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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에베소서 5:2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565 추천수:12 112.168.96.71
2016-07-03 07:51:55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

에베소서 5:20

 

어떤 그룹 회장 비서실장을 수년간 지낸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기 회장님은 직원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이라도 하면 해당 부서장을 호출한답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현금(수표)을 전부 꺼내 주면서 직원을 격려하라고 말한답니다. 물론 돈이 얼마인지 세어 보지는 않는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세지 않고 건네 준 현금이 얼마의 금액인지는 잘 알고 있답니다. 회장님이 직원 격려 등으로 수표를 사용하면 비서실에서 다시 정해진 금액을 보충해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에게서 현금을 세지 않고 받은 부서장들의 행동은 같지 않다고 합니다. 다수의 부서장은 비서실장에게 "어제 회장님이 주신 돈으로 가족을 격려하고, 장례까지 잘 마쳤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으로 끝이랍니다. 일부 부서장은 "어제 회장님이 450만 원을 주셨는데,

병원비에 300만 원, 장례비에 95만 원을 지원하고, 55만 원이 남았습니다"라고 하며 영수증과 함께 남은 돈을 반납한답니다. 비서실장인 그는 전달받은 그대로 회장님께 보고한답니다. 그 때 회장님은 "그 친구 참, 철저하구만…"하고 웃고 만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이 그가 장차 임원 승진 후보자로서의 1차 관문을 통과한 것과 다름없답니다.

격려금 전달이라는 작은 일 처리를 보고 회장님은 그 사람의 신뢰도를 측정하기 때문이랍니다. 이렇게 회장의 신뢰를 얻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승진될지는 모른답니다. 회장님은 차기 임원 승진심사 때가 되면 신뢰를 얻어 1차 관문에 통과된 사람들을 거의 탈락시킨답니다. 그리고 회장님은 3개월쯤 지난 후에 "그 사람 요즘 어찌 지내? 한번 알아 봐"하고 비서실장에게 지시한답니다. 비서실에서 비밀리에 알아보면 승진에 탈락한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랍니다. 불만을 갖고 불평하며 어영부영하는 사람과 오히려 감사하고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랍니다. 조사 후에 "김 부장은 전혀 불만 없이 활기차게 직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회장님은 "그래?"하고 말한답니다. 이 때 임원 승진의 2차 관문에 통과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회장님은 김 부장과 같은 사람을 다시 남들이 다 싫어하는 한직이나 기피부서 예컨대 시리아 건설 현장 같은 곳으로 발령을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나면 회장님은 다시 비서실장에게 묻는답니다. "거, 시리아로 간 김 부장은 요즘 어찌 지내? 비공개로 알아 봐." 조사 후에 "김 부장은 현지에서 불평불만의 소리가 전혀 없으며, 직원들과 관계도 좋고 업무 성과도 좋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 승진심사에 상무로 발령 내고 본사로 불러들여."라고 말한답니다. 이 때가 되면 회장님이 신뢰하고 중요한 일을 맡길 3차 관문까지 통과된 것이랍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하나님도 우리를 그런 방법으로 점검합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은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자신이 2달트 5섯달트 받은 동료에 비해 부족하냐는 것이지요. 주인이 자신에 대해 불공평하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불만을 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아 버립니다. 결과는 이 사람은 있는 것까지 다 빼앗겼습니다. 어떤 일을 맡겨놓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불만하는 사람에게 좋은 미래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감사로 하면 행복해지고 즐겁고 풍요로워집니다. 어떤 조건이 주어저도 조건을 초월하여 감사하는 자에게 좋은 미래는 보장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물질의 부요도, 지위도, 행복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감사합니까? 이해 못할 일을 당했을 때 감사합니까?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만났을 때 감사합니까? 좋은 일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불평하면 원망했겠습니까? 아니면 감사했겠습니까? 에베소서 1장 3장을 보십시오. 오히려 찬양을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령한 복을 알았고 그 신령한 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신령한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잘 먹고 잘사는 것, 내 맘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겠습니까? 1장 4절을 보십시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한 것입니다. 5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깊으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십시오.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죄사함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신령한 복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로마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5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런 말은 하나님의 아들딸인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5장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은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차원이 다르고, 신분이 다른 하늘나라 성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록 이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에 속한 성도는 어떤 말을 하라고 합니까?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으면 “사장이 어떻고, 부장이 어떻고, 목사가 어떻고, 장로가 어떻고, 아버지가 어떻고 어머니가 어떻고...” 불평불만을 털어놓고, 남들의 허물을 안주삼아 말의 성찬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집에가서 불평원망하지 말고 퇴근해 와서 맘에 들리 않는 일로 원망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하고 합니까?

오늘 본문 5장 20절을 힘차게 읽어 보겠습니다. 힘주어 말씀하고 있는 말이 무엇입니까? “범사”와 “항상”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즉 감사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이며,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통로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바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환경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조건을 초월하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유익함이 주어질 때만 감사하는 조건 감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더 좋은 것이 있을 때 감사하는 비교 감사가 아니라 어떤 경우도 감사하는 절대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다고 하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가는데 이렇게 감사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학교 잘 다니던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 수고하여 그렇게도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믿었던 친구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신을 나쁨 놈이라고 욕하고 다닙니다. 그래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딸이 치한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감사하겠습니까?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장애아가 집안에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력서 수십 통을 보냈는데 면접 한 번도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열심히 했는데 직장에서 요령피우는 사람은 승진했는데 자신은 승진에서 탈락했습니다. 아니 해고되었습니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욥과 같이 자식들이 죽고 있는 재물 다 없어지고 자신도 병들었다면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설교하는 저도 설교할 때는 말하기는 쉽지만 만약 내가 직접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가혹한 요구이고 너무나 부당한 요구 같지 않습니까? 너무나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 않습니까? 너무나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비인간적인 말씀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부당하게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통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감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타협을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협상을 위한 제안도 아닙니다. 인간의 속성을 몰라서 하시는 무식한 말씀도 아닙니다. 인간을 너무도 잘 아시고 형통하시길 바라시는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감사하라는 명령입니다.

 

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감사생활을 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닥치고”, “무조건”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든지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그냥 감사를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 감사합니까?

내 뜻대로 될 때 감사합니다. 운동경기도 내가 이겼을 때 감사합니다. 믿음 좋은 축구 선수가 골을 집어넣었을 때 운동장에서 무릎 꿇고 감사합니다. 돈도 내가 벌었을 때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준이 나입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내 뜻대로 되었을 때 감사합니다.

우리는 어느 일에 감사합니까?

내 뜻대로 되는 일에 감사합니다. 내 뜻대로 소원이 이루어지면, 내 뜻대로 아들이 취업하면, 내 뜻대로 승진하면, 내 뜻대로 돈을 벌면, 내 뜻대로 결혼하면 감사합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더 높은 차원의 감사를 요구합니다. 어느 때 감사하라고 합니까? 어느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 내 뜻이 다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70억 인구의 욕심덩어리인 인간 각자의 뜻이 이루어지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범사”고 그것이 “항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통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차 없이 운행하시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사람의 생로병사가 다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아들이 빨리 천국에 갔는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실패했는지, 왜 우리가 감옥에 갇혀있는지, 왜 우리가 병들었는지, 왜 우리 아이가 장애인지 잘 몰라서 불평불만을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질병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지도 못했을 텐데 질병 때문에, 가난 때문에, 실패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천국 백성이 되고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장애 아이가 없었다면 잘 나가던 남편이 바람피우며 살터인데 아이의 장애 때문에 남편이 겸손해지고 주님께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몰라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지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성경에 보면 자주 감사를 말씀하면서 따라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대상 16:34)”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스3:1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 시편에서는 이 말씀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니까 어떤 경우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수준의 감사생활을 원하십니다. 오늘 2016년 전반기를 마감하고 하반기를 시작하는 맥추 감사절입니다. 하반기를 시작하는 감사절에 항상 범사에 감사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일어서는 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를 따라 하겠습니다. “6월까지 제 마음대로 안 되었지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보, 전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집사님, 식당봉사하느라 힘들었지만 같이 신앙생활 해 주어 감사합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로 후반기 행복하게 삽시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절대 감사생활을 하였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혀 기도하면 죽을 줄 알면서도 집에 돌아와서 감사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있습니다. ①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비교해서 느끼는 감사입니다. ② 결과에 대한 감사입니다. 조건적 감사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루어 진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도 좋은 감사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가장 고귀한 감사는 ③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무조건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건강도 잃고 재산도 잃고 자녀도 잃었습니다. 그 때 욥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절대감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신 감사입니다.

식사시간이 되었는데 남자 장정만 5000명이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아마 15000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10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제자가 가지고 옵니다. 예수님은 이 때 불평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은 나사로 무덤 앞에서도 예수님을 감사합니다.(요 11:41) 고라신과 벳세다야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을 때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오히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이란 무조건 과거의 일은 감사로 해석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과거에 매 달리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스스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오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슬픈 과거가 바뀌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고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조건이 아닙니다. 해석의 문제입니다. 지난 세월 아픔들이 있다면 감사로 해석하고 조건을 초월하는 감사로 일어서는 맥추감사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는 기준의 문제입니다. 감사는 시각의 문제입니다. 자신보다 위를 바라보면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있지만, 자신보다 아래를 바라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떤 경우에도 초월절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0에서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상실로 불평과 원망을 하지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것이 많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것도 감사, 가정을 주신 것도 감사,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감사, 일을 주신 것도 감사, 집을 주신 것도 감사, 생명 주신 것도 감사...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이 있습니까?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신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 하신 것 감사 해처럼 베푸신 은혜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못한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

 

현재의 고통은 감사로 극복해 버리는 것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은 감사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불만스러운 삶을 바꾸는 최고의 능력 “감사진법(강충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7가지 감사 진법이 나옵니다. “첫째가 예상치 못한 일에도 무조건 감사하라. 둘째는 내 귀가 반응하도록 소리 내어 감사하라. 셋째는 방해 요인을 꼬집어 감사하라. 넷째는 감사의 마음이 넘칠 때까지 감사하라. 다섯째는 즉시 감사하라. 여섯째는 모든 것에 감사하라. 일곱째는 사람에게 입은 상처라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축복하라.”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라고 말했습니다. 또 마르틴 루터도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삽니까?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은혜를 당연시하기 때문입니다. 비교의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부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감사를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우둔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롬1:21,22) 감사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입니다. 감사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감사가 없으면 인생은 지옥으로 변합니다. 감사하면 지옥같은 인생이 천국으로 변하여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려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습니까?

첫째,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면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예레미야서 30장 19절에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감사하는 사람들을 번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존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번성의 축복을 받습니다. 감사하는 인생이 비천해지지 않고 아름다워집니다. 감사하는 자의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시편 105 편 1 절에서 3 절에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께 감사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그를 보시고 그 마음을 즐거움으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0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의 영혼도 고쳐 주어 구원시켜 주었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더 많은 것을 받게 됩니다. 감사는 행복의 마스터 키와 같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헤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끌어 오는 자석과 같습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으로써 건강을 증진하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할 뿐 아니라 심장이나 몸 그리고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이 떨어지고, 소화 작용을 촉진할 뿐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감소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2학년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72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잘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감사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유익은 대단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해 보십시오. 식당에서 계산서에 ‘Thank you’라는 메모를 쓴 식당 종업원은 그냥 계산서만 전달한 종업원에 비해 평균 11%나 팁을 더 많이 받고, 손님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 종업원의 팁은 그렇지 않은 종업원들이 받은 팁에 비해 17-20% 가량 많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물질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갤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 로버트 에먼스는 감사를 습관화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16년 동안 추적했답니다. 그 결과 우선 감사를 습관화한 학생의 연평균 수입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2만 5천 달러나 많은 것을 발견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를 습관화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수명이 9년이나 길었답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료이며 풍요로운 삶의 재료입니다.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감사 생활을 하면 장수한다고 합니다.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질병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질병, 육신의 질병, 영적인 질병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건강해 집니다. 감사하면 근심걱정이 없어집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시기와 질투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탐욕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감사하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상처받아도 사랑합니다. 감사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둘째,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대하20:20-26)

다니엘이 감사하니까(단6:10) 사자굴에서도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총리자리를 계속 유지합니다. 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이 세 나라가 연합군이 쳐들어왔는데도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감사하니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적군들이 피차 살육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즐거움과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 무덤 앞에서 감사 기도하니까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를 놓고 기도하니까 굶주린 백성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12바구니를 거두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감사하면 내 힘으로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게 됩니다. 늘 불평과 원망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조건을 초월한 감사를 하다보면 불평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더러운 사람으로 지탄받는 사람도, 사람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도 인정받는 인격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조건을 초월한 감사를 하면 인격적으로도 사랑을 받게 되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0: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욕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입니다.

 

셋째, 조건을 초월한 감사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습니다.

성경은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시69:30-31)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감사 없는 황소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밤낮으로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식당 봉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수고한다하여도 감사로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으로 그 일들을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집 안에서 부모 역할 힘들다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감당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도 못하고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교회에서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 성가대, 찬양 사역, 주방, 청소, 안내, 주보, 재정, 자원봉사, 선교 등으로 섬길 때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어차피 부모 노릇하고, 어차피 회사에서 일하고, 어차피 예배드리고, 어차피 죽는 날까지는 이 땅에 살아야 할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자세를 '감사'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로 표현하고 감사로 기대하고 사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도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로 표현하고 감사로 기대하고 살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감사 불감증 시대입니다. 감사도 거래의 수단이 된 시대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시대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2-4)”라고 말씀합니다. 말세의 특징 중의 하나가 감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질로, 재능으로, 시간으로, 몸으로, 말로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삶을 '감사'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감사, 잘 되어도 감사, 건강해도 감사, 병들어도 감사, 성공해도 감사, 실패해도 감사, 잘 생겨도 감사, 못 생겨도 감사, 합격해도 감사, 불합격해도 감사 이렇게 모든 일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 보이시리라 감사드려 감사드리세 아버지께 감사로 제사를 찬송드리세 아버지께 우리의 찬송을 할레루야 할렐루야 우리의 찬송을 할렐루야 할렐루야 영원토록 찬송을 영원토록 감사를 영원토록 감사 찬송을”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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