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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달리기(빌립보서 15; 빌3:12-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53 추천수:0 220.120.123.244
2019-09-15 14:44:05

믿음의 달리기(빌립보서 15)

빌3:12-16

 

3대 체육부 장관을 하셨던 이영호 장관이 있었습니다. 미국 예일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장관이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기독교 대학 예배에 초청 강사로 불려갔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늘 그렇듯이 책을 보는 사람, 보고서를 쓰는 사람, 심지어 강사의 화려한 경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배짱 좋게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펼쳐 보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있었답니다. 그는 강단에 올라갔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왜 사느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뻔한 소리겠지하며 신문을 뒤적이고 책장을 넘겼답니다. 그 때 그는 말했답니다. "여기 여러분 앞에 이야기하는 저는 암환자입니다. 얼마 후면 죽을 사람이지요." 그러자 대강당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긴장을 했고, 침묵만이 흐르게 되었답니다. 웃으며 태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갔답니다. 그는 대장암 환자였답니다. 처음엔 어떻게 낫겠지 했지만 이젠 암덩이가 심장, 간, 폐 등 온몸으로 번져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였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놓고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를 심각하게 질문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달리기와 같습니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인생의 달리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달려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인생 경주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믿음의 달리기를 잘 할 수 있을까요?

 

1. 우리가 믿음의 달리기를 잘 하려면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14).

바울은 무엇을 위해 인생 달리기, 믿음의 경주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말씀합니다. ‘푯대(스코폰)’은 보이는 원거리의 표적, 시야 속에 있는 목표를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푯대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뒤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부름의 상’입니다. ‘상(브라베이온)’은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벌러지던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상품(고전9:24)을 말합니다. 천국을 구경한 사도 바울은 천국에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그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의 달리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열심히 해야할 것은 천국의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천국 상급에 대한 기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달리기를 잘 하려면 천국에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기대하며 달려야 합니다.

 

천국에는 차등상급이 없다는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이 있다면 똑같은 상이지 천국에 무슨 차등상급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천국이겠냐는 것입니다. 상급은 하나님의 주권에 위배되고 상급은 공로사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미스도스", "아포디도미"같은 상급용어는 차등 상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 번역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보상의 의미이지 상급의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천국의 상이 아니라 구원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달려간다(디오코)"는 말은 "얻으려고 열심히 쫓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인데 상을 구원으로 보면 구원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구원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의 구원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칸트 철학에 의해 상급이나 보상을 바라보고 선행을 행하느냐는 것입니다. 덕은 덕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 상급을 받기 위해 덕을 행하는 것은 수준 낮은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많은 교훈이 공로와 보상에 대한 교리를 많이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교육적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라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성경은 분명하게 차등상급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 마 5장 11절에도 예수님께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12절에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을 위해 핍박당한 자에게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차등 상급에 대한 약속을 분명히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큰상을 주시는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신다고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순교한 사람과 순교를 피한 사람이 어떻게 똑같겠습니까?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구제와 험금, 전도, 봉사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과 주일 한 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똑같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공평한 것이 되지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선한 행위에 대한 상급의 약속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1-42)"

 

물질의 충성에 대한 상급도 약속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고 했습니다.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마 16:27에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금세에 있어 백배를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막10:30; 마 19:29; 눅 18:30).

이 상급은 공로 사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벽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헌금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방봉사도 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청소도 하게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전도도 하게 하고 하여 받는 상급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선행으로 상급받는데 그 선행의 근거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상급을 사모하며 상급받을 일을 많이 한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달리기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초점이 있는 삶>(로버트 클린톤 저)이란 책이 있습니다. 지난 날 크게 성공적으로 살아온 여덟 명의 영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에는 초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천국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의 달리기를 해야 합니다.

 

2. 우리가 믿음의 달리기를 잘하려면 안주하지 않고 열정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3:12-13a).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달려간다(디오코)는 푯대를 향하여 쉼 없이 지속해서 달려간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달려갔던 것을 회상하거나 앞으로 달려갈 것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라톤 코스의 골인 지점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경주자와 같은 모습으로 항상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에도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달려가노라’라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슬렁어슬렁 신앙 생활하지 않습니다.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 있지 않습니다. 원망하며 비판하며 허송세월 보내지 않습니다.

일부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1:15절을 보십시오.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1:17절을 보십시오. 감옥에 있는 바울의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순수한 동기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반율법주의 자들도 있었고, 유법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유와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처럼 권력 다툼을 하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얻었다고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 바울이 어느 때쯤 되었겠습니까? 1:19,20; 2:17절을 보세요. 죽음을 눈앞에 놓고 있는 때입니다. 자신을 전제로 드릴 수 있는 때였습니다. 바울은 67년경 로마에서 네로 황제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는 로마 감옥에서 60-62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인생 5-6년 있으면 끝이 날 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얻었다(엘라본)’라는 말은 ‘손에 쥐다’ , ‘장악하다’ , ‘자기 것으로 만들다’라는 뜻으로 과거 한 시점에[ 일어난 일을 말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못된 것입니다.

“이루었다(텔레이오오)”는 “목표를 달성하다, 목적을 이루다. 완전하게 하다, 완성하다”라는 뜻입니다. 인격적 성숙 뿐 아이라 사역적 완성에서도 아직 다 이루었다고 안주하지 안겠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잡으려고 달려갑니까?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구원의 완성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인 이방인 복음화의 완성을 위해 달려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수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고,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12a, 13a). 그는 계속 기록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12b). 이미 예수님을 다 알았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준 이방인과 임금들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 다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성숙과 성취에 만족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물은 머물 때 썩게 되어 있습니다. 감옥에서 꼼짝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4장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빌4:11,12절을 보세요. 있다고 교만해져 포기하고 없다고 원망하며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면 기도하여 기적을 일으켜 간수를 변화시켰고, 편지를 통하여 양육하였습니다. 마지막 사도행전을 마치면서도 셋방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열심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고후11:2)"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열정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 힘을 다하여 복음 전하는 일, 말씀을 가르치는 일, 상담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려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21번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면 최소한 21번 연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군 조종사가 모의 훈련을 몇 번 하는 것이 실전에서 가장 효과적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에서 나온 법칙입니다. 늘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의식에 발목 잡힌 사람에게는 100번의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안 되어도 100번 반복하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머리가 달라붙으면 전류를 흘려보내 감전시키는 실험에서 거머리는 떨어지고 붙고를 반복하다가 100번째에는 안 붙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는 거머리도 100번이면 학습이 되는 것입니다. 거머리도 100번에 통했다면, 사람이 100번 반복하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습관과 관련하여 "10년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동안 집중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성공하는 사람들의 열정 포트폴리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달라이라마를 위시한 세계적인 기업가, 정치가, 학자, 작가, 음악가, 크고 작은 기업의 CEO들, 퓰리처상이나 아카데미상 수상자들, 교사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노벨상 수상자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한 전 세계 200여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지속적인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행동과 사고방식의 패턴을 찾아냈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을 도출해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열정'이었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구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4:8-9표준)

 

3. 우리가 믿음의 달리기를 잘하려면 전진하는데 불필요한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3:13).

우리가 어떻게 해야 믿음의 달리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나온 과거는 잘된 일도 있고 잘못된 일도 있습니다. 잘 된 것에 집착하면 자랑이 되고 교만이 됩니다. ‘왕년병’에 걸립니다. 과거 잘못된 일에 집착하면 올무가 되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감옥이 됩니다. 지난 세월은 잘되었던 잘못되었던 다시는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단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간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신앙의 경주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사람이 살아 온 뒤를 자꾸 본다면 어떻게 제대로 경주를 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 후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 못 중 하나가 무엇이겠습니까? 시시 때때로 과거 애굽 생활에 집착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예수 안 믿었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주방, 성가대, 안내 안 맡았으면, 차라리 목자, 구역장, 권찰, 교사 안 맡았으면 하며 후회하고 그것으로 인해 평생 상급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았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우리 주님을 위해 사는 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데 방해되는 걸림돌은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바울도 과거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인데 그것에 집착했다면 그의 인생은 하늘 창고에 상급이 쌓이지 않는 인생으로 마감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과거에 집착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자기 부인을 두 번이나 비겁하게 이방 왕에게 내어 준 자입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형과 아버지와 삼촌을 속인 사기꾼입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그도 아버지를 본받아 아내를 외간 남자에게 내어 준 사람입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살인자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간음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사 속에는 밑바닥 인생에서 시련을 이기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비천한 신분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목축업과 도살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빵집 아들이었으며, 천체 망원경을 발명한 케플러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선술집에서 종업원 노릇을 하였습니다. '전기분해의 법칙'으로 유명한 패러데이는 대장간 집 아들이었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대수학자인 라그랑주의 아버지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에 성공했다면서 "만약 내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위대한 수학자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과거의 올무에 잡혔다면 역사 속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맛있는 과일은 빛만 있어도 안 되고 빛과 어둠이 적당히 조화되어야만 합니다. 몇 번 실패했다고 실패한 과거에 집착하여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믿음의 달리기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신의 달리기에 대하여

부르심의 상급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갔고(14),

안주하지 않고 열정으로 전진했으며(3:12-13a),

전진하는데 불필요한 과거를 잊어버렸다고 간증한 후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인들 향하여 어떻게 믿음의 달리기를 하라고 말씀합니까?

15-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은 완전한 자 이기 보다는 완전을 향하여 부단히 정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할지니라는 말은 앞에서 바울이 간증한 신앙의 달리기처럼 달리자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들이 신앙의 정진 문제에 있어서 바울과 다른 의견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오류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온전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6절에 우리의 신앙 수준, 혹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정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든지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하되 지금까지 해온 그 방식대로, 곧 바울이 강조한 바 푯대를 향한 지속적인 신앙 정진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쉬운말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이 성숙한 신자들은 모두 이와같은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무언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것도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각자가 어느 단계에까지 이르렀든지, 모두들 자신의 단계에 맞추어 그대로 계속 그 길을 좋아가도록 합시다(쉬운말 성경).”

 

인생은 언젠가 끝이 옵니다. 어떻게 인생의 달리기를 하겠습니까? 신앙의 달리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구 서현 교회를 이루는데 헌신했던 정규만 장노님의 간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분은 1944년 1월 10일 33세의 나이에 장로장립을 기념하여 대구 서현 교회 성전부지 1842평을 헌납하여 1957년 8월 19일 성전 기공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건축 규모는 연건평 1960평 당시 동양 최대의 석조 예배당이었답니다. 성전 건축 시작되자마자 죽을병에 걸렸답니다. 장로님은 하나님께 서원 기도드렸답니다.

"하나님 정규만의 생명을 한 번만 살려 주옵소서 이 생명을 한 번만 살려주시면 이 한 목숨 다하여 또한 종의 전 재산을 다 바쳐 성전 건축에 헌신을 다하겠습니다."

온 교인도 기도하였답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병에서 살아나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때 대구 경북 지역에 악질전염병이 만연하였답니다. 병원에서 치료되지 않는데 유독 정규만 장로님의 한약방만 와서 약을 지어서 먹으면 깨끗이 나았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아침부터 마당에 줄을 섰답니다. 건축비를 모두 감당하였답니다. 그 엄청난 공사비를 다 빗 한 번 지지 않고 감당했답니다. 교회가 건축되자 1000명이 넘는 교인들은 빨리 헌당하기를 원했답니다. 그러자 정 장로님은 자기가 죽으면 헌당식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답니다. 혹이나 정장로님을 칭찬하여 천국 상급이 삭감될까봐서 그랬답니다. 성도들이 헌당식을 하려고 하니까 어서 빨리 천국에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1969년 정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때서야 교회는 헌당식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고인이 되어서야 고인의 이름으로 표창장과 공로패를 받았고 온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대구가 생긴 이래 가장 긴 승용차 행렬이 이어졌고 가장 많은 조문객이 모였다고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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