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마을 열린이야기

열린이야기

게시글 검색
그제서야 제가 가야할 길을...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3432 추천수:21 112.168.96.71
2014-11-25 16:37:41
그제서야 제가 가야할 길을...

?하나님, 이 땅의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젊은 날, 의사가 되기를 소원했을 대 저는 그렇게 서원했습니다. 그 서원은 햇병아리 의사가 됐을 때도 잘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제법 인정받기 시작하고, 환자가 몰리기 시작하자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위해 헌신하기는커녕 주일도 자주 범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번 마음이 뜨끔하더니 손에 돈다발이 두둑히 들어오자 그런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동작동에서 개업을 했는데 그곳은 고통사고 환자가 자주 몰리는 병원이었습니다. 날마다 팔다리가 부러진 환자들로 병원은 만원사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앞에서 갑자기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시적인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택시 기사인 듯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아이 하나를 가슴에 안고 들어왔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 아이는 축 늘어져서 곧 죽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응급조치를 하려고 달려갔다가 그만 아이 앞에서 주저앉고 말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는 바로 제가 너무 사랑하는 셋째 딸아이였습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그 동안 잊고 있었던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딸아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 보았지만 작은 가슴에서는 더 이상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다시 들어보았지만 딸아이의 작은 심장은 이미 멈춰버렸습니다.?눈을 떠 봐. 눈 좀 떠봐. 아빠야, 아빠라구.?저는 그때 완전히 실신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늘이 까마득해지고,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의사인 아비가 치료의 손길 한번 보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데려가시다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하나님이 저주의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저는 의사 가운을 벗어버렸습니다. 딸 아이 조차 살려내지 못한 저 같은 것은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만 뜨면 실신한 사람처럼 딸아이의 무덤을 찾는 일이 저의 전부였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춥지…아빠가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해.?가장 춥다는 겨울 날, 저는 딸아이의 무덤에 찾아가 벌거벗은 딸의 무덤을 보며 한참 울었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추울까요. 저는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서 딸의 무덤 위에 올려두고 벌거벗은 몸으로 무덤을 꽉 껴안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이듬해 봄, 그날도 저는 딸아이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무덤이 있는 길 어귀를 마악 지나는데 어떤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붙잡고 울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무…무슨 일이십니까??할머니는 더욱 섧게 울면서 아이가 열이 많이 나는데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할머니를 데리고 선배 병원으로 갔습니다.?치료비는 제가 부담할 테니 우선 아이 병이나 좀 봐 주세요.?대충 손에 짚이는 대로 돈을 쥐어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어떻게 알았는지 먼지가 쌓인 우리 병원으로 그 할머니가 손녀의 손을 잡고 들어왔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해 인사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꼬마가 제 곁으로 왔습니다.?아저씨두 의사야? 근데 왜 의사옷 안 입어? 청진기도 귀에 안 대네.?그 아이를 보니 딸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기쁘게 하려고 딸아이가 죽은 후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의사 까운을 꺼내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걸었습니다.?자, 아저씨가 창진기로 진찰 해볼까??의사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꼬마의 심장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을 때였습니다. 아!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천기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힘찬 심장의 고동소리는 내가 그리도 안타깝게 그리워했던 딸아이의, 죽었던 딸아이의 심장 고동소리였습니다. 그 아이가 사고를 당하던 날 그토록 청진기를 갖다 대어도 들리지 않던 바로 그 심장소리 말입니다. 그 고동소리는 아비의 귀청을 찢고 아비의 심장을 때리고 아비의 죽었던 영혼을 깨우는 힘찬 고동소리였습니다. 오, 하나님! 신음하는 저를 아이는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습니다. 아이의 눈동자는 제가 그렇게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딸아이의 그것이었습니다.?하나님, 제가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던 제 서원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그 길로 저는 남현동의 보육원을 찾아갔고, 가장 가난한 동네 봉천동에 윤주홍 의원을 열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가야할 길을 찾은 것입니다. 딸아이는 떠났지만 저는 더 많은 딸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낮은 울타리 2002년 11월 호 중에서-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