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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사랑을 베풀었던들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2239 추천수:21 112.168.96.71
2014-11-25 13:48:12
범죄자 중에 이따금 독특한 성질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조직폭력의 두목급으로 기소된 박동민이라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새처럼 가냘픈 몸이었다. 하지만 눈에서는 푸른빛이 돌 만큼 섬뜩한 기운이 흘렀다. 어려서 엄마 손에 이끌려 새 아버지 밑으로 간 그는 이복 형제들과 부딪치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데리고 들어간 자식마저 놔둔 채 어디론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노동자인 가난한 의붓아버지와 배다른 형제 사이에서 그는 처절한 구박과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는 몸의 뼈가 굳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택시회사에서 잔심부름을 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택시 기사가 되었다. 악령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어느 날 그는 조직 폭력배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매일 새벽 그는 '건달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윽고 그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 지나가는 행인을 노렸다. 자신의 담력과 실행력을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건달조직 속에서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두목급으로 부상했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속칭 깡다구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판사에게 어떤 동정도 받고 싶지 않으니 정상참작을 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 환경을 구차하게 판사 앞에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최후진술에서조차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중형을 받고 교도소 담 안으로 사려졌다. 그는 자신이 범죄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의 법정이라는 곳이 가슴속에 맺힌 원망이나 항변을 들어주는 곳 또한 아님을 알고 있었다. 또 한사람은 신창원이다.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부산교도소로 신창원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탈주범 신창원의 변호를 맡게 된 것이다. 그는 둔탁한 수갑을 찬 위로 체인을 둘둘 감고 있었다. 체인과 체인 사이는 실로 옷감을 누비듯 자물쇠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스쿠루지 영감'에서 한밤중에 체인과 자물쇠를 달고 덜거덕거리며 나타나는 귀신같은 모습이었다. 그 역시 범인이지만 독특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와의 첫 대면에서 사용할 세 가지 질문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첫째는 "신창윈이 뭐냐?"는 물음이었다. "저는 범죄자이고 악마입니다. 몇 번이고 죽여도, 한마디 변명 없이 그 형을 감수할 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의 눈에는 정체를 알 길 없는 적의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신창원 씨 당신이 교활하다는 평가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두 번째 질문이었다. "제가 언제 의적이라고 했습니까? 언제 동정을 구했습니까? 세상 마음대로 홍길동이라고 했다가, 이제 잡히니까 용도 폐기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교활합니까, 세상이 교활합니까?" 그가 냉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그는 변호에 대해서도 크게 부탁할 것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자백해 주었다는 것이다. 더 하려고 하니 오히려 그만 하라고 말리기까지 했다는 거였다. 스스로 자백한 일을 법정에서 간단히 확인해 주는 게 자기의 재판이라고 말했다.

논 세 마지기를 부치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간암으로 어머니가 죽고, 냉대하는 선생님 때문에 학교에도 가기 싫었다. 그는 아주 쉽게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닭서리, 수박서리를 하다가 열 네 살 때 처음으로 입건되었다. 교도소가 범죄학교란 말이 있듯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는 더욱 강인한 범죄인이 되어 갔다. 열 일곱 살 때에는 감옥에서 권투를 배우고 나와 건달이 되었다. 남의 싸움에 끼여들었다가 사람을 때렸다. 합의금이 필요해서 돈 있는 사람을 털게 되었다. 후배들이 골목에 가는 사람을 가로막아서면 그가 뒤로 가서 때려 정신을 잃게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후배들이 서툴러서 상대가 반항하는 바람에 그가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후배들의 칼에 찔려 죽었다. 사형 구형이 있었다. 그러나 담당 판사가 아직 젊으니 목숨만은 살려준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감옥 생활은 그에게 탈옥할 동기를 부여했다. 몇 년을 계획한 끝에 그는 탈옥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밑돌고 칼바람이 살을 에는 토굴 속에 숨어 있어도 감옥보다는 좋았다. 그러나 그가 자유를 갈망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은 건지도 모른다. 그는 2년 6개윌 동안 열 여섯 번의 검거 위기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다가 결국 다시 잡혀 들어온 것이다. "제가 상상해 본 일 중에 최악의 사태가 바로 이것이었어요." 신창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몸에 걸려 있는 체인을 보았다. 미처 자살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눈치였다. "사실 가난하고 환경이 나쁘다고 다 범죄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쯤 저도 알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범죄라는 질병에 걸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해충이었어요." 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고백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있다면 뭐였어요?" 내 마지막 질문이었다. "어릴 때 정말 누가 조금만 따뜻이 대해줬더라면 이렇게는 안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십만의 병력이 동원되고 엄청난 수사비가 투입된 그의 도주 행각. 어린 시절 선생님이, 아버지가, 마을 어른들이 한줌의 사랑이나마 그에게 베풀어주었던들, 그 많은 수고가 필요 없지 않았을까?

엄상익/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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