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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신명기1:28-3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743 추천수:5 220.120.123.244
2020-07-21 04:23:38

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

신명기1:28-33

 

코로나 19로 지구촌은 일상의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외출전에는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써야하고, 직장인들은 채택 근무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음대로 뛰어 놀지 못하며, 신앙인들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지못하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고립과 거리두기가 미덕이 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다 잠재적 감염자로 인식되어 가볍게 헛기침만 하여도 주위 사람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눈초리를 받습니다. 이런 일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감염자 집단이 나타나면 마녀사냥하듯 분노하며 우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일기예보가 보도되듯 코로나 19 현황이 보도되고 있는데 어제까지(2020. 07.18. 09시 기준) 코로나 19에 걸린 사람이 총 13,908,427명이고 그 중 593,924 명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 확진자 13,711명이고 사망자 294명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누가 어디에서 걸릴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에 참여한 간호사 75% “감염 두려움 느껴”다고 합니다.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 무슨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속단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두려움으로 주신 사명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 땅 너희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준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 포기하지 말고 올라가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주저하면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코로나 19가 걸릴까 미리 상상하고 속단하면서 아이들 학교 보내기를 두려워하며 주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업하면서 거레처 가기를 두려워하고, 직장 가기를 두려워하고, 교회 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말씀을 해 주시고 있을 줄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코로나 19가 유행할 때 조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나친 두려움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공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상태공포(state of fear)'와 '특질공포(trait of fear)'입니다. 상태공포란 예상치 못한 일이 실제 발생하였을 때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이런 두려움은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조심하게 하여 많은 유익을 줍니다. 특질공포란 어떤 위험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위험이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여 두려워하는 공포입니다. 이것은 '실재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만약으로서의 어떤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란다는 두려움입니다. 생길 뻔한 일을 실제 발생한 상황보다 더 크게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상상 속의 가능성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극도로 제한합니다. 이런 두려움은 유익하지 못합니다. 불확실한 만큼 두려움도 커지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이런 공포에 대하여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세네카는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에서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수많은 사업의 번성을 저해하고, 수많은 예술과 문학의 탄생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재능의 숨통을 죄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이것들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상상 속의 불운과 실패의 포로가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포에 귀를 기울여 그 공포로 하여금 자신을 장악하게 만들면, 우습게도 공포는 자신이 그토록 피하려했던 상황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했습니다. 사단이 뿌려놓은 두려움의 씨앗이 마음에서 자라면 그 두려움은 다양한 방법으로 열매를 맺어 우리들을 괴롭힙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가나안 정복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크게 3 가지를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우리 각자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야 합니다(30).

3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가나안 토착민과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만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문제를 만나면 힘없는 자신만 보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상대를 과대 평가합니다(28). 당연히 자신들에 대하여서는 과소 평가합니다. 일을 시킨 분에 대하여 원망을 합니다(27).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주어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도 선악을 아는 과실을 따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허위의식을 심어 줍니다. 오늘날도 과학의 권위로, 학문의 권위로, 정치권력의 권위로, 통계의 권위로 얼마나 많은 허위 의식을 심어 주어 우리를 두렵게 하고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있습니까? 코로나 19 상황에서 신앙인에게 심어준 대표적 허위의식은 “교회에 가면 코로나 걸린다”는 것입니다. 정부와 언론이 그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가 가면 모두 코로나 걸립니까? 예배 드리면 모두 코로나 걸립니까? 성가대 하면 모두 코로나 걸립니까? 성경공부하면 모두 코로나 걸립니까? 물론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 드리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수많은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 교회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진실은 교회에 와서 코로나 걸린 것이 아니라 조심하지 않아서, 조심한다고 해도 불가항력적으로 걸리는 것입니다. 음식점에 간다고, 회사에 간다고, 학교에 간다고, 학원에 간다고 다 코로나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코로나 확진자 13,711 명 중에 신천지를 빼고는 교회에 와서, 성가대 해서, 소 모임해서 코로나 걸린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사탄은 허위의식을 심어 줌으로 믿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위의식으로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도”라는 말은 과거도 너희를 위해 싸웠다는 말입니다. ‘너희를 위하여’라고 번역한 ‘라켐’말은 70인역에서는 ‘메드 휘몬’ 즉 ‘너희와 함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이 함께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싸운다는 말은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전쟁에서 주도자가 되셔서 싸워주실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할 때도 그랬지만 임마누엘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이 실제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니까 과거의 예를 드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입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사내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어야 했고, 아무런 소유권도 없이 노예로 살던 그들을 하나님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기적같은 일로 그들을 출애굽시켰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 보십시오.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이 안 미친 곳 없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며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순간순간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 간증을 들어 보니까 자신은 교회를 건축하다 자살하려고 했다고 간증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목회만 그렇겠습니까?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는다면 세상에 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반드시 해야할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두려움 앞에 포기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위험부담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비난하는 사람은 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런 사람없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사약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비난받았습니다. 하나님도 욕하는 사람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면 다 비난하고 다 떠난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래 장로님으로 피택되신 태 장로님도 보면 우리 교회 처음 등록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회사가 부도 위기에서 존폐가 위태로울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장로님이 되셔서 사업을 잘 하시면 봉사하는 모습을 봅니다. 과거도 그렇게 함께했던 것처럼 미래도 함께 해 싸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고 먼저 가시면서 그들과 함께 하며 싸워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 앞에 행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걸어가야 할 길을 하나님이 친히 먼저 걸어가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길을 예비하시고 그 모든 장애를 친히 제거하시므로 이스라엘은 믿고 순종하여 쫓아가기만하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만 시켜 놓고 그들을 떠나시는 분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가기까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이만 낳게 하시고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창업만 해 놓고 떠나가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결혼만 시켜놓고 눈을 감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홀로 있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서운 산길도 홀로 가면 두렵지만 아버지 손을 잡고 가면 아이는 두렵지 않습니다. 험한 인생길 우리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언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신명기 31장 6절 말씀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8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것 전혀 없네”

 

2.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우리 각자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야 합니다(31).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신체적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신체적으로 자신에게 해가 될 상황이 올 것으로 생각하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죽을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을 밥으로 생각했는데 12정탐꾼은 그들은 자신들을 멸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 생각 정도가 아닙니다. 확증편향, 확신범이 된 것입니다. 소화가 잘 안되면 위암이라고 확신해 버리고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해석이 잘못되고 태도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는 것을 자신들을 멸하려고 보내는 것으로 오해하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모세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에서 그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억시켜 주면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죽음의 위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뒤쫓아 오는 애굽의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홍해의 위험으로 부터도 보호해 주었습니다. 물이 없어 죽음의 위기에 처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음의 위기에 처할 때 우리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죽지 않도록 해 주었습니다. 뜨거울 때는 구름기둥으로, 추울 때는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은 처음 가는 길이요 낯선 길이었습니다. 또한 언제 덮칠지 모르는 외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길도 우리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특별 보호 대상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다 보호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롯과 그의 가족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때 다 보호받은 것은 아닙니다. 노아와 그 가족입니다. 32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문제는 이 선언적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은 믿지 않았습니다. 선언적 말씀이 받아들이는 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단비를 내려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릇을 밖으로 내놓지도 않고 내 놓았다 할지라도 그릇의 뚜겅을 닫아 놓던지 엎어 놓으면 아무리 폭포수 같은 비를 내려 주어도 내 그릇에는 담기기 않습니다. 은혜를 주시되 조건적 은혜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라고 말씀합니다. 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신다는 것입니다.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찾을 수 있습니다.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열립니다. 조건적 은혜입니다. 히스기야가 벽에 얼굴을 대고 기도할 때 불치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한나가 그냥 하나님 은혜로 아이 줄 것이라고 상상만 하고 있다고 아이가 생긴 것이 아니라 술취한 여인처럼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은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떨고 있지말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일터에 나가 사업하고, 학교에 나가 공부할 때 보호의 은혜를 체험받게 되고 간증하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3장 12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신33:12)”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사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라(시37:28)”

주께로 피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외치며(시5:11)”

은혜를 주시되 조건적 은혜를 말씀합니다.

악한 자에게서, 시험에서,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병든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시고, 가난한 자, 헐벗고 굶주리고 멸시받는 자, 외로운 자 쫓기는 자, 범죄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구렁텅이에 감금하였습니다. 인신 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보내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우리 각자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야 합니다(33).

왜 사람들이 두려워합니까? 미래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알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요단을 하나님이 어떻게 건너게 하시고, 여리고 성을 어떤게 무너뜨릴 것을 알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19에 대하여 알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감기로 두려워하고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염 경로와 치료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공포, 불안에 쌓인 것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씩 더 알아갈 수록 우리의 공포와 불안도 줄어들 것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주도 면밀하게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들이 가야할 길을 가시면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장막칠 곳을 찾아 그 장막칠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결혼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집 없다고 두려워하면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학 진학의 꿈이 있는데 돈없다고 두려움으로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업하는데 사무실 없다고 두려워하며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자매를 위해 사무실을 확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해를 잘 하지 못합니다. 약속 믿고 기도했는데 안됩니다. 그러면 포기하기 쉽습니다. 지난 주에 들으니까 더 좋은 장소, 더 큰 곳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 저녁 어두울 때는 불로 환히 밝혀 인도하시고, 밝은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그렇게 불과 구름으로 갈길을 지시하시면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인도라는 말이 3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신명기 5장 6절을 같이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신 5:6)”

그러나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32절을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가데스바냐까지 그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게 하고 인도하셨는데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고 그 성은 크고 그들은 장대하다는 부정적인 정탐군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믿음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그렇게도 믿었던 사람도 조그마한 일이 발생하면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부부가 신뢰하고 살다가도 조그마한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면 앞으로 더 같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다가 조그마한 문제만 생기면 믿을 수없다고 신앙생활을 포기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십계명을 받으로 올라가 내려 오지 않자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출애굽기 32장 1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연약한 인간이 바로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출13:21)” 하셨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모세는 죽기 전에 신명기 9장에서 설교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디베랴와 맛사, 기브롯 하다아와에서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면서 모세가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만한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할 만한 능력이 없으신 분입니까?

아닙니다. 평생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신 다윗이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편)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왕이 되어서도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믿었습니다. 사울에게 죽임당할 위기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 앞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인도하는 방법을 따릅니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17년 만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됩니다. 우리가 이해 못할 상황을 만났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이 사실을 믿습니까?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네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인도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세상 새길 버리고 생명길을 찾았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하는 백성들을 보며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신명기 9장 29절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노라”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인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5확신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죄의 확신 그리고 인도의 확신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며 살지만 불확실한 미래 가운데서도 확실하고 세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도의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믿습니까?

 

늘 불확실한 미래 앞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이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하고 담대하게 인생의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뒤를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거할 거처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선택해야 할 것 지시해 주십니다. 보이지 않을 때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고, 너무 밝아, 너무 좋은 것이 많아, 너무 분간하기 힘들어 어떤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인지 모를 때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주어진 약속의 땅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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