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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6) 기도훈련(눅22:39-4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331 추천수:3 112.168.96.71
2017-03-19 05:21:24

 

훈련(6) 기도훈련

눅22:39-40

 

요즈음 시대를 가리켜 인재 전쟁의 시대(The war of for talent)라고 말을 합니다. 모든 나라가 경제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인재에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나라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 가지라고 합니다. 우수한 인재의 발굴 및 유지가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탁월한 기업이 되려면 전략, 기술, 시스템이 탁월해야 하지만 결국 전략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이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인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계 초 인류 기업이라고 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300여 명으로 구성된 '캔디데이트 제너레이터(Candidate Generator)'라는 인재 발굴팀을 운용한다고 합니다. 만약 꼭 필요한 인재가 있는데 회사에 대한 신뢰나 다른 이유로 이직을 꺼려하면, 아예 그가 속한 회사를 사버린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빌 게이츠의 기술자문 겸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아눕 굽타를 영입하기 위해 굽타가 다니는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 일이라고 합니다. 축구나 야구, 배구, 탁구, 농구도 탁월한 선수 한 명만 있어서 팀이 살아납니다. 가정도 탁월한 식구 한 명만 있어도 가정 분이기가 확 달라집니다. 교회도 탁월한 교인들이 있으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렇게 중요한 인재, 탁월한 선수, 훌륭한 교인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철저한 훈련으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은 정예의 영적 지도자들을 만들기 위해 12제자를 선택하여 3년 동안 철저히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영적 훈련 중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도훈련입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기도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 자신과 세상을 탁월하게 변화시키려면 기도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려면 영적 대화인 기도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힘차고 활기있게 신앙생활하려면 영적 호흡인 기도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기도훈련을 받기를 원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몇 가지 원리를 교훈받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은 기도가 생활화 될 정도로 기도 훈련을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의식적으로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사역인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시면서 모범을 통해 제자들에게 기도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어떻게 기도했다고 오늘 말씀은 소개하고 있습니까?

3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은 위기의 순간 두려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기도 생활하던 대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의심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온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왔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이 땅의 삶은 기도로 시작하였다가 기도로 마쳤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인류 구속사역을 다 이루시고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시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법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할 영적 전사에게 기도훈련을 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기도 훈련을 시켰습니다. 훈련은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도, 축구도, 바둑도 잘 하는 사람을 계속 모방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다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모습을 모법적으로 보여주시면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모범은 무엇일까요?

복음서에서는 18번이나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6:9.마 11:25,26.마 26:39,42.막 14:36.눅10:21,22-42.눅 11:2.눅 23:34,46.요 12:27-28,요 17:1,5,21,24,25) '내 아버지', '아바 아버지', '거룩한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등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마 1:23,요 20:28,히 1:8)은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때로는 새벽기도(막1:35)를, 때로는 밤새워 철야 기도를(눅6:12), 절박할 때는 금식기도를(마4:2), 기도가 방해될 때는 한적한 곳을 찾아(눅5:16) 산기도를(마6:46)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세례받으실 때도 기도하였습니다(눅 3:21-22).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였습니다(눅 6:12-13). 다음 세대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도 안수하며 축복기도하였습니다(마19:13-15).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기도하였습니다(요11:41-42). 주기도문을 통하여 청원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진정한 기도와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갈릴리 전도 여행 출발 전에도(마1:35-39), 오병이어 기적 후에도(막 6:45-46), 겟세마네 동산에서도(막 14:32-42), 십자가상에서도(막 15:33-34)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훈련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기도의 용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직 후 이 땅에 남은 11제자가 120명의 성도와 함께 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한 다락방에 모여 한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만 힘썼습니다(행1:12-14). 예수님께서 승천 후 11 제자와 가족 친지들의 첫 모임에서 "기도"가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합심하여 함께 기도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하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 업무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사도행전 6:34절에 의하면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만을 힘쓰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돌아오고 매일 모여 말씀을 배우고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기뻐하는 역동적인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유다 대신 맛디아를 뽑을 때도 예수님이 훈련시켜 주었듯이 기도한 후에(행 1:24-25)에 뽑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 쓰니라."라고 말할 정도로 기도가 생활화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습관적으로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다가(행 3:1)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오전 9시(행2:15)에, 12시(행10:9)에, 오후 3시(행3:1-10)에 기도하였습니다. 오후 세시 기도시간에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만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만든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도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과 최초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 성립(행 1:14,2:42)도, 일곱 지도자의 선출(행 6:3-6)도, 사마리아 지역 선교(행 8:14-25), 베드로의 고넬료 집안 전도(행 10:30-48),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도, 옥문이 열리는 것도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두 가지를 든다면 성경 읽기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도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삶의 중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하여 초월자이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기도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갖게 되며, 내적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삶의 갖가지 과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훈련은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지속성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고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바쁘다고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면 얼마나 바쁩니까? 예수님보다 더 바쁘십니까?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하루가 마가복음 1장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저녁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참으로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던 익숙한 습관’을 버리고 ‘기도하는 익숙치 않은 습관’을 가지려면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지속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캘빈은 "규칙적으로 시간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대한 일종의 훈련이며, 따라서 이 연약함은 훈련을 받아야 하고 계속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 기도하고 먹게 훈련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날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하고 하루를 하나님과 더불어 계획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잠깐 묵상기도하고 시작합니다. 저녁에 잘 때 기도로 하루를 하나님과 마감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합니다. 교회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는 새벽기도회, 수요 기도회, 심야기도회에 참여하여 기도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형편에 따라 마음에 결심하고 기도훈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고 말씀합니다.

 

2.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한 기도훈련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까? 4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에도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26장 36-46절에 보면 세 번이나 와서 깨웠지만 여전히 기도하지 않고 깊은 잠에 취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마가복음 14장 37-38에 보면 베드로를 지명하여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록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훈련을 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모든 유혹을 이기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인간으로 당할 수 있는 고난의 가장 깊은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힘도 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기도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어떤 유혹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기도를 통해 잉태의 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통해 나라를 태평성대를 이루게 했습니다. 모세는 기도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를 통해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를 통해 민족을 살려냈습니다. 기도는 실제 역사 속에 개입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받고 갈등과 번민, 염려와 걱정이 물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신앙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다 예수를 부인했습니다(막14:68). 말고의 귀를 벱니다.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회피합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막14:50).

기도(祈禱)는 '祈'빌(기)에 '禱'빌(도)로 사전적 의미는 "마음으로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비는 일이나 그 의식"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고, 그것에 대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족한 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 있고, 각종 마음의 소원이 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청원기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부족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기복주의라고 하면서 청원기도 하는 자를 마치 미신 섬기는 자처럼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격적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기도가 자기 암시 혹은 자기 최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자기 암시, 자기 최면이 아니라 실제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렌돌프 버드 박사는 실제로 기도의 위력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관상동맥병실에 있는 환자 400명을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는 날마다 기도 팀들이 방문하여 기도를 하도록 했고 다른 그룹에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게 했답니다. 그 결과 날마다 기도를 해준 그룹은 다른 그룹보다 병세가 두 갑절이나 호전되었으며 항생제도 별로 필요하지 않았고 심장의 문제가 발생되는 율이 다른 그룹에 비해 두 배 반 정도로 낮아졌답니다. 또한 약을 쓰면 효력이 아주 잘 나타났답니다.

 

과학적 기술과 물질, 이성이 인간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에 따라 스스로 성취하면 되지 무슨 기도가 필요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가치가 정신가치보다 우선시 되고, 기술 가치가 도덕가치를 압도하는 세상에 골방에 앉아 기도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한 수도사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주 관건이 되는 청원기도(petition)나 도고기도는 '원시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폄하하기도 합니다. 소위 지성인이라고 자칭하는 자들 가운데 자연신론적 신학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을 부인하고, 기도를 통하여 자연과 세계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고를 부정합니다. 구속과 복음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중요시하면서 청원기도를 미신적 신앙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자신의 짧은 신학적 지식으로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오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신학의 틀에 갇힌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성경에 얼마나 많은 청원기도가 나오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회복되었습니까? 한나가 아이 낳기 위해 기도한 것이 히스기야기 병고치기 위해 기도한 것이 미신적 기복적 기도로 비난받은 것이었습니까? 합리주의나 기계론적인 우주관에 근거한 이러한 사상은 현대 물리학의 양자론이나 불확실성의 원리, 그리고 유기체적이며 과정철학적인 세계관에 의해서 철학에서도 이미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라고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습니까?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 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14: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가르쳐준 주기도문은 어떻습니까? 일곱 개의 청원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청원기도는 기도를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미신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고귀하고 가장 신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기도입니다. 이 우주와 세계는 무한한 변화와 생성의 과정 속에서 무한히 열린 체계로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우주의 변화처럼 하나님의 변화와 생성과정에 역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의 길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기도할 기도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도구입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가 응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과의 대화를 원하시고 계시는데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문제가 없으면 유아독존이 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화를 회피하고 스스로 왕이되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불치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 속에 기도의 필요성, 기도의 능력, 기도 결과가 다 들어 있습니다.

희망을 노래하는 기적의 청년 박모세에 대하여 공영방송을 통해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하여 초음파 검사를 하던 중 '아이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태에서부터 아이의 머리 뒤쪽 뼈가 형성되지 않아 뇌가 밖으로 다 쏟아져 나왔답니다. 병원 측은 "아이는 살수 없고 산모도 위험할 수 있다"며 낙태할 것을 권고했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아이의 태동을 느꼈고 "어차피 죽을 아이면 세상 빛이라도 볼 수 있게 하는 게 옳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아이는 태어났지만 머리만한 ‘뇌’가 뇌막에 쌓인 채로 밖으로 흘러 나와 있었답니다. 의사는 수술을 할 건지, 말 건지 빨리 결정하라고 다그쳤답니다. “수술하면 희망이 있나요?” 의사는 “의학적으로는 1%의 희망도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럼 이 아이가 수술을 해서 산다고 하면 의학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겠네요?’라고 묻자 의사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그럼, 우리는 기도할 테니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수술해 주세요.” 수술 후에 의사는 “대뇌 70%, 소뇌 90%를 절단하여 이제 이 아기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며 온몸에 장애가 너무 극심해서 얼마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통보했답니다. 가족은 울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해 줄 것이 없었답니다. 뼈에 가죽만 남아 비비 틀어져 있고, 머리 모양은 찌그러진 냄비 같았답니다. 생명은 살았지만 뇌수종이 찾아왔고 네 번의 뇌수술과 두 번의 다리수술, 여섯 번의 수술에도 아이는 잘 견디어 주었답니다. 모든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술 후에 호흡곤란이 왔을 때 모세의 할머니는 벼랑으로 가셔서 구르면서 기도하셨고, 처음에는 일주일 철야예배를 시작으로 거처를 교회로 옮겨 22년 동안 90세가 되기까지 손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박모세는 중복장애 1급으로, 지적 연령 3세인 지적장애에다 지체장애, 시각장애를 앓고 있으며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다른 한 쪽도 부분적으로 보인답니다. 귀도 한쪽만 들린답니다. 그러나 그는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개막식에서 감동적인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성악과를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노래가 좋아'에서 4연승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기도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5:15)”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던지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가 다가오면 하나님께서 기도 훈련을 시킨다고 받아들이고 훈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기도를 심한 부조화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심리적 위안 정도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하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속 썩이는 자녀가 있다면 하나님께 나와 기도훈련을 받이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식 망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수술에 성공한 벤 카슨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미국 언론은 그를 '기적의 손'이라고 하는데,그는 지금도 수술에 들어갈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합니다. '기도의 손'은 '기적의 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소냐 카슨은 흑인으로 고아로 자라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3세에 처음 동거를 시작해 아이를 낳았는데 알고 보니 동거남은 유부남이었답니다. 그 남자는 도망갔고,그녀는 절망 중에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지만 어느 날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 새 삶을 시작했답니다. 아들은 맨날 꼴치만 하고 11살 때 친구와 말다툼 끝에 칼로 친구의 배를 찔렀답니다. 그는 학교에서 살인미수자로 낙인찍혔답니다. 그러나 희마을 가지고 기도했답니다.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고,아이를 보며 웃으면서"벤! 너는 공부를 잘 할 수 있어! 힘들면 하나님께 기도해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도와주실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결국 아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고,아들은 비전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여 예일대학과 미시간 대학의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 홉킨즈 대학병원의 소아외과 과장이 되었답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렘33: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자녀들 기도없이 기르려는 교만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사업을 기도 없이 잘 되려는 만용을 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건강 기도 없이 보장될 것이라는 자기기만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기도는 미래의 유혹과 시험을 예방하게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체험으로 확증되어 나타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우리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깨닫고 증명받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출 33:15). 기도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실 것에 대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시107:4-6) 질병과 폭풍우 등 자연과 재해로부터의 구원과 보호를 위한 기도하여야 합니다(왕하20:1-6).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절실하게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진실하게 기도하면 됩니다.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감정을 표현하면 됩니다.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의 잔피하고 싶다고 예수님을 기도합니다.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기까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되리라(마11:24)”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끈질기게 구하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일곱 번 기도하였습니다(왕상18:42-44). 다니엘은 21일간 기도를 드렸고(단 10장), 초대교회 성도들은 베드로가 감옥에 잡혀 있을 때 베드로가 풀려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행 12:5). 로마서 12장 12절에서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6장 18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라고 말하였고, 골로새서 4장 2절에서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라."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는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세 번 연이어 기도하셨습니다.(마 26장,눅 22장)

 

3. 예수님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 훈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4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밤 밤새워 기도하면서 이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드리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 다 함께 잘 사는 평안과 형통이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인간의 소원을 하나님께 청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움직임 즉 만남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기도는 호흡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들음'은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기도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대화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매일 밥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지 않고 굶는다면 우리의 육체는 결국 말라 죽게 되고 마는 것처럼 우리가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해야만이 우리의 영혼은 말라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눅 6:12-16). 그들이 미래 교회의 기틀을 놓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에 밤새워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사명 완수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마 26:36-4;막 14:32-36;눅 22:39-46).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사명을 다 완수한 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였습니다. 우리도 오직 기도로 인류 구원사역인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것처럼 우리들도 이 땅에서 살면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의 그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기도를 통해 받아야 합니다. 기도 훈련이 된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지만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흩어져 예루살렘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어 복음의 증인되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는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꾸준히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기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애국주의로 원수 나라 니느웨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킵니다. 적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 속에서 기도하며 자기 뜻에 하나님께서 응답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편협한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응답합니다. 욕심꾸러기 야곱을 보십시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길 요구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험난한 세월을 다 보낸 후에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이 응답합니다. 어차피 역사와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기도를 통해 응답하는 것이 형통이고 평안이고 행복인 것입니다. 어제 결혼식 주례사를 짧게 했는데 아내가 가면 갈수록 주례사가 짧아진다고 말했습니다. 예전같으면 20분은 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깨달은 내 고집 부리지 않고 전체 조화에 맞추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식 시간이 30분 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강조합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식 모든 순서를 받고 미리 결혼 리어설을 해보았습니다. 시간을 제어 보니까 주례사는 2분 정도 해야 정확히 30분에 끝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제 뜻 관철하려고 20분 설교를 해 보십시오. 1시간 내에 사진도 찍고 모든 행사를 해야 하는데 결혼식이 엉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어 가장 훈련받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내가 응답하는 훈련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아주 강력하기 때문에 훈련하지 않고는 쉽게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훈련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기도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옛 습관과 환경을 기도하는 습관으로 지속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육신적 건강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합니까? 영적 건강을 위해 기도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기도의 질은 기도의 양에 의해 확보되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마음의 방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중한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영적 체력, 영적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고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차단해야 합니다. 중독성이 강한 페이스북, TV, 인터넷에 빠져 있으면 영성은 물 건너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고되고 힘든 노동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사탄이 가장 싫어합니다. 기도하면 유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재미있고 쉬우면 훈련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권태감과 피로감 회의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기도에 훈련된 사람이 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타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씀으로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5만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은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나쁜 남자였습니다. 그는 10세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던 정부의 돈을 훔쳤습니다. 14세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도 새벽 2시까지 노름을 했습니다. 노름이 끝난 뒤에는 술을 마시고 여인숙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하기 사흘 전에도 ‘구역질나게 추잡한 음란죄’를 저질렀습니다. 16세 때, 숙박비를 떼어먹고 도주하다 체포되어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20세가 되던 해, 신학교에 들어가 루터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자격을 얻었지만, 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신학교 시절은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롬7:19)’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825년 11월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베타를 따라 기도집회에 참석해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어울려 다녔던 패거리들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고, 술집과 여인숙에도 발을 끊었으며 거짓말하는 습관도 버렸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옷을 입은 후 습관적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문제는 기도하고 1분도 채 안되어 응답받았으며, 또 어떤 문제는 인내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는 끈질기게 인내하며 분명한 약속을 믿고 기도하고 응답 받았답니다. 조그마한 주택을 빌려 30명의 고아들로 고아 사역을 시작했지만 후에 1만 명이 넘는 고아를 오직 기도를 통해 양육하였답니다.

 

기도 훈련을 위해서 기도의 기간과 장소를 정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도 모임에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경건의 생활을 일상화하시길 바랍니다. 기도노트를 사용하여 기도제목을 적고 응답된 날을 기록해 보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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