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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의 기쁨의 간구(빌립보서3, 빌1:9-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33 추천수:0 220.120.123.244
2019-06-16 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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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의 기쁨의 간구

빌1:9-11

 

지난 주 뉴스위크(2019.06.10.) 기사에 “신앙 독실한 사람이 평균 4년 더 산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의 과학자들이 미국 전역의 부고 1000건 이상을 조사한 끝에 도출한 수치라고 합니다. 이 논문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회심리학·인성과학 저널에 실렸는데 이 논문의 주 저자인 로라 월리스는 “신앙이 성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장수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답니다. 이전에도 신앙생활이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는 많았습니다. 미국 하버드공중보건대학의 연구팀은 미국의 중년 여성 간호사 약 7만 5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답니다. 연구팀은 1992년부터 2012년 사이에 4년마다 그들을 대상으로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는지 등 종교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답니다. 그 결과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교회에 전혀 가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33% 낮게 나타났답니다. 미국 코헨 박사팀은 5,286명을 대상으로 28년 동안 ‘예배 출석과 사망률에 대한 연구 조사’에서 “병들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들이 종교 집회에 더 부지런히 참석하는 경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규칙적으로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사망률도 25%나 적고 더 장수한다”고 하였답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지는 교회 주일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불신자에 비해 7년 이상 장수한다는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규칙적으로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혈압이 낮았으며 우울 불안증 등이 적었고 면역력이 강했으며, 때문에 의료보험에서 보험금을 적게 사용한다고 합니다. 독실한 신앙인이 수명이 긴 이유를 자원봉사와 사회활동 참여 뿐 아니라 술과 마약을 삼가는 것 같은 생활방식과 기도와 명상같은 스트레스 완화 행동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기도가 수명 연장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독실한 신앙인하면 기도하는 사람이는 사람이라고 금방 등식을 만듭니다. 새벽이면 성경을 옆에 끼고 나가는 아버지를 보면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독실한 신앙인을 가진 아버지라고 떠올릴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 “이적을 일으키는 열쇠”,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는 것”,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뜻을 붙잡는 것”,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는 것”, “하나님의 능력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길” 등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새뮤얼 즈웨머는 “기도는 영혼의 체육관이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천국으로 이어지는 평생의 과정을 통해 우리를 길들이고 변화시키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정신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몸을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면역력은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평상시보다 스트레스가 20% 올라가면, 면역력의 활동은 평소보다 8배 정도 낮아진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요소에 의해서 면역력이 약해진다면 어떤 질병도 치료될 수 없으며, 쉽게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를 생활화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매일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신앙생활의 3대 원리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기록된 기도들의 대부분이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회심한 후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행 9:11)라는 모습을 통해 그는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절망적인 상황, 즉 중한 질병에 걸렸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큰 난관이나 문제가 왔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더 나아가 자신이나 주위로부터 모든 기대나 소망이 끊어졌을 때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이 질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을 치료받기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죽은 자를 살리는 그였지만 하나님은 네 은혜가 족하도다하고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 증거를 위해 동역자들과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행 13:1-3,행 14:23) 바울은 자신의 민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절에서는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는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나의 형제 골육 친척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런 애절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엇을 합니까?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는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매여 있으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를 썼습니다. 옥중서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성도를 위해 기도합니다. 빌립보 교인을 위해 공개적으로 서신을 통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도 죽음의 순간까지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바울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기도와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함께 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는 사역의 필요를 공급받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를 전달하시는 외적인 보통 방편을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말씀 둘째는 성례 셋째는 기도(행 2:42; 고전 11:23-26)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8문답에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요 16:23)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해바치는 것을 말함인데(시 62:8; 시 10:17), 곧 그의 뜻에 합당한 것들을 간구하고(롬 8:27; 마26:39; 요일 5:14) 죄를 자복하며(단 9:4; 요일 1:9) 그의 자비를 감사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빌 4: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던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모델은 때로는 금식기도를 하시고, 때로는 철야 기도를 하시고, 때로는 새벽 기도를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바빠도 늘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밤새워 간절히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만 잡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누가복음 22:46)”고 했습니다. 유혹과 환란과 질병 많은 세상에서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비행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신앙인이 되어 기도의 사람으로 변하여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노트 한쪽에는 기도 제목과 날짜를 적었고, 다른 한 쪽에는 기도 응답 받은 날을 적었는데 무려 5만 번이나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잘 몰라도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 경험을 해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게 됩니다. 뮬러는 “종종 실패하는 이유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지 않고 중간에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기도의 사람이 되었던 링컨은 전쟁 중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남북 전쟁이 치열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당시 유명한 배우 제임스 머독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그날 밤 머독은 백악관에서 잠을 잤는데 새벽에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일어나 가보니까 대통령 집무실에서 링컨이 기도하고 있었답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한 종입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새 힘을 주시고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도와주소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통일된 나라로 세워주소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보호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링컨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머독은 링컨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고 그를 돕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답니다. 링컨은 야전 막사에 머무는 동안에도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답니다. 남군에는 위대한 명장 로버트 리 장군이 있었고 북군은 병력과 무기 모든 것이 열세였지만 기도의 사람 링컨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링컨은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리 장군과 같은 유능한 장군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더욱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되고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회에 다니면서도 기도 무용론을 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공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구태여 기도해야 할 까닭이 무엇이며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은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 무용론 중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회의론적 기도 무용론입니다. 자신의 경험에 믿고 기도해 보았더니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기도했는데 회사가 망했고, 기도했는데 어머님이 병들어 돌아가셨고, 기도하였는데 대학에 떨어졌고, 기도하였는데 취업을 하지 못했다고 기도에 대하여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기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기적 기도 무용론자들입니다. “뭐 기도하지 않아도 나는 잘 먹고 잘 사는데 무슨 기도가 필요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째는 무신론적 기도 무용론자들입니다. 주로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기도는 미신적 주술적이라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듣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자기최면이나 정신 수양, 심리 효과, 위약 효과(placebo effect)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실제적인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마태복음 7:7)”라고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가복음 9:29)”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기적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살고 있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기도하니까 생명이 연장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대하 32:20)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몰의 위기에 처할 때 에스더와 유다 민족은 합심하여 기도하여(에4:16) 죽음은 죽으리라고 결단하고 기도하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할 때 다락방의 120명 성도가 성령 충만을 받았고 기도할 때 베드로와 요한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풀려났고(행 3:1) 기도할 때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만 기록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개막식에서 감동적인 애국가를 불렀던 박모세를 보십시오. 그의 어머니는 임신하여 초음파 검사를 하던 중 '아이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태에서부터 아이의 머리 뒤쪽 뼈가 형성되지 않아 뇌가 밖으로 다 쏟아져 나왔답니다. 병원 측은 "아이는 살수 없고 산모도 위험할 수 있다"며 낙태할 것을 권고했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아이의 태동을 느꼈고 "어차피 죽을 아이면 세상 빛이라도 볼 수 있게 하는 게 옳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아이는 태어났지만 머리만한 '뇌'가 뇌막에 쌓인 채로 밖으로 흘러 나와 있었답니다. 의사는 수술을 할 건지, 말 건지 빨리 결정하라고 다그쳤답니다. "수술하면 희망이 있나요?" 의사는 "의학적으로는 1%의 희망도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럼 이 아이가 수술을 해서 산다고 하면 의학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겠네요?'라고 묻자 의사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그럼, 우리는 기도할 테니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수술해 주세요." 수술 후에 의사는 "대뇌 70%, 소뇌 90%를 절단하여 이제 이 아기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며 온몸에 장애가 너무 극심해서 얼마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통보했답니다.

가족은 울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해 줄 것이 없었습니다. 뼈에 가죽만 남아 비비 틀어져 있고, 머리 모양은 찌그러진 냄비 같았답니다. 생명은 살았지만 뇌수종이 찾아왔고 네 번의 뇌수술과 두 번의 다리수술, 여섯 번의 수술에도 아이는 잘 견디어 주었답니다. 모든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술 후에 호흡곤란이 왔을 때 모세의 할머니는 벼랑으로 가셔서 구르면서 기도하셨고, 처음에는 일주일 철야예배를 시작으로 거처를 교회로 옮겨 22년 동안 90세가 되기까지 손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죽지 않고 대학 성악과에 들어가 '노래가 좋아'에서 4연승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기도 만능론에 빠져도 문제이지만 기도 무용론에 빠지면 더 큰 문제입니다.

성도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기도의 힘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기도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기도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살고 있습니다. 내게 기도할 것이 없다고 기도하지 않는 것을 영적 교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감옥이 다가 온다고 해도 기도할 수 있는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경제의 감옥, 질병의 감옥, 인간관계의 감옥, 정신의 감옥, 무능력의 감옥이 올 때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기쁘게 기도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 문제도 힘겨운데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오히려 자유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받는 사람이 구제해 주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혼도 못한 사람이 오히려 결혼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앞으로 살 날이 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질병 가운데 있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 영적 능력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난 중에 빌립보 교인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타인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고난 중에서 풍성한 사랑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1:9).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의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첫 번째 기도의 내용은 사랑을 풍성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빌립보교회 교인들의 사랑의 열정이 더 커지고, 사랑의 크기도 더 넓어지며, 사랑의 내용도 더 깊어지고, 사랑의 수준도 더 높아지고, 그래서 빌립보교회 교인들의 사랑이 말로 끝나는 사랑이 아닌 실천적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주도권 경쟁을 하면서 유오디아 순두개처럼 싸울 것이 아니라 더 사랑이 풍성해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선교비를 풍성히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 과거의 추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면 살수록 조건 없는 아가페 사랑이 더 풍성해 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경제적 부요나 질병의 치유나 자녀의 출세를 위해 기도하기 보다 먼저 사랑이 점점 풍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0-31)”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1서4:8)”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13:1-3)” 이렇게 하나님은 성경 기록을 통해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동기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해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고, 구제를 하여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고, 찬양대에서 봉사해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고, 선교를 해도 사랑의 동기가 되어야 하고, 교사로, 주방에서, 주차장에서 봉사해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점점 식어지는 것이이 아니라 점점 풍성해져야 합니다. 가정 생활도 부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점점 풍성하되 어떤 사람이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까?

두 가지로 수식이 되어 있습니다. 9절 보세요. 지식과 모든 총명입니다.

사랑은 지식 안에서 풍성해져야 합니다. 헬라어에서 보통의 일반적 지식을 뜻하는 단어는 그노시스입니다. 여기서는 위에란 뜻을 가진 전치사 에피를 붙여 “에피그노시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향한 지식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아는 지식입니다. 성경은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아들을 내어 놓음으로 사랑을 확증(로마서 10:2)”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이해하면 할수록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대해 더 깊고 더 넓게 깨달을 때 다른 사람을 풍요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되 총명으로 사랑이 풍성해 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총명이란 “아이스데시스”를 번역하는 말로 영적 통찰력, 판단력, 영적 지각을 말합니다. 사랑을 행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말합니다. 사랑이 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사용하는 원리가 바르게 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원리가 실제적인 삶에서 바르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하면서 사랑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 사랑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황 윤리적 사랑을 하면서 모든 것을 합리화해 해서는 안됩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이 세상에 난무하고 있습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10대에 아이를 갖고 유기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죄하고 증오하고 시기하고 살인을 합니다. 우리는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바울처럼 아가페 사랑이 점점 풍성해 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영적 분별력을 갖고 마지막까지 진실하게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10).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두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입니다. 여기서 “분별하며(도키마제인)”라는 말은 “시험하다”는 말로 신중하게 시험해 보아서 결정하거나 인정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무엇을 분별합니까? “지극히 선한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것은 “뛰어난 것,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결국 하나님의 뜻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목적은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문은 목적을 나타내는 “히나”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빌립보 교인들이 지식과 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분별해야 하는 목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진실하고 허물이 없도록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살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하며'의 뜻은 햇빛에 비추어 검사한 결과 순수한 것으로 인정됨을 의미합니다. 순수한 금을 판정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예수님 앞에 설 때 순금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이 땅의 삶을 결산할 때가 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느 것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가를 분별하는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날에 다 없어질 것이 무엇인지 남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결국 선한 것을 잘 분별하여 살다보면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나 타인을 위해 기도할 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고난 가운데 우리는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11).

바울이 감옥에서 공개적으로 서신을 통해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의의 열매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삶 속에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풍성한 의의 열매는 누구를 통해 가능합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요15:4에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맺히는 열매입니다. 의의 열매는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그리스도가 내재하고 역사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맺히면 어떤 결과가 이루어집니까?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8)”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 번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요11:4, 고전10:31, 계4:11),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시73:25,26, 요17:22-24)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이 저를 위해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하다 결국 '이가봇'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립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효심이 지극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하여 예의 바르고, 준수합니다. 그러나 마땅히 왕권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하다 결국 아들들은 전사하고 자신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합니다. 성경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이사야 43장 7절에서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 세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시19편). 예수님은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은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예술성과 열정은 기도에서 왔다고 고백하였답니다. 하아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하여 비엔나에서 공연되었을 때 그는 몸이 몹시 아파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었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답니다. 그 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자리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저 사람입니다. 저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때 자신을 향해 환호하며 박수치는 청중들을 중단시키며 하늘을 가리키면서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했답니다. 위대한 음악가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입니다. 우리가 성도을 위해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라고 말씀합니다.

기도의 사람 사무엘상 12장 23절을 통하여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로서 부모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 역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로서 성도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 역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로서 목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 역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현대 의학으로 고치지 못한 질병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5:15)”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실제적인 힘이 있습니다. 단순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종교적 형식이 아닙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고 절대권력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능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왕 이라고 불리는 워너메이커를 부도에서 일어나게 한 것도 기도였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기도할 때 힘을 얻었지만 기도를 중지할 때 힘을 잃었다고 합니다. 지금 전 세계의 300만 어린이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있는 월드비전은 밥 치어스라는 한 사람의 기도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가난한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창조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단순한 심리효과나 종교적 형식이 아닙니다. 기도는 단순히 자신의 마음의 평강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제적인 효용성이 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능력의 통로입니다. 눈물로 기도하면 기도는 눈의 눈물을 멈추게 해 줍니다. 사람은 약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기도는 은혜의 통로, 능력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내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의 사람 사무엘이 기도하니까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블레셋 사람들을 막아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영국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많이 죽인 ‘피의 여왕 메리’(Mary the Blood)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만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녀는 “존 낙스의 기도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더 두렵다.”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자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니까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기도하니까 민족이 살아납니다. 느헤미야 한 사람이 기도하니까 무너진 성벽이 재건됩니다. 기도의 사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한 사람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2억 명이 넘는 사람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문준경 전도사님 한 사람으로 증도라는 섬이 90%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려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품고, 교회와 민족을 품고, 하나님 나라를 품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들 딸 기르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여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면 노후 생활 즐기며 쉬려고 하지 말고 이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민족을 바라보며, 이웃을 바라보며, 교회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로 경제의 감옥, 건강의 감옥에 있다고 해도 이제까지 하지 못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노년에 감옥에서 바울이 오늘 기도하는 것처럼 어떤 처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풍성한 사랑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혼돈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 거룩하게 사는 영적 분별력을 갖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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