 열등감 콤플렉스로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남보다 모든 것에 못하지 않은데도 모든 부분에 자기를 남과 비교해서 남보다 못하다, 남보다 열등하다고 스스로 열등 덩어리가 되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자아가 있는데 열등이라는 또 다른 자아가 열등의식이 되어 수시로 자신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남보다 못났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존재가치와 존재의미를 못 느끼고 나 같은 것은 죽어야 된다며 자기를 비하하고 학대한다는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닌데 키가 작으면 그 키로 열등감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된 서울 중랑구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키가 145㎝였는데 "키 때문에 놀림 받기 싫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고 뛰어 내렸답니다. 키로 인해 자신 안에 있는 열등감콤플렉스라는 작은 괴물이 결국 자신을 죽이게 만든 것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를 학대하고, 자기를 학대하면 남과 만나기를 꺼려 사람을 기피하고, 전화도 받지 않게 됩니다. 친구가 놀러 가자고 해도 머리가 아프다며 핑계를 대고 남들과 담을 쌓고 자폐증적 삶을 살게 됩니다. 자연히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고, 협동하지 못하며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이 원만하지 못합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지면 남들이 모여 얘기해도 ‘내 욕을 하는구나!’ 하면서 오해하며 증오감을 품기도 합니다. ‘나만 쏙 빼놓고 갈 수가 있나!’라며 남을 불신하고 미워하게 되고 각종 노이로제로 연결되고 더 심해지면 정신병으로 이행됩니다. 불안, 공포, 우울, 분노 등과 같은 정서 장애, 불면, 악몽 등과 같은 수면 장애, 신체 장애, 순환기 장애, 피부 및 근육 장애, 가정 폭력, 성폭력과 같은 행동 장애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하는 열등감 콤플렉스를 치유시켜 주십니까?

 

1. 하나님은 비교에 의한 열등감 콤플렉스를 하나님을 만나 성장의 동기로 사용케 함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단순하게 말해 하나님을 만나야 열등감 콤플렉스는 근원적으로 치유됩니다.

40세 애굽에서 살인하고 광야로 도망 나와 처가살이를 하면서 짐승을 기르며 40년 동안 살았던 모세에게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 나이 80세입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아들의 딸 결혼 다 시키고 손자 손녀 보는 재미에 사는 때입니다. 이제 인생을 정리해야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입니다. 그때 하나님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우리가 80세에 이런 말을 듣는다며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모세는 어떤 반응을 합니까? 11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첫 번 반응이 “내가 누구이게에 바로에게 가며”입니다. 이 말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80세가 노인이 된 모세의 겸손한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러 심리학의 틀로 보면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바로와 비교하는 모세의 열등감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40년 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마음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이기에”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모르는 자기 상실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이 불분명합니다. 나같은 것이 어떻게 바로에게 가겠냐는 것입니다. 자기비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감 넘쳤던 40대와 비교하여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릴 때 같이 자랐던 바로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한 때 자신도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나 형편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뒤떨어졌다고, 형편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응어리가 맺히는 것입니다. 자기 비하, 자기 정체성 상실, 자기 불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신은 백성을 인도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들 그들이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등감 콤플렉스입니다. 낮은 자긍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형성하는 원인은 크게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선천적인 요인으로는 체형이나 얼굴, 피부, 이목구비의 생김새 등에 대한 불만족이 포함되며 신체가 불완전하거나 병약하거나 할 때도 열등감이 생깁니다. 열등감을 형성하는 후천적 요인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열등감을 말하는데 심리적 요인, 가정 환경적 요인,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선천적 요인이든 후천적 요인이든 누군가 자신보다 잘 생겼고, 힘이 있고, 실력이 있고, 인기가 있고, 가정환경이 좋고 등과 같이 비교하여 생기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열등의식은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여 신체적, 지능적, 사회적인 지위, 언어나 복장, 가정환경 등이 자기가 타인보다도 뒤떨어져 있다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상대와 비교하여 부정적인 자아상(自我像)을 가지게 되면 열등감 콤플렉스로 이어지게 되어 자기 자신을 경멸하게 됩니다. 과거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바로와 비교하면 지금은 초라한 목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이 그 거대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이스라엘을 인도할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정보 폭발의 시대 sns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너무나도 손쉽게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그리고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진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게 있어”라고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강조하십니다. 너는 홀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호렙산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하나님은 모세야 모세야(4)라고 두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며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합니다. 그 때 모세가 질문을 합니다. 13절을 보세요.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물어 보면 무어이라고 대답할까를 물어 봅니다. 그 때 하나님은 14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모세를 지배하고 있는 비교의식을 창조의식으로 바꾸어 주는 장면입니다. 너는 바로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고 불러 사명감을 부여받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 콤플렉스를 통해 성장의 동기부여를 강력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누구이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으시며, 고난당하는 인간을 돌보시며, 하나님은 계속을 세워 인간의 삶에 참여하시며, 하나님은 새 삶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까 자꾸 인간만 보면서 비교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열등감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자기 가치 상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똑바로 알지 못하니까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잃어 버리리까 자신에게 집중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열등감의 노예가 되어 삽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인간의 본래 모습인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니까 한계점 앞에서 나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성취를 통해 자기가치와 존엄성을 찾으려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자신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게 하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우월해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열등감 콤플렉스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근원적으로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치유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열등감에서 근원적으로 치유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열등감 콤플렉스를 정확하게 그리고 근원적으로 치유받게 됩니다.

 

아들러는 열등감 콤플렉스를 치료책으로 5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용기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릴 때 상처를 분석하기 전에 우선 지금 인간관계를 잘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성욕을 성장의 동인으로 보며 모든 것을 과거 치유를 통해 치유하려고 했습니다. 아들러는 성욕이 아니라 열등감을 성장 동인으로 보며 스승인 프로이드에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셋째는 고립감에서 해방시켜 주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각종 모임에서 관계를 맺게하여 사회와 연대를 강화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환자의 존엄성을 높여주라는 것입니다. 아들러도 유대인이기 유대인이기 때문에 아마 성경을 잘 알았을 것이고 자신도 어릴 때부터 열등감에 시달린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답니다.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답니다. 구루병으로 다리가 휘었고, 4살까지 걷지 못했답니다. 키는 작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답니다. 학교 성적은 매우 낮았고 의사가 되려면 수학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매우 낮았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리를 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등감을 극복하고 그는 빈 대학 의대에 들어가 안과 의사가 되었고 정신의학을 공부하여 개인 심리학회 회장을 맡아 열등감 치료를 했습니다. 그가 평생 열등감에 대하여 연구하고, 사람의 열등감을 치유한 사람이기 때문에 상당이 효과적인 치유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치유 방법 12절 이하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아들러의 열등감 치유 방법 다섯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고립감에 빠지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고립감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바로는 너를 죽이려고 하고 백성들은 너를 배반하여 떠나 너 홀로 광야에 와 있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면 용기도 희망도 없어지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와서 모세가 백성을 애굽에서 반드시 인도하여 내어 호렙산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를 치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의사였던 아들러는 환자가 희망을 느끼면 병은 반 이상 낫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열등감 콤플렉스를 치료하기 위해 모세에게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로 자존감이 바닥 난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아들러의 치유방법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근원적으로 열등감을 치유받은 것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와 비교하는 모세에게 너는 바로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가 바로와 비교하여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민족을 해방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그림을 보여 주고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등감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성취하는데 사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계속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앞으로 이루겠다는 사명을 계속 거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4:11-12)” 그를 누가 지었는가를 확실하게 알려주면 그를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누구와 비교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장점뿐 약점까지를 다 수용하여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받으며 가치 있는 자임을 인정해야합니다. 자신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는 진화된 짐승이 아닙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물건이 아닙니다. 76억 중에 유일한 단 한 사람, 가장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천하를 주고고 바꿀 수 없는 주님의 피값으로 사시바 된 사람들입니다. 가장 고귀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걸작품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진 기드온을 보십시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이다”라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라”라고 말씀합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탈출하려면 하나님을 만나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비교 하며 스스로 자신을 과도하게 낮게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함으로 열등감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그리스도의 구족으로 말미암아 왕같은 제사장이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16:3)“

세상 사람 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합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습니다(사 43:1) 모태에서부터 우리를 불렀습니다(사44:2)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렘 31:3)"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내게 축복 더하노라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이에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딸아 내게 축복 더하노라"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순간순간 다가오는 열등감 콤플렉스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능력부족에 의한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진 자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어 치유시켜 줍니다.

모세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그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전능한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치유자 하나님이 함께 하여 모든 자원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말씀합니다. 15절에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조상을 예로 들어서 실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약속해 주시고 약속에 따라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사용하셨던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장로들에게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보증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해 주겠다고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과정을 다 알려 줍니다. 요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킬 터인데 너는 심부름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 주실 터이니 너는 순종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모세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바로 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계속 자신의 능력과 실패 경험에 근거하여 민족해방을 위해 나서지 못하겠다고 거절합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지면 갖가지 합리화를 시키고 핑계를 댑니다. 4장 10절을 보십시오.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말합니다.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을 비교하여 과소평가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말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을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하는 일들이 능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다 찾아 거절합니다. 4장 13절에서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장 11-12절을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이 그에게 능력 주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있느냐?"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 무엇이냐?" "나의 환경이 무엇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쓰시는 분이 누구냐?"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니까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수많은 적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다윗의 물매와 돌이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쓰임받으니까 삼갈의 소 모는 막대기가 블레셋 사람 600명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미모가 없고 능력이 없고 돈이 없다고 할지라도 있는 것 하나님이 쓰시면 거기에서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23)”

평생 질병이 있어고, 외모가 변변치 못했으며, 글은 잘 쓰는데 설교는 잘못한다고 조롱받은 바울이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그는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시 세계 선교를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비하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상태를 보며 '자기 모멸' 이나 '자기 정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열등감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자기 가치 상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기능이 없다고, 실력이 없다고,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둔하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래 너 가문 별 볼일 없어, 그래 너 능력 없어 그것 내가 너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너를 쓰는 것은 그렇게 때문에 쓰는 거야 능력 있는 내가 있지 않느냐? 능력 있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통하여 나의 일을 할 거야" 라고 말씀합니다. 보십시오. 무한하신 하나님이 우리 곁에 있고 내 손을 잡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은 약점으로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강점을 사용하여 치유해 주십니다.

열등감 콤플렉스로 계속 거절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마지막 말씀하십니까?

4장 14절을 보십시오. 형 아론을 이미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모세는 어릴 때 형 아론에 비해 말을 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 대신 형이 말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자를 미리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협력하는 것을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협력할 자라는 것입니다. 비록 형이지만 모세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하나님처럼 섬겨줄 형이라는 것입니다. 말못하는 것 신경쓰리 말라는 말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단점에 너무 집착하며 열등감 콤플렉스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여 네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통해 이적을 행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는 장점을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학자들은 열등감 치료를 위해서는 열등감을 자극하는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장점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열등감에 자극하는 그 분야가 앞으로 노력을 통해서 개선 가능한 것인지 분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있어 열등감에 시달리면 노력하여 수학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노력하면 되지만 수에 대한 장애가 있어 할 수 없다면 그것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이 잘하는 영어를 개발하라는 것입니다. 일본 야구선수 이치로는 고졸 학력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야구에 매진하여 엄청안 선수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아들러가 식물과 동물을 관찰해 보니까 동식물도 마이너스를 극복하기 위해 플러스를 만들어 내더라는 것입니다. 결핍이 생기거나 상처가 나면 두 세배로 플러스를 개발하는 성향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시각을 잃으면 후각이나 촉각이 아주 발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엄청난 발달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비교하며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만 보며 비교하며 절망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만 보며 비교합니다. 자신의 없는 것만 보며 비교합니다. 과도하게 약점, 부족함, 부재에 집중하고 민감합니다. 그래서 Allport는 열등감은 자신의 능력부족에서 오는 병적인 긴장 상태라고 합니다. Dion은 열등감을 자신의 능력의 한계로 보았습니다. Schultz는 열등감을 유아기 때 나타나는 부적절감, 부족감, 무능감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은 무력감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주변 상황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아들러는 이것을 개체발생학적인 열등감의 근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통제불능을 느끼게 되면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태도와 삶의 의지를 상실하게 되는 부정적 심리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낮은 자존감, 부정적 자아개념, 부정적 자기상이 생겨 모세처럼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지게 됩니다. 모세는 40년 전에 실패했습니다. 4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실패로 인해 자신을 할 수 없다는 열등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공 경험을 하게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 성공 경험을 하게 합니까? 4장 2절을 보십시오. 지팡입니다. 광야에서 짐승을 기를 때 사용하는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땅에 던지니까 뱀이 됩니다.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신비한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를 잡은 손을 품에 넣으니까 나병이 걸립니다. 다시 넣으니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그래도 주신 사명을 회피하는 모세에게 마지막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7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40년 동안 짐승을 길렀던 그의 강점 지팡이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가지지 말라고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 잃은 것 부족한 것 보고 남들 있는 것 잘난 것 보며 열등감 콤플렉스의 종이 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강점을 사용하면 오히려 열등감 콤플렉스는 자신의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됩니다. 아들러는 인간의 열등감 콤플렉스 처리에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육체적 결함에서 오는 열등감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만들어두고 그 약자에게 불만을 전위시켜 해소시킨다는 경우입니다. 관동 대지진 때 조선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시어머니에게 호통 맞은 며느리가 부엌 강아지 배때기를 차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 스스로를 보다 형편없게 소외 격하시켜 자학함으로써 열등감을 해소시키는 경우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를 통해 성장하려면 첫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우월에로의 추구를 통해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에들러는 인류의 모든 문화와 문명은 열등감의 산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생기는 근원을 세 가지- 기관성 열등, 응석받이, 무시-로

부터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기관의 손상이 오면 긍정적으로 처리하면 훌륭한 일을 성취하지만 부정적으로 처리하면 신경장애나 정신 장애, 부적응 행동, 범죄, 자살 등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괴테, 밀턴 등과 같이 시력이 나빠지자 정신력 연마에 힘을 써 위대한 작품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혹심한 청력장애 역시 그들의 열등감이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보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렌켈러는 3중고를 커쳤지만 훌륭한 극복하여 세계의 명사가 되었습니다.

역대 서양의 천재(天才) 78명에 대한 정신 분석을 한 독일학자 란게아이히바움은 그 중 83퍼센트가 육체의 결함이나 가족관계, 성(性)에 대한 콤플렉스의 소유자로 심하건 덜심하건 정신병 증세를 나타냈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시저, 잔다르크, 미켈란젤로, 루터, 파스칼, 모짜르트, 뉴턴, 루소, 베토벤, 괴테, 바이런, 칸트, 나폴레옹, 하이네, 쇼펜하워, 바그너, 비스마르크,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릴케 등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장점을 통해 열등감 콤플렉스를 성장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한때 유럽을 지배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키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큰일을 하기 위해 모스크바까지 쳐들어갔고, 중국의 등소평도 키 작은 열등감때문에 정반대로 권력에 대한 의지를 키워 나라를 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권력에의 의지가 강할뿐 아니라 남을 앞지르려 하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미워하다 보니 공격성이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엎고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은 한 손으로 우산을 바쳐들고 한 손으로 딸을 엎고 다녔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려고 하면 당시는 장애인을 차별하여 시험도 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오른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으니까 왼손을 개발하여 글씨를 썼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을 가고 영문학 교수가 되고 훌륭한 작가가 되어 감동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가였는데 시력이 나빠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악보는 물론 다른 악기 악보까지 다 외워 세계적인 지휘자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또한 체격이 왜소하고 눈이 나빴던 로널드 레이건은 연기로 열등의식을 이겨

내고 최고 통치자까지 지냈습니다. 오바마는 흑인에게도 백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열등의식 때문에 흑백 모두를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어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단점에 하나님의 은총의 햇볕을 쬐어 주면 성장하고 건강해 집니다 다윗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 아닙니다. 유부녀를 범했고 그의 남편을 살해하게 하였습니다. 솔로몬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 아닙니다. 자식들 교육 잘 시키지 못했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열등감으로 인생을 망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있는 강점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손에 열등적 요소가 있음에도 강점을 붙들고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고 스스로의 작음과 무가치성을 인식하고 십자가 앞에 열등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도, 아모스도, 기드온도, 모세도,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열등한 요소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진 강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능력 있게 쓰임 받았습니다. 감정이 쓰임받으면 약점도 간증거리,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약점의 노예가 되면 강점도 땅에 짓밟히고 수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다 갖추어져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사람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달란트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강점으로 주어진 달란트 개발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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