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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사다리(2) 희망의 뿌리 믿음(신명기9:22-2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7127 추천수:10 112.168.96.71
2016-02-21 07:02:21

 

희망 사다리(2) 희망의 뿌리 믿음

신명기9:22-29

 

우리나라는 하루 40명씩 자살하는 OECD 국가 중 11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한 해 1만 400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이는 38분마다 한 명꼴입니다. 성적이 안 좋다고,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가정불화가 있다고, 가난한다고, 빚이 많다고, 외롭다고, 친구가 따돌린다고, 병들었다고, 우울하다고 절망 자살을 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애완견이 죽었다고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30대 직장 여성이 회사에 나오지 않아 직장 동료가 가보니까 죽은 애완견을 꼭 끌어안은 채 숨져 있었답니다. 유서에는 "애완견이랑 같이 있고 싶다. 함께 묻어 달라"고 적혀있었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주 신문에 보니까 “희귀병 여고생, PD 꿈 쫓아 이화여대 입학”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대 미디어학부 입학한 한 학생(정가을)의 이야기입니다. 이 학생이 고교에 입학한 2011년 아버지가 '다발성내분비종양' 말기로 1년여의 시한부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앓았던 병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정밀검사에서 정씨와 대학생 언니에게도 같은 병이 발견되었답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떠나고 학업을 마쳐야 하는 언니는 자신보다 병이 깊었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이 가장이 되어 대학 진학을 모두 포기하고 취업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는 “죽기 전에 못 먹은 밥보다 못 먹은 꿈이 생각난다”는 글귀를 보고 더 늦기 전에 꿈을 향해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병원과 재수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쉴 새 없이 5년을 달려온 그는 대학에 올해 입학을 하였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2년 5개월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가데스 바냐에서 희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광야입니다. 1평 땅도, 10평 아파트도 없습니다. 100만원 주는 직장도 없습니다. 가도 가도 사막이어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매일 사람이 죽어갑니다. 라면도, 생수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슨 희망을 주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얼마나 희망적인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준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올라가 차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올해 정복해야 할 땅이 무엇입니까? 올해 올라가야 할 가나안 땅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매출 목표입니까? 직장 승진입니까? 진학입니까? 취업입니까? 결혼입니까? 출산입니까? 가정의 행복입니까? 자녀의 성적향상입니까? 부채의 청산입니까? 신앙의 성장입니까? 교회의 부흥입니까? 가족 전도입니까? 성격의 변화입니까? 각자의 가나안 땅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지금 광야에 있고, 그들은 정복하기에 강한 사람이고, 힘겨운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땅은 이미 너희에게 준 땅이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너희에게 준 땅이니 차지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여기에서 두 구절로 나와 있지만 아주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광야같은 인생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1장에서 민수기 13,14장에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장 19절 이하에 소개되어 있는데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소망을 주시고 있습니까? 이것을 이미 조상들을 통하여 주셨으니 두려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가서 싸워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심리학자로 희망에 대하여 체계화를 시도한 미국 캔자스 대학의 심리학자였던 릭 스나이더(Rick Snyder)는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크기와 그 전의 수능(SAT) 점수, 그리고 대학생활에서의 학점, 졸업 후 성취 정도 등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학생들이 대학 생활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잘 적응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수능 점수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학점이 높은 사람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졸업 후 더 많이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희망의 크기가 목표 설정과 성취, 노력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희망은 정체된 상태가 아니고 역동적인 에너지입니다. 희망은 실제적인 힘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은 "나는 소생할 가망성이 없다."라고 절망하지 말고 "나는 아직도 소생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라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환경일지라도 "새벽이 다가올수록 어둠은 짙어진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실패하고 슬퍼하는 자도 "꽃은 봄이 되면 다시 핀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깊은 수렁에 빠져 좌절한 사람도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불행한 사람에게는 희망만이 약이다"라고 말했듯이 희망은 인생의 최고 영양제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성공의 비결은 소망을 잃지 않는데 있다"고 했고, 헬렌켈러는 "참된 소망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 외아들이 죽은 여인에게, 문둥병으로 쓰러져 가는 환자에게, 병든 자녀로 신음하는 자들에게, 배신한 베드로에게 소망의 말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결국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 23절을 보십시오. 믿지 않습니다. 신1:3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가나안 정복에 대한 희망을 주었는데 그 희망을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희망을 주시고 그 희망을 이루어주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1. 희망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희망은 믿음에 뿌리를 박아야 흔들리지 않고 열매를 풍성이 맺을 수 있습니다. 희망, 소망, 꿈, 비전, 목표는 믿음에 뿌리를 건실하게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질병이 다가 올 때 넉넉히 이기고, 태풍이 다가 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 즉 소망, 희망, 목표, 꿈 등은 믿음에 뿌리를 두면 어느 날 실상으로 들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직 희망이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믿음이 있으면 그것들이 눈앞에 실상으로 드러날 증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보이지 않지만 이 믿음이 마음을 지배하고 몸을 지배하고 믿음이 행동을 다스리며 믿음이 미래를 만들어 냅니다. 믿음의 크기가 곧 사람의 크기를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능력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라고 말씀하십니다.

백부장 하인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 나와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였습니까?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마 8:13)” 믿음이 그의 소원을 이루는 뿌리라는 것입니다.

두 소경의 눈을 뜨게하는 소원을 이루어 줄 때도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7~31)”눈을 뜨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8장 35절에는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등장합니다. 그는 평생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눈을 뜨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예수님께서 어떤 환자를 만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48~50절에는 옥합을 가지고 나온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누가복음 8장 48절을 보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온 여인에게도“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귀신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에게도 마태복음 15장 28절에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님께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소원을 가지고 찾아온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예수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예수님,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 우리를 천국에 가게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하신 분과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는 능력, 이룸의 능력, 치유의 능력, 죄사함의 능력, 용서의 능력,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도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소아마비와 천식을 앓아서 촛불 하나도 제대로 끌 힘이 없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열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을거야."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답니다.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 의원이 되었고.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었으며.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입니다.

[휴먼 네트워크 세상의 행복한 리더]의 저자 송은숙 사장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절망 가운데 처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는 구급차 안에서 울부짖었지만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었고 남편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자, 남편은 꿈결처럼 살며시 눈을 뜨고 "은숙아 난 괜찮아."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후 절망가운데 죽으려 했지만 세 딸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대전 시내를 미친 여자처럼 쏘다니다 아무 교회에나 들어가서 기도인지 원망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울었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낸 아픔보다 더한 삶의 괴로움들이 덮칠 때마다 "하나님, 제발 오늘 하루만 버틸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믿음의 힘으로 이겼고 아픈 만큼 성숙해져 분명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성장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믿음의 힘으로 (주)한국 인식기술 대표이사, (사)한국 여성벤처협회 이사, (사)대덕 이노폴리스협회 이사, 중소기업청 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주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희망의 뿌리입니다. 희망의 씨앗입니다. 이 믿음에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죄악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는 힘, 안목의 정욕을, 이생의 자랑을, 갖가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믿음에 있습니다. 죄를,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절망과의 싸움에서, 질병과의 싸움에서, 고독과의 싸움에서, 유혹과의 싸움에서, 분노와의 싸움에서, 증오와 미움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2. 희망의 사약은 불신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희망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왜 믿지 못합니까? 오늘 성경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이유가 한 마디로 나와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그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부정적인 정탐꾼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넉넉히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차지할 수 없다. 우리는 죽는다.”라는 부정적인 10명의 말을 듣습니다. 부정적인 다수의 말, 인간적인 말, 이성적인 말, 확률적인 말,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하였는데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믿음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써먹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도록 하여 최초의 인류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넘어뜨렸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창세기3:1)라고 물어 봅니다.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6-17)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모든’ 나무의 실과라고 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사탄은 적당하게 모호하게 ‘모든 나무‘라고 희석을 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추가하거나 삭제하고 변조하고 축소 확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도록 합니다.

의심의 씨를 뿌린 사탄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4).라고 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성품을 비방하게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것같으니까 하나님이 먹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된다고 추겨 세워줍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과학과 인본주의, 성소수자 인권보호 등의 옷을 입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동성끼리도 결혼하고, 이제는 3명도 결혼하고 동물과도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진화에 의한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눅가복음 18장 8절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가면 갈수록 믿음의 회의를 갔게 만드는 일이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로서 무신론 전도사를 자임하는 리처드 도킨스 뇌졸중 쓰러졌답니다. 도킨스는 물리적인 세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관찰 가능한 우주의 배후에 숨어 있는 초자연적인 창조적 지성은 없고, 몸보다 오래 사는 영혼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은 합리주의이며 종교는 미신으로 보았으며, 과학을 통하여 증거되는 것만이 실재이며 과학을 기준으로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신은 망상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더 나아가 종교의 기원을 비판하였으며, 종교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악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자신이 과학에 의해 검증될 수 있는 것만을 사실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뇌를 만든 것이 아니라 뇌가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수히 악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 연좌제로 죄목을 걸어 놓은 것입니다. 아들이 타락했다고 아버지가 없습니까? 인간도 스스로 연좌제를 싫어하면서 하나님께는 왜 연좌제를 적용합니까?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이 과학에 의해 검증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아니시지요. 과학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과학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하나님이 만든 과학으로 하나님을 난도질하고 있을 뿐입니다. 생물의 유사성이 곧 생물의 대진화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 종은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생물은 DNA가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은 부정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단지 10명의 정탐꾼 편에 서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53:1)”

영적으로 무지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영안이 열려야 하는데 영안이 안 열리니까 하나님도 영적 세계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안과 심안과 영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교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과학자들 중에도 여호수아와 갈렙 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2012년 10월 8일 자 뉴스위크의 표지에 "천국은 진짜다(Heaven is Real!)"라는 표지 글이 실렸습니다. 하버드 대학 메디컬스쿨 교수로서 3대째 반평생 뇌를 연구해온 저명한 뇌과학자인 이븐 알렉산더라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7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7일 동안 그가 천국에 다녀왔다는 기사였습니다. 대부분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4분인데 그는 7일간 뇌가 정지된 것입니다. 그도 평생을 과학적 세계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이나 영혼, 천국의 존재는 믿지 않았답니다. 전원이 나갔는데 TV 화면이 나오는 신비한 천국 체험을 한 그는 하나님과 영혼, 천국을 확실하게 믿은 것입니다. 뇌가 의식, 즉 영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서 분리된 의식, 즉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과학주의자들은 이런 현상은 단지 뇌의 착각이라고 말하는데 샘 파니아는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2008년부터 미국과 유럽 등 25개 응급센터, 1만 5,000개 병실에 잡지 등을 숨겨 놓고 임사체험을 하는 자들이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뇌의 착각'이라고 볼 수 없는 사례가 상당수 보고되었답니다. 과학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2008년 6월 26일에 인간 게놈 31억 쌍의 유전자 염기 서열이 밝혀졌는데 31억 쌍의 유전자 중에 믿음의 본능이 새겨진 유전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의 유전학자 딘 해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간의 유전자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1,001명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했는데 3만 3,050번째 서열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갖고 있는 유전자 변종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에 '신의 유전자'라고 이름을 붙이고 신의 유전자(VMAT2)가 믿음의 생물학적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며 전승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을 믿고 알만한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교만 떨지 말아야 합니다. 신경의학자 '앤드루 뉴버그(Andrew Newberg)'는 뇌와 영성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독보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신을 만나거나 강렬한 영적 체험한 사람의 뇌사진을 찍었습니다. 실험 결과, 일반인보다 성직자들의 뇌가 더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곳이 전두엽이었답니다. 21세기 최첨단 과학은 갓 스폿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프랜시스 콜린스는 그날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던 우리 몸의 설계도를 처음으로 직접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에 겸허함과 경외감을 느낍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동시에 게놈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희망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이 있다는 분명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하나님이 치료시켜 주신다는 믿음에 뿌리를 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성적 사유를 통하여 현실을 분별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에 뿌리를 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3. 희망의 결실은 실행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항상 여호와를 거역합니다. “거역하여(타므루)”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따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지속적으로 거역하면 결국 약속한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라도 지속적으로 거역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약속을 믿고 1%씩이라도 실행하는 것입니다. 1%라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길을 바꾸면 우리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입니다. 당장 앞이 보이지 않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약속한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바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씩 하나님이 무너뜨려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걸어간 것입니다. 한 바퀴 돌고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일곱 바퀴를 돈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갈 때 먼저 물이 갈라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법궤를 매고 죽을지 모르는 그 물로 모험적인 신앙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모세가 민족을 해방시키는 희망을 품고 나아갈 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40년 광야 생활이 있었고, 한 나라의 왕자가 광야에 나가 처가살이를 하였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바로에게 나아갈 때 바로 바로가 굴복한 것이 아닙니다. 10가지 재앙이 있을 후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매일 매일 원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희망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윗도 하루아침에 그에게 주신 희망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5-17년 지나 그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꿈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희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한 걸음씩 순종함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매는 하루아침에 열리지 않습니다. 꽃은 하루아침에 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1%씩이라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말고 1분이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질병 때문에 절망적이면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국 인디아나 대학의 캔디 브라운 교수팀은 2010년 기도가 병을 고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답니다. 실험 대상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이었고, 실험 지역은 아프리카 모잠비크와 남미 브라질이었답니다. 먼저 연구팀은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시각 장애 환자 11명, 청각 장애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답니다. 중보기도를 받은 환자 25명은 증상이 대부분 호전되었답니다. 캔디 브라운은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두 사람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한 명은 미리엄이라는 시각장애인이고, 한 명은 조던이라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미리엄은 약 30센티미터 앞에 있는 자기 손가락이 몇 개인지도 셀 수 없었는데 중보기도를 받고 난 후 시력표의 아주 작은 글자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조던은 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의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었는데 중보기도를 한 후, 사람들이 하는 단어를 따라 했답니다. 캔디 브라운은 혹시 일시적인 현상이거나, 단순한 플라세보 효과일 가능성을 고려해서 장기적인 추적 조사를 실시했답니다. 그 결과 호전된 상태가 몇 년이 지나도 지속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이로써 연구팀은 '기도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과학적인 데이터가 마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희망을 가지고 믿음에 뿌리를 두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언젠가 희망의 열매는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22형제 중의 20번째 조산아로 태어나 사상 최초로 여성 올림픽 3관왕이 된 여인이 있습니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 중 하나가 된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입니다. 그녀는 네 살이 되던 해 성홍열과 폐렴을 심하게 앓아 소아마비에 걸려 양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윌마는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었지만 집안에 갇혀 절망의 수렁에 빠져야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가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이웃 농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80Km나 떨어진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윌마는 다리에 교정기를 부착해야 했고 의사는 그녀가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윌마에게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끈기 그리고 믿음만 있으면 그녀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윌마에게 걷기 훈련을 시켰습니다. "잘 했다. 오늘은 80㎝나 걸었구나. 내일은 1m를 걷기로 하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킨 훈련은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곱 살 때 다리 보호대를 차고 목발을 짚은 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홉 살이 됐을 때 윌마는 다리에 차고 있던 금속 보조 대를 스스로 떼어 내고 목발도 없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열 세살 때 윌마는 춤추는 듯한 이상한 걸음걸이긴 하지만 혼자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에 윌마는 달리기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꼴찌를 하였습니다. 몇 년간 윌마는 모든 경기에 참가했으며, 언제나 꼴찌를 독차지했습니다.

열다섯 살 때 그녀는 테네시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거기에서 코치인 에드 템플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템플 코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육상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의 소원대로 1956년 16살이 된 윌마는 호주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하여 400미터 계주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4년 후 20살이 된 윌마는 로마 올림픽에서 100미터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200미터, 400미터 계주에서 우승을 하여 사상 최초로 여성 올림픽 3관왕이 되었습니다. "내가 첫 번째로 강렬히 원하던 것은 금속 보조대 없이 걷는 일이었어요."라고 말하는 윌마 루돌프는 힘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나에게 내가 강렬히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셨어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인생에 날개를 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고 미래를 밝은 눈으로 보게 만듭니다. 믿음은 힘이 있어 절망에 소망을 불어 넣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라고 말씀합니다.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어진 가나안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희망의 사약은 불신입니다. 희망의 결실은 실행입니다. 믿음에 뿌리를 박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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