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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난(1) 고난받은 이유(이사야53:4-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0 추천수:0 220.120.123.244
2019-04-07 14:10:23

 

예수님의 고난(1) 고난받은 이유

이사야53:4-6

 

교회 다니신 분들은 다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중요한 선택을 놓고 출근하면서 소망스러운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고 말씀을 펼치자 욥7:15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욥 7:15)” 죽으라는 말이 말도 안 되어 다시 기도하고 성경을 폈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아침부터 죽으라고 하니 너무 기가 막혀 또 다시 눈을 감고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라는 말씀이 들어왔답니다. 죽으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또 다시 시도를 했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기대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해보리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폈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18:21)” 다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더 오래 기도하고 성경을 폈답니다. 무슨 말씀이 나왔겠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펼치고 발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을 우리는 신약과 구약으로 구분하여 보고 있습니다. 예 약속, 새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구약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인물과 사건,제사의식, 율법등에서 예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인물 속에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장막으로 대표되는 종교의식 속에서, 제사의 제물 속에서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 아담도 되지만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올려진 구리뱀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는 일에 대한 모형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요3:14-16)이단들처럼 억지로 풍유적으로 영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불편하지만 성경을 찾아 읽어 보고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요한복음 5장 39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구약성경 전체는 일관되게 이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약속의 책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목숨을 걸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으니라(행2:36)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구약을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앞으로 재림할 재림주 메시아에 대한 약속입니다. 약속과 성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는 모형으로 신약에는 실체로 나타나 있습니다.

 

왜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지 요한복음 20장 31절을 찾아 같이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왜 성경을 기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예수님이 단이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것을 믿게 만들기 위해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아래를 보십시오.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생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1장 2절에서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는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는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모세 오경을 말씀하고, 선지자의 글은 선지서이고 시편은 시가서입니다. 구약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전체에서 우리가 누구를 발견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요한복음 5장 4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모세가 바로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성경을 펼 때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천지가 창조되기 전 태초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5절을 보세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창세 전에 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1장 1절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3절을 보세요. “만물이 그(예수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에 “만물이 그(예수님)에게서 창조되되(1:16)”라고 말씀하며 히브리서 1장에 “아들(예수님)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계셔서 창조 사역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예수님은 계셨고 활동하셨습니다. 구약에 어떻게 활동하셨습니까?

세상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였습니다. 본래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안식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고(창 2:1-2), 아담은 생령이 되어 에덴의 지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창 2:7).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안식 상태는 깨어지고 죽음과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로 변하여 한 몸된 자로 찬양의 대상이든 여자(창 2:23-25)를 죄의 책임을 져야 할 여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창 3:1-19).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차단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해 주심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언약해 주었습니다. 그게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한번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전인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으로 단수입니다.

이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 구약에 어떻게 나타납니까?

창세기 22장 1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대적의 문을 얻는다는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할 때 하나님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신다고 하였는데 그 약속의 자손이 누구이겠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창 12:2-3, 22:17-18)는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상처를 당하지만 부활하시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창세기 16장 7절에서 언약이 체결된 후에 등장합니다(16:7; 22:11, 15; 24:7, 40; 31:11; 48:16).

야곱이 기도할 때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라고 기도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인지 성경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사사기 13:18)”

그 기묘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바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셔 천치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기에 위해 구약에서도 활동하셨던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오실 것을 약속해 구체적으로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사실을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예수님의 비하라고 합니다. 성육신, 수법, 수난, 죽음, 장사지냄 등이 고난의 과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53장에는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떤 고난을 받을 것인가를 자세히 예언해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은 33살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형을 당하여야 했습니까? 아무런 잘못도 없으신 예수님이 왜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무지막지한 채찍을 맞아야 했습니까? 왜 예수님은 자색 옷을 입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면서 갈대로 머리를 맞으며 침을 뱉음을 당하며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까?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앞에서 두 강도와 함께 처형을 당하여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비아냥을 당하여야 했습니까? 왜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에 시달리면서 사람들에게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며 모욕을 당하여야만 했습니까? 왜 이런 고난을 당하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사람들은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다고 생각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며 죽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4)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고난당할 만한 짓을 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난과 불행과 질병을 죄의 결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당하는 고난도 ‘그’의 잘못에 기인한 징벌의 결과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슨 죄목으로 예수님을 처형했습니까?

죄목은 로마인에게 있어서는 반란죄이고,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참람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요구하기를 "(요 19: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마 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써 붙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탐욕 때문에 제사장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제사장은 시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비겁함 때문에 군병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였습니까?

과연 예수님은 로마에 반역하는 반역 죄 때문에 돌아 가셨을까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죄 때문에 돌아가셨을까요?

예수님의 유다의 탐욕 때문에, 빌라도의 비겁 때문에 제사장들의 시기 때문에 돌아가셨을까요? 진정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그 이유를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고난을 네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찔렸습니다. 가시 면류관과 못과 창 등으로 찔렸습니다. 상했습니다. 보통 상함이 아니라 뼈가 부스러지는 것 같은 상함입니다. 징계를 받았습니다. 채찍에 맞았습니다. ‘찔림’과 ‘상함(부서짐)’은 보통 죽음을 전제한 상해를 의미하며, 보통의 경우 성경 속에서도 죽음과 함께 사용되어 집니다(22:2; 51:9; 66:16; 시69:26)

주님이 ①찔림의 고통 ②상함의 고통 ③징계의 고통 ④채찍의 고통을 당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 문제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무려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찔리고 상하고 징계당하고 채찍에 맞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그런 고통을 당하였다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공생에를 시작하시는 것을 보고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생은 처음부터 인류를 위해 대속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실로(아켄)’은 ‘그러나 틀림없이’라는 의미입니다. ‘지다(나사)’와 ‘당하다(세발람)’는 같은 의미의 단어로 레위기 제사 규례의 표현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로써 재물이 죄지은 자의 죄를 대신한다는 대속의 의를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대리적 고난이라는 말입니다.

 

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말씀합니다.

6절에 예수님이 고난당한 이유가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큰 소리고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바로 ‘나’입니다.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눈

이 밝아져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생겨버린 죄인들이 마치 양과도 같이

고집스럽게도 자신의 의지대로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은 지극히 눈이 어두운 동물이라고 합니다. 목자 없이 자신이 가고 싶은 데로 가면 필경 그 끝은 죽음이 되고 맙니다. 영적으로 소경이 된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우리들의 행복과 기쁨을 가져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너무 고집이 센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스스로 지옥의 형벌을 해결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인 예수님이 자기희생을 통한 대속적인 고난을 당하게 하심으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6절에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형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형을 당하였다는 말입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죄의 삯은 사망인데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완전히 죄의 삯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인간의 질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인간을 죄로부터 자유함을 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답은 우리를 대속하여 모든 고난을 당해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이사야서 55장 1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젓을 사라“

 

질고의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당하는 질고를 지고 대속해 주신 예수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신문에 보니까 30대 의사가 생후 4개월 미숙아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 끊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4개월 전 태어난 쌍둥이 딸 중 한 명이 미숙아로 태어난데 대해 비관해 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아무리 힘든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절망하고 포기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치유를 받았습니다. 38년 된 혈루증 환자가 낳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소경이 눈을 떴으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렸습니다. 오늘 날 병명으로 말하면 열병, 말라리아, 문둥병, 선천성 소경, 파킨스씨 병 ,신장염 , 관절염, 간질병 , 귀머거리, 신체장애, 정신병 등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유 받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두려움 , 불안, 긴장 흥분, 불면증, 우울증 등과 같은 각종 신경성 질환자도 고침받았습니다. 기능장애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기관 장애가 고침 받았습니다. 설령 질병이 치료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질병으로 인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적 질병과 고통으로 근심하고 고통하지만 예수님께 나오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죄로 말미암아 죄의식 가운데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대가를 다 받으신 예수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리자로서 속죄를 행하셨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우리는 그렇게 정직하고 진실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나’를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 앞에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기에 의로울 수 없으며 오로지 예수님의 대속적 속죄, 하나님의 은혜로만 깨끗케 될 수 있습니다. 대속은 재판관인 아버지가 범죄 한 아들에게 엄중한 판결을 내린 후 재판관의 옷을 벗어버리고 아들 옆으로 내려와 판결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순간 순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하지만 죽지 않습니다. 잠깐 졸도했다 다시 살아납니다. 국회 청문회를 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타인도 못믿을 사람입니다. 신뢰나 평판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풍기 유머가 있지 않습니까? 깨끗하게 산다고 늘 목사님 장로님 비판하고 살던 사람이 천국에 가서 보니 죄 지은대로 빨리 돌아가는 개인 시계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장로님 시계를 보니 빨리 돌라가더라는 것입니다. 통쾌했답니다. 목사님 시계르 보니 더 빨리 돌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계를 찾아 보니 없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물었답니다. 내 것은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모세 할아버지가 선풍기로 쓰고 있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거룩해질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요즈음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상대를 저주의 푸닥거리를 하는 것처럼 날마다 비난합니다. 누구 비난할 처지가 못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대속적 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며 고통 가운데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인간 끼리 원수를 맺고 앙금을 가지고 지옥같은 생활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다 십자가에서 당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동서가 평화를 이룹니다. 십자가가 서는 곳에서는 남북이 하나가 됩니다. 지역감정의 담이 무너집니다. 빈부의 담, 남녀의 담, 권력의 담, 학력의 담, 민족의 담, 나라의 담이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돌아가심으로 모든 담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묵은 감정 때문에 인사해도 얼굴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고난을 다 짊어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화해하고 지옥같은 생활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죽음의 두려움으로 고난 겪으시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시시 때때로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자유로울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우리가 한 번 이 땅에 죽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질병도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근심도 걱정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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