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2) 모든 사람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33:3
즐거운 민속명절인 추석이 이번 주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사에 대한 갈등도 있고, 어떤 분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야하는 부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일가친척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주 북한이 또 5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이제 32세의 독재자 김정은 거의 완성된 형태의 '핵미사일'을 손에 쥔 것처럼 보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심각한 위기가 밀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는 6·25 전쟁 이후 63년간 유지돼온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그 어떤 무기보다 월등한 무기를 가지게 됨으로 힘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어린 독재가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만약 서울 한복판에 20kt급 핵폭탄을 투하하면 113만명이 사망한다고 합니다. 부상자를 포함하면 전체 사상자는 274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남한은 북한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지만 요즈음 세태를 헬조선이라고 말로 표현하듯이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도덕적으로 심각한 타락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비윤리적 행동으로 신문에 오르내리면서 종교마저도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민족적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살 당시 강대국인 바벨론에 의해 유다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극도로 타락하였습니다. 유다는 더 이상 정숙한 신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물질의 신을 섬겼습니다. 정의도, 정직도, 절개도, 순수도 살아졌습니다. 병이 결렸는데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선포하게 하셨지만 유다백성이 듣지 않음으로 멸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일로 예레미야는 국가 모독죄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총각으로 살면서 눈물로 회개를 호소했지만 예레미야를 오히려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감옥에서 이제 죽어가는 민족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같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명절을 맞이하고 있지만 경제의 감옥, 건강의 감옥, 질병의 감옥, 한계의 감옥, 근심과 걱정의 감옥, 불신의 감옥에 갇혀 있으신 성도님들이 있습니까? 내 능력으로서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적 선언을 하고 계시는 성도님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원하십니다.
부르짖는 것은 특별한 용무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말합니다. 긴급성, 절박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부르짖습니까? “내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감옥같은 민족 문제를 놓고, 가정문제를 놓고, 자녀 문제를 놓고, 가족 문제를 놓고, 경제 문제를 놓고, 건강 문제를 놓고 내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무관심하지 말고 민족문제를 내 문제를 받아들이고 우선순위에 놓고, 애타고 간절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기도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기를 당한 민족 앞에서 기도하는 사무엘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명 걸고 기도한 에스더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는 명예와 부를 한 순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다니엘과 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서있는 히스기야의 기도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 하나님이 다 하시는데 기도할 것이 있느냐고 말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망 고문을 말하며 기도해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데 뭐 기도 하냐고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지성적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분들 중에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인데, 기도로 하나님을 재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거나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이 도와주시는데 굳이 기도드릴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둘째는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는 미신적이고 주술적이고 기복적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기도하는 내용이 결국, 자기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 행동에 불과하다고 기도하는 신앙인을 정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기도를 강조해 주셨습니다. 살만하니까 기도 무용론을 말하지 절박하면 무신론자도 기도합니다. 한 때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교수님도 딸의 질병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 7가지 정도를 성경을 통해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1)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마16:19)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게리 프리슨과 로빈 맥슨이 공저한 「나의결정과 하나님의뜻」이라는 책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3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둘째,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 셋째, 하나님의 개인적인 뜻이라고 말합니다. 주권적인 뜻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된 계획입니다. 도덕적인 뜻은 인간이 어떻게 믿고 살아야만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뜻은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독특하게 적용하는 이상적이고 상세한 삶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때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명백하게 알려 주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70년이 되면 해방될 것 예언하였습니다(렘29:10-14) 그러나 12절을 보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겔36:37). 출애굽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창15:12-26절에서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출2:23-2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통해서입니다.
(2)기도를 쉬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기도만이 하나님께 응답받을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약4:2)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4)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렘33:3)
(5)기도가 우리를 근심에서 구출하여 주기 때문입니다(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6)”
(6)기도함으로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7)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살다보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처럼 민족적 위기가 다갈 올 수가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처럼 위기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질병의 위기, 신앙의 위기, 가정의 위기, 나라의 위기, 경제의 위기, 자녀의 위기가 다가올 때 이 때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될 대로 되라고 자포자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십니다(3).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해 주십니까? 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응답해 주겠다는 약속입니까?
1) 고쳐 주심으로 응답하십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영적 질병이 있습니까? 마음의 질병이 있습니까? 육신의 질병이 있습니까? 관계의 질병이 있습니까? 경제의 질병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우리 하나님이 고쳐 주실 줄 믿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저서 ‘잘 되는 나’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오스틴의 친구가 말기 암에 걸렸는데 의사들이 다 포기했답니다. 하루는 집에서 요양을 하는데 네 살배기 아들이 성경책을 들고 나왔답니다. 글을 못 읽는 아이가 성경을 펼치고 손가락을 대며 “아빠, 뭐라고 쓰였는지 읽어 달라” 말했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을 가리키고 있기에 그가 읽어주었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그 순간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답니다. “네 살배기 아들이 죽음을 앞두고 절망에 빠진 자신에게 성경을 펼쳐 손가락으로 이 구절을 가리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답니다. 그는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구절을 부여잡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절망적인 말기암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답니다. 똑 같은 말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의미 없이 흘러가는 바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있습니다. 고쳐 주심으로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부르짓어 기도하는 자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확실합니다(Certain). 하나님의 응답은 개인적으로 옵니다(Personal).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응답 하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가시적”으로 옵니다(Visible). 하나님의 응답은 “놀랍게” 옵니다(Wonderful).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 드리세요.”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15:26)라고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불치의 병에서 기도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시편 기자도 시편 30편 2절에도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간증합니다.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부르짖으라 반드시 내가 너를
2) 포로에서 해방시킴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여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모든 중독의 포로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3) 모든 죄악을 사하심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죄 값으로 받은 형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함으로 완전히 없애주셨습니다. 모든 죄로부터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지난 주 유명 야구인이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롯데 부회장이 자살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분은 집사님이고 한 분은 장로님이었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표면적으로 돈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죄의 문제입니다. 검찰은 죄를 다룰 때 혹독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의에 힘입어 회개하면 그 어떤 죄도 다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인간은 끝까지 기억하며 괴롭히고 괴로워하지만 하나님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라고 말씀하십니다.
4) 열방 앞에 기쁨이 되게 하심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열방이 들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목회자 R.A. 토레이는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과 평안이 가득 쌓여 있는 창고 문을 여는 열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실제적인 힘이 있습니다.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나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종교적 형식이 아닙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는 사람이지만 늘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난 2주 동안 어느 가정의 어려움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에 만났는데 다 해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겠지만 중점적으로 기도한 저로서는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언니 아들 딸들이 다 잘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언니가 심어서 그 열매를 거둔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은근히 제 마음 속에서는 나도 그 아이들을 위해 10년 넘게 매일 기도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기도를 심으면 그것이 썩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다 기억된바 되었다가 하나님의 때에 응답되는 것처럼 30배 60배 100배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영국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일생 동안 3만 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60년 동안 만 명의 고아들을 돌보면서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후원금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방송에 고아를 볼보고 있다고 선전하고 인터넷에 선전하여 선마케팅을 한 것이 아니었답니다. 그는 기도에 헌신했답니다. 기도 노트에 기도 제목을 기록한 후 끈질기게 기도하고 기도 제목이 응답되면 응답된 표시를 하거나 감사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기도 노트에 수많은 기도 제목들이 3000 페이지 이상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기도 노트를 후세 사람들이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약 3만 번 이상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의 몸도, 허물어져가는 우리의 삶의 근거지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잃은 것을 되찾게 하시며, 우리 민족을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불순종했다 할지라도,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부르짖으면 버림받은 사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
3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크고 비밀한 일을 보는 것입니다. 크고 비밀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어 알게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크고 비밀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선한 말, 약속의 말, 언약의 말이 성취될 날이 있습니다. 31장 31-33절을 통해 해 언약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이 누구를 통해 성취된다는 것입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에게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됩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메시아로 인하여 구원과 왕권이 지속될 것을 말씀합니다.(16,17) 메시아로 인하여 제사장직이 계속 이어질 것을 말씀합니다(18,22) 메시아로 인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23-26)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열방이 주님께 돌아올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는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내 욕심을 채우는 만능 열쇠가 아닙니다. 기도 만능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으로 구하는 것 들어 주시기 않습니다. 죄 가운데 회개하지 않고 때를 쓰는 것 외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아니다(No)" "기다려라!" "좀더 성숙해라!"라고 응답할 때가 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동기로 구하는 것은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약4:3)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둘째는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육신이 죽은 것처럼 영적 교제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숨쉬기 귀찮다고 숨을 멈추는 사람이 없듯이 기도하기 귀찮다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숨을 쉬듯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기도하며 삽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질식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개와 마귀는 우리가 엎드리면 도망간다, 개는 돌 줍는 줄 알고 도망가고, 마귀는 기도하는 줄 알고 도망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성경에 기도라는 말이 여러 가지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 '기도'라는 말 가운데 헬라어 '프로쉬케'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조율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처럼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만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비밀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말씀한 것처럼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택하게 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뜻을 밝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누군가 링컨에게 “위기의 순간마다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나는 기도 이외에 최선의 방책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지혜와 주변 사람들의 재능으로는 어려움을 극복하기에 부족합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 최선의 방책을 알고 계심으로 나는 그저 믿고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입니다. 민족이 멸망을 바라보고 있는 예레미야입니다. 감옥에서 기도하게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희망의 미래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회복시켜 주시고(6-9) 치료해 주시며(6),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고(7,11), 세워주며(7)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고 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8)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게 하며(9),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하고(9), 모든 무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1). 예루살렘 성을 다시 부흥케 하고(12,13).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고(26) 이스라엘을 영원히 보호할 것이라고(24-26) 메시아를 통해 진정한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런 음성을 들려주실 줄 믿습니다. 신앙인이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판단하기 힘들고 결정하고 선택하기 힘이 듭니까?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 기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선택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있습니까? 감옥과 같은 인생입니까? 미래가 참담합니까?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람들 버리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삼상 12:22)”
우리 하나님 그리스도의 피로 순전해진 순전한 사람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욥 8:20)”
우리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찾는 자 버리지 않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 9:10)”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의인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우리는 어떤 형편에 있던지 기도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기도해야 합니다.
3절 같이 읽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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