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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계수하는 지혜(시편90: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85648 추천수:1 218.147.218.173
2025-12-28 14:39:49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

시편90:12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

시편 9012

 

오늘은 2025년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팀 어반(Tim Urban)이라는 작가가 재미있는, 아니 어찌 보면 섬뜩한 달력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90년의 인생 달력(The 90-Year Life in Weeks)'입니다.

가로세로 1cm 정도 되는 작은 네모 칸 하나가 우리 인생의 '1주일'입니다. 90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A4 용지 한 장에 우리 인생의 모든 주(week)가 다 들어갑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서 지금 40세라면, 이미 그 종이의 절반 가까운 칸이 까맣게 색칠되어 지워졌습니다. 60세라면 3분의 2가 이미 사라졌습니다. 90세라면 다 살아지고 덤으로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현재 60대가 약 770만 명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연령층입니다. 70대에 가면 약 410만 명으로 줄고 80대에 약 200만명 정도가 됩니다. 81세는 306,522, 85세는 196,529, 90세는 81,01491세는 63,570, 95세는 21,45997세는 9,801, 100세는 1,600명으로 0.003%(33,333명당 1)100세에 도달합니다. 80세인 분이 100살까지 살 확률은 약 2-5% 내외가 됩니다.

만약 부모님을 일 년에 설날과 추석, 두 번만 뵌다고 가정해 보면 부모님이 앞으로 10년 더 사실 수 있다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횟수는 무한대가 아닙니다. 20번 남았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20% 남았을 때는 그렇게 초조해하면서, 정작 내 인생의 배터리가, 소중한 사람을 볼 기회가 '카운트다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이라고도 부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내일도 계속되겠지"라고 믿어버리는 뇌의 착각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 남은 날을 셀 줄 아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인생의 달력은 몇 장 남아 있습니까? 인생을 잘 살려면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1.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는 끝을 기억하며 사는 삶입니다

인생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죽음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고도의 방어 기제'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이유를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뇌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를 가리기 위해 '일상'이라는 커튼을 치고, 그 커튼 위에서 자존감과 문화라는 연극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유한한 삶'을 인지하고 사는 것과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2절을 다시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기서 '계수하다(미노트)'는 단순히 1, 2, 3 숫자를 세라는 뜻이 아닙니다. '할당하다', '준비하다', '가치를 매기다' ‘경계를 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회계사가 자산을 정확히 평가하듯, 우리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 "내 남은 날이 얼마인지 계산하여, 하루하루의 가치를 무겁게 여기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남은 날을 계수하는 것은 뺄셈의 지혜를 가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 가방에서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 과도한 욕심... 이 무거운 것들을 들고 가기에 우리 남은 날은 너무 짧습니다.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남은 날을 안다면,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분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는, "주님, 제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오늘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내 인생의 마감 기한을 정직하게 대면하여,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로 받게 하소서"라는 고백입니다. 남은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을 모르면 사람은 대충 삽니다. 끝을 알면 사람은 집중해서 삽니다. 끝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시편 905절과 6절을 보면 인간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다고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영원히 청춘일 것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인생이 '순식간에 다하나이다(9)'라고 고백합니다. 시간을 계수한다는 것은 "내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나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존재다"라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이라는 울타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시간은 '내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영토'로 변합니다. 데드라인이 시간을 선물로 바꿉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치명적인 실수는 무엇입니까?(누가복음 12:16-21) 돈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무한하다고 착각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그날 밤 그의 '데드라인'을 가져오셨습니다. 시간을 계수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낭비하지만, 시간을 계수하는 사람은 오늘을 위해 미래의 가치를 끌어당겨 씁니다. ''을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사소한 일'에 인생을 걸지 않습니다. 시험이 5분 남은 학생은 연필 깎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오직 '정답'을 적는 일에만 몰입합니다. 내 날을 계수할 줄 아는 성도는 사소한 감정싸움, 헛된 욕심, 남과의 비교라는 '오답'을 지우고, 사랑, 감사, 사명이라는 '정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최고의 시간 청지기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소유하는 주인이 아니라, 시간을 잠시 위탁받은 청지기인 것을 철저하게 알았습니다. 그의 시간 계산법은 언제나 '인생의 끝'을 향해 있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바울은 시간을 그냥 소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결승선(데드라인)'을 향해 정확히 쏟아부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시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면류관'으로 변할 것을 계산하고 살았습니다. 축구 경기는 90분 휘슬이 울리면 끝납니다. 바울은 그 휘슬 소리를 기다리며 뛰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인생 성적표'를 받게 될 겁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사람은 나중에 하나님께 드릴 대답을 준비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KPMG의 회장이었던 유진 오켈리(Eugene O’Kelly)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말 그대로 '시간 관리의 달인'이었습니다. 그의 수첩은 10년 뒤의 계획까지 분 단위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그는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3세의 나이에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뇌종양 말기, 남은 시간은 단 '90'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가 평생 공들여 관리해왔던 '10년 계획표'는 아무런 의미 없는 종이 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성경이 말하는 '우리 날 계수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남은 90일을 '관리'하지 않고 '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인간관계의 명단을 정리했습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친구들, 소원해진 친척들을 찾아가 진심으로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둘째로,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응시했습니다. 평생 앞만 보고 달리느라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창밖의 노을, 아침 이슬이 맺힌 풀잎을 보며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나의 지난 53년보다, 죽음을 앞두고 보낸 이 90일이 훨씬 더 밀도 있고 행복했습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유진 오켈리 회장에게 '(Deadline)'은 인생을 망가뜨린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끝이 있다는 사실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선물)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유진 오켈리처럼 '90'이라는 통보를 받지 않았을 뿐,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 페이지'가 반드시 있습니다. 끝을 기억하는 자는 오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끝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믿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여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는 것을 믿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주님을 만날 그 날을 보고 시간을 계수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듣는 저와 우리 성도님이 될 줄 믿습니다. 남은 시간을 계수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만날 날을 기대하며 남은 시간을 기회의 시간으로 잘 살아내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남은 날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영원의 안경을 쓰십시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이렇게 자문하십시오. "내가 떠난 후 나의 시간 사용이 어떤 의미로 남을까?" 커리어, 재산, 인기는 사라지지만,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 전한 복음, 세운 제자들, 세운 교회는 우리가 떠난 후에도 향기로 남습니다.

 

2.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는 지금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본문에서 계수의 결과로 얻게 되는 것이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인데, 이는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기술'을 뜻합니다. , 내 삶의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무엇이 사소한지'를 구별하는 안목을 갖게 됩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언젠가'라는 허상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오늘'이라는 좁은 문으로 지금 당장 걸어 들어갑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사람은 언젠가대신 지금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은 항상 지금입니다. 지금이 모여 미래가 되고 인생이 됩니다. 모세는 12절에서 지혜를 구한 직후, 13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서 "언제까지니이까"라는 표현은 단순히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아드-마타이'라고 하는데, 고통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개입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절박한 부르짖음입니다. 모세는 인생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중으로 미룰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 필요하듯, 나의 순종도 지금 드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시간 속에서 인생이 가장 복받는 길, 형통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금 순종하는 길입니다. 목적지에 잘 가려면 레비게이션 안내양에게 지금 지금 순종하면 됩니다.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 사람도 가나안 땅까지 가는 길은 매일 지금 순종하면 됩니다. 오늘이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날임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시간을 계수하며 사는 사람들의 최선의 지혜입니다. 지금 말에 신중해지고 지금 관계를 가볍게 다루지 말며 지금 회개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나중에'를 선택했다가 인생의 황금기를 놓친 비극적인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총독 벨릭스입니다.(사도행전 24:25) 사도 바울이 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벨릭스는 복음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이 아닌 '편리한 기회()'를 찾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가 다시 바울을 불러 구원을 얻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미루는 것은 대놓고 거역하는 것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언젠가는 할 사람'이라고 속이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축복을 '나중에라도 언제든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는 육체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영적인 뿌리를 뽑아버렸고, 결국 한 그릇 팥죽과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맞바꾼 가장 어리석은 거래자로 기록되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 순간에야 기름을 사러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그 '나중'의 시간 동안, 그들을 위해 오랫동안 열려 있던 축복의 문은 영원히 닫히고 말았습니다. 준비에는 마감 기한이 있습니다. '나중에 하면 되겠지'라는 태도는 기름 없는 등불을 들고 밤을 지새우는 것과 같습니다. 신랑이 온 뒤에 준비하는 기름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순종하지 마"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일 해"라고 속삭입니다. '내일'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영적인 무덤입니다.

순종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만 가능하고,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도 자녀가 내 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사람은 오늘 내게 주어진 '순종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습니다. 지금 용서하고, 지금 기도하며, 지금 공부하고, 지금 헌신하고, 지금 사랑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로 '내일'이라는 가짜 티켓을 버리고, '지금'이라는 하나님의 기차에 올라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지옥에서 사탄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까'를 두고 전략 회의를 열었습니다.

첫 번째 어린 악마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은 없다'고 속이겠습니다!" 그러자 대장 사탄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 돼. 사람들은 대자연과 밤하늘만 봐도 신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거든. 그건 너무 뻔한 거짓말이야."

두 번째 악마가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럼 '지옥은 없으니 마음대로 즐기라'고 하겠습니다!" 사탄이 또 거절했습니다. "그것도 안 돼.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죄를 지으면 불안해하거든. 결국 지옥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두려워하게 되어 있어."

그때, 가장 교활하고 늙은 악마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래, 하나님도 있고 지옥도 있어. 네가 믿어야 한다는 것도 맞아. 하지만... 오늘은 말고 내일부터 해!'"

그러자 모든 사탄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 '내일'이라는 이름의 독약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에게 "공부하지 마", "기도하지 마"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아주 친절하고 세련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공부? 내일부터 하면 되지. 오늘은 게임 좀 해."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고? 맞아, 그건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분위기 봐서 내일 해." "말씀 읽고 기도하는 거? 나중에 어른 되어서 여유 생기면 그때 뜨겁게 해."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나중에'이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단어는 '지금'입니다. 미루는 것은 '안 하겠다'는 거절보다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나는 하려고 했어"라는 가짜 위로를 받으며 서서히 잠들기 때문입니다. 미루는 숙제가 결국 여러분을 압박하듯, 미루는 순종은 여러분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시는 '순종의 과제'가 있습니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친구가 있습니까? 지금 하십시오. 끊어내야 할 나쁜 습관이 있습니까? 지금 멈추십시오. 공부해야 할 이유를 깨달았습니까? 지금 책상을 정리하십시오.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내일'이라는 사탄의 약속어음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오늘'이라는 하나님의 현금만을 사용합니다. 오늘 순종하는 자만이 내일의 기적을 볼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지혜로운 마음의 순종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의 씨앗, 신앙의 씨앗, 배움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까?

 

3.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는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의 마지막 단계는 내가 쥐고 있던 시간의 핸들을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아플 수 있고 일이 틀어질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시간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시편 90편은 인간의 시간은 짧다. 인간은 죄 아래 있다. 인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2) 14절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행한 일을 주의 종들 뿐 아니라 자손에게도 나타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선물입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손이 행하는 일을 견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일의 성취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루를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일생을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시간을 궁극적으로 내가 계획하고 내가 관리한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전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1절에서 그 시간을 만드시고 그 시간을 닫으시는 주님만이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70이요 80이며, 수고와 슬픔뿐이고 신속히 날아가지만, 모세가 절망하지 않은 이유는 돌아갈 '거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시간이라는 사막을 건너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래서 시간 계산의 지혜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스케줄을 다 안다고 착각할 때 교만이 오고, 모른다고 생각할 때 불안이 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배우기로 작정할 때, 하나님께 하루를 맡기고, 인생을 맡길 때 비로소 '영적인 안도감'이 생깁니다.

세상의 시간 관리는 시간을 '나의 소유'로 전제합니다. 내가 시간을 쪼개고 배치해서 최대 효율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시간의 소유권이 인간에게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야고보서 4:13-15)

야고보는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관리자'의 태도를 경고합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계수한다는 것은 내일이라는 시간이 당연히 주어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열리는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관리는 '내 통제력'을 믿는 것이고, 계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지금 이 지구촌에는 약 82억명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에 살다 간 사람은 약 1,170(미국 인구 조사국 연구 자료 기준)이라고 합니다. 하루를 자기 것이라고 움켜 쥐고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들은 시간 속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삽니다. 남은 미래의 시간은 내 주권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진다는 법 앞에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 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내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다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매일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던 한 인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철제 폐의 사나이라고 불리우는 폴 알렉산더(Paul Alexander)입니다. 그는 1952, 미국 텍사스에 소아마비(Polio)가 대유행했을 때 6살의 나이로 감염되었습니다. 단 며칠 만에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고,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져 '철제 폐'라고 불리는 거대한 음압 인공호흡 장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루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려 그 고통스러운 인생을 72년을 사셨습니다. 20243월 천국에 갔습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철제 폐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가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 지원했을 때, 대학 측은 그의 입학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성적이 아니라 "너무 심한 장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폴은 포기하지 않고 2년 동안 끊임없이 대학 입학처를 설득하고 투쟁했습니다. 결국 대학은 그의 입학을 허가했고, 그는 아이언 렁(철제 폐)을 기숙사에 반입하여 생활한 최초의 학생이 되었습니다.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결국 법학 박사(JD)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수십 년간 가족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름이 폴(바울)인 것처럼 신신한 신앙의 부모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교회 예배 중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곤 했는데, 어린 폴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깊은 영적 감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삶을 지탱한 것은 불굴의 의지뿐만 아니라 깊은 신앙과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항상 '목적(Purpose)'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기여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로 쓰이기를 원했습니다.

폴 알렉산더의 삶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그가 '생존'조차 스스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아 실현을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떠밀려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끌려 사는 자였습니다. 그는 방랑자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향해 가는 순례자였습니다. 그는 환경에 지배되는 자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환경을 해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상처를 흉터로 만든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다른 아픈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루 종일 거울을 통해 자신만 바라보지 않고 창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보았습니다. 소아마비 때문에 망한 인생이 이니라 소아마비인데도 불구하고 박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사람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불구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내 이름은 폴 알렉산더입니다." 자신을 장애라는 틀 안에 가두려는 세상의 시선에 맞서, 자신의 존엄성을 선언한 유명한 말입니다. 그는 매일 매일이 고통 스런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유일한 사람임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사명'으로 채워 자신의 독특한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방'이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 인생의 결론을 결정합니다.

우리 성도님의 시간표 주인은 누구입니까? 오늘부터 남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관리'를 멈추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고 정직하게 세어보는 '계수'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타임 매니지먼트(시간 관리)'를 잘해서 성공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타임 어카운팅(시간 계수)'을 해서 지혜를 얻으라고 말합니다. 관리하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시간을 통제하려다 지치지만, 계수하는 사람은 인생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시간을 계수하는 방법은 끝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지금 순종하며 결단하고,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1. 끝을 기억하며 오늘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2. 지금 순종하며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3. 하루를 맡기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누리십시오.

이 세 가지 지혜를 통해, 여러분의 남은 날들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티끌이 아니라 영원히 남는 보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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