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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주린 마음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345 추천수:23 112.168.96.71
2014-11-26 10:33:05
비행기 탄 사람들과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아주 많다. 양쪽 다 여행 중이다. 대체로 몸가짐이 단정하고 점잖다. 더러는 조는 이들도 있고 창 밖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예상했던 경험에 만족하는 편이다. 괜찮은 비행과 괜찮은 예배에 대한 표현도 똑같은 경우가 많다. "좋았습니다. 비행 좋았습니다./예배 좋았습니다." 우리는 곧잘 그렇게 말한다. 나갈 때 모습도 들어올 때와 똑같다. 그리고 다음 번에도 기꺼이 다시 찾는다.
하지만 좋은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이상의 뭔가를 바라는 이들이다. 방금 막 내 곁을 지나간 소년이 그랬다. 얼굴을 보기 전 말소리부터 들렸다. 나는 이미 자리를 잡은 후였는데 입구 쪽에서 소년이 일행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말 조종사를 만나게 해줄까요?" 비행기에 타자마자 대뜸 그것부터 요구한 것을 보면 아주 영악하거나 운이 좋은 아이였다. 그 질문은 조종석까지 흘러 들어가 결국 조종사가 몸을 내밀고 묻기에 이르렀다. "나를 찾는 아이가 있다고?"
"저요!" 마치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소년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그래, 그럼 들어와."엄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소년은 각종 제어기와 계기반이 늘어선 조종석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몇분 후 휘둥그래진 눈으로 감탄을 발하며 나왔다. "와! 이 비행기 타기 정말 잘했다!" 어느 누구의 얼굴에도 그런 경이는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유심히 살펴 보았다. 소년의 호기심이 내 호기심을 자극해 다른 승객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으나 그런 열정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체로 만족의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여행객들은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고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 것으로 만족했고 공항을 벗어나는 것으로 만족했고 자리에 앉아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약간의 예외도 있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해수욕 가방을 든 대여섯 명의 중년 여인들은 만족한 표정이 아니라 자못 흥분된 표정이었다. 통로를 지날 때도 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분명 부엌일과 아이들에게서 모처럼 해방된 엄마들이었을 것이다. 통로 저편, 파란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만족한 표정이 아니라 심기가 뒤틀린 표정이었다. 시종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는 화면을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 남자보다는 즐거웠고 그 여인들보다는 얌전했다. 우리는 대부분 만족했다. 예상대로 무사한 비행에 만족했다. "괜찮은" 비행에 만족했다. 우리는 구한 것이 그것이다 보니 얻은 것도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조종사를 보기 원했다. 소년에게 비행 소감을 묻는다면 그 답은 "괜찮았어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조종사한테서 받은 모형날개를 조립해 보이며 이렇게 말하리라. "앞에 가서 조종사를 봤어요." 내가 비행기에 탄 사람들과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이 아주 많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예배당에 들어가 면면들을 살펴보라. 깔깔거리는 사람과 심기가 뒤틀린 사람도 몇 있겠지만 대부분은 만족하고 있다. 거기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리에 앉아 앞을 쳐다보며 예배가 끝나면 자리를 뜨는 것으로 만족한다. 놀람도 동요도 없이 모임에 속해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괜찮은" 예배에 만족한다. 예수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마 7:7) 라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찾는 것이 괜찮은 예배이다 보니 얻는 것도 괜찮은 예배로 그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찾는 이들도 간혹 있다. 그 소년처럼 어린아이 같은 열정을 가지고 나아오는 이들이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야말로 소년이 그러했듯 떠날 때는 조종사 자신의 임재 앞에 선 경이로 눈이 휘둥그래져 떠날 수 밖에 없다.

-매스 루카도/예수님처럼 중에서-


사랑하는 법

그 여가수는 노래를 부를 때면 늘 가슴에 꽃을 달고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멀리서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가슴에 달려 있던 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의 노래는 더욱 사람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알 수 없는 기쁨을 주었지요. 꽃이 보이지 않네요. 노래는 더 깊어진 것 같고요. 사람들의 말에 가수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게는 중증 장애를 가진 딸이 있었어요. 노래 부르는 엄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를 생각하며, 꽃을 아이 삼아 가슴에 달곤 했었지요. 하지만 이젠 꽃을 달 필요가 없어졌어요. 아이는 꽃이 되어 영원히 내 품에 안겼거든요.

-황복실/목마르거든 2005년 2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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