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질문(8)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겠느냐?
마태복음7:9-10
우리 교회는 매 년 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때 한 해의 기도 제목을 써서 헌금함에 넣고 한 해 동안 그 기도 제목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헌금함에 넣으셨던 새해 기도 제목들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분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꾹꾹 눌러 쓰셨을 것이고, 어떤 분은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 속에 적어 넣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붙들고 씨름하며 기도합니다. 때로는 기적처럼 응답되지만, 때로는 침묵 속에 묻히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내 정성이 부족한가?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나?"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겠느냐?" 이 질문 속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기도 응답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시다(7-8).
7-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확실하게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기도 응답의 확실성은 하나님의 명령에서 출발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세 가지 명령을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동사들은 모두 현재 명령형입니다. 즉, “한 번 해 보라”가 아니라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계속해서 두드리라"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한 번 하고 마는 '로또 복권'이 아닙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 '거룩한 끈기'가 기도의 본질임을 문법 자체가 웅변하고 있습니다. "받을 때까지 구하고, 찾아낼 때까지 찾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필요없다는 기도 무용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응답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운명론에서 벗어나 적극성을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⓵ 구하라(아이테이테)는 입술의 기도를 말합니다. 겸손한 의존을 말합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할 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떼를 쓸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필요를 아뢰는 것입니다. '결핍의 인정'입니다. "나는 부족하고, 하나님은 공급자이십니다"라는 관계성을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대화의 단계입니다.
⓶ 찾으라 (제테이테)는 전인적 행동입니다. 구체적 노력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지거나, 목표를 위해 애쓰는 적극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입술을 넘어 '손과 발(행동)'의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기도했다면, 이제 눈을 뜨고 찾아야 합니다. '믿음의 실천'입니다. 단순히 "직장 주세요"라고 말만 하는 것이(구하라) 아니라,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찾으라)입니다. 기도는 행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유발합니다.
③ 두드리라 (크루에테)는 가로막힌 장애물을 뚫는 간절한 의지를 말합니다. 닫혀 있는 문을 열기 위해 주먹으로 치는 행위입니다. 행동의 영역 즉 '의지(Will)'와 '끈기'의 영역입니다. 길이 막혔을 때, 문이 닫혀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필사적인 간절함입니다. 응답이 없고 상황이 막혀 있어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듯,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가장 깊은 차원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허락된 선택사항이 아니라, 명령된 특권입니다. 아무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입니다. 기도는 확률 게임이 아니라 '약속된 권리'입니다. 아무나 아버지에게 학비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녀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대하여 어떤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까? 현대인의 언어로 바꿔보면 이렇습니다. "문자 보내는 사람은 답장을 받는다" "검색하는 사람은 결과를 얻는다" "초인종 누르는 사람에게는 문이 열린다" 하나님의 명령 뒤에 약속이 따릅니다. 부당한 명령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응답의 약속을 주시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능동태: 우리가 받음)"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능동태: 우리가 찾음)"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수동태: 문이 열려짐)" 특별히 "열릴 것이니라"는 미래 수동태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신적 수동태'라고 부릅니다. 문은 내가 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두드릴 때, 문 안쪽에 계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도는 '확률 게임'이 아니라 '약속된 권리'입니다. 여러분, 은행에 가서 내 돈을 찾을 때 사정하며 찾습니까? 아닙니다. 당당하게 청구합니다. 왜죠?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백지수표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정하셨다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실 것을 정해 놓으셨지만, 그것을 기도를 통해 받게 하시기 위해 기도를 명하셨다. 마치 농부가 추수를 위해 씨를 뿌리듯이, 우리는 응답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정하셨습니다. 그 과정 안에 우리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하기로 선택하는 가장 성숙한 행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 기도를 통해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로 인해 마음이 바뀌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영원한 계획을 실행하시는 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6문은 "기도가 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와 성령을 구하는 자들에게만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전능하신 왕께서 "구하라"고 명령하셨다면, 이미 "주겠다"는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으신 것입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은 5확신 즉 구원에 대한 확신, 용서에 대한 확신, 인도에 대한 확신, 승리에 대한 확신,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도 응답의 확실성은 어디서 나올까요?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오래 기도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명하셨다는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응답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는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반드시 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으라"하시니까 빛이 생겼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하니까 나사로가 나왔습니다. "구하라"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받게 됩니다. 명령 자체가 응답의 보증서입니다. 요한일서 5:14–15절에는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7-8절을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다 (9-11절)
9절부터 11절까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이것은 수사학적 질문입니다. 답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없습니다!" 그런 부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 무책임한 부모, 심지어 학대하는 부모라 할지라도, 배고픈 자녀에게 돌을 주거나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기도 응답의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떡 대신 돌을 생선과 뱀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기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는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매우 생생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는 둥근 빵처럼 생긴 돌들이 많습니다. 배고픈 아이의 눈에는 그 돌이 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 물속의 뱀장어는 뱀과 비슷해 보입니다. 아이는 철이 없어서 돌을 빵인 줄 알고 달라고 떼를 씁니다. 뱀을 장어인 줄 알고 잡으려 합니다. 겉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본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떡은 생명을 주지만, 돌은 이를 부러뜨립니다. 생선은 영양을 주지만, 뱀은 독을 주입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비록 악한 부모일지라도 돌이나 뱀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고 불고 떼를 써도, 부모는 돌을 뺏고 진짜 떡을 줍니다. 뱀을 치우고 진짜 생선을 줍니다. 아이의 눈물은 당장의 '결핍' 때문이지만, 아버지의 거절은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은 기준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준이 "너희는 선하니까", "너희는 착하니까"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악할지라도"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악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인간은 제한적인 지혜를 가졌지만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인간은 유한한 능력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인간은 변덕스러운 사랑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영원 불변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기준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과 형편에 따라 크게 네 가지(Yes, No, Wait, Change)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① 예 (Yes) : 즉각적인 수락입니다.
우리의 구함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지금 받는 것이 유익할 때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일치할 때입니다. 엘리야가 불을 내려달라고 했을 때(왕상 18장), 히스기야가 병 낫기를 구했을 때(왕하 20장) 즉각 응답되었습니다. 이때는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② 아니오 (No) : 거절도 응답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해롭거나, 하나님의 계획과 맞지 않을 때입니다. 기도 응답의 거절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이것은 무시가 아니라 '보호'입니다. 칼을 달라는 아기에게 칼을 주지 않는 것이 부모의 사랑인 것처럼, 거절은 하나님의 더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저거 주세요! 저게 내 인생의 빵이에요!"라고 외칠 때, 하나님 보시기엔 그것이 내 이를 부러뜨릴 '돌'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게 해주세요!"라고 매달릴 때, 하나님 보시기엔 내 영혼을 물어뜯을 '뱀'일 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은 "하나님, 이 사람과 꼭 결혼하게 해주세요. 이 사람 아니면 죽을 것 같아요"라고 기도합니다. 겉보기에 그는 완벽한 '떡'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십니다. 그 만남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독을, 혹은 훗날 그 영혼을 파괴할 '뱀'과 같은 위험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관계를 막으십니다. 당시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 같지만, 그것은 보호였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합니다(고후12:7-8) 그 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로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은혜를 주셨습니다. 바울이 구한 것은 고통의 제거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고통 속에서도 충분한 은혜였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입니까? 바울은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을 때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 3:26)고 거절로 응답했습니다. 바울이나 모세는 대단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No"라는 응답을 들었을 때, 내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③ 기다려라 (Wait) : 지연 (Delay)입니다.
구하는 내용이 선하지만, 아직 받을 준비가 안 되었거나 하나님의 '카이로스(때)'가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훈련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우리의 그릇을 넓히고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초록불이 켜지기 전의 '빨간불' 혹은 '황색불'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 받고 왕좌에 앉기까지 10년 넘게 도망 다녔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눅 18:1).
④ 변화 (Change) : 다른 것(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구한 것(A) 대신 하나님 보시기에 더 좋은 것(B)을 주시거나, 상황을 바꾸는 대신 기도하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십니다. 가장 성숙한 단계의 응답입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의 변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같은 응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잔은 지나가지 않았지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천사가 도와 힘을 더함).
솔로몬이 원수 갚음이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자, 부귀와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던 정답지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최선(Best)'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기도 응답은 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취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는 우리가 구한 것이 선할 때 "예"로 응답됩니다. 어떤 기도는 "아니오"로 응답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한 것이 해로울 때입니다. 어떤 기도는 "아직"로 응답됩니다. 때가 아직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떤 기도는 "더 좋은 것"으로 응답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클 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것, 최고의 'Change'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돌 대신 주시는 진짜 '떡', 뱀 대신 주시는 진짜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이 더 많은 돈, 더 높은 명예, 더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것도 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차원이 다른 대답을 내놓으십니다.
마태복음과 짝을 이루는 누가복음 11장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 빵 주세요" 했는데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하나님, 취직시켜 주세요" 했는데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언뜻 보면 동문서답 같습니다. "아니, 하나님! 성령님 좋은 건 알겠는데, 당장 쌀독이 비었다니까요?"
그러나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동문서답이 아니라 우문현답(愚問賢答)입니다.
우리는 '상황의 변화'를 원합니다. 병이 낫고, 빚이 갚아지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진통제를 맞는 것과 같습니다. 효과는 빠르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고통은 다시 찾아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존재의 변화'를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각종 성령의 은사를 받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린아이가 폭풍우 치는 밤에 무서워 웁니다. "아빠, 천둥 좀 멈추게 해 줘! 번개 좀 없애 줘!" 이때 아빠는 천둥을 멈추는 대신, 아이를 품에 꼭 안아줍니다. 밖에는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빠 품에 안긴 아이는 더 이상 떨지 않습니다. 울음을 그치고 평안히 잠듭니다. 왜입니까? 아빠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폭풍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주신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당장 없애주는 대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니까 베드로가 수많은 고난을 이기도 난관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마지막까지 감당합니다.
사업은 여전히 어렵지만, 마음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이 임합니다.
몸은 여전히 아프지만, 영혼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기쁨을 맛봅니다.
상황은 절망적인데, 입술에서는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기적 아닙니까?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문제 속에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꾸는 떡은 언젠가 다시 배고파집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 아니 하나님 자신(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당장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없어 보여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온 우주보다 크신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기도가 받은 최고의 응답입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성숙시키는 분이시다(12)
기도 응답의 궁극적 목적는 무엇이겠습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기도 응답의 궁극적 목적은 관계의 성숙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인간관계의 황금률입니다. 참된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이웃을 향하게 합니다. 기도는 단순히 물건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성품을 담게 하는 시간입니다.
12절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왜? 기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왜 윤리 이야기를 하시지?' 열심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시더니, 갑자기 이런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언뜻 보기에 기도(7-11절)와 윤리(12절)는 전혀 다른 주제 같습니다. 하지만 접속사 '그러므로'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앞의 내용이 원인이고, 뒤의 내용이 결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를 따라가 보십시오.
1)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11절)
2)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11절)
3) 그러므로 우리도 남에게 좋은 것을 베풀어야 합니다(12절)
즉 이런 것입니다. 1) 우리는 자격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 끊임없이 구합니다. (원인) 2) 하나님 아버지는 악한 우리에게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과정) 3)그러므로, 그 과분한 사랑을 체험한 너희도 타인에게 좋은 것을 베풀라. (결과)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받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통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자판기‘처럼 생각합니다. 동전(기도)을 넣고, 버튼을 누르고, 원하는 물건(응답)을 꺼내면 끝입니다. 자판기와는 인격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물건만 빼내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갑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해도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 기도 응답받았어!"라고 자랑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인색합니다. 대인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옛날에 대학부를 맡아 섬길 때 대학생들을 데리고 청계산에 갔습니다. 밤새워 기도하고 새벽에 내려왔습니다.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한 무리가 우리 앞으로 가서 섰습니다. 그들도 밤새워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새벽기도하고 집으로 가다 남의 집 호박을 따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기도를 자판기처럼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자판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식탁'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거래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아버지가 차려준 밥상에서 자녀는 밥만 먹는 게 아닙니다. 밥을 먹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의 마음을 배웁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주신 것처럼, 나도 옆에 있는 굶주린 동생에게 숟가락을 건네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의 진짜 목적입니다. 기도는 내 창고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관점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 우리의 마음이 바뀝니다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우리의 행동이 바뀝니다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사무엘상 1장의 한나를 다시 보십시오.
기도 전의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슬픔과 원통함이 많으므로"(삼상 1:10, 16)였습니다.
기도 후의 한나는 "이에 여인이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 1:18)입니다. 아직 아들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직 응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미 변했습니다. 왜입니까? 한나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무엘을 낳았을 때, 한나는 약속대로 그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삼상 1:28). 그 후 한나의 기도(삼상 2:1-10)는 온통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한나는 아들을 받았지만, 아들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한나를 받는 사람에서 드리는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진정한 기도 응답의 열매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요구하는 사람에서 베푸는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직장 생활을 예로 들어봅시다. 상사가 내 공을 가로채거나, 동료가 나를 험담할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주고 싶습니다.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는 것이 세상의 황금률입니다.
하지만 골방에서 깊이 기도하는 사람은 달라집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 나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지. 나도 자격 없는 자인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셨지."
하나님께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은혜가 가슴을 치면, 나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았기에, 미운 사람에게 커피 한 잔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위로받았기에,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친절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공급받았기에, 내 이익을 조금 양보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세상의 '소비자'에서 사랑의 '공급자'로 바꿉니다. 성경의 야곱을 보십시오. 형의 것을 뺏으려던 '움켜쥐는 자'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기도의 씨름을 한 후에는 형에게 예물을 주며 축복하는 이스라엘로 변했습니다.
상황이 바뀌는 것보다 더 큰 응답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기도 후에 여러분이 더 너그러워졌다면, 더 이해심이 깊어졌다면, 여러분은 이미 가장 위대한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응답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기도 제목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이기적인 내가 나누는 자로, 분노하던 내가 용서하는 자로 변했다면, 이미 최고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기도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는데 나는 괜찮을까?", "건강검진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노후 준비는 어쩌지?" 불안과 염려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치유 받아야 할 것이 있고, 회복되어야 할 것이 있고, 재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자녀의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만큼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기도할 때 이 세 가지는 꼭 기억하고 기도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이것은 명령이면서 동시에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반드시 가능합니다. 응답의 확실성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돌 대신 떡을, 뱀 대신 생선을 주십니다.
악한 인간 부모도 자녀에게 해로운 것을 주지 않는데, 하물며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때로 우리가 구한 것과 다를지라도, 그것은 항상 더 좋은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성숙시키십니다.
기도는 단순히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요구하는 사람에서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의심하며, 회의하며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위선적으로,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증오하며 죄를 품고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66:18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잠언 28:9에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받기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겠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의심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실까?"라는 질문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라는 질문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기도에 침묵하실까?"라는 질문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진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완벽합니다. "왜 내가 원한 것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무너뜨립니다. 나의 선택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는 것 아니야?"라는 기도 무용론의 질문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미 기도하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떡을 구하는데 돌을 쥐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선을 구하는데 뱀을 쥐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도할 때 담대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솔직하고 진실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지금까지 포기했던 기도 제목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십시오. "하나님, 저는 아직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끈기 있게 기도하십시오.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계속해서 두드리라." 응답이 지연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랫동안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더 좋은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나를 더 성숙시키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묵상해 보십시오.
신뢰하며 기도하십시오.
응답의 형태가 내 기대와 다를지라도,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바울처럼, 요셉처럼, 한나처럼, 나중에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변화되는 기도를 하십시오.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기도를 통해 나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기도가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더 사랑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더 인내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더 주게 만들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미 가장 큰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이 믿음의 기도가 여러분의 막힌 담을 뚫고, 하늘 보좌에 닿아,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낙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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