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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자(1) 예수님을 바라보자(히12: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04 추천수:0 220.120.123.244
2020-03-01 13:58:59

바라보자(1) 예수님을 바라보자

히12:1-2

 

오늘은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일본 압제로부터 독립을 외첬던 3,1절 101주년 되는 날입니다. 삼일절 하면 생각나는 분이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교한 유관순 열사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기독교 신자였던 할아버지와 숙부로 인해 일찍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하였고 고등과 1학년 3학기 때인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이어 4월 1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미리 만들어 온 태극기를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시위 대열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 행진하였습니다. 일제의 총칼에 의해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였습니다. 그녀는 숨진 아버지의 시신을 업고 파견소로 몰려가 강력히 항의하였지만 이 독립만세운동 주모자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습니다. 17살 나이로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머리에 콜타르를 발라 가발 벗기듯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내고, 벤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았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좁은 상자 안에 3일간 감금하고, 입과 호수를 연결하여 물 주입하고, 달군 쇠로 몸을 지지고, 다른 독립 열사들 앞에서 칼로 양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합니다. 상체를 벗겨 공중에 매달고 밤낮없이 채찍으로 후려칠 뿐 아니라 많은 일본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개 줄을 묶은 채 네발로 기어가게 했다고 합니다. 헝겊을 얼굴에 덮고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하고, 전기고문은 물론 관에 넣고 물을 부어 질식시키도 하였답니다. 결국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오 하나님, 이제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원수 왜(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신앙의 사람 도마 안중근 의사도 그 모지 고문 앞에 굴복하지 않고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분들은 이땅의 짧은 인생이었지만 인생 경주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1절 말씀을 보면 신앙생활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바라보는 결승점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 누구를 바라보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시선을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는 신천지가 거짓으로 교인 수를 알렸다고 고발했습니다. 신천지는 이긴자, 보혜사라는 그들의 교주 이만희에게 초점이 맞추고 보혜사 이만희를 보라고 합니다. 이만희가 말씀의 약속을 대언하는 대언자라를 것입니다. 이만희가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실상으로서의 유일한 이긴자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이만희를 보고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만희는 죽습니다.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나에게 못 해주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늘 변하는 세상의 철학과 사건을 바라보면 믿음의 경주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운동선수가 승리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승점을 향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승리하려면 반드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에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믿음의 주입니다. 주(아르케곤)라는 말은 "시작자, 근원자, 창조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게 하시는 이입니다. "온전케(텔레이오텐)"라는 말은 "완전한 자, 성취자"라는 말입니다. 즉 믿음은 예수님에게서 시작되고 완성되었다는 말입니다.

"바라보자(아포론테스)"라는 말은 "주목하다 시선을 고정하다"라는 말입니다. 문법적으로 현재분사입니다. 믿음의 창조자이시고 완성자이신 예수님께 계속 지속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주목하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의 최대 전략을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리에 다른 것을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익이 될 수도 있고, 편리가 될 수도 있고,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돈이나 명예, 권력, 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목표가 되면 신앙생활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송창식씨가 노래하지 않아요.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고래사냥을 해보아도 남는 것은 허무만 남는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통해 알려 주고 있지 않아요. 큰 청새치를 잡지만 배가 그 고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배를 끌어갑니다. 힘겹게 고기를 매달고 높은 가격에 팔릴 기대를 하고 항구로 돌아오지만 상어들이 다 먹어 버리고 뼈만 남지 않아요. 고기에 시선을 집중했지만 허무만 남는 것입니다. 명예와 부를 얻었지만, 헤밍웨이는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펑 뚫린 가슴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결국 인생의 끝자락엔 공허와 후회가 남는 것입니다. 하비콕스(Harvey Cox)의 저서 '예수 하버드에 오다(When Jesus Came to Havard)'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버드는 본래 목사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대학이었으나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점점 종교적 색채를 벗어버렸습니다. 세계적 명문대학의 자리에 올랐지만 커리큘럼이나 카탈로그에서 예수 이름을 빼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이 온갖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80년대부터 하버드 대학에 윤리적 사유(Moral Reasoning)라는 과목을 신설하게 되었고 하비콕스가 강의하였습니다. 그때 강의 하였던 내용이 바로 <예수 하버드에 오다>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예수 없는 하버드가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니 다시 예수를 좇아가야 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한 것입니다. 역사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이 빠져 버리면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합니다. 기름 없는 차에 불과합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때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가시밭의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수시로 변하는 세상에 너무 시선을 집중하면 괴롭고 허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간사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에게 너무 시선을 집중하면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연약한 자신에게 너무 시선을 집중하면 의기소침하고 욕심의 노예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 바라보며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 바라보며 허무에 사로잡히지 말고 참 만족과 안식을 주시는 주님께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연약한 나를 바라보지 않고 강하신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변질되기 쉬운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완전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넘어지기 쉬운 나를 바라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폭풍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폭풍을 바라보았을 때 빠지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지 않으면 결국 두려워하고 우리가 고정한 것의 노예가 되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합니다. 못질하면서 망치로 손을 치는 사람은 못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만 바라보고 달리는데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리는데 방해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경주에서 이기려면 벗어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2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무거운 것(오그콘)"은 경주하는데 방해되는 외부적 요인으로 지나친 몸무게나 귀찮은 짐 보따리, 경주를 방해하는 옷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며 예수님 앞으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외적인 장애물은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핍박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며 예수님 앞으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내적인 장애물은 광명의 천사로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죄가 되고 그 죄는 신앙의 경주를 실패하게 합니다. 핍박은 달리지 못하도록 붙드는 것입니다. 유혹은 잘 달릴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것같은데 방향을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는 죄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 "얽매이기 쉬운"이라는 말은 "쉽게 얽어매는", "달라붙는"이라는 말입니다. 경주를 방해하는 내부적인 요인으로 죄는 우리를 쉽게 얽어맵니다. 단단히 밀착하여 옭아맵니다. 죄는 믿음의 경주에서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쉽게 달라붙어 옭아매는 것입니다. 죄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 쉽게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인마다 빠지기 쉬운 죄가 있습니다. 성격적 결함이 있습니다. 쉬게 저지르는 죄가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습관이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방해되는 생각, 성질, 행동, 습관 등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젊은이에게 쾌락이 될 수 있습니다. 중년에게는 명예와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노년에게는 돈에 대한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믿음의 경주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달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이런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신앙경주의 실패자가 되게 합니다.

이번 코로나 19를 확산시키는데 매개체 역할을 한 사람들은 신천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며 포교하는 것입니다. 포교를 위하여 거짓말을 밥을 먹듯 하면 그것을 모략이라고 합리화합니다. 그들은 8단계 섭외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 사람이 속을 수밖에 없도록 포교를 합니다. 먼저 포교 대상을 정하면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이름, 나이, 주소, 직업, 전화번호, 전공, 군대, 환경, 경제, 건강, 학습능력, 인성, 신신, 신앙, 관심사 등 그 사람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합니다. 2단계는 섭외 활동입니다. 우연을 가장하여 만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열매를 선별합니다. 그들에게 이용거리가 되지 않는 고령자, 환자, 저소득자 등은 제외시킵니다. 네 번째 단계는 인간적 신뢰를 형성합니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접근합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유형별 상태를 진단합니다. 신천지 신도 3-7명이 대상자를 분석한 후 전략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단계는 신앙우위 선점입니다. 중보기도를 해주고, 꿈 이야기로 영적 우위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유형별 맞춤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때 그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 가짜 선교사, 가짜 교수, 가짜 전문가, 가짜 목사 등을 투입니다. 여덟 번째 단계로 복음방에 등록을 시킵니다. 이 과정이 다 포교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로 치밀하게 짜서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속여 포교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한 명 속이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너무나 자신에게 잘 해주며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자신을 속이면 대부분 사람들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복음방에서 성경공부를 시키며 성경공부를 누설하면 마귀가 틈탄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합니다. 같이 온 사람들은 100% 신천지인데 본인만 모릅니다. 사실 바보가 된 것입니다. 복음방 교육이 끝나면 센터에서 월 화 목 금 일주일에 4회씩 초중고급반 6-8개월 교육을 시킵니다. 학원구조로 큰 칠판을 가져다 놓고 비유풀이, 배도, 멸망, 구원, 세례요한 교리를 공부시킵니다. 결국, 교주 이만희가 구원자라를 것입니다. 이때 운동권 아이들이 이념교육을 시켜 세뇌를 시키듯 교리 세뇌교육을 시켜 교리 중독이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시험을 치루게 하여 합격한 사람을 유월을 시켜 신천지 신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면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철저할 패배자가 되어 버립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이 무것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벗어 던지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 증인들이 11장에 나오는 믿음으로 승리한 신앙의 선조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24-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33-3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앙의 경주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렇게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에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인내로서 달려가야 합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경주하기는 경주하되 무엇으로 경주하라고 말씀합니까? "인내"로써 경주하라고 말씀합니다. "인내를 통해, 인내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인내는 완주의 필수요소입니다.

이 히브리서가 기록될 때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심각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유대교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 오랫동안 믿었던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치광이 같은 네로가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고문을 당했습니다. 사자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십자가형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심한 박해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10:33-34; 11:36-38).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히10:32-34) 그 때 믿음이 확실한 사람들은 기쁨으로 그 고난을 감수(10:34)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계속되자(12:4) 교회 내의 신앙인들이 신앙이 흔들렸습니다. 불신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3:12)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말씀의 초보에 머물렀습니다(5:12). 공적 예배에 잘 모이지 않았습니다(10:25).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12:12). 불건전한 교리에 현혹되었습니다(13:9) 전반적으로 신앙이 침체되었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도 있었고 유대교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 끝까지 완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참고 견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려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참으신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여기서 "참는 것"은 한 번 참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으로 제1 완료 분사로 죄인들에 의한 지속적인 적대 행위를 계속 참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참았습니까?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입니다. "거역한 일(안틸로기안)"이란 반박하고, 논쟁하고, 적의를 가지고 적대행위를 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대적자들이 예수님께 행한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무엇을 참았습니까?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침을 뱉고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 와보라고 조롱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계속 쫓아다니며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하고, 자칭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들도 미쳤다고 하면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인간들에게 수없는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자존심이 조금만 상해도 참지 못합니다. 조금만 자존심 상해도, 조금만 좋지 않은 말을 들어도 원수 시 하고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떠나버리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완전히 자존심이 뭉개지고, 옷을 벗김 당하는 수치를 당하고 만인들 앞에서 조롱을 당했는데도 참고 견디며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완주하였습니다. 채찍을 통해 주어진 가혹하고 잔인한 고통을 참았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옆구리에 창이 찍히는 고통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십자가의 조롱과 멸시와 수모를 참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권위가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거부하고 반항하는 것을 참았습니다. 모욕을 당할 때 끝까지 참고 구속사를 완주하였습니다. 생각하라는 말은 비교해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할 때 예수님이 당한 일을 비교하며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참으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지상에서 얻는 기쁨 대신에 하늘에서 얻을 더 큰 기쁨을 생각하고 십자가의 수치를 개의치 않고 인내했다는 말씀입니다. 개의치 않았다는 말은 무시했다는 말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피곤하여 낙심치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낙심의 의미는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진다" 입니다. 낙심에 감염되면 풀이 눕는 것처럼 희망을 잃어 버리고 무기력해집니다.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고 친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자 낙심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배교하는 것입니다. 낙심이라는 것은 결국 중도에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피곤하게 하는 것은 결국 중도에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끝까지 가지 못하게 낙심시키고 지치게 만듭니다.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사람을 보고 낙심시킵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사장으로, 직원으로 지치고 낙심을 시키게 만듭니다. 사탄이 쓰는 전략입니다.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할 때 쉽게 지쳐 낙심하고 신앙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어떤 핍박과 고난도 참고 견디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여야 하겠습니다.

"1. 구주를 생간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2.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3. 참 회개 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4.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5.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녀를 잘 교육시켜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진급하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하고,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인내입니다. 모세 40년을 인내하였습니다. 다윗 17년을 인내하였습니다. 아브라함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주민 90%이상이 예수님을 믿는 섬이 있습니다. 천사의 섬이라 불리워지는 전남에 있는 증도입니다. 현재 22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지만 11개의 교회가 세워져있답니다. 이 작은 섬에서 김준곤 목사, 정태기 목사, 이만신 목사, 이성봉 목사 등 100여명의 목회자가 배출되었답니다. 그 씨앗은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님이라고 합니다. 17살 나이 결혼했지만 남편은 신혼초부터 집을 나가 소실을 얻어 딴 살림을 차렸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만 생각하며 모진 고난을 다 참고 수많은 유혹을 이기고 예수님 전했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일제의 강점기 때도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복음을 전했답니다. 얼마나 전도를 했는지 고무신이 1년 동안 무려 아홉켤레나 닳아 없어졌답니다. 만 40세에 성경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무려 11개 교회를 세워 오늘까지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때로는 의사로, 때로는 간호사로, 때로는 산파로, 때로는 유모로, 때로는 우편배달부로 교인들을 위해 무엇이든 봉사하고 심부름 하는 역할을 도맡았답니다. 6.25 때 문 전도사님은 공산당에 채포되었답니다. 죄목은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었답니다. 전도사님은 순교의 현장에서 수양딸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달라고 부탁한 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총탄세례를 받고 59세에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영광 염산교회는 6.25때 공산당에 의해 77명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야월교회는 전교인이 65명이 순교당했습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변절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였습니다. 공산당들이 예배당에 불을 질러도 새끼줄로 온 몸을 꽁꽁 묶고, 돌맹이를 목에 메달아 교회 앞에 있는 바닷가로 밀어 넣어도 아버지와 아들이, 남편과 아내가 서로 격려하며 변절하지 않고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전교인 65명이 수장되거나 몰매를 맞고 대창에 찔려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끝까지 '주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전도하며 찬송을 부르며 순교했다고 합니다.

 

인내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화입니다. 영원한 승리입니다. 영원한 영광을 차지한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당하고 순교의 자리를 걸어가면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3.1절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이 땅 영적 전쟁터에는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패배자, 배신자,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단순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은 믿음의 경주에서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나 고난이 있다하여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도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바라보면 넉넉히 인내의 강을 건너가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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