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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밝힘(4) 빛의 자녀가 누려야 할 것 3가지(사9:1-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5 추천수:0 220.120.123.244
2020-02-22 12:29:13

빛 밝힘(4) 빛의 자녀가 누려야 할 것 3가지

사9:1-7

 

앞으로 코로나 19 사태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미래 10분만 볼 수 있다면 천하를 호령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700여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700여년 후에 위대한 왕이 태어날 것을 예언합니다. 한 아이로 태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6절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아이로 태어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깨에 정사를 맨 통치자로 나타났습니다. 이름이 기묘자(펠레)라고 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신비로우신 분, 설명할 수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모사(요에쯔)라고 합니다. 조언하는 참모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분별력을 가지고 백성의 이익을 위해 조언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엘 기보르)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몸에서 난 아기는 아기인데 보통 아이라 아니라 신적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 이름은 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존하신 아버지(에비 아드)라고 합니다. 아버지처럼 자신의 백성들에게 수호하는 부양자라는 말입니다. 평강의 왕이라고 합니다. 백성에게 평화를 보장해 주는 왕이라는 말입니다. 7절에 보니 그 왕은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는 왕입니다. 이 왕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이사야는 정확히 누구를 말씀했겠습니까? 사7:14절을 찾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바로 그분이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

오늘 성경은 인류의 구원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을 말씀합니다. 죄와 절망과 죽음의 흑암에 빠져 신음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 살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통, 흑암, 사망, 멍에, 채찍, 압제, 피......" 이런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제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화, 큰 빛, 창성, 즐거움, 평강, 공평, 정의"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인생길이 캄캄해도 빛되신 주님이 빛을 비추시면 길이 환하게 밝아지고 인생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사망을 물리쳤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어두움을 물리쳤습니다. 이미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 가운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빛 속에 사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에 근거해서 세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빛 속에 사는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은 자유입니다(1-2).-신분의 누림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쟁취로 얻어지는 자유와 이미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자유입니다. 쟁취하여 얻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 경제적, 정신적, 종교적, 심리적 자유 등 갖가지가 있습니다. 일본 강점기 때 우리 선열들은 이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이 누리는 자유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자유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돌아가심으로 죽음으로부터 자유, 죄로부터 자유를 이미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 죄로부터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자만 누리는 자유입니다. 죽음의 노예로부터 죄의 노예로부터 자유는 우리가 투쟁하여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제 고통하는 자들에게 흑암이 없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6)"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이미 우리는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자유를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을 속박으로 생각하며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해방되면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파멸이요 죽음입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 말씀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 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3)"

죽음도 우리의 이 자유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저 유명한 독일의 나치 히틀러와 맞서서 싸웠던 "본 헤퍼" 목사는 감옥에 있다가 이제 드디어 나오십시요! 그것이 마지막 순간인 것을 알았어요. 그때 같이 있던 자기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본 헤퍼 목사가 남긴 교수장으로 떠나기 전에 남겼던 유명한 말, "친구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십시요 저는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 떠나갑니다, 저의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나 자유 얻었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모든 결박 푸셨도다, 나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 해, 소리 높여 할렐루야 소리 높여 할렐루야, 소리 높여 할렐루야 나는 자유 해"

 

2. 빛 속에 사는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은 기쁨입니다.(3-4)-정서의 누림

신분이 바뀌면 마음도 정서도 바뀌는 법입니다. 즐겁다는 단어가 4번이나 반복됩니다. 웃을 일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백성에게 기쁨을 주셔서 기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4절 이하에서는 기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무거운 멍에와 채찍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를 만난 모든 사람은 기쁨을 얻게 됩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말씀할 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눅2 : 10)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보며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마 2:10) 마리아도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눅1:46-). 예수님을 모신 모든 사람에게는 기쁨이 회복됩니다. 기쁨에도 쟁취하는 기쁨과 이미 주어진 것을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쟁취하는 기쁨은 성취의 기쁨입니다. 승리해서 기쁘고, 소유해서 기쁘고, 합격해서 기쁘고, 사랑받아서 기쁘고, 인정받아서 기쁘고, 돈을 벌어서 기쁘고, 선거에 당선되어 기쁘고, 명예를 얻고 기쁘고, 연구 성과를 얻어 기쁘고, 장난감을 얻어 기쁜 것과 같이 욕구가 충족되어 기쁜 것입니다. 이 기쁨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욕구가 실현될 때만 기쁘다는 것입니다.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거나 받은 것을 상실하면 금방 슬픔에 잠기고 기쁨이 큰 만큼 슬픔도 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욕구가 실현되지 않으면 슬퍼하고 절망하고 비관하고 좌절하고 죽음으로 달아 갑니다. 대부분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고 감각적입니다. 더욱이 도덕성을 가지지 못할 때는 죄가 되고 후회와 공허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리는 기쁨은 이미 이루어 놓은 것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예수님 그분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시는 것만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을 이루어 놓으신 분을 기뻐하고 이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놓으신 분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만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기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났을 때 그 연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지 않습니까? 밥먹을 것, 차 마실 것보고 기뻐합니까? 주님 자신을 기뻐하는 것은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승리해도 기뻐할 수 있고 실패해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병들어도 기뻐할 수 있고 건강해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감옥에 가도 기뻐할 수 있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언제든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린 후에 기쁨에 넘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눅 24:5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6)"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8)"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행 13:52)" 라고 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쫓겨가면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능욕을 받아고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 5:41)"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바울을 죽을 지라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7)"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고후7:4). 왜 그렇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신앙인의 3대 삶의 지침을 말합니다. 그것을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이것은 신앙인의 삶의 3대 원리입니다. 그중에 무엇이 가장 앞서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에서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 어려운 피난 생활에서도 여호와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다윗이나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하박국 선지자나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 등은 모두 이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예수님을 만나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평생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주예수 사랑 기쁨 내 마음속에 내 마음속에 내 마음 속에 있네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맘에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 맘에

이제는 정죄없네, 이제는 해방되네"

 

3. 빛 속에 사는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은 평강입니다(5-7).-관계의 누림

평화라는 말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팍스(pax)와 샬롬(shalom)입니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평화였는데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법,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쟁취하여 얻는 평화입니다. 살롬은 이미 우리 주님께서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쟁취하여 얻는 평화는 영원히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17C에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 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져 있는데, 그 구멍은 세상의 쾌락이나 물질욕으로 채울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불만족과 실망으로 끝납니다. 그 구멍 뚫린 빈자리에 하나님을 모실 때에만 채울 수 있고,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이루어 놓은 평화를 받아 들여 누려야 합니다. 5절 보십시오. 전쟁을 그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6절에는 평강의 왕이라고 합니다. 7절에는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천사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평강은 얻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 시키셨습니다. 인간과 인간을 화해 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버린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평화를 주었습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오심을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서로 원수였으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둘이 서로 화목하게 되었고(엡2:13-15)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하여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 마음에 평화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

우리는 이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이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불화를 주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오심에 대하여 사61:1-3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직도 화해못하고 가슴에 담아둔 사람들이 있습니까? 평화를 회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까지 내어 주었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근심으로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는 말씀을 붙드십시오.

아직도 자신의 모순된 모습을 보며 고뇌하고 있습니까? 미국의 현대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 목사의 기도 "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미 변화 시킬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고요히 그 사실을 수용하여 받아들이는 평안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이미 변화시킬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 공연히 불평하고 그것 때문에 마음의 평강을 잃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찬양합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예수님은 기묘자입니다. 놀라운 분이십니다. 모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참 자유와 평강, 기쁨을 이미 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열심히 이루었습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히 예수님을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낮아지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영광의 본체를 포기하시고 아기로 오시게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자유와 이 기쁨과 이 평강을 풍성히 누리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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