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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 감사와 기쁨의 간구(빌립보서2)(빌립보서1:3-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33 추천수:0 220.120.123.244
2019-06-09 09:46:25

 

고난 중에 감사와 기쁨의 간구(빌립보서2)

빌1:3-8

 

지난 6월 6일 부부제자 훈련 1일 수양회를 갔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부부가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주었는데 아내가 우리 교회 근처에 살면서 우리 교회로 새벽 기도회에 나오는 타교회 교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시력이 약해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이지만 안경을 쓰지 않으면 예배당 내에서도 멀리 있는 성도님은 누군지 잘 분간을 못 합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회에 누가 나오셨는지 잘 모르는데 늘 새벽 기도회 나오시는 연세 많으신 성도님이 요즈음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오지 않는 이유가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 설교를 들을 수 없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 목소리가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대부분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만 좋지 않은 환경을 만나면 금방 핑곗거리를 찾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교인 중에서도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신앙 생활하면서도 원망과 불평을 잘합니다. 그런 교인들 보면 감사가 거의 없습니다. 조금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늘 불평하고 원망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교회 안에도 원불교 교인이 됩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교인을 원불교 교인이라고 한답니다. 설교를 들어도 자존감이 낮으면 조금만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소리가 나오면 자기 들어라는 소리라고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늘 교인들에게 감사하라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밥상에만 앉으면 반찬 투정을 하였답니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한 사모님이 어느 날 문자를 남편 목사님에게 보냈답니다. “여보, 저도 당신 설교 그냥 듣고 있으니 아무 소리 마시고 밥 잘 드셔용.” 감사를 늘 설교하는 목사도 조금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오고, 좋지 않은 환경을 만나면 금방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설교한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늘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을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사람 바울이 3천을 들여 교회를 짓고 헌당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사업을 하여 성공할 때도 아니었고, 자식이 고시에 합격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노후 생활을 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살인하고 사기쳐서 감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사람을 살리는 복음은 전하다 감옥에 간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침대 있는 인권이 보장된 감옥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심각한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이런 고난 중에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해도 불평의 조건을 보며 불평하지 말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면서 문안 인사를 드리자 마자 첫 번째로 감사를 합니다. 다른 서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감사가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기억하는 순간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있고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평과 감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고 선택의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든 불평을 선택하면 불평이 되고 감사를 선택하면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원망과 불평의 조건을 찾는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감옥 생활에서 감사할 조건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빌립보 교회를 개척할 때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감옥에 갇혀 매를 맞고 죽을 뻔 했습니다. 자신이 다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 빌립보 교회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에바브로디도 편에 들어 보니까 문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교회가 화평하지 못한 것입니다. 서로 주도권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내적인 분열이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4장 2절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을 거론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세 번이나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27; 2:1-4; 4:2-3). 이런 상황에 집중하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오늘 성경을 보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고 협력하였습니다. 재정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4장 14절을 보십시오. 바울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4장 15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마게도냐로 떠나던 초기에 아무도 자신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만은 도와주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2번이나 도와 주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로마에 투옥된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지원해 주고 있었습니다. 2장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바울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서로 주도권 싸움하는 것과 같은 원망과 불평 거리도 있었지만 그것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보며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불평 거리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감사 거리를 찾아 그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5절과 16절에도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 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라고 감사햇습니다.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도 고린도전서 1장 4절, 고린도후서 1장 11절에서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했습니다. 데살로니 교회에도 믿음,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3절에서는 디모데가 거짓 없는 신앙생활 잘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빌레몬서 1장 4절에서는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감사 거리를 찾아 그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선택과 해석입니다. 어떤 경우도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로 선택하면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실명이 되었을 때 원망과 불평을 하기보다는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가 실명을 했을 때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답니다.

 

자녀들이 조금 공부를 하지 않고 놀러만 다녀도 “알아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부지런히 놀러 다닐 수 있는 건강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석하고 감사를 선택하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 망해도 “실패를 통해 겸손해지고 돈은 없어도 건강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석하고 선택하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던 일이 실패해도, 질병에 걸려도, 부부 중에 먼저 천국에 가도 감사거리를 찾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자꾸 잃은 것보며 원망과 불평을 하면 죽을 때까지 원망과 불평을 하다 삽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잃어 버리는 것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면 죽을 때까지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감사 거리를 찾지 않으면 늘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보호하면서 인도하는데 물이 없으면 물이 없다고, 물이 있으면 물이 쓰다고, 밥을 주면 왜 고기를 안주냐고 불평과 원망 거리만 찾아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집을 사주었는데 에어컨 없다고 원망하는 아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부모가 길러 주니까 어릴 때 따뜻한 말 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합니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입술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감사 불감증에서 벗어나려면 의도적으로 감사 거리를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토머스 J. 네프(Thomas J. Neff)는 그의 책 <최고 경영자가 되는 길>이라는 책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 분석한 결과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마음속에 "넘치는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2학년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이고 잘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세계인의 존경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무려 27년 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하러 나온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 심리학 교수는 감사 일기를 꾸준히 쓴 그룹과 일상적인 일기를 쓴 그룹으로 나눠 꾸준히 기록하게 한 뒤 비교해보니, 감사 일기를 쓴 그룹의 75%가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숙면에 도움이 되고, 업무 성과까지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는 신체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친사회적 행동을 증가시키고 부정정서를 낮추어 줄 뿐 아니라 우울증상을 줄여 준다고 합니다. 조지타운 대학의 생물 물리학 교수인 캐더스 퍼트(Candace Pert)박사는 이것을 '감정의 분자'라고 설명합니다. 생각과 감정과 신체 기관 사이의 밀접한 교류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강력한 힘을 가진 백신입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먹어 치우고, 삶의 균형을 찾아주고, 안정된 심방 박동을 유지해 주며, 각 기관의 세포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 백신은 분노를 잠재워주고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며, 자존감을 강화시켜주고, 부정적 정서를 머물지 못하게 합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을 통해 들어 옵니다. 감사하면 수많은 축복이 주어집니다. 성경은 감사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대하20:20-26). 다니엘이 죽음의 위기에서도 감사하니까 기적이 일어나 죽지 않았습니다(단6:10). 감사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진다고 말씀합니다(눅17:11-19). 감사한 사마리아인은 고침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감사하고 떡을 떼니까 장정만 5천 명이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죽은 나사로 앞에 감사하니까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해도 불평의 조건을 보며 불평하지 말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확신을 하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비록 문제가 있는 교인들이 있지만,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잡혀 있어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만,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확신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5절이 직접적인 감사의 이유라면 6절은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빌립보 교인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은 항상 변화합니다. 좋을 때 좋은 것입니다. 지난주 신문에 나온 것처럼 결혼할 때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도 전남편을 죽여서 바다에 버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도 부부가 오락을 즐기다 굶어 죽이게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빌립보 교인 가운데는 시기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권력욕이 강한 사람도 있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가 타락했다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건물교회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인간에 의해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감옥에 갇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들은 빌립보 교회의 문제를 직접 가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보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즉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착한 일”(에르곤 아가돈)은 빌립보 교인들이 기도와 물질로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협력한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말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 근본적으로는 빌립보 교인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하나님의 선한 일를 총칭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구원은 과거 구원, 현재 구원, 미래 구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문제 있는 교인일지라도 하나님이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고 천국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순간 중생을 받습니다. 영적 새생명을 받고 새로운 신분이 됩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하며 과거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 자녀답게 되어지는 과정을 현재 구원 성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의 죄성이 다 없어지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것을 영화 즉 미래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인간이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교회에 나와도 여전히 담배 피우고, 술 먹고, 욕을 해대도 그것 보면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 마음 속에 계셔서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도 여전히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당시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대적들은 그들 비방하며 핍박하고 공격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걱정과 근심, 불평과 원망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도 않고 염려하지도 않고 불평과 원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쁨의 기도를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미래, 빌립보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형성될 때 바울은 마게도냐에 가서 강가에 있던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빌립보 간수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이 자신이 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바울을 사용하였을 따름입니다. 행14장에 보면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고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 돌아갑니다. 그때 그는 어떻게 고합니까? 자신이 한 일이라고 합니까?

사도행전14장 27절에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그 일을 시작하신 분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무슨 일을 시작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기원은 어떤 단체의 기원과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만는 것이 아닙니다. 몇 명이 모여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단체를 구성하기 위하여 규칙을 만들고 조직을 만들어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빌립보 교회를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실제가 그렇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 전하기 원하였지만 성령께서 허락지 않았습니다.(행16:7) 바울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환상을 보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자신 스스로 간 것이 아닙니다. 첫 번 교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합니다. 루디아의 마음을 누가 열어 주십니까?

사도행전 16장 14절에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점치는 여자를 누가 변화시키십니까? 빌립보 감옥의 기적을 누가 일으키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빌립보 교회의 시작의 내력입니다. 지금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가지 못하고 감옥에 있지만 빌립보 교회에서 선한 사역을 이루어가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구원사역을 완성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이 감옥이라는 고난 상황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지며 하나님이 완성할 것을 확신하니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목회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서로 원망과 불평으로 목회할 수 있습니다. 매주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벌어집니다. 때로는 중직자가 교회를 비난하면서 떠납니다. 인간보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 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있습니다. 그 성도님 필요한 교회 있어 보내셨다고 감사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봉사할 때 그분 배후에서 일을 시작하게 하셨고 마치게 하신 하나님을 보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고 하였습니다. 부족한 인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목숨 건지기 위해 두 번이나 아내를 누리라고 속이고 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내어 준 사람입니다. 모세도 살인자였습니다. 야고보는 집요한 욕심 때문에 사기꾼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부인을 4명이나 거느린 사람입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만 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 허물이 많은데도 그들을 사용하여 한 시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을 보면 감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인간을 구원하여 변화시키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개개인의 구원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개개인 속에서 시작하십니다. 착한 일을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완성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어 우리 내부에서부터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갈망을 갖게 만드십니다. 복음적인 삶의 원리를 가지고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중심적인 삶을 살게 만들고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것을 고백하게 만듭니다. 과거에 좋아했던 일을 좋아하지 않게 만들고 과거 즐기던 것을 즐기지 않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의 착한 일이 시작되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끌게 만들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십니다. 그 어떤 것도 이일을 중도에 포기시킬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을 통해 끝까지 선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어떤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는 마음에 품은 사람으로 마땅히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마땅하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기쁘게 간구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숙명성, 감사의 절대성, 감사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고, 선택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자동 반응이 감사라는 말입니다. 조건 감사가 아니라 절대 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 속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쁘게 항상 간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왜냐하면 “너희가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전에는 남남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조건반응하고 조건에 감사하는 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남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추호도 거짓말이 없다고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되었으니 어떻게 불평하고 원망하겠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은 자신의 수고로 낳은 영적 자녀들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과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기쁨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빌립보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것으로 구원의 은혜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사도직을 가리킵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바울의 복음 전하는 사도직에 공동으로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매임, 복음을 변명함, 확정함”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인생의 비전을 같이 공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든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을 도움으로 동참했습니다. 변명함은 복음을 변호하고 잘못된 이해와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확정함은 진리의 적극적인 선포로서 여러 증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두려워하거나 자신들의 신앙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변론과 확증을 확신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도리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그를 돕고 그를 위해서 기도함으로 바울의 투옥에 참여했으며(2:25;4:18), 그가 로마 법정에서 변론하게 될 복음의 확증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은혜로 복음의 전우가 된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이 시련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도 그것은 시련으로 여기지 않았고 도리어 로마에 복음을 증거할 기회로 여겨 그 일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인의 불행을 보고 비교해서 느끼는 상대적 감사가 아닙니다. 이루어진 일을 보면서 잘 된 일에 감사하는 결과에 대한 조건적 감사가 아닙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고난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절대적 감사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고난이 닦쳐와도 서로 불평하고 원망할 존재가 아닙니다. 천국에 가서 함께 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사역을 감당하는 동역자로서 서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도 무조건 감사하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리오 왕이 그를 총리로 삼았습니다. 세 명의 총리 중 으뜸이 되어 권력 서열 2위가 된 것입니다. 노예 출신인 다니엘이 이 자리에 올랐으니 페르시아의 대신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알고 왕 외에 누구도 30일 동안 섬기지 못하게 합니다. 만약 다른 신을 섬기면 역적으로 몰려 사자굴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원망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에 세 번씩 믿음으로 감사를 표현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감사하는 다니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죽지 않았습니다. 사자굴에서도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총리자리를 계속 유지합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조건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하고 저녁에 잘 때 감사하고, 아내에게, 남편에게, 부모에게, 자녀에게 감사해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교회의 한 사모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개복을 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암이 커져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답니다. 크리스천 의사였던 주치의는 공책과 볼펜을 가져다주며 '사모님! 특별히 할 일도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보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감사를 적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자고 감사를 적기 시작했답니다. "첫 번째,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 못된 성격이지만 이렇게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 번째, 우리 아이들이 믿음 안에 건강 안에 잘 자라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답니다. 그렇게 감사를 적었을 때 의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까 '사모님 이제 복수에 물이 차면 와서 한 번씩 빼시면 될 것 같고 이제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다고' 퇴원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퇴원하며 매일 감사일기를 적었답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을 계속 적기 시작했답니다. 계속 감사를 적다 보니 은혜가 충만해졌답니다. 내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는가에 감격하게 되고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가서 전도도 하고 또 기도도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했답니다. 교인들은 걱정했답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고 미음이나 죽을 먹고 또 밥을 먹으면 소화도 못 시키는데 어떨 때는 그냥 밥을 먹는데도 소화가 잘 되었답니다.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답니다. 너무나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여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답니다. 검사를 한 의사는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놀라워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주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시기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막힌 담을 헐어 형통케 하는 기적을 일으켜 줍니다. 감사는 비판과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녹이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고칠 수 없는 내 성품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는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앞에서도 감사하면 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감사하십시오. 불평한다고, 원망한다고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를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언제나 생기가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질병, 육신의 질병, 영적인 질병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근심 걱정이 없어집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시기와 질투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탐욕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감사하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미래가 보장됩니다. 감사를 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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