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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라(2) 너 있는 곳에서 바라보라(창13:14-1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7 추천수:0 220.120.123.244
2020-03-08 09:36:26

바라보라(2) 너 있는 곳에서 바라보라

창13:14-17

 

신앙생활은 크게 하나님과 관계, 인간과 관계, 일과의 관계 이 세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월에는 ‘일어나라’는 주제로, 2월을 ‘빛을 발하라’는 주제로, 3월에 들어와서 ‘바라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 믿음 생활에 승리하려면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믿음생활 잘하려면, 신앙생활에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성공하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단의 교주를 바라 보거나, 인간을 바라보거나, 돈과 명예, 권세, 쾌락을 바라보면 하나님과 관계는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믿음 생활의 합격점수를 맞으려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일과의 관계에서 사역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 살펴 봄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 19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제 자료를 보니까 총환자가 6767명이고 사망자는 44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전쟁을 하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생물은 현재까지 알려진 종류만 10만 종이고, 알려지지 않는 종류까지 하면 5백만종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생물 간의 크이차이도 큰 것과 작은 것이 10억배 차이가 납니다. 얼마나 많은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 무게의 6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개미 1마리에 10억개의 미생물이 있고, 피부 1㎠에 100마리, 우리 몸에 100조개, 토양 1g에 중국인 인구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 미생물은 세균류와 곰팡이류, 효모류, 리케차, 스피로헤타, 바이러스 등이 있습니다. 이런 미생물 가운데는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미생물도 있지만 사람에게 병을 주는 미생물도 있습니다. 가장 고약한 미생물은 사람에게 전염병을 가져다 주는 미생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전쟁을 하며 인류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생물과 보이지 않는 생물은 100억대 1입니다. 이 미생물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인구1/3(7500만명) 사망했고, 스페인 독감(1918-1919)으로 2천-5천만 사망했으며, 아시아 콜레라(1816-1826)로 인도와 중국에서 1천 5백만이 사망했습니다. 165-180년에는 로마제국에서 천연두로 500만명이 사망했고, 1918-1922년 러시아 티푸스로 300만명이 사망했으며, 1865-1917년 아시아 대역병으로 200만명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마다 전염병과 전쟁에서 인간의 생명을 살려야 하겠다는 소명감,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인류는 전염병과 전쟁에서 이기고 있습니다. 파스퇴르는 소명의 사람이었습니다. 파스퇴르는 험난한 세균과의 전쟁 한복판에서 이겨 인류에게 다양하고 광범위한 혜택을 가져다준 세균학과 면역학의 아버지라고 칭함을 받고 있습니다. 파스퇴르 시대만해도 사람들은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질병은 나쁜 공기나 체질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살려야 하겠다는 소명 때문에 뇌졸중에 걸려 몸이 마비되었지만 광견병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미친개에게 물린 9살 소녀에게 주사약을 투입한다는 것은 생체실험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대단한 도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인으로 믿음을 가지고 실행하여 성공하여 그를 살렸습니다. 천연두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때 제너는 천연두 백신을 개발하여 인류의 생명을 살렸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 플레밍은 기적의 치료제 페니실린을 개발하여 세균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아마비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1952년은 한해 미국에서만 58,000건의 소아마비가 보고되었고 그 중 3,145명이 사망하였으며 21,269명이 마비가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조너스 솔크는 매일 16시간씩 휴일 없이 개발에 몰입하여 소아마비백신을 개발하였습니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신앙의 사람 그는 소명으로 일하여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라로 말하고 무료로 백신을 풀어 수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19로 대구 시민이 고통받을 때 대구동산병원이 코로나 19 지역 거점병원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불이익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장은 “120년전 의료봉사로 시작된 동산병원이 지금까지 지역민들과 함께 희로애락하며 성장 발전해 온 만큼, 현재 우리 지역에 불어 닥친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자 봉사의 마음으로 대구동산병원을 지역거점병원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 마스크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처럼 이익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소명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한 평생 살면서 어떤 일을 하고 사는데 일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려면 소명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평생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갈데아 우르에서 소명을 주고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어떤 소명입니까? 12장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금 아들이 없지만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땅이 없지만 살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을 잘 몰랐겠지만 이런 소명은 궁극적으로는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를 탄생시켜 인류를 구속할 하나님 나라의 소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하게 만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입니다. 그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가나안 땅에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원하는 땅을 차지하라고 합니다. 롯이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차지하고 떠났습니다. 아들같이 여긴 조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처럼 생각하며 살아온 조카입니다. 아마 배신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괘씸했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하여 실망했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원대한 소명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너 있는 곳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서남북 원대한 세상을 소명으로 품으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같고 애굽 같은 그곳이 전부가 아니니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장사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소명을 주신 하나님, 광야의 도망자로 살아가는 모세를 불러 민족 구원의 소명을 주신 하나님, 갈릴리 어부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의 소명을 주신 하나님, 혈기 방자한 바울을 불러 세계 복음화의 소명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문제가 다가오면 자꾸 문제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회피하지 말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숙제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제 속에서 우리에게 소명을 주십니다. 소명의 눈을 뜨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만 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를 이 땅에서 부른 것이 아닙니다. 소명의 눈을 뜨고 각자 주어진 소명을 이루며 살게 하기 위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는 80세에 불러 소명을 바라보게 했고, 예레미야를 불러 멸망해 가는 민족을 살리는 소명을 주었으며, 나라를 잃고 꿈이 없는 백성에게 에스겔을 불러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느헤미야를 불러 무너진 성벽 재건의 소명을 주었고, 불신의 암흑 속에서 진리를 잃은 백성에게 엘리야를 불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소명을 주어 사용하였습니다. 시대마다 사사들, 다니엘, 에스더, 모르더게, 12제자, 바울, 바나바 등 수많은 사람을 불러 소명을 주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했습니다.

소명, 비전, 사명,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학교생활도, 직장생활도, 인생도 많은 차이가 납니다.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는 1953년 '목표를 적어두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였답니다. 졸업생들에게 20년 후의 목표에 대해 자세히 정리해 제출하라고 했답니다. 단,이 과제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알렸답니다. 학생 중 97%는 과제를 무시하거나 대중 써서 제출했답니다. 성의 있게 과제를 제출한 학생은 3%에 그쳤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난 1973년,1953년 졸업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추적 조사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답니다. 20년 후의 인생 목표를 제대로 써서 제출한 3%의 졸업생들이 나머지 97%의 졸업생을 전부 합친 것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것, 목표, 비전,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연구소는 어느 사회에서나 65세 이상의 정년 퇴직자들이 3: 10: 60: 27 이라는 비율로 경제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3%는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10%는 퇴직 전과 별 차이 없는 경제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60%는 간신히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고, 27%는 자선 단체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3%는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목표를 글로 적어놓고 수시로 꺼내 읽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10%는 목표는 있었으되 글로 적고 수치로 꺼내 읽는 습관은 갖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60%는 목표가 수시로 바뀐 사람들이었고, 27%는 목표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2. 주신 소명을 이루려면 주신 소명에 대하여 확신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두 가지 약속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첫째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5,17하). 보이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땅이 아닙니다. 지금 볼 수 있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소명으로 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자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에게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이 아닙니다. 영원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6).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손을 땅의 띠끌 처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너무나 허황된 것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 아들 하나 없는데 어떻게 티끌같이 많아질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 너를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주인공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테니 확신만 하라는 것입니다. 허황된 소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소명은 아브라함에게 계속 주어집니다(창15:5; 22:17) 결국, 하나님은 성취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세상이었던 솔로몬 시대 때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왕상4: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 말씀을 보면 이 약속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믿음의 후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갈 3:7)"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히 성취하고 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잘 믿지 못합니다. 창17:17을 보십시오. 웃습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고 이성적 사유를 신앙적 사유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롯의 사위도 소돔 고모라 멸망 때 하나님의 약속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도 아브라함도 윤리적으로 보면 그렇게 탁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꼭 이루어 나가십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어렵다고 절망하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것은 창15:16절에 아브라함의 자손 4대 만에 있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430년 만에서 모세를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출2:23-25).

바벨론 포로 생활도 이미 예레미야를 통하여 70년 만에 회복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것 역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을 망하게 하여 바사 왕 고레스를 세웁니다(스가랴1:2).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습니다. 역사를 바꾸어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75세에 아들을 낳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25년 후 그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29)"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오대 확신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확신, 인도에 대한 확신, 용서에 대한 확신, 승리에 대해 확신을 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소망 나는 부족하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확신을 해야 합니다. 세계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에 자녀를 보낸 8명의 부모의 이야기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하버드 부모들의 자녀 교육법"입니다.

그중 두 아이를 하버드 대학에 입학시킨 성호영 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수학 교사로 재직하였는데 컴퓨터 공부를 더 심도 있게 하고 싶어 미국 유학을 떠났답니다. 생계를 위해 아내와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지인의 제의로 세탁소를 열었답니다.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임신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큰딸은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라고 걱정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동생들도 덩달아 울었고 저자도 순간적으로 '아기는 누가 돌보지, 가게 일손은 누가 덜어주지.'라는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의사는 "지금 나이가 좀 많아서 정상아라고 보장은 못 합니다. 건강도 안 좋은데 뱃속 아이를 검사해보고 수술합시다."라고 권유했답니다. 셋째를 낳은 지 10년이나 지났고 더군다나 한국에서 남성 불임수술을 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아내가 구역질이 나고 속이 거북하고 소화도 안 된다고 하여 암이 아닌지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증거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유학 생활이 너무 힘들어 어처구니없는 불평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십니까? 만약 살아 계시다면 아내에게 아기를 갖게 해보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존재를 믿겠습니다."

도저히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내뱉은 망령된 기도였는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아내의 임신이 사실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고민을 뒤로하고 축복의 선물로 받아들였답니다. 영주권 인터뷰를 하는데 까다롭기가 유명한 이민인터뷰 담당관이 배가 남산만 한 아내에게 출산 예정일을 묻고 자신도 두 달 후면 아빠가 된다고 기뻐하며 쉽게 영주권을 주었답니다. 붕어빵처럼 꼭 닮은 딸은 결국 언니를 따라 하버드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자기 아들도 목사가 되었고 자신도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 하시길 바랍니다. 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아니라 기적의 문입니다. "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91:15)"

 

3.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소망을 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일어나 두루 다녀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는 것입니다. 먼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그 현장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심적 상태는 어떻겠습니까? 무척이나 낙심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도 조카를 사랑했는데 전혀 자신을 고려하지 않고 싸우고 이익을 챙겨 떠나버리는 보면서 배신감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의 한계를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낙심하지 않았겠습니까? 함께 잘살아 보려고 했는데 이제 홀로 남았습니다. 외롭지 않겠습니까? 좀 더 추론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뒤를 돌아보며 절망하게 하고 성령님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게 합니다. 과거는 잘했건 잘못했건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잘못한 과거를 생각하면 위축이 되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잘한 일을 자꾸 생각하면 교만과 자만에 빠져 실패하기 쉽습니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처칠 경, 클라라바턴(미국 간호사로서 1882년 미국 적십자사 창립), 헬렌 켈러, 마하트마 간디, 테레사 수녀,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지도자 3백 명을 분석해본 결과 그들 중 25%는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 중 50%는 유년 시절에 학대를 받았거나 빈곤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닐 루덴스타인의 아버지는 교도소 경비원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종업원이었으나 하버드 대학의 26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행하리니사 43:18"

그 땅을 종횡으로 행하여 보라고 말씀합니다. 벤처 정신, 모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 땅이란 네가 서 있는 땅, 네가 소명을 품은 땅입니다. 소명을 행하여 종횡으로 과감히 행해 보라는 것입니다. 일을 추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사회는 창의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험 정신을 가지고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도 벤처 정신을 가졌습니다. 모세도 벤처 정신을 가졌습니다. 여호수아도 벤처 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 나아갈 때 벤처 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듣고 한 첫 번째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즉시 행합니다(18). 계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막을 옮기고,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에'라는 말은 그리고 즉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은 바로 직후 즉각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소망을 품었다고 즉각 무엇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상수리 수풀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실천하였습니다. 약속을 확신하면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요단강을 건너라고 할 때 법궤를 메고 찰랑거리는 요단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홍해를 가르기 위해 지팡이를 내밀어야 합니다. 문둥병을 낳기 위해 요단강 물에 들어가라고 할 때 요단강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 합니다. 실제의 삶의 현장에서 소명 있는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실행력이 경쟁력입니다.

미국 거부 깁슨(Gibson) 이야기입니다. 물방앗간의 심부름꾼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품고 일해 산림 20만 에이커(2억 4488만평) 철도 280마일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부자가 되었답니다. 어느날 기자가 성공 비결을 물었답니다. 신앙의 사람인 그는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세가지를 말했답니다. 그러자 기자는 "그거야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라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깁슨은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못 됩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이사야 1:19)”

다윗을 보십시오. 당시 최강대국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골리앗이란 거구의 장수 앞에서 백성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실행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5-47)"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부하 한 사람을 보십시오.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범했을 때, 블레셋 군대는 전차 3만, 기마병이 육천, 보병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백성들은 패배감과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절망하였습니다. 이 때 요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라고 부하 한 명과 함께 적진에 들어갑니다. 순종이 기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어떤 사람은 이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의사로 소명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신천지같은 이단들을 박멸하기 위해 위대한 신학자로서 소명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이런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소명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 그 문제 속에서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습니다. 소명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잃어버린 땅만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동서남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됩니다. 일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려면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을 바라보고 그 소명을 이루시기 위해 눈을 들어 소명을 바라보는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신 소명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순종함으로 당장 실행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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