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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꿈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153 추천수:18 112.168.96.71
2014-11-25 13:58:32
"언젠가 이 엄마는 작가가 될 거란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삼나무로 만든 그 낡은 상자를 열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불을 가지러 가니, 그 밑에 ‘원고 게재를 수락하는 편지들’이라고 적혀 있는 낯익은 상자가 보였다. 어머니가 늘 뿌리던 장미향이 주변을 희미하게 떠돌았고, 나는 어머니의 편지함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많은 추억들이 떠올라 내 마음은 온통 슬픔에 젖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어머니의 위대한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가 진심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탁에 앉아, 그토록 사랑했던 늙은 점박이 말을 팔아야 했던 사연을 적어 내려가는 어머니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우린 집세를 낼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글을 어디에도 보내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의 눈에서 새로운 빛을 보았다.
“얘들아, 이 엄마는 작가가 될 거란다. 하나님께서는 엄마가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원하시는 것 같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어머니는 각종 문구류와 명함을 구입했다. 그 명함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주소,작가이자 강사’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일 처리를 정확하게,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표지가 근사하면 편집자들이 어머니의 글을 더욱 읽고 싶어 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지하실 한쪽 구석을 치우고, 서류함 두 개 위에 문짝을 올려놓아 책상을 만들고는, 할아버지에게서 타자기를 빌려 왔다. 무엇보다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어머니가 책상 위 필기구 옆에 조심스레 올려 둔 상자였다.

그 상자는 작고 푸른 물망초가 흩뿌려진 크림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에다 옅은 파란색 리본을 둘러 묶고는, 자신 있게 ‘원고 게재를 수락하는 편지들’이라고 적었다. 어머니는 원고가 거절당할 것을 결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자신이 써 놓았던 짤막한 글들을 한데 모으고, ‘작가의 시장’이라는 책의 사본을 한 권 구한 다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편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어머니는 갑자기 자식들을 양육해야 하는 책임을 혼자 떠맡게 되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격려 쪽지를 써서 우리들의 점심 도시락에 끼워 넣거나 화장대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쓸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내 글쓰기에 대해선 걱정 안 해도 된단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 꿈을 주셨으니 그분께서 이루어 주실 거야.”그후로 수년이 지났다. 어머니가 언제 그 상자와 필기구들을 치워 버렸는지 이젠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부터 그것들을 더 이상 책상 위에서 볼 수 없었다.

때때로 어머니가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볼 때면, ‘이젠 어머니만의 이야기를 쓰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늘 군대에 가 있는 오빠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친구에게 보내는 카드, 혹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들이었다. 형제들이 다 자라 하나 둘 집을 떠나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곧 글 쓸 시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나 무슨 일이 일어나곤 했다. 심한 교통사고를 당한 외삼촌을 간호하러 가거나, 언니가 아이를 좀 봐 달라고 해서 도와주러 가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거나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이웃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쓸 기회가 없었기에 어머닌 결국 단 한 편도 출간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삼나무상자에 손을 뻗쳐 그 편지함을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무게가 꽤 나갔다. 리본은 하도 묶었다 풀었다 해서 해져 있었다.“도대체 여기다 뭘 넣어 두신 걸까?” 혼자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원고 게재를 수락하는 편지들’을 읽기 시작했다.“엄마, 매일 편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 편지가 아니었으면 훈련소 생활을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언니가 병상에 있는 동안 수많은 편지들로 격려해 주셨지요. 언니가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몰라요.”“길고 긴 임신 기간 동안 제게 편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예쁜 카드를 보내 주어 정말 고마워요. 나 같은 늙은이들은 가끔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 써 주지 않는다고 느끼기가 쉽다오.”“제가 가장 힘들 때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제게 최선을 다하라고 용기를 주셨지요. 저는 이제 우리 회사에서 제일가는 영업 사원이 되었답니다.”“엄마, 이 힘든 시기에 엄마의 수많은 편지가 저를 붙잡아 주었어요. 엄마의 지속적인 응원과 기도, 희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의 사랑에 너무나 감사드려요.”하나님은 참으로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신다. 어머니는 진정 ‘작가였던’ 것이다.

엄마의 꿈/ by Betty McFarlane/가이드 포스트 2002년 4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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