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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승리하시는 그리스도(계12:7-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831 추천수:5 220.120.123.244
2020-10-04 06:52:29

결국,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계 12:7-12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사는데도 참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님들이 하는 두 가지 공통된 질문이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이 고통이 계속될 것인가? 왜 이런 고통이 나에게 다가오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였습니다. 30살에 황제가 되었는데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신으로 숭배받기 위해 신전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게 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숭배의 대상으로 섬겨야 했던 기독교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한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황제가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재산을 빼앗고, 감옥에 가두고, 화형을 시키고, 사자들의 밥이 되게 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습니다. 이때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이때 성도들도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1. 언제까지 고난을 받습니까?

하나님은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의 기간, 핍박당하는 기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2장에 기록된 말씀도 그 기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얼마입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260일 동안입니다. 42개월입니다. 3년 반입니다.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기간입니다. 3년 6개월, 개월 수로 말하면 42개월, 날 수로 말하면 1260일입니다. 그 두 기간을 합하면 7년입니다. 7년 대환란이라고도 말합니다. 언젠가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현 우주와 역사의 결정적 종말이 최종 도래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 직전의 말세에 상당 기간 범우주적 대환난(大息難)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곱 인 재앙(6:1-8:5), 일곱 나팔 재앙(8:6-11:19), 일곱 대접 재앙 등 일련의 삼대 7중 재앙입니다. 심판과 구원의 기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 십사만 사천까지가 차기 까지 기간입니다. 이제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말씀하기 전에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결국, 승리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 가지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단으로부터 보호받는 전 삼 년 반 때의 교회의 모습(12:1-17),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는 후 삼 년 반 때의 교회의 모습(13:1-18), 하나님의 교회의 승리와 악인이 받을 심판의 모습(14:1-20)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광야를 통과하지만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어떻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는데 그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입니다. 그 아이가 누구 이겠습니까? 그 아이는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갔습니다. 금방 이미지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결국, 승리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1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를 이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10절에 나오는 참소하는 자, 사단을 말합니다. 결국 도미티아누스에게 핍박을 받고 있지만 성도들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결국, 이기게 됩니다.

그 기간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말하는 7이라는 수가 완전수를 말하기 때문에 그러나 오늘날 개인에게 적용해 보면 사람마다 고난의 기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과 핍박이 다가와도 그 고난과 핍박 앞에 무릎 꿇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성도들의 신앙이 무너지는 모습들을 봅니다. 이 정도로 그리스도와 결별하면 안 됩니다. 주님 품에서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웅은 전쟁을 통해 탄생합니다. 진짜 금인지 가짜인지는 용광로는 통과해 보아야 합니다. 진주는 수많은 고통을 먹고 탄생하는 것입니다. 찐짜 남편이 사랑하는지, 아내가 진짜 사랑하는 지는 고난을 통과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기록될 때 성도들이 당한 환난과 핍박, 고난과 회의라는 것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쉽게 신앙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자가 승리합니다. 끝을 보고 걸어야 합니다. 죽음 이후를 보고 살아야 합니다.

 

2. 그 기간 동안 고난을 받는데 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까?

사람이 고난받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죄와 잘못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욕심을 부려 형을 속이고 먹을 것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심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이 남의 아내를 겁탈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죽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탐욕으로 고난당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 사기를 당하고, 너무 욕심을 부리다 망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경우는 꼭 죄 때문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셉처럼 훈련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나사로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바울처럼 질병으로 겸손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의지하며 쓰임받게 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예수님 당시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처럼 모든 사람이 당하는 자연 재해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믿는 사람들이 고난받는 것을 영적 전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통증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진단해 보면 그 증상이 일어난 원인을 알려줍니다. 그런 것처럼 인간 세계에 일어나는 고통과 핍박, 환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습니다. 미가엘과 용과의 싸움입니다. 9,13절을 보십시오. 그것이 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은 무엇입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본래 천사였습니다. 마귀 사단이 된 것입니다. 옛 뱀, 마귀와 사단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사단이 되어 쫓기게 되었겠습니까? 그 답을 하나님은 이사야서 12장 12-14절에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하나님이 계시된 말씀을 통해 영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하다가 사단이 된 것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십시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가 바로 마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읽어 보십시오. 큰 붉은 머리가 일곱 뿔이 열 그리고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흉내 내는 그림 언어입니다. 영물이기 때문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때 그 사단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졸개들이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늘의 천사 1/3이 사단에게 가담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의 사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귀신들입니다. 사단은 귀신의 왕이과 귀신의 사단의 졸개들입니다.

환난과 핍박을 하는 도미티아누스 배후에 바로 이 사단과 귀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싸움은 단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단과이 싸움입니다. 사단의 최고의 전략을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입니다. 사단을 이야기 하면 무식하다고 미신적이라고 하게 합니다. 심지어는 설교자도 사단을 쓰면 무식한 설교자로 낙인찍게 합니다. 귀신이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귀신이 있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주 추석 명절을 보냈습니다. 왜 추석에 고향에 갑니까? 조상에게 제사드리기 위해섭니다. 조상들이 제삿밥을 먹지 않으면 절멸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는 새벽 닭이 울기 전에(닭이 울면 귀신이 가버리니까) 드리고, 죽은 조상이 와서 드실 수 있도록 밥에 수저를 꽂아두고 국에 밥을 말아둡니다. 함문이라하여 식사할 동안 문밖에 나와 기다리고 음복이라하여 조상님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라고 나누어 먹습니다. 귀신들린 현상을 보면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신병 환자와 귀신들린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반드시 그렇지 않지만 귀신들린 사람들은 눈이 빛이 납니다. 정신병 환자는 눈에 힘이 없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초인적인 힘이 나지만 정신병 환자는 나약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다중인격인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의 조정을 받으며 할아버지 소리했다 아기 소리했다 아주 다중인격적입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은 귀신만 떠나면 바로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만 정신병 환자들은 치료 기간이 오래걸립니다. 초능력적인 이런 현상을 보면 귀신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내림 받은 진짜 무당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사단과 귀신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신약 성경 27권 중에서 19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복음서에 27번이나 언급되어 있는데 그중 25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언급하셨습니다. 귀신은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라 실제적인 영물입니다. 사단은 고도한 전술은 영적 존재는 없다고 위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사단입니다. 사단의 고도의 전략은 자기 정체를 숨기는 것입니다.

엡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서 분명하게 영계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대표적인 교회 7교회를 보십시오. 그것을 계속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사단의 회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 2:9)"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계 2:24)"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3. 우리는 결국,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큰 소리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으로 이겼습니까? 어린양의 보혈입니다. 승리의 근거와 원천이 보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근거로 하여 원수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어떤 힘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참소하는 마귀와 대적하여 이기지 못합니다.

10절에 보십시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참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한다고 했습니다. 양심을 통해 아브라함을 참소했을 것입니다. “저 살기 위해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아먹은 인간이 뭐 믿음의 조상이냐?” 이삭을 참소합니다. “아버지의 유전과 환경을 그대로 벗어나지 못하며 사는 인간이 뭐 하나님의 아들이냐? 인간의 아들에 불과하지?” 야곱을 참소했을 것입니다. “너 같이 아내 4을 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느냐?” 다윗을 참소했을 것입니다. “남의 아내 겁탈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인 인간이 어떻게 성군이라고 할 수 있느냐?” 바울을 참소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마가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준 바나바와 어떻게 등돌릴 수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냐?” 인간은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이 참소를 무엇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종교 개혁자 루터에게 학생들이 찾아와서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사단의 시험과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응, 사단이 자주 자주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칠 때가 있다네. 그럴때마다 내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이 나가셔서 문을 열어 주신다네. 마귀가 ‘이 집에 루터가 살고 있지요?’라고 물어오면 예수님은 '과거에는 루터가 살았지, 그러나 지금은 그가 이사를 가고 내가 살고 있어'라고 대답하신다네. 그러면 마귀는 대경 실색해서 도망가 버린다네. 내가 시험을이기는 방법은 이것이라네.”라고 했다고 합니다.

 

창세가 3장 15절에서 예언한 것처럼 사단이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활하심으로 사단이 머리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이 받아야 할 죄를 사해 주신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피로 승리할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할 때 에덴동산에서 피흘림을 통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아브라함이 이삭을 살리게하는 어린 숫양으로 대신 드려 대속하게 했습니다(창22:13). 출애굽할 때 문설주에 뿌려진 어린양의 피(출 12:7)를 뿌려 죽지 않고 살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성찬식을 베풀면서 자신의 몸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9)"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우리가 죄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죄의 노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 "

보혈의 능력으로 원수간에 화목하여 인간관계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요일4:9).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

우리의 더러운 죄가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요일1:7).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입니다(롬5:9).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히13:12).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히10:19).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사단의 유혹과 핍박을 이기는 것입니다.

 

언제 완전히 멸해 버립니까? 계시록 20장 10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예수님의 재림 때 완전히 멸해 버립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단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기 전 계시록 마지막이 끝나기 3장 전에 역사에서 살아집니다.

 

오늘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단이 땅에 쫓겨난 지금도 두 날개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한 날개는 유혹의 날개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단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단과 귀신들이 땅에 와서 온천하를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광명의 천사로 유혹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사단은 속임수의 천재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살인자(요8:44)요, 거짓말쟁이요, 세상을 미혹하는 자요, 이간시키는 자요, 참소자요, 무너뜨리고 갈라지게 하는 자입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곳에는 분열과 비판, 찢어지고 갈라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단은 가정을 갈라놓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당을 짓게 만들고 형제와 형제 사이를 이간시켜서 미워하게 만들고 마침내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며 마지막엔 결국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악한 영입니다.

이 사단이 무엇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용으로 표현된 사단이 무엇을 합니까?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던 그 아이를 삼키려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해 놓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겠습니까? 갈다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아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탄은 자기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도 타락시키기 위해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마침내 타락시켰습니다(창세기3장). 그리고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머리를 밟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끝없이 대적합니다. 바로를 통하여 아이들을 죽입니다. 사악한 아달랴를 통하여 다윗의 후손들을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롯을 통해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다 역사 속에 있었던 일이지만 보이지 않은 영계의 전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합니까?

요한 일서 3장 8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에서는 "그를 없이 하기 위함이라"(히2:14)고 하였습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부터 예수님이 오셔서 마귀를 멸할 것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사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1-27절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들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라고 말했습니다.

 

사단은 오늘날 예수님의 피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거짓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모든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습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과학과 현대 문명으로 선전하여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보혈로만 극복됩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우리가 영생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요6:54-55).

 

죄를 극복하는 방법을 심리학을 통해 알려 주며 그리스도의 피는 필요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질병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 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 싸움에서 결국, 이기는 방법은 보혈입니다.

 

둘째는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깁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증거하는 복음의 진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승리한다는 말씀과 복음 증거로 승리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사단을 이깁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그것으로서 악의 세력과 영역을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마귀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주님의 복음을 할 수 있는대로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또한 복음을 증거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입증했습니다. 스데반도, 베드로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십자가의 보혈을 증거하는 것과 전도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전 목사님에게 한 젊은이가 이사 가서 어떤 교회에 가야할까을 물어보았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첫 째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교회여야 하고, 둘째는 전도하는 교회여야 하네. 만일 이 두 가지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셈이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지금은 어느 시대 입니까?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 알고 크게 분내어 우리에게 내려 왔다고 합니다. 그 마귀가 무엇을 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자를 박해합니다. 여자는 교회 공동체를 말합니다. 입에서 물을 강같이 토해 냅니다. 어떻게 하든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이 때 승리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또 다른 날개 하나는 핍박입니다. 베드로서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씀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 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 전신 갑주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단을 말씀을 무력화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류 구속을 위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합니다. 만나를 내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라는 시험을 합니다.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고 합니다.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처럼 과시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영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인척 이 땅을 절하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절을 받음으로 자신이 이 땅의 통치자임을 인정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을 모든 것을 물리쳤습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는 사단의 핍박이 폭력적이었습니다. 불태우고, 목을 베고, 칼로 찌르고, 사자들에게 찢기고 옥에 가두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핍박은 고상합니다. 말씀을 무력화시켜 버립니다. 성경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종교적 형식에 불과하고 상징적, 신화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고상하지 못하고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된 사회에서 사단의 고도화된 전략입니다. 사단은 말씀만 무력화시키면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말씀을 상품화합니다. 말씀을 유희화합니다. 말씀을 공연화해 버립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분리시켜 버립니다. 식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함으로 사단은 하나님의 일에 대항합니다(살전 2:16). 복음을 방해합니다(마 13:19; 고후 4:4). 사람을 사로잡고 속이며 악한 자를 함정에 빠뜨립니다(눅 22:3; 고후 4:4; 계 20:7,8, 딤전 3:7). 하나님의 성도들을 괴롭힙니다(욥 1:12). 시험합니다(살전 3:5). 복음의 진리에 어둡게 합니다(고후 4:4) 의심을 심어 줍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 이겼듯이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며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과 환란 속에서 “어제까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살지만 결국, 승리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고난과 환난 만은 이 땅에 살지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기 때문에 결국, 승리하신 그리스도을 믿고 결국,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즐겁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이며 의무입니다. 노년에 감옥에 가 있는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고 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도 승리하였고, 우리도 승리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1서 5:4)” 이 사실을 믿습니까?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4-39)”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이긴 축구 경기를 보듯, 이미 십자가에서 보혈로 승리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긴 싸움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과 핍박과 유혹과 고난과 질병이 있다고 해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즐거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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