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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4) 나의 목자는 오직 여호와(시23: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560 추천수:7 112.168.96.71
2016-01-24 10:00:06

 

다짐(4) 나의 목자는 오직 여호와

시23:1-6

 

최근 한국일보에서 누구나 브라질, 일본, 덴마크, 한국 네 나라의 행복도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브라질 사람은 84%, 일본 사람은 54% 덴마크는 사람은 68%가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47%만 "행복하다"고 답했답니다. 한국인 10명 중 5명 이상이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엔이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58개 국가를 상대로 국민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47위를 기록했습니다. 2013년은 41위보다 더 후퇴하였습니다. 경제 순위로 본다면 14위쯤 해야 할 텐데 한국인은 상당히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34개 회원국 중 29위로 하위권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옥에 가깝고 희망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쓰인답니다. ‘수저계급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적 골품제도로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신분이 나누어져 계층상승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와 성취에 비례하는데 흙수저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까요?

그러나 소유나 성취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엘 길버트 교수가 연구해 보았습니다. 미국 대학 교수들은 교수 임용이 된 후 6년 후 정년 보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정년보장 심사를 앞둔 수십 명의 교수들의 행복 수준을 측정했답니다. 심사 직후에는 정년 보장을 얻은 교수들의 행복 수준은 매우 높아졌고 실패한 교수들은 상당한 불행감과 실의에 빠졌답니다. 그러나 수개월 후 다시 행복수준을 측정해보니까 본인이 지니고 있던 기본적 수준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나 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나 장군 승진이나. 직장에서 승진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게 되던 얻지 못하든 간에 사람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나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18세에서 60세에 이르는 성인 남녀 수백 명을 20년 간 지속적으로 연구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저마다 일정한 기본적인 행복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배우자 사별, 이혼, 결혼, 아이 잉태 때 불행감과 행복감은 모두 일시적이라고 합니다. 길버트 교수의 결론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든 스포츠 경기의 승부 결과든 애인에게 차이든 어떤 일이든 간에 그것이 우리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력은 당장에는 상당히 실제적이고 강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작고 빠르게 지나가는 일이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자신의 행복지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행복의 자동온도 조절장치"라고 부릅니다. 원래 밝고 명랑한 사람은 이 기본 수준이 높고, 우울하고 침울한 사람은 기본 수준이 낮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기본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행복의 기본 수준은 50%가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후천적인 것이 50%인데 외부 환경요인이라 할 수 있는 ‘삶의 상황’은 10%, 유전과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인간이 의지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의지적 활동’이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셀리그만 교수는 행복의 기본 수준을 향상시키기 의지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오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행복해 하고 있는데 어떤 상황을 당하든 행복할 수 있는 자동온도 조절장치는 무엇이었겠습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오랜 세월 장인에게 쫓겨다니면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다윗의 고백입니다. 아들이 배신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던 다윗의 고백입니다. 부하의 아내를 차지하고 부하를 죽여 자식이 죽고 죄로 말미암이 한 때 심각한 수치를 겪었던 다윗의 고백입니다. 결혼한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던 다윗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부하에게 배신을 당했던 다윗의 고백입니다.

원하지 않게 경상도로 직장이 옮겨도 “여호와가 내 목자아이가! 내사 마 답답할 끼 없데이”하는 것입니다. 전세금이 없어 충청도로 이사가도 “여호와는 염생이 같은 지를 키우시고 멕이시는 분이시니 지가 부족한 것이 없네유.”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노후 생활 안전하지 못하여 고향땅 전라도에 내려가고 "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겄냐?”라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목자가 아닙니다. 남편의 목자, 아내의 목자, 자식의 목자만이 아니라 나의 목자이어야 합니다. 나와 인격적 관계를 가진 목자라는 말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우리 번역에 '나'와 관계된 말이 14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일을 겪든 올 한 해 이렇게 다윗처럼 “나의 목자는 오직 여호와”라는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로 만족하며 행복해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해 주십니까?

 

1.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어디로 인도해 주십니까?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누이십니다. 푸른 풀밭인 “네오트 데쉐”는 “데쉐”는 “새싹, 새 풀”을 말합니다. 새 풀로 인도해 주십니다. 싱싱한 풀을 먹이기 위해 인도해 주십니다. “네오트”는 “거주지, 쉼터, 가정, 안식처”를 의미합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피하여 쉴 수 있는 그늘진 곳, 휴식처를 말합니다. 단순한 녹지대가 아닙니다. 양들이 먹기 좋은 풀밭,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뉘이시며”는 양들이 다리를 길게 뻗고 편안히 눕는 것을 말합니다. 목자를 의지하여 아무런 경계심을 가지지 않고 지극히 편히 쉴 곳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신선한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함으로써 안전히 쉴 수 있게 해줍니다. 다윗은 한 때 골리앗을 이기고 영웅이 되었지만 장인 사울 때문에 몇차례 죽음의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위태한 길에서 살려 주고 지켜 주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평탄의 길,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양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가장 적합한 길로 목자는 인도해 주십니다. 한 곳에서만 먹으면 금방 황폐해지기 때문에 목자들은 전체를 보고 인도합니다.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평탄의 길, 형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범죄하여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하여도 소생시켜 줍니다. 밧세바를 범하여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지만 그를 소생시켜 주었습니다. 적국에 들어가 미친체하고 온 가족이 포로로 잡혀가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인도해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들 망신은 곧 아버지 망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의 목자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죄악의 수렁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 평탄의 길, 형통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주님으로 올 한 해 참 행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께서 내길 인도 하시네 주께서 내길 인도 하시네 나의 하루 하루를 주님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인도 하시네”

 

2.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안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해 주십니까? 안위해 주십니다. “예나하무니”라는 말은 “보살펴 준다. 위로해준다”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안위를 “몸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함”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팔레스틴에 여름이 찾아오면 목자들은 양떼를 이끌고 집을 떠나 산골짜기를 지나 높은 언덕 산악지대의 초원으로 이끌어 갑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이 오면 다시 양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때가 양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간이 됩니다. 녹아내리는 눈사태의 위험이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곳입니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동굴에서 먹이를 노리는 사나운 짐승이 있는 곳을 지나야 합니다. 산사태의 위험이 있는 곳을 지나야 합니다. 독풀이 있는 생소한 것을 지나야 합니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있는 곳을 지나야 합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와는 전혀 다른 자칫 잘못하여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골짜기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있는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인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음침한 골짜기, 건강의 음침한 골짜기, 고난의 음침한 골짜기, 직장의 음침한 골짜기, 가정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상실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독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팡이'이로 인도해 주고 `막대기' 맹수의 공격을 방어해 주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인자하고 섬세한 손길로 인도하시고 위급할 때는 권능의 팔로 돌보와 주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가 되어 사망의 골짜기에서 인도하시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두렵고 험하고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모시게 됩니다. 평탄하고 형통한 길을 걸을 때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즉 목자이신 여호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울로부터 죽을 고비를 얼마나 많이 겪었습니까? 아들이 반역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치명적이 위기를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때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때로는 범죄하고 실수하고 절망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공부하고 전라남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다가 지금은 중국에서 여전히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선교를 하고 있는 김요석 박사의 간증입니다.

튀빙겐 대학에 라틴어를 가르치던 한 노교수님이 계셨답니다. 언어능력이 뛰어나 10개 국어를 했답니다. 히브리어도 유창하게 잘하셨는데 하루는 한 제자가 그 연유를 물었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40여 년 전, 세계대전 때 있었던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답니다. 당시 유대인 친구와 함께 기숙사에 살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를 중얼거리며 외웠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까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했답니다. 그런데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나치 비밀경찰에 잡혀 갔는데 자전거를 타고 친구가 끌려가는 것을 뒤쫓아갔는데 친구는 트럭 뒤로 웃는 얼굴로 내밀고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를 외치더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교수님도 군대에 징집되어 러시아 전투에 파병되었다가 포로로 잡혔답니다. 다른 전쟁포로들과 같이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답니다. 모두가 죽음의 공포로 울부짖었지만 교수님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도 평온한 얼굴로 웃으며 시편 23편을 외우던 친구가 생각이 났답니다. 동료들이 하나, 둘, 총알에 쓰러지고 드디어 교수님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서서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물었답니다. 그 때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고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했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 그러자 연합군의 러시아 장교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교수님과 함께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외우기 시작했답니다. 그도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연합군 장교의 눈에서도 뜨거운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 흘러 내렸답니다. 결국 교수님은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답니다. 하나님은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3.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승리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노래한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전쟁터에서 돌아온 신하에게 승리의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왕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이 메사(MESA)라는 곳에 가서 양에게 풍성한 풀을 공급해 주고 치료시켜 주는 것을 비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동지방의 양들의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때가 골짜기를 따라 고원지대의 방목장으로 올라가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자들은 양들이 고원 산악지대에 당도할 때 양들이 안전하게 쉬고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편편하고 넓은 바위가 있는 곳, 따스한 햇빛이 머무는 양지 바른 곳을 미리 답사해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런 곳을 "메사"(MESA)라고 한답니다. 맹수들이 있지만 이곳은 안전한 곳이고 양들이 마음껏 안심하고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동들은 여기에서 병든 양을 고쳐 준다고 합니다. 파리떼가 양들을 괴롭히는데 특히 코파리가 양의 코에 알을 낳아 이 유충이 양의 머리속까지 파고 들어가 각종 염증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양은 고통으로 머리를 나무나 바위에 부딪치며 데굴 데굴 구른다고 합니다. 이때 목자들은 여러 가지 향료를 섞은 올리브 기름을 양의 코나 귀, 목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에 계속 발라 주어 고쳐주고 보호해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풍성하게 해 주시고 완벽하게 치유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은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온 장수에게 포로들 앞에서 전쟁 승리를 축하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는 장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그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베푸시고'란 미완료 시재로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계속적으로 베풀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시 귀족들은 잔치에 참여할 때 이 기름을 머리나 수염 등에 발라 주었는데 이것은 주인의 극진한 친철과 호의를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매우 존귀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내 잔을 넘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잔치가 시작되어 주인이 술을 잔에 가득 담아 호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 잔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기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은혜의 풍성함을 말합니다. 그가 차지한 왕실의 재산과 사유 재산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대상 27:25-31; 29:2-5).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집'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막을 말하고 있지만 영원한 하늘나라에 거할 것을 사모하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끝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다짐하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복음 10: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의 성품을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주시죠.”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살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평생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눌 수 있습니다.

모든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스 카르스는 "목자가 양을 선택한 것이지 양이 목자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삼십백,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약 1:5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으며, 빌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목자로 삼아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품받고, 잔이 넘치고 여호와의 전에 영원히 거하는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줄 믿습니다.

 

올 한 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돈이 목자가 아니고 명예나 권력이 목자가 아니고 “나의 목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안위해 주시는 하나님, 잔이 넘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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